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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호/신작시/장순금/그 집 외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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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부
댓글 0건 조회 5,560회 작성일 17-01-03 1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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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시

장순금







그 집




손만 살짝 대도 아픈 집이 있어
살결이 쓰리고 금방 부어오르는 혈관처럼
바람만 불어도 지난 시간과 오고 있는 시간마저 흔들리는 지붕이 있어
그 지붕 밑에서 무화과도 익고 빨간 연시처럼 소망도 익고
밤마다 달빛이 읽는 내 문장도 익어갔던  


별이 된 집의
박제된 피딱지를 바라보는 진공의 물방울이
꺾인 관절에 고인 
책에서 나를 꺼내 밀봉한 채 수장 시킨 방
찰랑찰랑 입과 코로 죽음을 삼켰다 뱉었다
출구가 막힌 
그 집에 한쪽 발을 빠뜨리고 뉘엇뉘엇 백년을 건너왔다


웃자란 잡초처럼 놓아버린 소망이 풍문으로 돌아다녀 
책 한 권처럼 깊어진 방, 깊어 냉골이 된 방


끝나지 않은 문장이 불쑥불쑥 젖은 얼굴로 들어오는 
그 집에
아직 내가 남아있어
혼자 남아있어 







뜨겁게 아프게 웃는다



우리는 남포동 거리를 걸었다 시화전이 끝난 시화를 어깨에 메고 흘러나온 버지니아 울프의 목마와 숙녀를 들으며 목구멍에 솟는 뜨거운 물기를 노래처럼 삼켰다 암울한 오늘과 청춘의 절망을 시 한 편에 걸어두고 신열을 앓던 시절, 남루한 내일을 뜨겁게 끌어안고 세월이 가면 우리는 어디쯤 서 있을까 부표 같은 내일은 창백한데 화려한 불빛 속으로 저녁별이 추락하고 우리는 시에다 청춘을 엎었다 떠난 사랑의 피울음을 지탱해준 시에 고마워하며 주술처럼 끄는, 맹목으로 바람 속을 달려온 길에 그렇게 하나는 스님이 되고 또 수녀가 되고 더러는 따뜻한 가족의 밥을 짓는, 서 있는 자리는 달라도 시는 기도처럼 따라 붙었다 나는 작은 산골에 오두막을 짓고 시를 파먹다 말다 어설픈 이무기도 못된, 생의 축축한 몽환에 아직도 흔들리며 오만한 청춘의 불같은 얼음에 베이고 사랑과 배반이 같은 옷을 입고 팽팽히 당기는 먼 길을 돌아서 왔다

길을 가다, 시는 이따금 옛 친구 부르듯 나를 불러 세운다 돌아보는 우리는 뜨겁게 아프게 웃는다






**약력:1985년 《심상》으로 등단. 시집 『골방은 하늘과 가깝다』, 『햇빛 비타민』 등. 동국문학상, 한국시문학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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