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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호/신작시/박남인/피, 꽃으로 씻다 외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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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시
박남인
피, 꽃으로 씻다
─남도출정 전야 배중손 음
눈물을 비운다
피의 맹세를 채운다
천리 먼 길 별자리같은 섬들
하나하나 슬픔 씻어주고 가면
과연 새로운 세상은 있는가
허리춤 우뚝 솟구치는
그런 곡조를 만날 수 있을까
우리가 믿었던 세상은 기울었다
나도 얼마나 흔들렸던가
밤 깊이 함께 흔들리던 별
그래서 나는 별이 흔들리며 비추던
남쪽으로 갈 것이다
아침이 오기 전 모든 두려움과
굴종의 그림자까지 다 베어버리겠다
그곳에 가면 또 다른 시작이
한 겨울에도 피어나는 동백꽃
향기로 우리를 기다릴 것이다
진도라고 했던가
참이 곧 보배요 백성의 진실이다
머리 속에 북소리가 울린다
다섯 용이 시절을 기다리며
숨어산다는 용장성이 다 지어졌는가
모든 물길은 멈추지 않고 흘러야
만인이 어우러지는 수평의 세상에 닿는 것
일어서면 우리가 곧 하늘
주저앉으면 짐승의 길 뿐이다
흔들려라 한없이 흔들려
깊이깊이 뿌리를 내리리라
가지 않으면 떠밀리는 이치를
저 바다가 가르치고 있지 않는가
물살이 물살을 밀어
에밀레 에밀레 맥놀이를 듣는 자
마침내 팔뚝을 걷어 올리리라
동백이
─진도처녀 꽃타령
나는 한 사내를 보았네
산처럼 우뚝한 얼굴
바다의 동요를 꽉 붙잡은 눈길
한없이 부드러우면서
섬을 떠받치듯 넓고 평평한 어깨
나는 비로소 한 사내를 보았네
우리가 만나야 할 세상을 보았네
그 세상이 나에게 왔네
꿈처럼 꿈처럼 나에게 왔네
나는 섬꽃이었네
홀로 피었다 지는 숨은 꽃이었네
보았네 나 보았네
벼랑 끝 풍란향으로
내가 먼저 흘러갔다네
콩 열 섬 팥 열 섬
수호병사들이 벽파진에 왔다네
오랑캐를 몰아내려
남해 진도에 왔다하네
꽃보다 붉은 깃발로 왔다네.
**약력:1991년 《노둣돌》로 작품활동 시작. 1997년 《시대문학》으로 등단. 시집 『당신의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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