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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호/아라세계/신연수/1950년대 인천문학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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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부
댓글 0건 조회 2,566회 작성일 17-01-04 1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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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라세계

신연수




1950년대 인천문학 (2)
─ 인천문학仁川文學』과 그 동인들




1. 들어가며
   1945년 해방이 되자 일제강점기의 억눌렸던 문화욕구가 분출되면서 각종 문화단체가 우후죽순처럼 생겨났다. 해방 전 일본과 중국, 만주는 물론 국내에서도 지방으로 흩어 졌던 사람들이 모이면서 해방공간은 사람 수 만큼이나 많은 단체들이 생겨났다. 그 중에는 문학단체도 많았는데 대부분은 이름만 있을 뿐 별다른 활동이나 작품집 한권을 발간하지 못한 채 사라지곤 했다.
   인천도 예외는 아니어서 여러 동인회가 만들어졌지만 이 중 동인지를 발간하는 등 제대로 활동을 한 동인회는 한둘에 불과했다. 당시 인천에서 나온 동인지는 『문예탑』과 『시와 산문』등인데, 현재 실물을 볼 수 없어 누가, 언제 동인지를 발간해 몇 호까지 나왔는지, 그리고 어떤 작품이 실렸는지 등 구체적인 내용은 전혀 알 수 없다. 다만 당시 활동하던 몇 사람의 기억에 의한 단편적인 기록이 해방공간의 인천문학을 증언해주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 기록은 구술자에 따라 내용이 다른 것은 물론 역사적 사실과도 부합하지 않아 오류로 보이지만 현재로서는 확인할 방법이 없는 것이 현실인 것이다.
그에 비해 1950년 한국전쟁 이후에는 비교적 많은 자료들이 남아 있다. 하지만 그 자료를 방치할 경우 곧 소멸될 것은 분명하며, 초기에 활동하던 문인 역시 상당수가 이미 작고했거나 작고직전에 놓여 있어 그 보존책 마련이 시급하다하겠다. 이에 인천문학을 정리, 보존하는 작업의 하나로 1950년대 인천문학을 대표하는 동인지 『인천문학』과 그 동인들을 간략하게 살펴본다.


2. 1956년 인천문학 창간되다
   한국전쟁 이후 인천문학사를 일견할 때 1950년대는 동인지의 전성시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전쟁의 어려운 여건에서도 1951년 『신진新進』을 시작으로 『초원草原』, 『노정路程』, 『북진北進』, 『사파砂波』, 『소택지대沼澤地帶』, 『벽壁』, 『인천문학仁川文學』, 『해협海峽』,  『표풍飄風』 등 50년대에 창간된 동인지는 10여 종에 이른다. 이들 동인지는 창간호가 곧 종간호가 되는 경우도 있지만 적어도 3~4호, 많으면 10호까지 발행돼 발표지면이 없는 인천문인들에게 좋은 발표의 장을 마련해주는 역할을 했다.
『인천문학』을 창간한 인천문학동인회는 최병구崔炳九 시인을 중심으로 소설가인 김창황金昌璜과 시인인 조한길趙漢吉, 낭승만浪承萬등 문학에 뜻을 둔 사람들이 모였지만 인천문학 창간호가 발간된 후 동인회는 사실상 없어지고 최병구 시인 혼자 인천문학 원고를 청탁하고 책자를 발간해 사실상 『인천문학』은 동인지가 아닌 개인이 만드는 문예지라고 하는 것이 더 적절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최병구 시인은 혼자서 1978년까지 22년 동안 인천문학을 6집까지 발간하는가 하면, 오늘날처럼 출판이 보편화되지 않은 때에 동료 문인의 작품집(1957년6월 이선종李善鍾 수필집 『진달래』)을 발간하는가 하면 당시 흔치 않은 작고문인추모회 등을 개최하는 등 인천문학의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
『인천문학』은 1956년12월23일 창간호가 나왔다. 57판, 70면에 불과한 창간호에는 당시 인천에서 활동하는 문인 28명의 작품이 실려 있을 뿐, 정작 창간사나 축사 등 인사말이 전혀 없어 인천문학의 창간정신이나 이유, 창간과정 등은 알 수 없다. 다만 최병구와 김창황 등이 쓴 편집후기가 있어 이를 통해 인천문학을 창간하게 된 일단의 사정을 짐작할 뿐이다. 이를 보면
“문학동인이 결성되고 행한 우리의 첫 사업으로 이 인천문학의 조그만 모습을 든다. 이를 계기로 해서 인천문단이 더 한층 자극을 얻고 서로 간 격려와 고무의 적이 된다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을 것이다”
“우선 인천에 거주하고 있는 문학인들을 총망라해 서로간의 친목과 자극을 받아보자는 뜻으로 모여진 것이 인천문학동인회였고 서로 입김과 따스한 체온을 나눠보자고 해서 만들어진 것이 인천문학이다. 무기력하고 따분한 인천문단에 새로운 공기를 조성하고 따뜻한 체온을 우리들의 앞날을 위해서 서로 나눌 수 있다면 우리가 바라는 봄날의 향기와 별로 다르지 않을 것이다”
“초라한 모습이기는 하지만 그런대로 우리의 작품을 한 번 묶어 보았으면 하는 것이 우리 문학동인들의 욕심이었다. 갈등과 싸움으로 인하여 저기압이 돌고 있는 요즘의 인천문단에서 인천문학은 부드럽고 따뜻한 호흡이 아닐 수 없다. 앞으로는 질質 있는 인천문학이 되리라 믿으며 잡운雜韻 많던 1956년 뒷자리에 이것을 내 놓는다”
인천문학 창간호에 실린 작품을 보면 편집후기에서 언급한 것처럼 인천의 문학인들이 망라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먼저 황해도 해주에서 월남해 인천에 머무르던 시인 이인석李仁石과 함북 성진에서 온 한무학韓無學, 평남 진남포에서 월남한 임진수林鎭洙를 비롯하여 강화사람인 한상억韓相億, 조한길, 낭승만, 윤부현尹富鉉, 홍윤기洪潤基, 석보경石寶慶, 홍원태洪元泰, 최창섭崔昌燮등의 시詩, 김창황, 이정태李鼎泰, 최병구의 창작創作, 손설향孫雪鄕, 한일초韓一草, 홍명희洪明姬의 단상斷想, 김길봉金吉鳳, 유충렬柳忠烈, 엄갑룡嚴甲龍, 양봉재梁鳳在, 이윤성李允成, 이창근李昌根, 신경수申景洙, 최종선崔鍾善, 이종범李鍾範의 수필隨筆, 그리고 김광섭金珖燮과 고영高影의 평론評論 등 총 28편의 작품이 실려 있다.
이 중 1950년대 전쟁의 참상을 바라보는 시인의 내면세계를 잘 그려낸 시 한 편을 보자.


   쓸쓸히 웃으면서 너의 세계의 의미를 나는 찾고 있다.
   쓸쓸히 웃는 너의 웃음이 하나의 꽃이 되어 가슴에 피고 돈다.

   만상萬象을 바라보는 너의 내면에서 네가 남긴 그늘은 나와 같이 찌그러지고 있다.
   안으로 흐르는 강물과 흐름의 언덕에서, 조그만 비들기장을 마련하고 탑은 세워졌다.

   온갖 기상氣象에 태연함은 시시로 울고 난, - 바람이 간 뒤였다.
   긴 그림자를 남기고, 쭈그러진 형상으로 내 얼굴을 보고 있다.


   조한길 시인의 시 「잔목殘木」이다. 이 시를 쓴 조한길은 1934년 인천에서 출생, 동국대학교를 중퇴한 후 1961년 《자유문학》을 통해 등단했다. 조한길은 등단 이전부터 이미 인천문학동인회의 중심인물로 각종 지면을 통해 많은 시를 발표하는가 하면, 인천문인협회 초대 사무국장과 부지부장 등으로 인천문단 발전에 크게 기여하기도 했다. 하지만 조한길은 1972년 치정사건에 휘말려 마흔도 안 된 젊은 나이에 타계함으로써 생전에 시집 한권을 남기지 못하고 말았다.
이 밖에 창간호에는 시인 최병구가 『십년十年』이라는 창작을 발표해 눈길을 끌었다. 「십년」은 당시 인천문인들과 잘 어울리면서 그들이 만드는 동인지나 작품집의 표지나 삽화를 많이 그려온 화가 김찬희金讚熙를 모델로 한 실명소설로, 본격적인 창작으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지만 인천의 대표시인 중 한명인 최병구의 유일한 소설이라는 점에서 나름대로 의의가 있다 하겠다.
최병구는 1924년 경기도 과천에서 출생했다. 젊은 시절 인천일보와 경기신문, 경인일보의 문화부장과 경기일보 논설위원 등 언론인으로 활동하기도 했지만 최병구는 평생을 시인으로 살다 1981년 7월 숙환으로 타계한 천상 시인이다. 『원죄근처原罪近處, 1959년』라는 시집 한권을 남긴 최병구는 『인천문학』 외에도 『초원草原』과 『중앙문학中央文學』 등의 동인지를 발간하는 등 인천문학을 위해 평생을 바쳤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가 인천문학 창간 직후부터 계획한 『인천시인전집仁川詩人全集』은 그의 생전에 결실을 보지는 못했지만 후에 2권의 『인천문인대표작선집』으로 발간된 것은 그나마 다행이라 하겠다. 그의 사후 그의 정신을 기리는 후배들에 의해 유고시집 『버리고 간 노래』가 발간됐다.


3. 16년 만에 복간된 인천문학
인천문학은 창간호를 내고 한동안 발간되지 못했다. 그러다 제2집이 발간된 것은 창간호를 내고 무려 16년이 지난 1972년 11월 30일이었다.
복간호로 나온 제2집은 57판, 104면으로 16년 만에 복간된 책으로는 크게 눈에 띄지 않는다. 주홍색 표지의 제2집은 먼저 제호가 바뀌었고 다음으로 표지에 주요한 작품 및 그 필자를 소개한 것이 특징이다. 특히 ‘인천문학’이라는 제호는 서예가 우초又樵 장인식張仁植이 쓴 것으로 그 후 1978년에 나온 제6집까지 사용된다. 최병구 시인이 타계하고 발행인이 손설향으로 바뀐 후에는 같은 장인식으로부터 새로운 글씨를 받아 7~8호에 사용된다.
제2집 복간호에는 모두 43명의 글 43편이 실렸는데 그 면면을 보면 다음과 같다.
이옥산李玉山- 복간사復刊辭를 대신하여
(시) 한상억, 이인석, 박일송朴一松, 정우영鄭又榮, 최승렬崔承烈, 낭승만, 김영달金泳達, 이종범, 조한길, 장윤우張潤宇, 윤부현, 이중흡李重洽, 홍원태, 김경민金京民, 최은휴崔恩休, 김연식金蓮植, 김대규金大圭, 장종태張鍾泰, 원로빈元魯彬, 김경金敬 등 (수필) 이종화李宗和, 유양렬劉良烈, 이창식李昌植, 설창수, 김보성金寶成, 박노석朴奴石, 홍성문洪性文, 허소라許素羅, 양용성梁龍昇, 김연희金燕姬, 안익승安益承, 이윤성, 신경수, 고일高逸, 김길봉, 최시호崔始昊, 최병구, 권승오權勝五, 김봉수金鳳洙, 고고생孤高生 등 (소설) 한백흥韓百興, 심창화沈昌化 등

제2집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작품은 한상억의 시 「인천찬가仁川讚歌」이다. 1915년 9월 인천 강화에서 태어난 한상억은 동향의 작곡가 최영섭이 만든 가곡 「그리운 금강산」의 작사자로 알려져 있는데, 그의 인천사랑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시가 바로 이 「인천찬가」이다. 여기에 처음으로 발표된 인천찬가는 ‘파도波濤의 노래’라는 부제가 붙어 있는데, 한상억은 이 시를 시작으로 모두 6편의 인천찬가를 발표한다. 뒤를 이어 발표된 인천찬가는 (2) 싸리재의 노래, (3) 월미도의 노래, (4) 송도의 노래, (5) 신포동의 노래, (6) 문학산의 노래 등이다.
한상억은 해방 후 인천에서 김차영 등과 함께 시와산문동인회를 결성하고 동인지 『시와 산문』을 발간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리고 1956년 『자유문학自由文學』에 시 「네거리에서」를 추천받은 후 1961년 시집 『평행선平行線의 대결對決』, 1976년 시집 『창변사유窓邊思惟』를 냈다. 또 인천신문과 경기일보 논설위원, 문협 및 예총 경기도지부장 등으로 활동한 한상억은 1997년 자녀를 따라 미국으로 이민, 2002년 이국에서 타계하고 말았다. 한상억 역시 사후 유고집 『그리운 금강산』이 발간되었으며 인천종합문화예술회관 광장에는 「그리운 금강산」의 노래비가 세워졌다.

3. 1970년대 전성기에서 폐간까지
인천문학은 1950년대에 창간되었지만 실제는 1970년대에 가장 많이 발간됐다. 창간호가 나온 후 1950~60년대는 한권도 나오지 못하고 1972년 복간 이후 5권이 모두 1970년대에 발간된 것이다.
제3집은 복간호인 제2집이 나오고 4년 후인 1976년에, 제4집은 제3집과 같은 해인 1976년에, 제5집은 1977년에, 제6집은 1978년에 각각 나온 것이다. 그리고 1981년 최병구 시인이 타계함으로써 인천문학은 더 이상 발간되지 못할 것으로 생각됐다. 그런데 최병구 시인이 타계하고 2년이 지난 1983년 손설향 시인에 의해 제7호가 속간된 것이다.
손설향은 최병구 생존시 한 때 편집을 맡기도 했는데 최병구 사후 인천에서 인천문학을 살려야한다는 여론이 높자 직접 경영까지 나선 것이다. 그러나 그는 제7호를 낸 다음해인 1984년 제8호 한권을 더 내고 타계함으로써 인천문학은 현재까지 더 이상 발간되지 못하고 영영 사라지고 말았다.

제3집 이후 각 호별 중요한 수록작품은 다음과 같다.

제3집, 43명의 작품 43편 수록.
(시) 한상억- 인천찬가(2), 최경섭- 계룡산에서, 김양수- 아이들과 애비와, 윤부현-청춘, 낭승만-월미부두, 박송-석굴암 가는 길, 손설향 -백두견화, 이광훈 -소우宵雨, 김병제 -아침출근, 장현기 -첫 보름날, 최은휴 -봄이 활짝피는 언덕, 이중흡 -원정園丁의 일기, 김구연 - 산새, 이석인 -무덤 가까이, 김연식 -하얀 장미꽃, 조우성 -봄, 허욱 - 풍경, 최시호 -입학식 올리는 날, 김윤식 -이빨, 노두식 -산정호수, 한명순 -날으지 않는 새, 장정옥 -회복기, 최병구 -사향思鄕
(수필) 최정삼 -편편단상, 김길봉 -신포시장 주변, 장인식 -추억의 백두견화, 김정호 -고독음미孤獨吟味, 흰모래 -우리 아저씨, 김경룡 - 식물적 인간, 김진엽 -보화난수寶貨難售, 이재인 -불효의 귤껍질, 장수복 -꽃잎이 흔들릴 때, 신상혁 -인생을 산 자죽을 남기자, 원중희 -의창수상醫窓隨想, 유양열 -자신을 가꾸어가는 삶, 김연희 -피해자, 이정염 -경노사상과 청소년 선도, 김연만 -인천을 아끼는 마음, 강난주 -동정선생東庭先生을 생각하면서
(창작) 이정태 -어느 일요일, 김창흡 -어부도漁夫圖, 심창화 -나목裸木, 한백흥 -진달래 등.

제4집은 현재 실물자료를 확인할 수 없어 그 자세한 서지사항 등을 생략한다.

제5집, 59명의 작품 59편 수록.
(권두언) 정범노- 향토애와 향토문학
(특집) 고일유고高逸遺稿 -고독을 지키던 애향의 언론인, 미당 서정주 -문학과 인생, 김태호 인천시장 -향토문학중흥의 전기
(시단) 한상억, 김양수, 낭승만, 홍윤기, 장윤우, 김영달, 장현기, 윤부현, 손설향, 이완세, 한순홍, 김대규, 허욱, 방원조, 박남훈, 성지월, 오리, 김정웅, 이석인, 장승재, 이선관, 이명주, 강건일, 전순룡, 최병엽, 노두식, 장정옥, 신월균, 주윤숙, 최병구, 정범노, 이여석, 손문수, 정승렬, 김영진, 신연수, 이경자, 최무영 등
(수필) 이준경, 김병련, 오한제, 박성복, 이범주, 조용란, 성경웅, 박무웅, 임옥순, 최정숙, 신상혁, 유조파, 김연희, 김찬숙, 장수복, 최인재, 홍사홍 등
(창작) 김구연, 최은휴, 이정태 등.

제6집, 50명의 작품 50편 수록.
(시) 최경섭, 윤부현, 낭승만, 최병구, 최은휴, 노기태, 이석인, 이종철, 조우성, 김칠관, 정범노, 임병호, 전세권, 유승완, 이완세, 조영관, 주윤숙, 김동환, 전순룡, 최병엽, 정진석, 이원복, 원노빈, 한명순, 김영진, 서정훈, 이종숙, 박영자, 박경희 등
(동화) 김구연,  (포토에세이) 김영덕, 박창한
(수필) 조수일, 김운성, 이응주, 박성복, 김봉수, 김연희, 송재인, 최숙희, 김경룡, 유조파, 이종숙, 이홍우, 박민규, 김인홍, 이정렴 등
(평론) 조용란 
(창작) 심창화, 최은휴,
(동인지 특집) 표류, 묵시, 백옥 등.

제7집, 59명의 작품 59편 수록.
(시) 최경섭, 한상억, 최성연, 이희철, 장이두, 랑승만, 이광훈, 김병제, 한춘섭, 장현기, 최은휴, 김연식, 이석인, 최시호, 한순홍, 전순룡, 구자룡, 정승렬, 손문수, 손설향, 김동환, 박대산, 신연수, 오성근, 채성병, 이효윤, 유관영, 송영백, 박정숙, 황빈, 김한, 나혁채, 장수복, 최순호, 정창복, 한명순, 김윤식, 등
(수필) 김길봉, 김인홍, 유영자, 유환열, 김선자, 송재철, 손경애, 고춘, 정소희 등 
(포토에세이) 정중화 박창한, 
(번역시) 전방욱
(평론) 이정태  (꽁트) 김구연, 박민규, 김학균  (동화) 장태범
(창작) 심창화, 조순행
(성문 최병구 시인 추모특집) 김양수, 박송, 윤부현 등

제8집, 50명의 작품 50편 수록.
(권두언) 봄비를 맞는 나목처럼
(기획대담) 최경섭 나의 문단 데뷰 50년
(시) 최경섭, 한상억, 윤부현, 박송, 낭승만, 이광훈, 장현기, 김연식, 허욱, 이석인, 김병제, 최시호, 나혁채, 최은휴, 조우성, 김창흡, 이한기, 임병호, 김우영, 구자룡, 오성근, 정승렬, 채성병, 전순룡, 최무영, 최설야, 이효윤, 신연수, 김동환, 정창복, 송서해, 김기쁨, 문계봉, 손설향 등
(수필) 김길봉, 김양수, 흰모래, 김경룡, 윤조병, 김인환, 송재철, 김봉수, 고춘, 김선자 등
(소설) 심창화, 김영구  (꽁트) 김구연
(평론) 김남주, 김학균, 정중화 등.

창간호부터 8호까지 인천문학의 발행사항을 표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2~6호는 원래 2~6집輯으로 되어 있는 것을 호號로 통일시켰다.






**약력:시인.인천문협 회원, 근대서지학회 회원. 법률신문사 이사 겸 총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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