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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호/권두칼럼/백인덕/헛소리에는 정말 ‘약藥’이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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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부
댓글 0건 조회 1,019회 작성일 17-01-05 1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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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두칼럼

백인덕




헛소리에는 정말 ‘약藥’이 없을까?




   글쓰기의 여러 양식 중에서 ‘일기’와 ‘편지’만큼 매혹적(?)인 것도 없다. 가볍게 내 경험을 생각해 봐도, 일기는 자기 자신에게 쓰는 글인데 꼭 누군가 독자가 있는 것 같은 수사와 형식적 구절들이 쉽게 눈에 들어온다. 반면에 편지는 타인에게 보내는 것이므로 전언이 분명하고 중의적이어서는 곤란한데 마치 나 자신에게 하는 말처럼 끝없는 아포리아로 점철될 경우가 허다하다. 전언이 그 어떤 평론이나 선언문보다 명료한 일기가 있다. 시인 김수영의 일기 중 한 구절이다. “누가 무엇이라고 비웃든 나는 나의 길을 가야 한다. 애인이, 벗들이 무엇이라고 비웃고 백안시하든 그것이 문제일 까닭이 없다. 이 산만한 눈앞의 현실을 어떻게 형상화하고, 미이라와 같은 나의 생활 위에 살과 피가 한데 뭉친 거대한 걸작을 만들 수 있느냐? 나는 이 이상 더 눈앞의 현실을 연구할 필요가 없다. 이것들을 어떻게 ‘담느냐?’가 문제이다.” 일기가 감동적이라는 게 요즘 말로 ‘웃픈(웃기고 슬픈)’ 일이 아닐 수 없지만, 1960년대 ‘헛소리’가 이렇게 큰 울림을 빚어내는 현실은 좀 연구해 볼 필요가 있다.
   지난여름은 끈질기게 지속된 폭염만큼이나 가만히 있어도 사람을 지치게 하고, 열나게 하는 일들이 꽤 많았다. 정치, 경제, 사회적 이슈들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는 게 좋을 것이다. 5년 주기의 순환구조를 갖는 그런 논쟁들은 소모적이어서가 아니라 아직도 진영논리가 확실해서 비전문가가 말을 보태거나 덜거나 별로 나아질 바가 없기 때문이다. 예술이라는 거대 담론은 필자의 지식도 지식이려니와 자의식도 희박한 편이라, 그저 몸담고 있는 시와 관련해 몇 가지 생각을 늘어놓고 싶다. 우선 세 가지 정도의 문제가 논란이 되었던 것 같다. 하나는 한 유명 원로(?)의 발언에서 촉발된 것인데, 요즘 시가 너무 난해해서 독자가 떠나갔다는 일종의 난해시 책임론이다. 다른 하나는 한 ‘웹진’ 사태로 불거진 시인 장사 운운하는 문단 병폐에 관한 것이다. 끝으로 가장 최근에 한 젊은 시인이 문예지에 발표한 작품으로 인해 촉발된 이른바 ‘여혐’ 문제이다. 하나 같이 다 적극적인 참여의식과 깊은 고민이 없다면 수박 겉핥기식 중언부언에 빠지고 말 문제들이라 할 수 있다.
   나는 시인으로서, 한 잡지의 주간으로서 큰 목소리가 아닌 작은 의견을 몇 자 적어 넣고 싶다. 난해시 문제는 누차 강조했던 것처럼, ‘시인-교육자-독자’라는 우리 시를 지탱하는 삼각 지지대 모든 방면의 문제이지 어느 일면의 문제만 부각되어서는 해결할 수 없다. 더욱이 시력이 반세기가 넘어선 영향력 있는 분들이 자신이 추구한 시세계와 부합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공공연하게 그런 논리를 펴는 것은 아무리 양보해도 부도덕한 일이다. 시의 본질만큼 중요한 것은 시대와 매체의 변화를 읽어내는 눈이다. 곧이어 씁쓸한 뉴스가 들려왔다. 서울지하철 메트로가 안전문(스크린 도어)에 게시하는 시를 선정하는데 시 관련 문인단체를 배제하기로 했단다. 이유야 어쨌든 불쾌하기보다는 한심한 심정에 헛웃음이 절로 나온다. 웹진과 시인 장사 운운 문제는 매체의 특성을 확실하게 이해하지 못한 웹진의 운영 책임자가 가장 큰 문제를 제공한 것이 분명하다. 아니다, 어쩌면 타인의 정보와 노력으로 자신들은 이익만 걷어가는 구글이나 페이스북의 전략을 그는 완벽하게 이해하고 적용했는지도 모른다. 어쨌든 무명소졸의 주머니를 털어 시단의 유명 시인에게 다시 이런저런 상을 주었으니 발전에 일조했다는 논리는 아무리 생각해도 견디기 어렵다. 끝으로 여혐 문제는 딱히 대응할 논리가 없다. 사실 사해동포주의자(코스모폴리탄)라 믿는 많은 이들이 알게 모르게 범하는 우愚라 치부하는 것이 내 입장에서는 가장 편하다.
   다시 김수영의 일기초로 돌아간다. “누가 무엇이라고 비웃든 나는 나의 길을 가야 한다” 언젠가 숱한 헛소리도 약으로 쓰일 날이 올지도 모른다. 설령 그런 날이 오지 않는다 해도 크게 걱정할 이유는 없다. 그렇다면 헛소리는 이미 허공으로 흩어져 그것이 세상에 내뱉어졌거나 어느 질 나쁜 종이 위에 인쇄되었다는 사실 조차 사라지고 없을 것이니. 오늘의 시 현실에서 걱정은 정말 팔자 좋은 사람들의 몫이라 아니 할 수 없다. 








**약력:1991년 《현대시학》으로 등단. 본지 주간. 시집 『끝을 찾아서』, 『한밤의 못질』, 『오래된 약』, 『나는 내 삶을 사랑하는가』,

『단단斷斷함에 대하여』, 저서 『사이버 시대의 시적 상상력』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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