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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호/수필/차화자/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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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부
댓글 0건 조회 1,596회 작성일 17-01-04 1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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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차화자 (수필가)




향기



   거실 블라인드를 올렸다. 밤새 하얀 눈꽃이 피었다. 화단에 작은 철쭉 나무 위에는 어린이 조막손만한 꽃송이들이 소복하게 목화송이가 되어있다.
“엄마, 커튼 열고 밖을 보세요.”
침대 옆에 창문이 있다.
“소리도 없이 많이 왔구나.”
   할아버지부터 백년을 지켜온 자리를 개발에 밀려 아파트 자리로 내어주고 넷째딸네 옆으로 문턱 없는 집을 지어 어머니 거쳐를 옮겼다. 걷지를 못하시어 자녀들이 일주일씩 돌아가며 도우미를 하고 있다. 월요일마다 태어난 순서대로 차례가 되면 내려온다. 이번 주에는 내 차례다. 우리들은 이곳을 실로암이라 한다. 남향집이다. 유리창이 넓어 하루 종일 햇볕이 거실 깊숙이 들어와 따뜻하다. 어머니와 창가에 앉아 평화로운 이야기를 나눈다.
“엄마, 살아오는 동안 언제가 제일 좋았어?”
“처음 시집 왔을 때.”
   오랜 기다림 끝에 첫딸인 나를 낳았을 때라는 말이 나오기를 기대하였다.
“시누이 넷, 두 살배기 시동생에 시어른, 머슴까지 그 많은 식구들 틈에 힘들지 뭐가 그렇게 좋았어?”
“할머니가 다락에서 수수엿 단지를 꺼내어 숟가락으로 돌돌 말아 입에 넣어  주는데 그것이 그렇게 좋드라.”
외할아버지 일찍 돌아가시고 맏이로 동생 다섯을 돌보며 외할머니 사랑의 손길이 엄마에게는 부족했던가 보다.  
“아버지는 살가우셨어? 엄마 엄청 좋아했지? 내 기억 속에 엄마는, 항상 배가  불러있다 동생을 낳았거든.”
“사랑하는 대로 낳았으면 그것만 되것냐.”
아버지는 옛날 금융조합에서 농협, 단위조합 조합장으로 마감할 때 까지, 살림에는 뒷전이셨다. 할아버지가 당진 장날 돼지 새끼 암컷으로 사오라 하셨단다. 망태기에서 꺼낸 돼지 새끼를 보신 할아버지께서 말씀하셨다.
“암놈 사오라 했지 누가 수컷 사오라 했니.”
“암놈 샀는데유~.”
“이놈아, 이게 수컷이지 암놈이냐.”
“젖이 있잖유~.”
“이놈아, 너는 젖이 없어 숫컷이냐.”
   빗자루 들고 마당 한 번 쓸지 않았다는 아버지가 돼지 감별하는 것을 알았겠는가, 우리 집에는 농사 짓는 큰 소 한 마리와 돼지우리에 항상 새끼 낳을 수 있는 돼지 두 마리가 있었다. 돼지 먹이는 구정물에 쌀겨를 섞어 주었다. 소여물은 할아버지께서 정성을 들여 작두로 볏짚을 썰어 가마솥에 콩깍지와 콩을 넣어 푹 삶으면 김이 오르면서 나오는 냄새에 외양간에 매여 있던 소가 코를 벌름거리며 서성인다. 고구마도 몇 개 넣었다가 우리들에게 주었다.
점심 식사를 마치고 틀니를 빼놓고 두 손 곱게 모으고 주무신다. 수수엿 입에 넣어주던 시어머니 꿈을 꾸고 있나보다. 틀니를 빼놓아 움푹 들어간 입술을 오물오물거리며 행복한 미소를 짓는다. 슬그머니 손을 만져 보았다. 이 손으로 우리들의 똥을 얼마나 만지셨을까? 엿을 떠 주던 시어머니는 중풍으로 누워있어 대소변을 받아낸 세월은 길고 멀었다. 손등에 퍼런 힘줄이 얼기설기 고구마 줄기 같다. 다리를 더듬어 보았다. 앞정강이 뼈가 살이 없어 칼날 같다.
열여섯에 시집와서 11남매를 낳아 키우면서 얼마나 마음 졸이셨을까? 77년 삶의 터전도 개발에 밀려 아파트 자리로 내어주었다.
“화살을 잘못 쏘아 빗나가면 다시 쏘면 되지만, 말은 한 번 뱉으면 다시 주워 담을 수 없은깨 매사에 말조심 해야 헌다.”
“내가 죽어도 지금까지 잘 지내온 것 같이 큰 언니를 엄마로 생각하고 화목하게 잘들 지내라.”
   며칠 전, 아버지 18주기 추모일에 말씀하셨다. 창밖으로 보이는 단풍나무 끝에 달려 있는 저 잎도 바람에 못 견디고 바스러지겠지, 바람에 마당 한쪽으로 쏠려가는 나뭇잎 같이 어느 날 흔적을 묻어버리시겠지, 
   아침에 피어있던 목화송이 눈꽃들도 없다. 하늘에 섭리를 누가 거스릴 수 있겠는가, 계절 따라 피는 꽃들도 질서를 지키고, 다투지 않고 향기를 주고 간다. 외양간 소가 여물 냄새에 코를 벌름거리듯, 엄마 냄새를 맡아본다. 라일락 향기로 오래오래 품고 싶다.








**약력:2014년 군포의 책 공모전 최우수상. 2015년 《아시아문예》로 수필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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