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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호/근작읽기/김설희/근작시 울음의 거리距離 외4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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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작읽기
김설희
<근작시>
울음의 거리距離
허공을 찢으며 거처를 바닥으로 옮기는
도토리 하나
투둑
첫발 부딪힌 바닥에서 간단히 운다
흘러내릴 때 흔들렸던 몸이
울음의 뿌리다
뿌리를 중심으로 울음들이 파문처럼 번져간다
울음의 고리에
겨울을 불러들이던 찌르라미가 멈칫한다
밟힌 낙엽이 몸을 뒤튼다
나무에 간신이 매달린 나뭇잎이 오슬오슬 떤다
멀리 갈수록 가늘어지는 울음들의 꼬리
멀리 있는 것들은
멀리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모른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는
귀 작은 벌레들이
가을을 물고 뜀박질 중이다
노을이 다가올 시간이다
울음의 결을 벗어난 것들의 울음이 점점 커져간다
산이 건너왔다
속을 다 비운 산이 어디 먼데를 돌아 제자리로 왔다
빈 항아리처럼
그가 흘린 것들이 무엇인지
어디를 돌아 왔는지
아무도 모른다
당신의 가랑이를 슬쩍 지나간 바람 같은 것
당신의 정수리에 그림자를 드리우다 간 구름 같은 것
교통사고 현장에서 누군가의 피를 밟고 지나간 발자국 같은 것
그런 시간들이 그의 속이었을까
세상 감옥을 벗어난 물렁한 산 하나가 누워있다
산맥 같은 핏줄이 얇은 살가죽을 들고 일어선다
가죽의 파랑 사이 흙냄새가 물씬 솟아난다
헐거워진 아랫도리에서 계곡 물소리가 찔찔거린다
속을 다 버린 산에는 슬픈 새소리마저 사라졌다
벌거숭이, 누가 어디를 만져도 부끄러움이 없다
헐렁한 산은 이제 눈을 감고
지나온 대지에 깊숙이 뿌리를 박는다
그리고 산은 다시 산으로 건너갈 것이다
이끼
비 그치고
수척하던 지붕이 부풀었다
지하도 언저리에 삼각그늘이 생겼다
그 그늘에 꽃이 피는 날은 일 년에 며칠뿐
박스에 누워도 이끼는 축축하다
알코올 향이 꽃술을 내민다
밤에서 밤으로 넘어가는 그들의 눈동자는
어떤 경고음에도 초롱초롱하다
깊이 들지 못하는 잠이 이끼들의 잠이다
잠 밖에서 잠들 궁리를 하는 사람들
물기에서 더 푸르게 번져가는 습관으로
사지에 가늘어진 핏줄을 일으켜 세워야 한다
알몸은 다른 알몸을 경계하지 않는 걸까
어깨가 닿지 않아도 후끈하다
팬플루트
나무들이다
뿌리 없는 마른 나무
그의 입술이 닿자
어느 쓸쓸한 오후의 바람소리가 난다
저 죽은 것의 심장에
무엇이 건너간 것일까
톱날에 잘려지던 때
내지르지 못한 단말마의 숨이 저리 순하게 삭은 것인가
어디 깊은 데서 솟아오르는 샘물소리 같다
횡격막을 가로지르는 소리
고공 타워크레인에서 아슬아슬 흔들리던 비정규직 같이
아득한 터널을 헤쳐 나오는 소리
잘려진 것들은 소리가 된다
목청껏 부르는 노래가 된다
**약력:2014년 《리토피아》로 등단. 막비시 동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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