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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호/신작시/박혜연/적금도 외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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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부
댓글 0건 조회 1,155회 작성일 17-01-04 1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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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시

박혜연





적금도*



연륙교 공사로 파헤쳐진 길을 지나며
땅의 가장 안쪽을 본다
바알간 색이 옅은 층을 이루며 길게 웅크린 땅
나무와 풀이 자랄 수 있는 작토층을 지나
더 이상 뿌리가 닿을 수 없는 곳
낙엽과 바람이 밟고 간 수 만 세월의 발자국에
아래로아래로 내려간 하드경반층이 화들짝 드러나 있다
견고한 침묵과 단단한 어둠으로
보석을 품는 그 곳
알루미늄과 망간과 금이 만들어지는 곳
더 이상 깨질 수 없는 세월이 웅크린 곳


우리들 마음 안에도 하드경반층 같은 방이 있을까
수 만 시간이 납작 엎드려 있는
중심 중의 중심
낙엽과 파도와 바람의 시간을 지나
모든 출구를 차단한 마지막 방
더 이상 깨질 수 없는 마음이
어떤 시간에 도착하여
마침내 빛날,



* 금이 쌓여있다는 뜻의 적금도는 여수시 화양면에 소재한 섬이다






눈사람



온 몸에 살얼음이 꼈어요 서걱서걱
조금만 움직여도 얼음조각이 혈관을 타고 돌아요
태생부터 피의 균형이 잘못된 나는
하루하루 백혈구 수치에 목메었어요
사람들은 나의 동글동글한 웃음과
하얀 몸을 사랑하죠
눈이 오면 신이 난 사람들은 나를 굴려
양지바른 곳에 두려해요
그런데 어쩌죠
난 처음부터 눈밭을 굴러서 태어난, 사람
나무의 머리채를 잡고 흔드는 사나온 북풍과
가녀린 새의 발목을 잡는 차가운 눈발이
나의 탯자리인 걸요
이 살벌한 눈밭에서 백혈구 수치를 높이는데
온 힘을 쏟아야 해요
들뜬 사람들의 친절은
내게 큰 도움이 되지 못해요
살을 에는 추위를 견뎌야 내가 살거든요
달달달 치가 떨리는
이 영하의 계절이 나의 계절이거든요
새벽에 눈 떠 허허 벌판에 혼자 서 있어도
두 눈 질끈 감고 그리움을 지워야 해요
눈보라 치는 이 계절이 지나고 나면
나는 순식간에 주르륵 흘러 내리겠죠
그렇게 아무 일 없듯 흩어지겠죠


그런데 가만,
거기 눈발 속에 서 있는 당신
혹시 당신도?







**약력:1993년 《시대문학》으로 등단, 2007년 《열린시학》 신인상. 시집 『붉은 활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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