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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호/신작시/고경옥/장롱 외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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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시
고경옥
장롱
시집올 때 아버지가 안방에 심어 놓은 나무 한그루
28년 동안 나를 따라 이사하고
함께 비 맞고 함께 속을 채우며 살아왔다
제법 단단하던 뼈대가 여기저기 패이고 닳았지만
이불 바지 햇살 양말 속옷 구름 수건 모자 강물
바람에 할퀸 상처나 한숨까지도 살뜰하게 보듬은 품속
언제부턴가 장롱 문을 열 때마다
삐걱대는 소리가 흘러나온다
저만치 걷고 있는 늙은 아버지가 절룩거린다
계단
징검다리 건너듯 다리를 벌려
강물이 흐를 수 있게
어쩌면 몸속의 강물이 흘러나와 함께 흐를 수 있게
마치 하늘에 발끝이 닿을 듯이 오른다
발을 헛딛지 않기 위해
그러므로 이마나 심장에 상처를 남기지 않기 위해
서두르지 않고 먼지처럼 사뿐 오르기도 한다
올라 설 때마다 멀어지는 땅 끝 저 아래
어디든 오를 땐
추락도 조심해야지만
멀어지는 눈빛을 감수해야 할 것
상처보다 아프고 깊은 건
돌아서 아득히 멀어지는 시퍼런 등이다
**약력:2010년 《월간문학》 으로 등단. 시집 『안녕, 프로메테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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