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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호/신작특선/정세훈/지구적 보편성 외 4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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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부
댓글 0건 조회 1,234회 작성일 17-01-05 1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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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특선

정세훈






지구적 보편성



비정규직
갑자기 부당해고 당해
연대 투쟁하러 가야할 시간
내로라하는 외국작가 다수가
‘상호 문화적 대화를 통한 지구적 보편성’을
발표하는 인천알라문학포럼에
어찌하다 토론자로 참여했다


어느 것 하나
답답한 속
시원하게 풀어주지 못하는
대안 없는 장엄한 이야기들을 듣고
나는 되지 않은 어법으로 응대하는
어설픈 토론을 벌였다


저명한 시인과 소설가와 평론가가
아시아에서
아프리카에서
라틴아메리카에서
가져와 인천에다 논리정연하게 쏟아놓은
‘상호 문화적 대화를 통한 지구적 보편성’은
방청객들을 하품 나게 하고
배움이 부족하고 논리정연하지 못함을 실토한 나는
“일생 처음으로 많은 학습을 제대로 했다”는 것으로
토론자의 역할을 마쳤다


뒤풀이까지 치르고
허겁지겁 인천에서 김포 집으로 가는
자정 넘은 늦은 귀가길
한산한 막차 전철 안
쉰아홉 살 나보다 열댓 살이나
더 먹어 보이는 나이 든 남자
초미니 스커트를 입은 젊은 여자
각선미 좋은 허벅지에 눈이 꽂혔다


그런데, 나는

어찌하여
무엇 때문에
저 나이든 남자를 관찰하는 것인가









대한문 광장




말 붙일 곳 없는 이들 찾아와
각혈처럼 쏟아놓은 말들이
묵살되어 번질번질 누웠네.


오늘은 온종일
자본 같은
때 아닌 겨울비가 내리고
 
빗물은 흘러넘쳐
묵살당한 말들을
하수구로 쓸어가 버리네.


영정들을 모신 농성 비닐천막
철거당한 광장에
삶처럼 스며든


생목숨 끊은
쌍용 자동차 정리해고
24명의 노동자와 가족

한 많은, 영혼들을 쓸어가 버리네.







핏빛 낙조
―웨스트 바라이 인공호수




11세기 수리야바르만1세 왕 통치 시절
가로 2.2km, 세로 8km 크기의
거대한 노동이 만든
캄보디아 웨스트 바라이 인공호수


혹사당한 노동이 천 년 동안
스며들고 스며들어
지하 담수를 이룬 호수 변에서
사람들은 “아름답다” 감탄한다


스며들 수 없어
수면 위에 찰랑 찰랑거리는
그 옛날 주검들 하염없이 깃든
핏빛 낙조를 바라보며








자본의 시간





깊이 잠들어 있어야 이상하지 않을 깊은 밤


이마에 손을 얹고 억지 잠을 청한다
누군가가 평안해졌으면 바라는
이 무덤 같은 상황이 무섭고 참담하다
자본이 노동을 구속하고
불법이 합법을 구속하는
자본의 시간
공장에 있어야 할 팍팍한 기름밥들
거리에서 광장에서 고공에서
상처 받고 쇠잔해지고 목숨 끊어
노동의 눈꺼풀은
이제 스스로 뜨고 감을 힘마저 잃었다
눈은 떠 있으나
앞길을 전혀 내다볼 수 없는 시간
누군가가 이 한밤만이라도 평안해지길 바라는
절망이라 말하는 것조차 사치스러운


적막한 시간







봄꽃



보송보송한 땅에서만 살아간다면
봄꽃이 아니지


따뜻한 곳에서만 피어난다면
봄꽃이 아니지


때로는 꽁꽁 얼어붙기도 하고
때로는 겨울 찬바람 불기도 하는


그런 곳에서 살아
그런 곳에서 피는 거지


겨울이 지났다고
혼자서만 피어난다면


봄꽃이 아니지
봄꽃이 아니지


메마른 들녘 여기저기
서로서로 더불어


한 마음으로
흐드러지게 피는 거지


봄이 왔다고 마냥 피어있는 것은
봄꽃이 아니지


천지에 푸른 들녘
포근히 깔아놓고서


홀연히 사라지는 거지
홀연히 사라지는 거지








**약력:충남 홍성 출생. 1989년 《노동해방문학》으로 등단. 시집 『맑은 하늘을 보면』, 『나는 죽어 저 하늘에 뿌려지지 말아라』, 『부평 4공단 여공』 등 다수. 현재 리얼리스트100 상임위원. 한국작가회의 이사. 인천민예총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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