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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호/신작시/이외현/그을음·3 외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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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시
이외현
그을음·3 외 1편
―성형외과
늙은 원장이 돋보기를 코 중간에 걸치고
상담실장이 놓고 간 수술 주문서를 본다.
(코, 돼지처럼 동글동글 눌러줘요.
눈, 암말처럼 말똥말똥 굴려줘요.
입, 토끼처럼 오물오물 모아줘요.
키, 기린처럼 길쭉길쭉 늘려줘요.
가슴, 젖소처럼 불룩불룩 당겨줘요……)
주문서에 빼곡하게 적힌 내용 훑어보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더니 칼과 망치로
누구처럼 뚝딱뚝딱 수술을 시작한다.
주문서대로 깎고 다듬고 주무르더니
어디서 많이 본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한
누구시더라
상고대
―풀꽃
꽃목걸이 걸고 알로하 춤을 춘다.
바람이 실수인 척 치마를 들친다.
날씬한 다리를 쓰윽 훑고 지난다.
마릴린 먼로처럼 치마를 쓸어내리고
바람 머리채 잡고 엎치락뒤치락한다.
땅에 이마 짓찧으며 울다 지쳐 잠이 든다.
잠결에, 바람이 몰고 온 눈보라가 몸을
감싸 네 품인 양 부드럽고 따듯하다.
한참을 자다가 눈을 떠보니
딱딱한 팔베개를 베고 누워있다.
너의 굳은 팔을 끌어당겨 감싸 안고
후후, 속삭이는 입김마저 꽁꽁 언다.
**약력:2012년 《리토피아》로 등단. 시집 『안심하고 절망하기』. 막비시동인. 계간 아라문학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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