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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호/신작특선/김다솜/그급포장지의 사랑 외 4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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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부
댓글 0건 조회 1,157회 작성일 17-01-04 16:23

본문

신작특선

김다솜




그급포장지의 사랑



고상한 체면과 자존심을 포장하는
아버지와 아들, 오라버니와 남편이 있다면
허영과 사치를 포장하는 어머니와 딸, 아내들도 많지요.


무엇이든 숨긴다고 저수지 바닥처럼 드러나지
않으면 얼마나 좋을까요.


저 골목길 돌아서면 어제의 일들이 드러나고
저 모퉁이 돌아서면 어제의 말들이 드러나고
저 산 돌아서면 안개 사라진 숲처럼 드러나고


당당히 이혼하고 호박씨, 아침마당 마실 나온
사슴처럼 맑은 눈동자의 여인아, 잘 살아야 해!


혼자면 어떻고, 이혼이면 어떤가.
그대는 자랑스런 아들, 딸들이 좋아하는 어머니,
누군가의 우울한 아내보다 아름다운 할머니와 어머니로


아버지와 아들, 오라버니와 남편 자존심 지켜주느라 
한숨들숨을 담배연기 내 뿜듯 내쉬며
거룩한 시간에게 속아주는
어머니들 많지요.


고급포장지로 포장한 어떤 만남은 언젠가는 헤어지는가보다.






저수지에서



천안에서 아산으로
가는 길섶에서 만난 월랑, 그
마을의 물고기 지느러미가 궁금해서 걸었다


AI로 날개 접은
새들의 소식이 허공으로 퍼질 때
꽃샘바람 안고 떠나는 철새, 왔으면 떠나야 하는 길,
버드나무숲, 갈대숲에 모여 있는 청둥오리들
푸드득~푸드득 수달을 피해
도망가는 소리 듣다가 뒤돌아보니 웬 사과 밭?
사과꽃, 사과꽃…… 흠짓 놀라 다시 봐도 영락없는
여기 저기 사과…… 꽃?
일당도 없이 과수원 지키는 지킴이로
염전에 팔려간 노예처럼 군말 없이 일하는 사과향기들


S라인 몸매와 V라인 얼굴로
여기저기 이력서를 내면 취직이 될 텐데
주근깨 생길까봐 챙 넓은 모자까지 푹 눌러쓴 사과향기들
호피무늬 혹은 물방울무늬의 옷을 입고 알몸으로
어느 가게에서 밤, 낮 벌서다 온 마네킹처럼





내시경 속의 나



수면내시경 하려고 신청하니
현금 2만원이라도 침대가 없다고 한다.


간호사는 무통 신청자에게 빈자리 있다고 유혹을 한다.
5분간 입안에 마취제를 넣고 누워 있었다.


시신처럼 누워 있던 사람들이
취한 사람처럼 비틀비틀 나온다.


조직검사 하려고 떼어낸 자국에서 붉은 점이 송글거린다.
비웠으니 채워야 하는 위장처럼 채우면 언젠가는 비워야 하는 생生


저 단순하면서도 복잡하고
더러우면서도 깨끗한 장場,
장裝, 장張







꽃무늬 접시




그때 3·1절 축하행렬을 했었다.
꽃깔 모자 쓰고 새색시로 분장했던 그에게
오빠 하고 부르면 따끈한 천 원 한 장의 추억


살아서 다시 만나야 한다는 어머님의 말씀
걱정 마세요. 편지 자주 할게요. 손을 높이 든 채 사라진 뱃고동
그리운 당신의 아버지이자 아들 그리고 나의 오라버니는
연예인하고 찍은 앨범은 어디다 두고 살았는지
다락방 천장에 붙었던 그의 연애편지는 어디로 갔을까.
영화배우처럼 잘 생긴 그는 이제 겨울나무처럼


총소리와 잠자던
전우의 군화를 꿈에서 만나기도 했고
야자수 늪을 건너며, 달려가고 뛰어가다 엎어지고
넘어진 전우를 부축해서 숲으로 빠져나와
화약 냄새로 온몸을 씻을 때에는
고향에 부모님이 그리웠다고,


깨지고 날아간 밥그릇을 그들과 먹으며
전쟁 속에서 얻은 빛나는 훈장은 녹슬고 있다.
지금 그의 몸에는 강처럼 흐르는 베트남의 신화
조왕신*에게 올린 어머니의 기도 덕으로 귀국했으나
버트, 땅콩잼, 금박물린 마후라 이제 보이지 않고
싱크대 속에 남아 있는 꽃무늬 접시 하나.


   * 부엌을 지키는 신.
 





유령마을



지리산 다녀오는 길에 유령마을을 보았어요.


방광마을 있다고 들었으나 유령마을 있을 줄 몰랐어요.


입구에 문지기처럼 지키며 버드나무 서있는
유령마을 사람들은 많은 유령을 만나기 위해
매표구에서 유령 가는 표 주세요.
유령 가는 차표 주세요. 
유령 마을에 사랑하는 할아버지와 할머니,
어머니, 아버지, 언니, 오빠, 누나, 동생들이
옹기종기 불 밝히고 산다는 유령마을 사람들


45년 째 불타고 있는 유령마을을 아시나요.
체르노빌 원자력사고 이후 유령마을이 되었어요.
밤만 되면 개가 사라진다는 유령마을도 있답니다.
사하라 사막에 70년 만에 발견된 유령전투기도 있어요.


기차를 타거나, 버스를 타거나,
지하철을 타거나, 자가용을 타거나,
어딜 가나 거울을 속에 착한 유령들.







<시작메모>



   아침부터 지그재그로 내리는 눈보라가 부풀어 오르는 산수유꽃망울을 움츠리게 한다.


   지금 서울 큰 병원에 입원해서 치료 받는 묵은 김치처럼 정든 지인이 있다. 응급실로 갔다는 연락을 받고 놀라서 푸른 밤을 들쳐 업고 울기도 하고 밤을 귀찮게 했다. 그것도 하현달에서 초승달, 둥근 달이 되니 초연해진다. 누군가 다시 만나고 싶지 않은 사람이 있다면, 다시 만나고 싶은 사람도 있는 것이다. 그녀는 권력도 없는 나에게 해마다 추석이 오면 정성껏 키운 포도 한 박스를 선물했었다. 눈물을 흘려서 그녀가 안 아프다면 눈물을 흘릴 텐데, 기도를 해서 안 아프다면 매일 기도를 하지만 다시 만나길 기도하면서 그녀의 빠른 쾌유를 빈다.



함박눈도 녹아 사라지고
빗물도 어디론가 사라졌다.
낙엽이면 파란 풀잎도 사라졌다.
사라진 것들은 어디서 만나 지난날을 이야기할까.
다시 만나고 싶지 않은 사람들도 많으나
다시 만나고 싶은 사람도 많다.
시는 나의 기다림의 친구였고
외롭고 외로움을 함께 한 절친이자
상처와 배신을 이겨내도록 한 자양분이었다.
내 곁에서 나를 지켜 준 시를 언제까지 사랑할 것인지
그것은 나도 모른다. 오래 사랑하고 싶은 마음뿐이다.
수면제가 무슨 색깔인지 모르고 살다가
어느 날부터 수면제를 복용했었다. 그래서
잠의 중요성을 알기에 뇌와 잠의 대한 공부도 했었다.
지금은 수면제 없이도 잘 자고, 잘 먹고 한다.
누군가를 위로 할 수 있는
나의 시를 위해 건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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