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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호/신작시/송시월/물구나무서기 외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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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시
송시월
물구나무서기
날마다 500만개 내 모공에 내리꽂히는 가을 햇살
플라타너스의 다리에 얼룩이 벗겨지고 나무들은 빨강 노랑 갈색으로 바디페인팅을 하지
옥상 화분에서 하늘을 밀어 올리느라 통통 무다리 롱다리가 되어가지
단양-쿤산철교와 교주만 대교에다 대협곡 유리다리(장자제 따시아구 보리치아오)를 이어서 수직으로 세우면 하느님 신경을 건드려 날벼락 내리치겠지
중얼중얼 신묘장구대 다라니경(라모나 나라다라 야야 나막알약 바로기제 새바라야 마하사다바야 마하가로 니가야 옴 살바바예수……)을 먹고 설사하고 다시 먹고 설사하며 후둘후둘 인천대교를 건너갔다 건너오면 달이 뜨지
햇빛이 다리미질해 길게 늘여 놓은 내 다리 물구나무세우면 달에가 닿지
토끼 한 마리 다리를 타고 내려와 들려주는 북두칠성 이야기 小菊들 검붉은 입술로 홀짝홀짝 받아먹으며 북두를 꿈꾸지
하늘과 땅의 교감에
내 다리의 감각세포들 날로날로 죽고
태어나고 일어서고 뻗어가고 날아오르고
푸른 별 뜨다
개구리, 참외, 하늘, 봄꽃들
팽목항이 일렁일렁 신트림을 한다
포탄소리에도 간간하게 웃자란 밭두렁 논두렁의 돌미나리 치나물 쑥무더기 위로
잔인하게 쏟아지는 오월의 햇살
무논의 회색하늘에서 개똥참외가 먹고 싶은지 어린개구리들 왼 종일
개굴개굴개굴…
열무김치 된장찌개에다 나를 넣고 쓱쓱 비벼 정신없이 허기를 채운 서해바람
마른 들풀 웅성거리는 나를 갈아엎어 둔덕 둔덕을 만든다
그믐밤을 뒤집어쓴 줄무늬들
혈자리마다 구멍을 뚫어 고구마순을 사선으로 묻고 꼭꼭 누른다
촛불로 어둠을 태우며 숙이고 또 숙이는 푸른 별들의 고개
갓 태어난 어린별을 향해 “지금 먹빛 밭에다 너희들의 간식 고구마를
심고 있어 배고프지” 라고 속말을 하는 것이 나의 어리석고 슬픈
참회의 기도이다
삶과 죽음을 이종 교배한 내 언어들 주렁주렁
새끼 치게 해 달라고
두 손을 모은다 이것이 서툰 나의 행위예술이다
오도 가도 못한 너와 나 그리고 우리 모두를 철쭉이
떨어지며 X자로 오답 처리하는 氣道가 꽉 막힌 2015년 오월이다
**약력:1997년 《시문학》 으로 등단. 시집 『12 시간의 성장』, 『B자 낙인』. 푸른시학상 수상. 계간 《시향》 편집위원. 시류동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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