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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호/동화/장순/양심화분 삼형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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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
장순
양심화분 삼형제
“이게 무슨 냄새야?”
키 큰 은행나무 아줌마가 코를 틀어막으며 말했습니다. 아줌마의 신경질이 이른 아침부터 요란스럽게 우리를 흔들어 깨웁니다.
“너희가 온 후부터 냄새가 나기 시작했어. 도대체 너희 왜 이렇게 지저분한 거야? 깨끗이 살 수 없니. 너희 때문에 내 사생활이 엉망진창이 되어버렸잖아.”
아줌마의 잔소리는 끝이 없을 것 같습니다.
“죄송해요, 아줌마. 하지만 우리들의 잘못이 아닌 걸요.”
“지금 변명하는 거니?”
아줌마가 날카롭게 쏘아봅니다.
“또 시작이야. 시끄러워서 잠을 잘 수가 없네. 하루 이틀도 아니고 조용할 날이 없으니 내가 이사를 하던가 해야지.”
옆집 제설자재 적재함 아저씨가 버럭 소리를 지릅니다.
“죄송해요. 그러니 한 번만 용서해 주세요.”
나는 사태를 수습하느라 무조건 죄송하다는 말만 되풀이합니다. 우리 삼형제의 잘못이 아닌데도 어쩔 수 없습니다.
동네가 조용해지려면 그 모든 것을 우리가 다 감수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았다가는 온종일 까다로운 은행나무 아줌마의 잔소리를 들어야 합니다.
오늘도 힘겨운 하루가 시작되었습니다. 요즘 들어 우리 삼 형제의 얼굴에 근심 가시는 날이 없습니다.
이곳에 온 첫날 우리는 들떠 있었습니다. 새 보금자리가 상당히 마음에 들었거든요.
처음에는 은행나무 아줌마도, 제설자재 적재함 아저씨도 우리를 반갑게 맞이해 주셨습니다. 하지만 하루 이틀이 지나고 3일째 되는 날부터 아줌마의 신경질이 시작되었습니다. 우리는 아줌마가 신경질 부리는 이유를 알 수 없었습니다.
그 이유를 알게 된 건 며칠 후였습니다. 뒤늦게 쓰레기가 쌓이기 시작하는 걸 알게 된 겁니다. 아줌마가 화를 낼 만도 했습니다.
처음에는 일반쓰레기가 봉투에 담겨 쌓이기 시작하더니 이제는 음식물 쓰레기까지 뒤섞이기 시작했습니다. 일반쓰레기는 그나마 다행입니다. 음식물 쓰레기가 문제입니다. 음식물 쓰레기봉투에서 흘러나온 물이 고이면서 고약한 냄새가 나기 시작한 겁니다. 정말 골치가 아픕니다.
“큰형, 저 아줌마 또 온다.”
“내가 못 살아.”
“은행나무 아줌마가 가만있지 않을 텐데. 걱정이야. 어떡하면 좋지?”
우리 삼 형제는 벌써 걱정입니다. 그 아줌마는 종량제 봉투에 쓰레기를 담아 오지 않습니다. 아줌마는 검은 비닐봉지에 음식물 쓰레기를 아무렇게나 싸서 내던지고는 되돌아갑니다. 내던진 봉투가 찢어지면서 음식물 쓰레기가 바닥에 나뒹굽니다.
냄새 한번 고약합니다. 은행나무 아줌마의 눈치를 살피면서 나는 어찌할 줄 몰라 합니다. 다행히도 은행나무 아줌마가 그 모습을 보지 못했습니다.
우리의 하루는 조마조마하게 흘러갑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쌓이는 쓰레기더미에 몸은 점점 녹초가 되어 갑니다. 우리 몸은 편할 날이 없습니다.
“빨리 새벽이 왔으면 좋겠어.”
우리는 벌써 새벽을 기다립니다. 새벽에는 환경미화원 아저씨들이 쌓여 있는 쓰레기를 모두 수거해 가기 때문입니다. 그럼 우리는 한결 홀가분해집니다. 그래서 새벽을 기다리는 것이 우리의 일과가 되어버렸습니다.
우리에게서 웃음을 빼앗아간 쓰레기들이 밉습니다. 그래도 우리는 쌓이는 쓰레기봉투를 어쩔 수 없이 지켜보고 있어야 합니다.
다른 곳으로 이사 가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지만, 우리에겐 선택의 여지가 없습니다. 아마 우리는 이곳에서 죽게 될 겁니다. 막냇동생의 얼굴은 누렇게 황달이 끼기 시작했습니다.
“오늘은 좀 어떠니?”
“물이라도 실컷 마셨으면 좋겠어.”
“나도. 왜 사람들은 우리에게 물을 주지 않는 걸까? 쓰레기만 던져주고 가면 그만이야. 정말 미워 죽겠어. 아마 우린 오래 살지 못할 거야. 무서워.”
사람들은 우리의 존재를 까맣게 잊고 있습니다. 우리가 왜 이곳으로 이사 왔는지 알지 못합니다. 그래서 더 슬픕니다.
햇살도 들지 않는 곳에 살다 보니 우리는 항상 움츠려 있습니다. 하지만 키 큰 은행나무 아줌마는 오후가 되면 따뜻한 햇볕을 받으며 낮잠을 즐기곤 합니다. 그런 아줌마가 정말 부럽습니다.
제설자재 적재함 아저씨는 천성적으로 그늘을 더 좋아해서 불평이 없습니다. 우리는 은행나무 아줌마와 제설자재 적재함 아저씨의 눈치를 보느라 불평도 할 수 없습니다.
오후가 되면 쓰레기는 산더미처럼 쌓입니다. 사람들은 우리를 눈여겨보지 않습니다. 우리의 근처에 오는 것조차 싫어합니다. 아무렇지 않게 걸어오다가도 우리의 앞에만 오면 저만치 돌아서 갑니다. 그것도 모자라 코를 막고 재빨리 도망치듯 달려가기도 합니다.
그런데 저 앞에서 할아버지 한 분이 우리를 유심히 살펴보고 있었습니다. 별일입니다. 우리를 바라보는 할아버지의 시선은 불쌍함과 안타까움으로 가득합니다.
한동안 우리를 지켜보던 할아버지가 다가옵니다. 그리곤 다시 유심히 살핍니다. 할아버지가 보기 시작한 것은 두 동강이 난 채 나뒹굴고 있는 우리들의 이름표입니다.
‘우리는 양심화분입니다. 쓰레기는 반드시 종량제 봉투에 담아 저녁 8시부터 12시 사이에 내 집 앞에 놓아주세요.’
할아버지가 혼잣말로 우리의 이름표를 읽었습니다.
우리의 이름표 끝에는 <목이 말라요, 물 좀 주세요>라고 쓰여 있습니다. 그런데도 이곳으로 이사 온 이후 우리에게 물을 주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정말 야박한 인심입니다. 우리를 눈여겨본다면 우리가 갈증에 시달리고 있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을 텐데요. 그만큼 우리는 사람들의 관심 밖에 있습니다.
할아버지의 관심이 우리는 반가울 따름입니다. 하지만 할아버지는 언제 관심을 보였느냐며 되돌아가고 말았습니다.
“그러면 그렇지. 세상에서 우리를 좋아할 사람들은 없어.”
“목말라!”
동생들은 풀이 죽었습니다. 그런 동생들을 어떻게 위로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비라도 쏟아져 내린다면 빗물이라도 실컷 먹을 수 있을 텐데, 비는 올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쓰레기 냄새로 가득한 우리를 누가 좋아하겠어.”
금방이라도 동생이 울 것 같았습니다.
“그래도 우리를 기억해 주는 사람들이 있을 거야.”
말은 그렇게 했지만, 저 역시 시무룩해집니다.
새벽, 쓰레기차가 달려옵니다. 그 뒤를 환경미화원 아저씨가 뒤따릅니다.
은행나무 아줌마도, 제설자재 적재함 아저씨도 꿈나라에 있을 시간이지만 우리는 잠시 잠에서 깨어납니다.
“아저씨, 감사합니다.”
쌓여 있던 쓰레기를 모두 싣고 쓰레기차와 환경미화원 아저씨가 되돌아갑니다. 우리는 그제야 고약한 쓰레기 냄새를 털어내고 곤한 잠을 잘 수 있습니다.
우리는 꿈을 꿉니다. 꿈속 우리의 보금자리는 깨끗하고 아늑합니다. 햇살도 잘 들어 우리의 몸 곳곳에 활력을 넣어 줍니다. 그래서 우리는 꿈꾸는 것을 좋아합니다. 꿈만 꾸다가 하루가 지나갔으면 하는 생각도 합니다.
우리는 오늘 하루도 무표정한 얼굴로 맞이합니다. 전혀 즐거운 일이 생길 것 같지 않은 날입니다. 꿈도 희망도 없는 하루가 시작된 것입니다.
“잘 있었니?”
어제 우리를 유심히 지켜보던 할아버지가 다가와 우리에게 말을 걸어옵니다. 어찌 된 일일까요? 목마른 우리를 바라보며 할아버지가 물을 주기 시작합니다. 그렇게 달콤한 물은 세상에 태어나서 처음으로 마셔보는 것 같습니다.
얼어붙어 있던 우리의 가슴이 조금씩 녹아내리기 시작합니다.
“불쌍해라.”
할아버지는 햇살이 드는 곳으로 우리 삼 형제를 옮겨 놓기 시작합니다. 오랜만에 햇살을 받으니 기분이 상쾌합니다. 우리에게 벌어지고 있는 일이 꿈인지 현실인지 분간이 가지 않습니다.
“꿈은 아니지?”
“그래 분명 꿈은 아니야.”
“정말 날아갈 것 같아.”
할아버지의 손길이 닿을 때마다 우리의 가슴도 따듯해집니다.
할아버지가 두 동강이 난 채 한쪽에 방치된 우리의 이름표를 수리하기 시작합니다. 할아버지의 어깨에서 정감이 느껴집니다.
“많이 아프지? 며칠 동안 여기에서 몸을 추스르렴. 그렇지 않았다가는 올겨울을 무사히 넘기지 못할 거야.”
할아버지가 그 말을 남기고 돌아섰습니다.
어찌 된 일인지 우리의 새 보금자리에는 쓰레기가 쌓이지 않았습니다. 정말이지 신기한 일입니다. 대신 우리가 살던 은행나무 아줌마의 발밑에 쓰레기가 쌓이기 시작했습니다.
“냄새 때문에 못 살겠어. 너희 쓰레기 버려두고 거기에서 뭐하는 거니? 지저분한 녀석들. 이 쓰레기 얼른 가져가지 못하겠니?”
“또 웬 소란이야? 이봐요, 아줌마. 이제 그 쓰레기 타령 좀 그만할 수 없겠어요? 사실 쟤들이 무슨 잘못이 있어요. 잘못은 쓰레기를 가져다가 버리는 사람들에게 있지. 그리고 말은 똑바로 하랬다고 쟤들이 이사 오기 전부터 아줌마 발밑에 쓰레기가 쌓이기 시작했잖아요. 이제 아이들 탓은 그 정도만 하세요.”
제설자재 적재함 아저씨의 말에 은행나무 아줌마는 벙어리가 되고 맙니다. 온종일 아줌마와 아저씨의 기 싸움에 냉랭함이 가득합니다.
다음날에도 할아버지는 우리를 찾아오셨습니다. 우리를 향한 할아버지의 관심은 동정이 아닌 것 같습니다. 할아버지는 진심으로 우리를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쓰레기가 없는 쾌적한 환경에 있다 보니 우리의 몸도 건강해졌습니다. 하지만 은행나무 아줌마의 얼굴엔 짜증만 가득했습니다. 은행나무 아줌마는 말을 잃은 지 오래입니다. 아줌마는 숨을 쉴 수 없다며 코를 틀어막고 한숨만 쏟아냅니다.
“많이 건강해졌으니 있던 자리로 돌아가야지. 이제는 너희가 사람들의 양심을 되살려 줄 때란다. 내가 지켜보고 있을 테니까, 용기 잃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다시 은행나무 아줌마의 발밑으로 이사했습니다.
“형? 우리 냄새나는 곳에 다시 버려진 거야?”
“아니. 우린 중요한 걸 잊고 있었어. 우린 양심화분이잖아. 사람들이 양심을 되찾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우리의 일이었어. 이제야 알 수 있을 것 같아.”
“그래. 나도 형 말에 동감이야. 우리가 노력한다면 사람들도 양심 없이 이곳에 쓰레기를 버리지는 않을 거야.”
우리는 자신감을 되찾았습니다. 모두가 할아버지의 보살핌 때문입니다. 우리들의 하루는 이제 근심과 시름으로 시작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은행나무 아줌마는 아직도 입을 삐죽 내밀고 있습니다.
“저기 온다. 그 아줌마야. 음식물 쓰레기를 함부로 버리던 아줌마.”
우리는 긴장하기 시작했습니다. 아줌마가 다가와 쓰레기봉투를 휙 던지려고 할 때였습니다.
“여보세요. 여기 안내문이 보이지 않아요? 함부로 쓰레기를 버리면 어떡합니까? 양심화분이 왜 여기에 있겠어요.”
할아버지의 말씀에 아줌마는 버리려던 음식물 쓰레기를 들고 되돌아갑니다. 그 후로도 할아버지는 계속해서 우리를 지켜주었습니다. 그러자 우리가 양심화분이라는 걸 사람들이 인식하기 시작했습니다.
우리의 보금자리에는 더는 쓰레기가 쌓이지 않았습니다. 고약한 냄새도 더는 나지 않았습니다. 입을 빼 물고 있던 은행나무 아줌마의 얼굴도 환해졌습니다.
“내가 너희를 오해했었어. 정말 미안하구나. 그리고 고맙단다. 너희가 없었다면 난 아마도 쓰레기더미에서 헤어 나올 수 없었을 거야.”
“아니에요, 아줌마. 우리는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에요.”
그렇습니다. 우리는 양심화분입니다.
우리의 보금자리엔 웃음꽃이 피기 시작했습니다. 이제는 사람들도 우리를 피해 돌아서 가지 않습니다. 이 모든 게 할아버지 덕분입니다.
“할아버지 감사합니다.”
**약력:1970년생. 시집 『봄 여름 가을 겨울 모두 바쁘면 환절기에 만나자』 외. 에세이집 『내 머릿속의 또 다른 나』 외. 장편소설 『축제는 끝나지 않았다』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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