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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호/신작시/서정임/얼음골 외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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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시
서정임
얼음골
짧은 인연이란 말에 동의하지 않은 적이 있습니다
문수 작은 신발도 신다 보면 그 품이
넓어지는 거라 생각했습니다
그것은 당신이 송곳니를 드러내기 전,
수평의 관계가 수직이 되는 순간
나는 당신에게 이국의 사람입니다
태양을 보는 각도가 다른 이방인입니다
우리는 눈빛을 교환한 지 너무 오래된 것일까요?
자세를 바꾸어 봅니다
절대 끊어지지 않을 관계를 고심하며 당신을 바라봅니다
넘어야 할 국경의 철조망은 높고
산산이 조각난 태양이
북방한계선까지 우리의 깊어질 수 없는 인연을 끌고 갑니다
건조하게 들려오는 레퀴엠은
어느 사막이 들려주는 노래일까요?
개켜두었던 모포를 모조리 꺼내 덮습니다
당신 가슴골에 백골이 되어 누운 나의 심장이 다시 데워질까요?
한계령
개심사開心寺를 다녀왔다
나는 문 없는 문을 달아놓은 문장이다
여지없이 불어온 바람이 나를 읽는다
자음과 모음으로 결합한 속내와
목어 소리처럼 허공을 울리는 내력을
낱낱이 파헤친다
하지만 문을 활짝 열어놓은
내 안의 문은 어디까지인가
너를 내게 들이는 절 한 채 짓는 일이란 무엇인가
답을 얻지 못하는 갈등이 골을 판다
바람이 나를 읽어 넘길 때마다
눈앞에 산이 놓이고 봉우리가 솟는다
그동안 깊은 산 속 자리한 절을 찾을 때마다
가팔라지던 내 호흡과 다리 통증도 이 때문이었으리라
바람이 또 다른 바람을 찾아 떠나고
정처 없이 하늘에 떠 있던 구름 한 점 보이지 않는 적막 속
나는 멀다
넘어야 할 한계를 넘지 못하는
내 안에 자리한 그 고개가 높다
**약력:2006년 《문학선》으로 등단. 시집 『도너츠가 구워지는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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