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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호/신작시/ 정창준/루시드 드림 외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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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부
댓글 0건 조회 1,547회 작성일 17-01-04 1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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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시

정창준




루시드 드림 외 1편
―백설공주의 양면성 




시험을 앞둔 여학교의 교실에 담임의 이름으로 초콜렛이 배달되

었다. 두뇌 기능을 활성화시킨다는 폴리페놀 성분을 언급하며 여학

생들은 백설공주를 연상시키는 담임의 따뜻한 마음씨에 감동했다.

은박지를 조심스레 벗겨내고 아래서부터 녹기 시작하기 전까지 아

이들은 최대한 예의를 갖춰 초콜렛을 먹으며 시험을 준비했고 결과

는 성공적이었다. 다음 시험에도 다음 시험에도 마찬가지였다. 다만

전 시험보다 초콜렛의 양이 조금씩 늘어날 따름이었다.
 
 1년 뒤 아이들은 초콜렛이 없이도 집중할 수 있었다. 살찐 외모

덕분에 엉덩이를 떼기가 힘들었고 움직이는 것은 말할 수 없이 고통

스러웠다. 그 학급의 교실은 마치 정갈한 돼지우리 같았다. 그리고

그 반에서 누구보다 아름답고 날씬한 사람은 담임 교사라는 것에 아

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책 한 권 내려놓듯




그 시절 나는,
당신을 읽고 싶다고 말했지만 사실은 내가 읽혀지고 싶었던 거다.

호기심이 오븐 속의 페스츄리 마냥 마구 부풀어 오르는 봄날 저녁,

불을 낮추고 꺼내 든 책처럼 팽팽한 정독을 당하고 싶었던 거다. 세

계를 단호하게 규정하고 관계를 명확하게 규명하는 선명한 문장들

처럼 당신을 매혹시키고 싶었던 거다. 당신도 눈치 챘겠지만 페스츄

리를 만드는 건, 밀가루의 수많은 층계이 아니라 그 속에 스며든 공

기층이라는 걸 그 때는 알지 못했다.


 그러나, 그 때 나는,
 단색의 어둡고 침침한 표지를 달고 있는 오역투성이의 번역본이

었다. 어디에서도 읽히지 못할 교정 조차 서투른 문장들이었다. 그

러나 당신은 다행히 첫 줄을 읽은 이후 나를 오독했다. 당신이 만들

어내는 의미들은 근사했다. 그러므로 점점 우리는 서로를 이해할 수

없었다. 그리고 당신은 떠났다. 책 한 권 내려놓듯 가볍게,

세상의 모든 연애는 서로에 대한 철저한 오독이다.








**약력:2011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당선. 수요시포럼 동인. 빈터 동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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