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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호/특집/오늘의 시인/박서혜/하늘 어귀 외 5편/신작시/가을 햇살 외 2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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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부
댓글 0건 조회 1,328회 작성일 17-01-05 18:39

본문

특집



오늘의 시인

박서혜





하늘 어귀



몸만 남으셨네


갓난 노인,


죽음과 배냇짓하듯


놀고 계시네.





반달



확 트인 겨울 논 한켠에


조그마한 상수리나무 동산이 있다


그 동산에 등을 기댄 고즈넉한 집 한 채,


어둠이 내리자 창에 불이 켜진다


연극 무대 같다.







입술




바닷가 찻집에서
화가 만 레이의 입술을 만난다
조개구름으로 꽉 찬 하늘을
붉은 입술 하나가 다 삼키고 있다
이미 말을 넘어선 그 입술은
창 밖 하늘과 바다에서도 펄펄 살아
진한 살내음 출렁이며
이 세상까지도 함께 삼키고 있다.








두 개의 마을



꽃 몇 송이 들고 뼈들이 사는 마을엘 왔네
곳곳의 헌화, 이미 그리움의 꽃잎을 열고 있네


행여 무슨 소리라도 들을 수 있을까, 잔디에 귀를 대네
그리운 소리 대신 산새 소리만 귀를 훑네


뉘엿뉘엿, 뼈들이 어둠에 잠기네


아직은 따뜻한 밥이 있는 마을에 너 있음이니
돌아가라고 燐光들이 등을 떠미네


꽃 몇 송이 던져둔 채 밥을 향하여 돌아서네.








저녁 연기




언 논에서
먹이 찾던 기러기들이
떼 지어
초저녁
마을 하늘을
소란스레 지날 때쯤이면
마을 어르신들은
아궁이에 불을 지핀다


마니산 삭정이들
활활 타올라
굴뚝마다 연기 피워 오르고
하늘엔
개밥바라기,
바로 눈앞인 듯
반짝이기 시작한다


어스름 속
온 마을을 휘감아 도는 
저녁연기,


겨울 산자락의 짐승들까지도
따뜻하게
데워주고 있는 듯한
저 저녁연기,


도회 사람들은 모르리라


情 줄기 같은 저 하얀 연기가
하루를 잘 보냈다는
마을 사람들의 手信號라는 것을.








밤하늘





산자락에서
밤하늘을 올려다보면
대개가 별 밭이라
저 수많은 별들 중
가장 빛나는 별은 울 아버지별이고
또 가장 빛나는 별은 울 엄마별인데
저 두 별 말고
저렇게 반짝이는 수많은 별들은
다 누구의 별일까,


가을바람 슬슬 불어오기 시작하는
산자락에서
별 밭인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별마다 지녔을
지상의 삶들을 생각해 본다


저리 아득하여도
바로 우리들의 삶이였을,


저리 총총하여도
결코 총총하지만은 않았을,


이 밤,
별들을 오래 바라보고 있노라니


일면식 없었던 별들도
이 지상이 그리운 듯
씨이익
웃음을 보낸다.







<신작시>

가을 햇살




잎들은 햇살에 반짝이고


잠자리들은 종횡무진이다


아직도 목백일홍 무지 붉은데


나는 아프다.





멋진 늦가을



여름 내내
무늬도 근사한 말벌 집을 품고 있던
저 나무,


지금
살아온 날들의 빛깔로
단풍 드는 중이다


저 많은 잎들도
추억 따라
단풍 드는 품새가
다 다르다


빈 말벌 집을 매단 채
깊은 가을 풍경이 된
저 나무,


그 풍경 안에
멋진 늦가을 한 분도
계신다.








저 문다는 거



긴 장마 중,


푸른 논길에서
반짝 갠 하늘을 올려다보니
저녁놀과 구름들이 서로 스며
눈 닿는 곳마다
장관이다


결코 사진으로 밖에는 증명할 수 없는
풍경이다


저리 저문다면
마냥 쓸쓸하지도 서럽지도 않을 것이다


그래, 이 세상의 모든 저무는 거,


그 오묘함이
저 저녁놀에 깃들어 있을 것이다.







<시작메모>

생각의 갈피




1.
두꺼비가 돌아 왔다.


   앞마당 현관에 한 마리, 뒷마당 개나리 덤불에 한 마리, 갈색의 진한 줄무늬를 등에 두른 두 녀석이 오랫동안 우리 집 동거인이었는데 어느 날 두 녀석이 다 사라져버렸다.
마음이 휑해 며칠을 부르고 다녔건만 그들은 나타나주지 않았다.
어딘가에서 잘 살고 있으리라 생각하고 지내길 또 수 년, 비가 줄기차게 내리던 어느 날 오후 대문 앞 풀 위를 느리게 가고 있는 등 무늬도 선명한 그 중 한 녀석을 만난 것이다.
이틀 후 그 두꺼비는 예전의 자기 자리인 현관 앞에 와 있었다.
돌아온 복 같았다. 그리하여 우리 집이 복되리라 생각하니 하루하루가 즐겁다. 
자연과 더불어 사는 삶은 언제나 생사를 함께한다.
꽃 피고 꽃 지고 열매 맺고 그러다 한 해가 가고 또 한 해가 가는 것을 몸소 느끼게 되는 이 아름다운 터에 둥지를 튼 지도 13 년이 되었다.
내 의지와는 전혀 상관없이 그 동안 수많은 생명들이 왔다 가는 것을 지켜보게 되었다. 올 때는 반갑고 함께 할 때는 마음이 별빛 같았는데 갈 때는 언제나 슬펐다.
이렇듯 시간이 갈수록 밤하늘에 바라볼 별이 하나씩 더 생긴다는 것, 자연의 섭리에 비껴갈 수 없는 삶에 숙연해진다.

신록으로 채워지는 마니산의 오월은 놀라울 만큼 신선하고 아름답다. 그러다 눈 깜짝할 사이에 연두가 진초록이 되어 울창한 숲이 된다.
그 산을 배경으로 피어나는 수많은 꽃들과 오를 때마다 만나는 무명의 수많은 풀꽃들, 그 신선함과 아름다움은 경이 그 자체다.
봄이 왔다고 빈가지에 새순들은 다투어 돋고 열매 맺는 나무들은 꽃을 다투어 피운다.
지난 초겨울부터 꽃 몽우리를 준비하기 시작한 생강나무는 봄이 오면 산에서 제일 먼저 꽃을 피운다. 그 노오란 꽃들은 생강나무꽃차가 되어 향기와 맛으로 일 년 내내 우리들을 행복하게 한다.
   긴 장마철에도 줄기차게 피어나는 주홍빛 나리꽃들은 눅눅하고 어두운 장마 속의 등대다.
   그렇게 헤아릴 수 없는 수많은 꽃들이 연이어 피고 지면서 가을을 맞는다. 이런 자연의 찬연함이 또한 삶을 찬연하게 해주고 있다. 

가을걷이가 시작되면 나무들은 그 실한 열매들을 아낌없이 우리들에게 내어주고 매달린 잎들은 단풍 들어 낙엽이 된다. 참 아름다우면서도 시린 풍경이다.
멀리서 바라보면 겨울 산의 모습은 듬성듬성 이 빠진 빗살 같다.
빗살 같은 나무들과 쌓여 있는 낙엽들 위로 눈이 내리고 마니산은 어느새 순백이 된다. 겨울이 되면 배고픈 고라니들이 가끔 마을로 내려와 빈 고춧대 속에서 먹이를 찾기도 한다. 인기척을 느끼면 뒤도 돌아보지 않고 재빠르게 도망가지만 그런 고라니 새끼들을 만날 때마다 함께 배가 고프다.
그 눈들 다 거두어지면 다시 봄이 와 시간의 흐름을 확인하는 사계절이 시작된다.


   새들은 봄이 오면 둥지를 튼다. 이름 모를 산새가 우리 집 우체통에 둥지를 틀었다. 투입구로 연신 새들이 날아 나와 들여다보니 알을 낳아 놓은 것이다. 무려 여섯 개나. 그때부터 우체통은 그들의 집이 되었다. 저 많은 나무들을 두고 하필 우체통에. 어느 날 조심스럽게 문을 살짝 열어 보니 입을 한껏 벌리고 먹이를 기다리고 있는 새끼들의 부리들이 분주했다.
어미 새는 우체통 위로 지나가는 전깃줄에 앉아 새끼들을 지키며 부지런히 먹이를 날라다 먹이고 있었다. 때가 되면 새끼들은 우체통 투입구로 한 마리씩 날아 나와 그들의 세상을 열곤 한다. 연례행사다.
날아 나가는 새끼들을 볼 때마다 마니산 숲 속에서의 행복한 날들을 기원한다. 팔월인 지금, 온 천지가 새소리다. 그 투명한 날개로 잠자리들은 종횡무진하고 까치들은 잔디밭에서 모여 앉아 가끔 무척 시끄러운 회의를 열기도 한다.
봄부터 가을까지 만나는 그 많은 새들 중에는 후투티도 있고 딱따구리도 있는데 그 딱따구리라는 놈 참 어처구니없는 행동을 한다.
딱딱 소리 너무 요란해 내다보면 그 많은 마니산의 나무들을 마다하고 벽 모퉁이에 매달려 벽 속의 스티로폼을 쪼아 먹고 있는 것이다. 
밤이 되면 구구대는 산비둘기 우는 소리, 그리움으로 꽉 차 아주 처연하게 들린다. 이렇게 함께 살고 있으니 이곳의 모든 생명들은 다 정겨운 내 동무들이다. 그 동무 중 유월 개구리 울음소리는 대합창으로 건강하고 생생하지만 가끔 밤잠을 설치게 하기도 한다.
봄부터 가을까지 아침은 새소리가 나를 깨우고 밤은 풀벌레 소리가 나를 재운다.

   밤송이가 익고 모과가 익기 시작할 무렵이면 찬바람 가르며 기러기가 찾아온다. 떼 지어 날아온 기러기들은 겨우내 우리 집 하늘을 요란하게 날아다닌다. 겨울 논길을 산책하는 재미 중 하나가 기러기들을 만나는 것이다. 추수한 논엔 먹이를 찾는 기러기들이 겨우내 새까맣다. 먼 인기척에도 후루루 날아가 자리를 옮긴다. 미안해 발걸음을 조심하게 된다.그 기러기 떼 중에 간혹 외기러기를 만난다. 올려다보고 있으려면 따라가려고 안간힘을 쓰는 듯해 나도 모르게 응원을 하게 된다.  모든 생명이 다 무사하고 행복하길 바란다. 그러다 봄이 오면 논길을 걸어도 기러기들을 볼 수 없다. 여기가 고향일까, 그들이 돌아간 곳이 고향일까.

서해의 일몰을 매일 보고 산다는 것은 행운이다. 비 오시는 날을 제외하곤 언제나 장관이다. 노을과 구름이 서로 스민 폭우 후의 저녁 하늘은 사진으로 밖에 증명할 수없는 놀라운 풍경을 만들어 내곤 한다. 장관이란 말이 무색하다.
아마도 누구든 저렇게 아름답게 지라고 노을이 아름다운 것이리라.


2.
   시가 무엇인지 모르면서 시를 쓰기 시작했다.
   오랫동안 쓴 후에야 시의 기초가 체험인 것을 알게 되었다.
   살아가는 과정이 다 체험이기 때문에 그 체험들은 시간과 함께 대부분 흘러가버린다. 그 체험들을 내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볼 줄 알아야 하고 들을 줄 알아야하고 느낄 줄 알아야 한다. 이런 감수성 훈련을 통해서 체험들을 내 것으로 만들 수 있는 것이다.
그 중 우선되는 것이 관찰력, 즉 보는 눈이다.
   눈은 정확한 시선과 모든 단계의 삶을 아우를 수 있는 수평적 시야를 가져야 한다. 시선과 시야가 함께 작동하면 일상의 어떤 체험은 머리와 마음에 투명하게 입력되기도 하고 스스로도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잠재 입력되기도 한다. 그 입력 된 것이 어느 날 시가 되려고 시인을 찾아오면 그것이 시의 기초가 되는 것이다.

시는 정교하게 짜진 언어의 구조물이다.
   기초가 튼튼해야 비바람에도 끄떡없는 좋은 집을 지을 수 있듯이 단단한 시를 쓰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기초가 튼튼해야 한다. 그러면 어떻게 하여야만 입력 된 그 체험들을 시의 튼튼한 기초로 만들어 단단한 시를 쓸 수 있을까,
 
   체험을 단단하게 하기 위해서는 서두르지 말고 겸허한 마음으로 깊이 사색할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을 가진 후 어느 날 그 체험들이 언어로 나를 찾아 올 때 놓치지 말고 잘 보듬어야 한다. 그럴 때 공감각적 언어를 선택하게 되면 시의 외연도 확장되고 지평이 넓은 시를 쓸 수도 있다.
시는 예술의 영역이기 때문에 찾아온 일상적 언어를 함축적이고 상징적인 시적 언어로 변용시켜야 한다. 그러나 삶에 대한 성찰과 깊은 사유가 있으면 일상적인 언어로도 충분히 시를 쓸 수 있다. 꼭 시적 언어만이 훌륭한 시를 만드는 것은 아니다.
   「어느 날 고궁을 나오면서」의 김수영 시인은 일상적 언어로도 아무도 넘볼 수 없는 좋은 시를 우리들에게 남겨주고 있다.
   그러나 성찰과 사유가 부족한 경우 일상적 언어를 사용할 때는 체험된 사실과 감정을 그대로 표출하게 된다. 그럴 땐 반드시 시를 위해 시적 언어로의 변용이 필요한 것이다.

튼튼한 기초가 마련되면 벽을 쌓고 지붕을 올리듯이 시도 사상누각이 되지 않게 벽이 될 수 있는 언어, 지붕이 될 수 있는 언어들을 적재적소에 잘 사용해야 한다.
그런 능력은 독서량과 관계있다고 생각한다. 많이 읽으면 읽을수록 그 읽은 단어들이 잠재 입력되어 시를 쓸 때 반갑게 나타나 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언어들을 그대로 사용하는 것이 아니고 편하면서도 깊게 읽히는 시를 쓰기 위해서는 언어의 지평을 넓혀야 한다. 그리하면 시가 편하게 읽히면서도 내용은 깊어 독자들의 지평도 넓혀질 수 있다.

   그리고 그 체험들은 깊고 폭 넓은 사색을 통해야만 시인 고유의 상상력을 펼칠 수 있다. 그 상상력의 나래가 활짝 펼쳐질 때 시가 예술성을 획득하게 된다. 예술성을 획득한 언어들이 한 편의 시를 이루면 그 시는 독자들에게  충분히 감동을 줄 수 있을 것이다.

편하게 읽히면서도 읽는 사람의 감성에 따라 다 다른 의미로 다가갈 수 있는 시, 깊게 읽히면서도 읽는 사람의 지력과 인격에 따라 여러 단계로 체득할 수 있는 시, 나는 이런 시를 좋은 시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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