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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호/권두칼럼/백인덕/머리가 아픈데 가슴을 치는 시대에 살아남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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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부
댓글 0건 조회 1,407회 작성일 17-01-04 1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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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두칼럼

백인덕





머리가 아픈데 가슴을 치는 시대에 살아남기



   세상이 무섭다. 나만 그런가? 하루 멀다 하고 온갖 엽기적이고 어처구니없는 사건들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강남에서 ‘묻지마 살인’이 벌어진지 며칠 만에 사람들이 자주 쉽게 이용하던 수락산 등산로에서 ‘강도 살인’이 자행되고, 열아홉 청년이 열악한 근로 여건과 저임금에 시달리며 스크린 도어를 수리하다 전동차에 변變을 당하고, 지하철 공사장에선 일당 인부들이 교육도 지침도 감독도 없는 지하에서 폭발사고로 죽어나갔다. 이 아비규환의 순간에도 고위직 검찰 간부는 간단하게 수십 억 원을 벌고, 모 기업 오너는 내부정보를 이용해 파산직전의 회사 주식을 팔아 수천억의 이익을 남겼다. 사람이 무섭고 어처구니없다. 세상이, 아니다. 이 시대 한국 사회가 절망스럽고 가만히 숨 쉬고 있어도 저절로 분노가 솟구친다.
   작고한 소설가 최인호가 1970년대 모 여성지와의 인터뷰에서 밝혔다는 ‘쌀밥론’이 생각난다. 국민의 계몽, 정신개조, 건전성에 특별한 관심(?)을 기울였던 독재정권 말기, 소위 ‘빠순이 소설’과 ‘호스티스 영화’가 난무하는 현상을 언급하면서 한 기자가 당시 젊은 여성들의 ‘정조貞操관념’이 너무 약해진 것 아니냐고 물었더니, 작가는 우스개소리처럼 ‘쌀밥 한 그릇에 설령 돌이 들었어도 쌀이 훨씬 많으니 쌀밥 아니냐.’고  되물었다고 한다. 이 마저도 시대착오적 비유라고 쌍심지를 켜는 인사들도 있을 것이다. 어쨌든, 요즘은 ‘쌀밥’이라고 한 그릇 퍼 담을 때마다 ‘쌀’보다 ‘돌’이 압도적으로 많은 게 아닐까 싶다. 오늘의 허기와 내일의 불안 때문에 그 밥공기를 싹싹 다 비워야하는 사람들은 결코 소화될 수 없는 돌멩이들을 우걱우걱 씹으며 이가 아프고, 위가 아프고 끝내 가슴에 멍울이 맺히는 게 아닐까 염려스럽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최근에 발표한 사회 지표에 따르면 한국은 조사대상 38개국 중에서 28위로 파악됐다. 지수의 기준요소인 주거, 소득, 직업, 교육, 환경, 안전, 건강, 삶의 만족 등 11개 부문 중에서 OECD 평균의 세 배가 넘는 초미세먼지 등으로 인해 환경부문은 37위, 평균 근로 시간이 주 50시간 이상인 근로자가 20%를 넘는 탓에 직업, 안전, 건강 등의 부문에서도 거의 최하위의 평가를 받았다. 혹자는 의아해하겠지만, 그나마 교육과, 소득, 주거 등에서 상대적으로 높은 점수를 받아 전체적으로 최하우권이 되는 것을 막았다고 한다. 뭐 하나 탐탁한 부분이 없지만, 필자가 가장 주목한 것은 ‘공동체의 건강성’이었다. 이 항목은 위험이나 위기에 처했을 때 개인이나 지역사회가 공동체의 구성원이나 상위의 지역사회 단위에서 얼마나 도움을 기대할 수 있으며, 실제로 받을 수 있는가 하는 ‘공동체 의식’을 묻는 것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한국 사회는 최하위에 이름을 올렸다.
   저항의 새로운 아이콘, 강남역과 구의역에 붙기 시작한 수많은 ‘포스트 잇’, 이를 두고 ‘촛불-노란 리본-포스트 잇’으로 이어지는 항의와 저항의 정신을 읽어 내느라 각종 매체들이 바쁘다. 분노의 표출이 섣부른 ‘카타르시스’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측도 있고, 그냥 삭이다 ‘조현병’이 되느니 일단 표출하는 것은 바람직하다는 측이 서서히 진영 논리를 개발하고 있는 것처럼도 보인다. 사회학을 전공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변호사 자격증이 있는 것도 아닌 주제에 이런 현상에 왈가왈부하는 것은 적절한 처신이 아닐 것이다. 그런데도 필자는 자꾸 마음에 걸리는 게 있다. 보통 조용히 잊히기 마련인 단신短信 하나. 국내 서점가 베스트셀러 20위 안에 국내 작가의 책이 단 한 권도 없다는 것이다. 지하철 스크린 도어나 버스 정류장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시가 베스트셀러가 될 수는 없을 것이다. 사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도 시 유사품은 많이 유통되지만, 본격이나 장르나 서사가 장기적으로 거재되는 것은 보기 어렵다. 그런데도 한국인은 자신들의 ‘말과 글’로 타 지역, 공동체의 이야기에만 귀를 기울인다. 어찌된 일인가?
공동체의 건강성과 독서 부족, 또는 국내 작가에 대한 냉대를 연결해 생각해 보자. 공동체가 건강하지 못하다는 것은 단순히 외부로부터 부조扶助가 즉각적으로 제공되지 않는다는 표피적 문제에 국한되지 않는다. 이면裏面에는 모든 사건과 병폐를 외부적 조건, 즉 나 아닌, 다른 지역 때문에 발생한다고 믿는 것이다. 따라서 그 해결도 외부에서 주어져야 한다고 은연隱然중에 믿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오늘 우리의 문학이 동 시대의 문제와 공동체의 위기의식을 제대로 포착, 천착穿鑿하고 있는지도 냉철하게 따져봐야 하겠지만, 한국 사회는 당분간 아니면 꽤 길게 ‘머리가 아픈데 가슴을 치며’ 위태로운 발전을 거듭할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경제지표가 선진국 문턱을 다 넘어서, 온갖 물질로 몸과 정신과 영혼마저 도배해버린 다음에도 ‘왜 삶의 질’은 나아지지 않았느냐고 방향 없는 분노를 표출할 것이다. 자살률 세계 1위, 술 소비량 세계 2위가 후세대에 물려줄 업적이 될지도 모른다. 캄캄하다!    







**약력: 1991년 《현대시학》으로 등단. 본지 주간. 시집 『끝을 찾아서』, 『한밤의 못질』, 『오래된 약』, 『나는 내 삶을 사랑하는가』,

『단단斷斷함에 대하여』, 저서 『사이버 시대의 시적 상상력』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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