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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호/신작시/황경순/천 개, 만 개의 귀를 열고 외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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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시
황경순
천 개, 만 개의 귀를 열고
당신을 기다리기 위해
내 귀는 이렇게 많이 달렸습니다.
주렁주렁 달린 황금빛 귀들,
땅으로 땅으로 바짝 대고
당신이 나를 외면해도
당신의 발자국을 한없이 쫓아갑니다.
바람 소리에도
빗방울 소리에도
황금빛 귓바퀴를 쫑긋 열고
내 귀는 언제나 열려 있습니다.
바람 한 점 없는 어두운 밤에도
행여 당신이 나를 지나칠까 봐
황금빛으로
귓바퀴를 가늘게 열고 더욱 귀 기울여
당신의 발자국을 기다립니다.
가슴에 남겨진 말 한 마디도 못 하고
땅만 바라보며
큰 한숨만 쉽니다.
계절이 다 가도
아직 피지 않는 귀 하나를
당신을 위해 항상 열어둘 겁니다.
언제까지나
다리의 다리
물빛이 좋아서
한강철교 C라인 제3교각,
여기에 자리 잡았다.
미끈한 다리로 서 있으면
금빛으로 일렁이며 타오르는 해,
요란하게 달려오는 열차가 아침을 밝히고
물고기들의 입질까지,
내 몸을 탐한다.
낮에는 스크럼을 짜는 은빛 햇살,
둥근 발을 살살 간지럽히는 물살,
삼족오 깃발 휘날리며 윙크 하는 주몽호 유람선,
그 속의 사람들까지
카메라를 들이대며
모두가 반했다고 유혹을 하니
몸이 휘청거린다.
떠받들기 위해 태어난 몸,
사명을 다 하려고
무거워지기 위해
햇살도 먹고 바람도 먹고
더러운 오물까지 닥치는 대로 먹어 보지만
몸은 자꾸 가벼워진다.
아랫도리가 자꾸자꾸 비어간다
길과 길을 잇고,
다리와 물, 물과 하늘도 이어주는
다리의 다리는
또 다른 다리 만들어 나간다
물 속에도, 하늘에도, 가슴 속에도
하나 둘, 셋…
조금씩 조금씩 투명해진다
물빛이 되어
**약력:2006년 《 미네르바》로 등단. 시집 『나는 오늘, 바닷물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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