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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호/신작시/김주혜/분갈이 외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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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시
김주혜
분갈이
화분을 돌보며 사는 게 다인 요즘
빈 하늘을 보며 한때는,
나도 세상의 중심인 적이 있었지.
치마폭에 달라붙어 응석부리며
재잘대던 두 아들의 눈 속에 든 나에게
무지개를 보면 비 맞을 걸 알려야 했어.
화분 분갈이를 해준 후부터 잎들이
누렇게 변하고, 시들시들 꼬이더니
제 몸의 습기를 몽땅 빼주려는 듯
깍지벌레까지 받아들이고 있어.
텅 빈 공간을 채워주던 나의 희망이
이제는 나를 힘들게 하니
새집을 마련해주고 영양제까지 주었건만
어제는 흘러간 시간일 뿐 지킬 필요가 없는지.
세상의 중심이 내가 아니라는 건
코페르니쿠스적인 관점인가
프톨레미적 구도란 말인가
물소리가 내 발등을 덮는다.
내 손이 차다.
슬픈 모차르트
─엘비라 마디간 협주곡
하나의 풀잎을 바라보며
주위의 것들을 다 희미하게 만드는 남자와
그 하나의 풀잎이
세상의 전부가 되는 여자가
외줄타기를 한다.
외줄 위에서만 살 수 있었던 여자와
땅을 지켜야만 했던 남자가
지친 삶의 선택으로 위험한 줄타기를 할 때
눈물겹도록 아름다운 모차르트가 흐른다.
비로소 사랑과 자유를 찾은 여자가
빨래줄 위에서 안도감을 맛보는 불협화음
세상은 전율 속에 숨어있는
희미한 조화일 뿐인 것을.
금발의 긴 머리카락이 바람에 날리고
두 발의 총성이, 흰나비를 따라가는
엘비라 마디간을 정지시키며
슬픈 모차르트는 피아노의 뚜껑을 닫는다.
내가 만든 음의 파동은 진행 중이다.
**약력:1990년 《민족과문학》으로 등단. 시집 『때때로 산이 되어』, 『아버지별』, 『연꽃마을 별똥별』. 공간시낭독회 상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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