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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호/신작시/신현락/물의 방 외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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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부
댓글 0건 조회 1,386회 작성일 17-01-05 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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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시

신현락





물의 방



요즈음은 사는 거보다
어떻게 죽느냐가 더 걱정이야
문득 화두를 던지고
이른 잠에 든 어머니의 방이 물속 같다


물을 보면 하늘을 향해 눕고 싶어진다
빗방울은 내 불면의 창을 두드리며 떨어진다


지금까지 나는 나로 살 수 있는 문제에만 골몰했다.
나는 나로 살 수 있을 듯 싶었으나
나로 죽을 자신은 없다
그렇지만
어머니의 생에 대해선 단 한 번도 의심해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저기에 누워 있는 사람은 누구의 생으로 흘러온 것일까.
어머니는 어머니 자신으로 돌아간 것일까


어떻게 죽느냐보다 누구로 죽느냐
나에겐 그게 더 큰 과제다


빗방울이 떨어진다
어떤 이름으로도 호명할 수 없는
낯선 시간 앞에서도
떨어지는 빗방울은 추호도 자신을 의심하지 않는다


이런 날은 젖은 근심을 감당하기 힘들다
빗속에 잠긴 방에 누워서
하늘의 넓고 큰 지붕 위로 흘러가는 물방울 소리를 듣는다








부교浮橋





첫 해를 본다고 인파가 몰리는 동해를 피해
내 발길은 다시 서해를 향한다
혼자서라도 여행을 가겠다는 아내와
집에서 게임하는 게 더 좋다는 아들을 데리고 간다


뜨는 해와 지는 해의 차이를 생각하다가
꽃 피는 절간*을 돌아가면
어디로 갈까 어디로 갈까
늘 망설이던 물음들을 데리고 먼저 건너간 부교가 있다


상한 잇몸처럼 들떠 있는 나무판자를 밟을 때마다
기둥에 적힌 반야경과 무량수경의 몇 구절들이 삐걱거렸다
부교의 한 쪽은 개펄에 닿아 있다
내가 뜻하는 나마저도 내려놓아야만 거기에 닿을 수 있다고
개펄은 흰 깁을 펼쳤다 접으며
몇 개의 이빨만 남은 노파의 입 안 같은 피안을 보여주고 있다


가는 해와 오는 해를 떠나서
거기에 섬 몇 송이 꽃 피고 있다
아내와 아들은 내 뒤를 따라오고 있지만
멀리서 보면 우리들도 꽃 피는 섬이라고
눈보라는 우리의 발자국을 지우며 따라온다


바다는 아직 멀다 멀리 혼자 가는
세상도 아직 멀다 삶이 혼자 가는 여행이라면 꿈에서도 막막한 길이다
여기서 혼자 지는 해가 거기에서 혼자 뜨는 해라고
해日는 해年를 붙잡지 않는다고
누군가 아들과 내 귀를 잡아당기며 속삭인다


아내는 무슨 말인지 궁금해 했으나
다만 해 뜨는 세상으로, 다시 돌아가 꽃 피우며 살자고, 그러자고,
돌아보면 부교의 한쪽 끝은 세상을 꽉 물고 놓아주지 않고 있었다
세파에 떠 있는 다리를 우리는 여전히 건너고 있는 중이다


   * 안면도 안면암의 옆에 위치한 절.









**약력: 1992년 〈충청일보〉신춘문예로 등단. 시집 『그리고 어떤 묘비는 나비의 죽음만을 기록한다』 외 3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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