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작품(전체)
12호/신작시/장순금/아코디언 외 1편
페이지 정보

본문
신작시
장순금
아코디언
아코디언 속에는 아버지가 들어있어
라스파냐스뇨라 스페인 집시가 들어있고 무너진 사랑탑이 들어있어
유년의 꽃에 눈 맞추며 아코디언을 폈다 접었다 하는
사이
검은 건반 속 깜깜한 손이 아버지를 끌어당겨 냉기가 방문을 쾅, 닫았다
손수건 같은 하얀 세상에서
아버지는 우주를 놓치고 나는 아버지를 놓쳐
하얀 꽃만 불어터진 들판에
새들이 햇살을 스타카토 음절로 찍어내고 있었다
아버지는
아코디언을 안고 즐거운 화성으로 가셨나
속수무책 지워진 이름으로 내 시 속에 누워버린
마알간 낮달 같은 무반주 아버지 노래
흑백의 음표에 베인 칼바람 속에서 걸어 나와
마법의 담요처럼
아코디언을 타고 하늘 날고 싶은
비늘
싯푸른 바다 한 입씩 물고 던져진 고등어 입 속에서
죽은 파도가 거품을 껴안고 있다
늦은 저녁 시장통 좌판 불빛에
왕소금으로 하루치의 간을 친 짠내가
지폐를 손바닥에 삼키고 시커먼 비닐봉지 속 허기로 구겨져
달빛이 힘겹게 무릎 관절을 일으켜주는 할머니의 어둑한 온몸에
종일 독하게 눌러 붙은 몸 비늘 같은 비린내
때 절은 수건으로 턱 턱, 막막한 달빛을 털어내니
소매 끝에 졸던 별들이 우수수 떨어진다
하루치의 먹이가 다 소진된 좌판
시장통의 비릿한 물기 밤하늘에 축축이 퍼지고
파장하고 돌아가는 허공 같은 발목을 뜨뜻한 아랫목이 앞서 끌고 간다
아침이면 또 지구의 시장통에 먹이를 물어오는
새 비늘이 발바닥에 돋아
할머니는 좌판 앞에 싱싱한 무릎을 굽히겠지
**약력:1985년 《심상》으로 등단. 시집 『골방은 하늘과 가깝다』, 『햇빛 비타민』 등 6권. 동국문학상, 한국시문학상 수상.
- 이전글12호/신작시/신동한/우리 어머니 외 1편 17.01.05
- 다음글12호/신작시/박찬선/들길 외 1편 17.01.05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