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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호/산문/이외현/타임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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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문
이외현
타임머신
―차고약 별장
차 씨 성을 가진 친구 증조할아버지는 일제강점기에 광주에서 유명한 차고약방을 운영하였다. 특별한 비법으로 만든 차고약은 종기 치료제로 갱엿처럼 생긴 고약을 기름종이에 붙여 사용했으며 종기에는 직방이었다고 한다. 고약으로 많은 돈을 번 친구 증조할아버지는 방림동에 있는 산을 사서 그 곳에 별장을 지었다. 나는 여고 때, 광주민주화운동이 일어나기 얼마 전까지 산 속에 있는 차고약 별장에서 하숙을 겸해 친구와 함께 살았다. 방림동 끝자락에서 산길을 이백여 미터 쯤 올라가면, 집 앞 느티나무에 그네가 매어있고 대문으로 들어서면 아름드리 큰 나무 울타리가 집을 감싸고 있었다. 나무 위에서는 종일 조잘조잘 새들의 수다가 이어졌다. 마당 한편에는 골짜기 물을 플라스틱 관으로 연결한 우물이 있고, 우물에 연결된 플라스틱 관에서는 언제나 맑고 시원한 물이 콸콸 쏟아졌다. 나와 친구는 우물에서 살굿빛 유니나 샴푸로 윤이 나게 머리를 감았고, 빨래비누로 교복과 흰 양말을 빨았다. 별장 1층의 내부는 가운데 긴 복도를 중심으로 오른쪽에는 거실이 있고, 왼쪽에는 부엌과 방들이 있었다. 거실에는 증조할아버지가 쓰던 나무약장, 소파. 탁자 등 일제강점기 때 쓰던 옛 물건들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1층에서는 친구네 팔순 할아버지와 세 번째 부인인 젊은 할머니가 함께 살고 있었다. 할아버지는 살코기가 전혀 없는 돼지비계를 넣고 끓인 김치찌개를 무척 좋아하셨다. 이가 없으셔서 그런지 흐물흐물한 돼지비계를 오물오물 맛나게도 드셨다. 그 모습을 보면서 니글니글 속이 울렁거렸다. 셋째 할머니는 키가 작고 통통하고 작달막하였다. 할머니는 마당에 떨어진 감을 주워 쌀독에 우리기도 하고, 감을 따서 곶감을 만들기도 하였다. 가끔, 우리에게 침을 튀기며 설교를 하고 난 뒤에는 감을 한 개씩 나눠주며 선심을 썼다. 할머니는 새벽 5시만 되면 어김없이 일어나 집이 떠나가라고 라 라 방언 기도를 하였다. 어느 날, 내가 감기 몸살이 걸려 학교에도 못가고 앓아누웠는데, 안수기도를 해주겠다면서 “가엾은 영혼에 들러붙은 악독한 마귀야, 예쓔의 이름으로 물러가라, 아다다 다다다다 라라라라 주~여” 혀 꼬인 소리를 하며 손바닥으로 온몸을 두들겨 팼다. 마귀를 내쫓는다고 혼신의 힘을 다해 때려서 몸 여기저기에 멍이 들었다. 다음날, 또 안수기도를 해주겠다고 하였지만 손사래를 치며 다 나았다고 거짓말을 하였다. 셋째 할머니에게 반강제로 전도되어 몇 번 이상한 교회에 나간 적도 있다. 친구 말에 의하면, 친구아빠와 큰아빠는 세 번째 할머니를 새어머니로 인정하지 않고 할아버지 재산을 탐내는 여자로 취급한다고 하였다. 아무튼, 할아버지 수발을 들어주고 있으니 그대로 둔단다. 친구도 이 할머니를 탐탁지 않게 여겨 나에게 자주 흉을 보곤 했다. 할아버지에게 고래고래 소리치며 달달 볶기도 하고, 살살 웃으면서 엄청 잘해주기도 하여 헷갈리는 구석이 있긴 했다. 친구와 나는 넓은 이층 다다미방에서 생활을 하였다. 다다미방 앞의 나무 복도에는 둥근 탁자와 흔들의자가 두 개 놓여 있었다. 우리는 의자에 앉아 여닫이 통창을 열고 카세트테이프에서 흘러나오는 조용필의 ‘단발머리’를 따라 부르며 산 아래 경치를 감상하곤 하였다. 별장에서 내려다 본 1979년 광주 변두리는 한적하면서도 평화로웠고, 아름다우면서도 고즈넉하였다. 대문 옆, 문간방에는 허드렛일을 도와주는 고 씨 아저씨가 살고 있었다. 고 씨 아저씨는 눈이 내리는 날이면 싸리비로 정갈하게 앞마당의 눈을 치우고 검정 장화를 신고 산 아래까지 눈을 쓸어 놓았다. “우리 애기씨들, 학교 끝나고 올 때도 눈 오믄 큰길 공중전화에서 전화해. 잉.” 하는 당부를 잊지 않았다. 전화를 하지 않아도 눈이 내리면 장화 신은 고 씨 아저씨가 산 아래까지 마중 나와 있었다. 우리는 아저씨가 내민 팔을 한 쪽씩 붙잡고 엉금엉금 산에 올랐다. 친구와 나는 집 앞에 있는 느티나무에 매인 그네 타는 것을 좋아했다. 집에 놀러온 학교친구에게 그네 타는 것을 자랑하려고 꽉 끼는 청재킷, 청바지에 조리 슬리퍼를 신고 헐거워진 그네를 타다가 그만, 중심을 잃고 떨어져서 팔을 다친 적이 있다. 그래서 한동안 그네를 멀리 했는데 고 씨 아저씨가 그넷줄을 당겨 나뭇가지에 단단하게 비끄러매주며 이제 다시 타도 된다고 하였다. 우리는 틈만 나면 그네에 올라 누가 더 높이 올라가나 내기를 하였다. 그네가 높이 올라가려면 엉덩이를 최대한 뒤로 당겨 발판에 앉았다가, 발을 박차며 두세 번 앞뒤로 왔다갔다 하다가, 반동을 이용해 발판에 올라서야 한다. 발판 위에서 다리를 구부렸다 폈다 하며 구르기를 여러 차례 반복하면, 점점 세게 점점 높이 날아오른다. 가속이 붙은 그네는 무성한 잎들을 헤치고 나무 꼭대기까지 이른다. 몸이 새털처럼 가벼워지며 휘청, 허공을 가른다. 포물선을 그리며 훠이훠이 하늘까지 날아올라 날개를 푸드덕거리는 한 마리 파랑새가 된다.
지금은 별장이 헐리고 그 자리에 여학교가 들어섰다.
어젯밤, 꿈에 운동장에서 갈래머리 여학생이 그네를 타고 포물선을 그리다가 푸드덕, 느티나무 숲을 박차고 하늘까지 날아올라 한 마리 파랑새가 되어 훠이훠이 날아가는 것을 보았다.
**약력: 2012년 《리토피아》로 등단. 시집 『안심하고 절망하기』. 막비시동인. 본지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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