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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호/신작단편/강기희/돈의 행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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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부
댓글 0건 조회 1,674회 작성일 17-01-05 1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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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단편

강기희




돈의 행방



   그믐인데다 첫 한파가 찾아온 탓에 어둠은 일찍 찾아왔다. 자정이 가까운 시간 미등만 켠 승용차 한 대가 조용히 국 영감네 집으로 향했다. 불이 꺼진 국 영감네 집은 개 짖는 소리도 없이 고요했다. 차에서 내린 이들이 국 영감네 집을 다녀오는 중에도 마을에서는 인기척 하나 느껴지지 않았다. 국 영감네 집을 다녀간 승용차가 골짜기를 빠져나갈 무렵 국 영감네 집에 불길이 치솟았다.
   국 영감네 집에 불이 났다는 소식이 주민들에게 전해진 건 자정을 넘긴 시간이었다. 소식을 전한 이는 마을에서 반장 일을 보고 있는 최 씨였다. 반장이 전화를 걸었을 때 대부분의 집은 잠자리에 든 시간이었고, 이태 전에 이사 온 전직 은행지점장네만 먼데서 온 손님과 술을 마시느라 깨어 있었다. 잠을 깨운 반장은 “이거 밤늦게 죄송합니다만, 긴급한 상황이라서요.” 라는 말을 앞머리에 달면서 열 가구 남짓한 주민들 집에 일일이 전화를 걸었다. 반장은 긴급한 상황이라고 했지만, 그의 말투는 화재 소식을 의무적으로 알리고 있다는 게 느껴질 정도로 건조했다. 전화를 받고 있는 주민들도 반장의 그런 마음을 모르는 바는 아니었다. 반장을 포함한 마을 주민 다수가 국 영감과 얼굴을 붉히며 지낸지 꽤 오래 되었기 때문이었다.
   전화를 받는 주민들도 건성건성 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반장과 다른 점이 있다면 불 난 집엘 가봐야 하는 건지 가지 말아야 하는 건지, 아니면 불난 집에 부채질을 해야 하는 건지 고소하다며 웃어주어야 하는 건지에 대한 생각 정도를 보탰을 뿐이었다. 비록 십일월 말이라고는 하지만 밖은 영하 십도 이하로 떨어지는 혹한인데다 무엇보다 국 영감과는 땅 문제로 이리저리 불편한 일이 많기 때문이었다.
그런 사실을 알고 있는 반장이 전화 끝에 이런 말을 달았다.
“저야 반장이라 가기 싫어도 가봐야겠지만요. 국 영감네 불이 혹시 큰 불로 번지지나 않을까 하는 마음에서 연락을 드린 것이니 그렇게들 아세요.”
   반장이 마지막으로 던진 말에 주민들은 뭔가 번뜩하고 스치는 것이 있었다. 잠결에 전화를 받던 봉달도 반장의 그 말만큼은 귀에 쏙 박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봉달이 옷을 주섬주섬 챙겨 입자 댁내가 한마디 했다.
“이 밤에 옷은 왜 입소?”
“국통이네 집에 가보려고.”
“아이고, 속도 좋네. 그 놈의 집구석 타든 말든 건 뭐하러가!”
봉달의 아내가 한마디 쏘아붙였다. 근래에 국 영감과는 길 문제로 다툼이 있었던 터라 그녀는 국통인지 밥통인지 하는 말만 들어도 열불이 나던 참이었다.
“뭔 소리여. 내가 국통이네 집이 걱정되어서 이런감? 골짜기를 휩쓸고 지나가는 바람소리가 보통이 아닌데다 봄부터 이어진 가뭄으로 인해 마을 전체가 화약고여. 몇 해 전에 양양 낙산사 타는 거 못 봤어? 여기도 성냥불 하나면 양양처럼 온 동네가 불바다가 되는 건 시간문제여.”
“에구, 가정집에 난 불이 그렇게까지 번질까!”
“아따 모르는 소리 하덜 말어. 불이 막 날아다니는 거 테레비에서 못 봤는가? 국통이네 집에서 여기까지 멀다고는 해도 순식간이여. 여차 하면 우리도 피난 가야할지 몰러. 그러니 내 다녀올 동안 댁내도 잠이나 퍼질러 자지 말고 채비 단디 하고 있어. 알았어?”
봉달이 아내에게 다짐을 해놓고 집을 나섰다. 십 오리 어둔 길을 달려 국 영감네 집 인근에 이르니 불길이 하늘로 치솟는 게 보였고, 주변은 소방차와 화재감식차량과 구급대 차량 등이 뒤엉켜 한바탕 난리를 치르는 중이었다.
“집 규모가 저온저장고에다 창고를 포함하면 자그마치 백 평이 넘는데, 이렇게 작은 소방차가 오면 어떡해! 그것도 꼴랑 한 대로 저 불을 어떻게 끈단 말여?”
국 영감이 발을 동동 구르며 소방대를 향해 소리쳤다.
“마을로 진입하는 길이 좁아서 큰 소방차가 들어오질 못해요!”
무전기를 든 제복 하나가 국 영감에게 소리쳤다.
“그럼 작은 소방차라도 더 와야 하는 거 아뇨!”
“오늘 바람이 심해 벌써 딴 동네로 출동했어요.”
“그럼 저 불은 어떻게 끕니까?”
국 영감이 답답하다는 듯 가슴을 쳤다.
“급한 대로 양수기라도 돌려야지 어쩌겠습니까.”
제복이 그렇게 소리치곤 대원들을 다그쳤다.
“물이 부족하니 얼른 계곡 물이라도 퍼 올려!”    
   제복의 명이 있자 대원 두엇이 비상용으로 챙겨 온 양수기를 들고 계곡으로 내려갔다. 잠시 후 양수기 돌아가는 소리가 요란하게 났고, 대원들은 호스를 들고 산으로 올라갔다. 그러나 양수기로 퍼 올린 물의 압력이 약해 화재 진압용으로 쓰기엔 턱 없이 부족해 보였다. 찔찔 나오는 물조차 산으로 향하자 국 영감은 또 다시 가슴을 쳤다.
“아이고 참, 물도 없다면서 불난 집에다 물을 뿌려야지 멀쩡한 산엔 또 왜 뿌려요!”
상황을 지켜보던 국 영감이 우는 소리를 냈다.
“영감님 집이야 이미 불이 붙었으니 천천히 꺼도 되지만 산은 사정이 달라요. 만약 저 불이 산으로 옮겨 붙으면 이 마을이 잿더미가 될 건데, 영감님이 책임지실 겁니까?”
제복을 입은 소방관이 버럭 언성을 높였다.
“마을 땅의 구 십 프로가 내 땅이었으니 마을은 걱정 말고 집부터 꺼줘요. 집에 꼭 건져야 할 게 있단 말이에요. 예?”
국 영감이 울상이 된 얼굴로 제복의 팔에 매달렸다.
“영감님, 화재 현장에서의 진압작전은 우리가 짜는 거지 영감님이 짜는 게 아닙니다. 그리고 우리는 공공의 재산을 지키는 일이 먼저이지 영감님 금붙이나 찾아 주려고 출동한 게 아니란 말입니다. 사정이 그러하니 많이 아쉽겠지만 집은 포기 하는 게 좋을 겁니다.” 
제복을 입은 소방관이 손을 휘휘 저으며 말했다.
“집을 포기하라니요. 난 그렇겐 못해요! 그러니 집부터 꺼줘요. 예?”
“허, 말귀를 못 알아들으시네. 저 상황을 봐요, 불을 끄게 생겼나. 설령 안에 사람이 있다고 해도 저런 상황에선 포기하는 겁니다. 아셨어요!”
   제복이 국 영감네 집을 가리키며 소리를 질렀다. 그때 집안에서 뭔가가 터지는지 펑펑 하고 소리가 나더니 불길은 더욱 치솟았다. 그 모습을 본 국 영감은 “아이고! 저걸 어째!” 하며 제복 입은 사람이라면 아무나 붙잡고 불 좀 꺼달라고 애원을 했다. 국 영감이 이사람 저 사람에게 매달리는 순간에도 집안에서는 폭발물 터지는 소리가 이어졌다. 상황이 긴박하게 돌아가자 무전기를 든 제복이 전방에 나가있던 대원들에게 일선 후퇴를 명했다. 명을 받은 소방관들이 몇 걸음 물러나는 순간이었다. 펑, 하는 소리가 지축을 흔들 정도로 크게 나는가 싶더니 함께 솟구친 불덩어리 하나가 산자락으로 날아갔다. 
“어어, 불이 산으로 올라가면 안 되는데!” 
   상황을 지켜보던 제복이 “아휴 참. 영감님, 우리 대원들 지금 작전 중입니다. 불을 끄시려면 양수기라도 빌려 오시던가 아니면 귀찮게 하지 말고 제발 저리 좀 비켜요!” 하고는 산으로 뛰었다. 개울에서 끌어올린 물 호스를 들고 산으로 뛰는 사람과 무전기를 들고 소리치는 사람이 어둠 속에서 서로의 몸을 부딪치며 나뒹구는 사이 국 영감은 흙바닥에 자빠졌고, 제복을 입은 소방관들과 면 자율소방대 대원들은 “산! 산! 산으로 올라가는 불길을 막아!” 라고 소리치며 이리 뛰고 저리 뛰었다.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음에도 국 영감은 집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했다. 국 영감이 “아이고 내 돈! 내 돈!” 하며 땅바닥을 치고 있는데, 골바람이 휘익 불어왔다. 바람을 탄 불길은 더욱 거세졌고, 제복을 입은 대원들의 움직임 또한 빨라졌다. 모두가 분주하게 움직이는 시간, 국 영감의 눈에 불구경을 하고 있던 마을 반장의 모습이 들어왔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국 영감은 구세주라도 만난 듯 반장에게 달려갔다.
“최 반장, 나 좀 살려줘….”
“상황을 보니 도와 줄 것도 읎어 보이는구먼요.”
“도와줄게 없기는. 내가 직접 불을 끌라고 하니 어디 가서 양수기라도 좀 빌려다 주시게 응?”
“허, 나 같은 반장이 뭔 힘이 있다고 이 밤중에 어디 가서 양수기를 빌려요. 영감님이 신으로 모시는 황사기에게나 부탁해보세요. 그 사람이라면 소방차 몇 대 정도는 불러 올지 압니까.” 
반장이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었다.
“황 판사가 지금 연락이 안 돼. 그러니 최 반장이 나 좀 도와줘. 제발….”
“부탁할 걸 하셔야지요. 마을 사람들을 등 돌리게 만든 게 영감님인데 이제 와서 도와달라고 하면 누가 도와준답니까. 턱도 읎지요.”
반장의 말이 매몰차게 돌아왔다. 
“아무리 그래도 집이 불타는데, 저대로 보고만 있을 건가? 미우나 고우나 한 마을에 사는 사람으로서 불은 꺼줘야지.”
“허, 영감님 때문에 마을이 풍비박산이 나고 엄한 사람까지 죽었는데 그깟 집이 문제간디요.”
사람이 죽었다는 반장의 말에 국 영감은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하고 한숨만 폭 내쉬었다. 

   지난여름, 마을에 흉흉한 일이 벌어졌다. 마을주민 하나가 국 영감네 땅에서 농약을 먹고 자살한 일이 벌어진 것이었다. 시신은 아침에 발견되었고, 품에서는 국 영감을 원망하는 내용이 가득 들어있는 유서가 발견되었다. 자살한 사람은 국 영감과 토지사용 승낙에 관한 문제로 다투다 자살을 했는데, 국 영감이 자살자의 집으로 통하는 길을 자신의 땅이라며 막은데 원인이 있었다. 길 문제로 갈등을 빚던 자살자는 자신의 집으로 통하는 길이 막히자 국 영감을 상대로 소송을 진행했지만 패했고, 진출입로가 끝내 봉쇄되어 버리자 화를 참지 못하고 목숨을 끊고 말았다.
당시만 해도 소문만 무성하던 대규모 휴양리조트가 마을 인근에 들어서기로 확정이 된 상태였고, 마을의 땅 값 또한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오르던 시점이었다. 그 무렵 국 영감은 마을에 있는 자신 소유로 되어 있는 땅을 모두 매물로 내 놓았는데, 땅을 사려는 외지인들이 하루에도 몇 차례씩 마을을 훑고 지나갔다. 그들 중에는 부동산 개발업자도 있고 외제 승용차를 탄 이들도 있었다. 부동산 개발업자들은 주로 규모가 큰 땅이나 계곡을 끼고 있는 땅을 다량 구매하여 땅값을 몇 배로 올려 먹으려는 사람들이었고, 승용차를 타고 온 이들은 대개 조용한 별장 부지를 찾는 쪽이었다. 어느 쪽이든 국 영감네 땅은 거의 계곡을 끼고 있어 인기가 좋았다. 더구나 땅 값이 더 오를 것이라는 기대감까지 있어 땅은 내놓는 족족 팔렸다.
땅이 팔리면서 여기저기에서 분쟁이 일어났다. 분쟁의 원인은 전부 국 영감으로부터 나왔으며 국 영감이 매매한 땅과 관련이 있었다. 국 영감은 땅을 팔면서 길을 이리저리 돌려 주민들이 사용하던 길이 없어지게 하거나 자신의 맹지 땅을 길을 내어 주겠다며 매매한 이후 소송을 진행하여 땅을 산 사람과 길을 사용하던 주민 모두에게 피해를 입히곤 했다.
국 영감으로 인해 마을엔 소송과 고소고발이 난무했고, 주민들은 하루가 멀다 하고 경찰서나 법정에 출두를 해야 했다. 그 일로 주민들과 국 영감과의 관계는 회복이 불가능할 정도로 악화되었고, 어쩌다 길에서 마주쳐도 서로 욕설을 하면서 헤어지기 일쑤였다. 일흔이 넘은 국 영감이 그렇게까지 하기에는 국 영감의 일을 봐주는 숨은 조력자가 있었다. 그는 마을에서 유일하게 국 영감과 친분을 유지하고 있는 자로 주민들은 그를 황사기라고 불렀으나 국 영감은 그를 대할 때면 언제나 황 판사라고 불렀다. 황 판사는 얼마 전부터 대전 어디에서 조폭 활동을 했다는 똘마니 하나와 지내고 있었는데, 가끔은 깍두기 머리를 한 젊은이들을 집으로 오게 하여 자신들의 위력을 과시하기도 했다. 그 때문에 주민들은 괜한 일에 엮이는가 싶어 황 판사와는 말도 섞지 않았다.
   황 판사가 처음 마을에 왔을 때만 해도 누구는 전직 법원 공무원이었다고 하고 누구는 변호사 사무장 노릇을 했다고 말하지만, 그가 어디에서 살았고 전직 또한 무엇이었는지 정확하게 아는 사람은 없었다. 이런저런 설만 무성하던 그 시절, 어느 날부터 황 판사가 보이지 않았다. 집은 자물쇠로 채워져 있었고, 일 년이 지나고 이 년이 지나도 황 판사는 나타나지 않았다. 시간이 흐르자 사람들의 머릿속에서도 황 판사란 존재는 서서히 잊혀져갔다. 누구도 황 판사를 입에 올리지 않을 무렵 황 판사가 마을에 나타났다. 그가 떠난 지 만 삼 년이었고, 살집이 퉁퉁하게 불은 모습이었다. 그는 길에서 마주친 마을사람들에게 사업차 외국에 나가있었다고 했지만, 정작 마을에는 그가 사기를 치다가 잘못되어 감옥에 다녀왔다는 소문이 더 많이 돌았다. 마을로 돌아온 황 판사가 가장 먼저 한 일은 국 영감과의 친분 쌓기였다. 이태 전의 일이었고, 마을에 리조트가 들어선다는 소문이 돌기 시작한 때였다.
   노회한 국 영감은 무식한데다가 가진 게 땅밖에 없는 사람이었다. 어쩌다 땅은 물려받았지만 자신의 땅이 어디에서부터 어디까지 있는지도 모르는 청맹과니였다. 집에는 등기장이 굴러다녔고, 누군가 등기 한 장을 가지고 간다 해도 잃어버렸는지조차 모를 정도였다. 그때 황 판사가 나타나 국 영감을 찾아간 것이었다.
“영감님, 이렇게 하시다간 땅 다 날려요. 제가 봐 드릴게요.”
   땅을 날린다며 겁을 주는 황 판사에게 국 영감은 넙죽 엎드리며 “아이고, 그러믄 고맙지요.” 했다. 이미 법원공무원이다 변호사 사무장이다 하는 소문은 국 영감도 들은 터였다. 몇 가지 일을 시켜보니 복잡한 서류를 척척 만들어주는 황 판사가 국 영감도 좋았다. 무엇보다 땅을 매매하려면 읍내에 있는 법무사를 이용해야 하는데, 그 비용을 줄일 수 있다는 생각이 국 영감에겐 더 매력적인 일이었다. 
“영감님, 땅이란 건 말 한마디에 수천만 원에서 몇 억이 왔다 갔다 합니다. 그러니 앞으로 땅을 파실 적엔 영감님이 가격을 정하지 마시고 반드시 저를 통해서 파세요. 그래야 땅값도 제대로 받고 세금도 덜 냅니다. 아셨죠?”
황 판사의 말에 국 영감은 “그래주면 고맙지만 하는 사업도 바쁠 텐데 그런 일까지 하게 해도 될까?” 라고 되물었다.
“그럼요. 한 동네 사는데 그런 일 정도야 도와 드려야지요.”
   그날 밤 두 사람은 닭백숙을 끓여 놓고 오랜 시간 술을 마셨다. 술자리가 끝날 즈음, 국 영감은 황 판사가 내민 계약서에 도장을 찍었다. 계약서엔 국 영감이 황 판사를 법적대리인으로 선임한다는 내용과 국 영감 소유의 부동산 일체는 법적대리인인 황 판사를 통해서만 매매할 수 있다는 내용 등이 포함되어 있었다. 황가가 마을로 돌아온 지 보름 만에 생긴 일이었다. 그날 이후 국 영감네 땅은 반드시 황 판사의 손을 거쳐야 거래가 되었고, 각종 소송과 관련된 일 또한 황 판사의 주도로 진행이 되었다. 국 영감네 땅에서 자살을 한 자살자와 벌인 소송에서 이긴 것도 황 판사가 만든 작품이었으니 국 영감에게 황 판사는 판사를 넘어 신과 다름없는 존재였다.
 
    산으로 옮겨 붙었던 불이 소방관들에 의해 진압이 되었다. 화재현장 인근에 모여 상황을 지켜보던 마을 주민들은 그제야 안도의 숨을 내쉬며 각자의 집으로 전화를 걸었다. 불이 대충 잡혀가니 기다리지 말고 자라는 내용들이었다. 소방대원들이 산으로 이동하여 불을 끄는 동안 국 영감은 황 판사만 찾았다. 황 판사라면 이 상황을 어떻게든 정리할 수 있을 것이었다. 하지만 전화를 몇 번이나 걸어도 황 판사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자신의 휴대폰이 문제가 있나 싶어 다른 이의 휴대폰으로 걸어보았지만 신호만 갈뿐 통화는 여전히 되지 않았다.
‘이 양반이 깊은 잠에 들었나?’
국 영감은 그렇게 생각하며 음성메시지를 남겼다.
- 황 판사, 지금 집에 불이 나서 다 타고 있으니 빨리 좀 와줘. 응?
 
    새벽이 되자 골짜기를 휩쓸던 바람은 잦아들었다. 다행이다 싶었지만 문제는 추위였다. 소방차의 물은 진즉 떨어졌고, 계곡의 물도 가뭄으로 인해 고이는 속도가 느렸다. 더구나 기온마저 급격히 떨어지면서 고인 물에 얼음조각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얼음이 찬 물은 아무리 발전기를 돌린다 해도 호스로 빠져나가지 못하고 막히기 일쑤였다. 소방관들은 얼음이 쏟아지는 호스를 바라보며 허탈한 표정을 짓고 있는 사이 국 영감네 집 지붕이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그 때문에 잠시 소강상태에 있는 불길이 다시금 피어올랐고, 자욱한 연기와 불길 속에서 대원들은 하나 둘 지쳐갔다. 그 모습을 본 제복이 본서에다 소방차와 인력 지원을 거듭 요청했으나 시간이 지나도 소방차와 대원들의 충원은 없었다.
    불길이 다시 치솟자 국 영감은 망연자실하여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국 영감이 넋을 잃은 채 눈물을 훔치고 있는 시간 인근에 모인 마을주민들은 국 영감네 화재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불은 왜 났다고 하는가?”
주머니 깊숙이 손을 찔러 넣은 채 국 영감네 집을 바라보던 봉달이 전직 경찰에게 물었다. 
“아궁이에 군불 때다가 옮겨 붙은 거 아닐까요? 전에 보니 아궁이 주변이 검불이다 뭐다 너저분한 게 불나기 좋게 생겼더만요.”
“근데 국통이와 찰떡같이 붙어 다니던 황사기 놈이 왜 안보이네. 벌써 달려왔어야 하는 거 아냐?”
“국통이네 국물이란 국물은 다 빼 먹었을 텐데 뭐하러 와요. 들리는 말로는 국통이가 내놓은 땅이 어제부로 다 팔렸다고 하던데요.”
“그래? 그럼 국물이야 황사기가 처먹었다고 치고. 국통이는 뼛다구를 얼마나 챙긴 거여? 내놓은 땅이 솔찬하잖어?”
“그거야 모르죠. 들리는 말로는 황사기는 땅을 팔면서 반드시 이중계약서를 쓰곤 하는데, 양도세를 적게 내려고 돈도 꼭 빳빳한 오만 원 권 현금으로만 받는다네요. 그 현금 다발을 건네주면 국통이가 그렇게 좋아한다고 황사기가 어느 술자리에서 말했다는 소릴 들은 적은 있어요.”
“허, 재밌구먼. 내가 알기론 국통이가 은행 거래를 전혀 안하는 걸로 아는데, 그럼 국통이는 그 많은 돈을 어디다 두는 겨?”
“낸들 압니까.” 
“전직 경찰이라며 그 정도도 몰라? 내 친구는 전직 금감원 출신인데, 은행권에 들어간 돈의 흐름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말만 들어도 금방 알던데?”
“형님도 참, 제가 국통이네 집에다 도청장치를 달아놓은 것도 아니고 압수수색을 한 것도 아닌데 남의 집 사정을 어떻게 알겠어요. 다만 황사기가 국통이에게 요즘 유행한다는 작고 예쁜 금고 하날 선물했다는 이야긴 들은 적이 있네요.”
“작고 예쁜 금고?”
“그렇다니까요.”
“허, 그렇다면 지금 저 불길 속에 금고가 있다는 얘긴가?”
“말이 그렇게 되나요?” 
전직 경찰이 국 영감네 집을 바라보며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면 자율방범대원들이 어디서 구해왔는지 양수기 세 개를 계곡에 댔다. 계곡 지리를 잘 아는 대원들은 얼음 없는 물웅덩이를 찾아냈고, 곧장 물을 끌어 올렸다. 호스를 타고간 물이 국 영감네 집으로 동시에 쏟아지자 잿더미가 주변까지 퍼졌다. 연기와 잿더미가 번지자 일대는 연무가 낀 듯 시야조차 확보되지 않았다. 소방관들이 헬멧을 벗어 잿가루를 지워내는 사이 검은 물체가 불덩이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 보였다.
“어어, 저거 누구야! 당장 끌어내!”
무전기를 든 제복의 고함에 소방관들의 시선이 검은 물체로 쏠렸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라 소방관들은 어어, 하고 탄식만 뱉을 뿐 움직일 생각을 하지 못했다. 소방관들은 검은 물체가 완전히 불 속으로 들어가고서야 정신을 차렸는데, 때는 이미 늦어 말릴 수도 끌어낼 수도 없는 상황이 되었다. 불 속으로 들어간 검은 물체는 쓰러진 지붕을 들추며 무언가를 찾았다. 불길이 몸을 휘감아도 그 행동을 멈추지 않았다. 불길 속으로 뛰어든 검은 물체가 집주인인 국 영감이라는 사실을 알아차린 건 그 무렵이었다.
“어어, 저 영감님이 죽고 싶어 미쳤나? 이봐요, 당장 나와요!”
무전기를 든 제복이 검은 물체를 향해 소리쳤으나 국 영감은 자신의 행동을 멈추지 않았다. 당황한 제복이 무전기를 켜며 대원들에게 명했다. 
“소화기와 호스를 잡고 있는 대원들은 전원 영감님에게 집중한다. 실시!”
   제복의 명이 있자 대원들이 국 영감에게도 물과 소화액을 뿌리기 시작했다. 물과 소화액이 집중되자 국 영감에게 붙은 불이 꺼지면서 주변의 불 또한 잡히기 시작했다. 주변이 정리되자 제복은 대원 둘을 호명하며 지금 당장 국 영감을 구출하라는 명을 내렸다. 명을 받은 대원 둘이 불길로 뛰어 들자 구급대 대원들이 들것을 들고 달려왔다. 국 영감은 잠시 후 대원들에 의해 구출되었고, 이내 구급차에 실려 병원으로 후송되었다.

   국 영감네 집을 태운 불은 아침이 되고서야 꺼졌다. 긴 밤을 보낸 소방대원들은 지친 몸으로 마을을 떠났다. 하늘은 곧 눈이라도 내릴 듯 잔뜩 흐려있었다. 바람은 잔잔했으나 영하의 날씨는 여전했다. 불이 꺼진 국 영감네 집 주변은 마치 폭격이라도 맞은 듯 흉하기 이를 데 없었다. 흐린 해가 뜨자 화재감식반이 다녀갔다. 현장을 이리저리 둘러보던 그들은 집이 전소된 데다 현장이 훼손되어 있어 발화점을 찾기 힘들다고 말했다. 이어 도착한 경찰은 집 안을 뒤져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찌그러진 철제 금고 하나를 찾아냈다. 금고는 문짝이 분리되어 있었으며 안은 텅 비어 있었다. 금고를 수습한 경찰마저 떠나자 최 반장은 굴삭기를 불러 현장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어이, 금덩이라도 나올지 모르니 두 눈 크게 뜨고 일해. 알았어?”
반장이 굴삭기 기사에게 농담을 던지고 있는데, 면사무소에서 담당 직원이 나왔다.
“아이고, 집주인께서 병원에 계시니 반장님께서 나오셨네요.”
담당이 반장에게 음료수박스를 건네며 악수를 청했다.
“마을에서 보기 싫다고 하니 나라도 나서야지 어쩌겠어요.”
“국 영감님은 괜찮으시답니까?”
“불길 속으로 뛰어 들어가 큰일이라도 당하지 않았나 했는데, 생각보다 상처가 심하진 않다고 합니다. 곧 일반병동으로 옮긴다니 그나마 다행스런 일이지요.”
“아무튼 마을에 큰 사고가 생겨 반장님께서 마음이 무겁겠습니다. 반장님께서 놀란 주민들을 잘 위로 해 주셔야겠습니다.”
“그래야겠지요.”
담당이 현장 사진 몇 컷을 찍고 떠나자 이번엔 적십자사에서 구호물품이 든 보따리를 들고 왔다. 반장에게 구호품을 맡긴 그들은 매캐한 냄새를 견디지 못한 채 마을을 서둘러 떠났다. 아침 시간이 지나자 마을 사람 몇이 화재 현장을 보러 왔다.
“아고, 고철만 해도 몇 트럭은 나올 듯싶네요. 저걸 언제 치운데요?”
오래 전 고물상을 했다는 권 씨가 주변을 둘러보며 말했다.
“허허, 개 눈엔 똥만 보인다더니 권 씨 눈엔 고물만 보이나 보네.”
전직 경찰이 한마디 했다.
“개똥은 거름으로나 쓰지 요즘은 고철 값이 똥값이라 운반비도 안 나와요.”
권 씨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참, 황사기가 보이지 않던데 누구 본 사람 있어요?”
반장이 주민들을 둘러보며 물었다.
“들리는 말로는 국통이네 집에 불이 나는 날 마을을 떠났다고 하던 걸.”
“누가 봤대요?”
“들리는 말이 그래. 국통이네 땅을 마저 파는 날 황사기도 깔고 앉아 있던 집을 팔았다고.”
“그게 뭔 소리래요?”
반장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었다.
“나도 잘 몰러. 들리는 말이 그렇더라니까. 황사기가 국통이 돈을 제대로 해먹고 떠났다고 말야.”
전직 경찰의 말에 다들 그게 무슨 소린지 고개를 갸웃했다. 
      
   경찰서로 돌아간 담당 형사는 화재현장에서 수습한 금고를 국과수에 보내 감식을 의뢰했다. 국 영감네 화재가 자연발생이나 단순한 실화가 아닌 원한이나 금품을 노린 방화일 수도 있다는 판단에서였다. 국 영감은 초기 진술에서 아궁이에 불을 넣은 것은 맞지만 아궁이 단속을 하고 잠들었다고 했으니 자연화재나 실화일 가능성은 적었다. 마침 그날은 땅을 마지막으로 판 날이고 금고엔 돈이 가득 들어있었다. 누군가 금고에 손을 댄 후 불을 질렀다면, 그것은 돈을 노린 계획적인 범죄로 귀결이 된다. 하지만 발화점은 발견되지 않았고, 금고는 문이 열린 채 텅 비어 있었다. 다발로 묶인 돈은 불에 탄다 해도 흔적을 남기게 마련인데, 현장에서 지폐가 탄 흔적은 발견되지 않았다. 그렇다면 돈을 노린 방화라고 봐야 하는 것인데, 그 답은 금고에서 나와야 할 것이다. 만약 금고에서 어떤 단서도 발견되지 않으면 이 사건은 미궁에 빠질 우려가 높지 않은가. 
생각을 정리한 담당 형사는 국 영감과 관련된 인물을 살펴보았다. 땅 문제로 여러 종류의 소송이 진행되었다는 건 서署 내에도 널리 알려진 일이니 자료를 구하는데 어려움은 없었다. 담당 형사는 먼저 국 영감과 소송을 벌였던 인물들을 추려내 그들의 이력을 추적했다. 소송에 진 후 자살한 사람 말고는 모두 한 마을에 사는 사람들이라 그들에 대한 조사는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담당 형사는 마을을 돌며 한 사람씩 대면 조사까지 했으나 그들에게선 그 어떤 혐의점도 발견할 수 없었다.
이제 남은 사람은 국 영감과 마지막까지 돈 거래를 한 황 판사였다. 하지만 국 영감네 집에 불이 난 시각 그는 이미 서울에 도착해 있었다고 진술했고, 그의 말은 맞았다. 그러하니 그 또한 범죄에 관한 혐의점은 없는 것으로 봐야 할 것이다. 담당 형사는 내친 김에 황 판사와 함께 지냈던 똘마니까지 추적을 해보았으나 그 역시 그날 밤 장례식장에 있었다는 것이 장례식장에 있는 시시티브이로 확인이 되었다.
   국 영감의 주변인에 대한 조사를 마칠 즈음 감식 결과가 도착했다. 국과수에서 보낸 감식 결과는 금고가 누군가에 의해 파손된 것이 아니라 ‘고열에 의해 파괴된 것으로 판단됨’으로 되어 있었다. 담당 형사 입장에서 보면 실망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금고에서 아무런 단서를 발견하지 못한 담당 형사는 ‘국 영감이 눈 뻔히 뜨고 당했구먼.’ 하며 풀썩 웃었다.
이튿날 담당 형사는 국 영감이 입원해 있는 병원으로 갔다. 화상을 입은 국 영감은 온 몸에 붕대를 감고 있었으나 말하는 데는 크게 지장이 없었다.
“영감님, 금고엔 아무 것도 없던데요?”
“형사님, 그럴 리가 없어요. 제가 넣어둔 돈만 해도 십억이 넘는다구요. 예?”
“화재 현장을 샅샅이 뒤져봤는데요. 돈이 탄 흔적도 보이지 않았어요.”
“그럼 그 돈이 어디로 갔단 말이에요?”
국 영감이 울상을 지으며 말했다.
“글쎄요. 그게 참 이상하긴 합니다만, 심증만 있고 물증이 없으니 저희로서도 더 이상 할 수 있는 일이 없네요.”
담당 형사가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심증은 뭐고 물증은 또 뭐요?”
“심증이야 누군가 돈을 가져갔다는 것이고 물증은 돈을 가져간 것에 대한 증거인데, 그 증거가 없어요. 우리는 증거가 있어야 수사를 진행할 수 있거든요.”
“누군가 돈을 가져갔다면 그 놈을 잡아다 족치면 되잖아요.”
“그것도 증거를 들이대면서 족쳐야지 그냥 족치다 보면 제 목이 먼저 댕강 떨어집니다. 그러니 안타깝지만 이번 수사는 이쯤에서 종결해야 할 듯싶습니다.”
담당 형사의 말에 국 영감이 “아이고 형사님, 제 전 재산이 걸린 문젭니다. 좀 살펴주세요. 예?” 하며 울먹였다. 담당 형사가 자신도 그러고 싶지만 달리 할 일이 없다며 병원을 나섰다.
 
마을에 눈이 폭폭 내리는 날 마을 주민 몇이 모여 술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내 현장을 아무리 뒤져 봐도 돈이 탄 흔적은 없던데, 국통이 돈은 대체 어디로 간겨?”
술잔을 비우던 봉달이 고개를 갸웃했다.
“누군가 훔쳐갔다고 하잖어요.”
전직 경찰이 봉달의 잔에 술을 채우며 말했다.
“누가 그래?”
“들리는 말이 그래요. 그날 밤 누군가 와서는 금고를 바꿔치기 했다고요. 빈 금고가 탔는데, 돈 탄 흔적이 남아 있을 리가 있나요.”
“금고를 바꿔치기 해? 누가 그래?”
“형님도 참. 들리는 말이 그렇더라고요. 누군가 돈이 들어있는 금고를 들고 가고 그 자리에다 돈이 들어있는 금고와 똑 같이 생긴 놈을 놓고 갔다고요. 그러니 현장에서 돈 탄 흔적을 발견하지 못하는 건 당연한 일이지요.”
전직 경찰이 담담한 어조로 말했다.
“그 누군가가 누군데?”
봉달의 말에 전직 경찰이 “참나 형님도. 국통이네 금고가 어떻게 생겼는지 아는 놈이겠지 누구긴 누구겠어요.” 하곤 창밖으로 시선을 던졌다. 눈은 계속해 내리고 있었고, 어디선가 꿩 울음소리가 길게 이어졌다.








**약력:1998년 《문학21》로 등단. 장편소설 『아담과 아담 이브와 이브』, 『동강에는 쉬리가 있다』, 『은옥이 1,2』, 『도둑고양이』, 『개 같은 인생들』, 『연산』, 『원숭이 그림자』 등. 2000년 한국 최초 전자책 전문업체인 ‘바로북닷컴’이 주최한 ‘5천만원 고료 제1회 디지털문학대상’을 수상. 2005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문예창작기금을 수혜. 현재 한국작가회의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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