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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호/신작단편/유시연/달의 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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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단편
유시연
달의 호수
여인의 울음은 서러웠다. 나란히 누워 잠자다가 실종된 남편이 시신으로 돌아와 여인 옆에 누워 있는 정경은 그들과 관련없는 사람에게도 먹먹한 감정에 휩싸이게 했다. 텐트 옆에는 고기를 구워 먹은 흔적이 보였고, 바비큐 도구와 양은그릇이 놓여 있는 자리는 검게 그을려 있었다. 서럽게 우는 여인 주위로 경찰과 구급대원 복장을 한 남자 서넛이 보트를 저어가는 동료들을 향해 뭐라고 큰소리를 치고 있다. 화면에는 요동치는 물결과 그 물결에 휩쓸릴 듯이 휘감기는 버드나무와 갈대가 비스듬히 눕는 장면이 출렁였다. 검푸른 수면 위로는 백로가 한가롭게 날고 있다. 묘한 대조다. 카메라기자는 주민에게 마이크를 들이대고 천재가 아닌 인재로 인해 생겨난 일인양 질문을 몰고 갔다. 기자는 이 일에 누가 책임질 것인가를 묻고 있었다. 행정당국의 늑장대응과 관리소홀, 비상벨 고장 등을 원인으로 들며 사건과 사고 이후 사후 약방문 식으로 대책회의를 하는 관계기관에 대해 따끔한 일침을 쏘고 있다.
수건으로 젖은 머리를 털다가 텔레비전을 꺼버렸다. 일순간 조용해졌다. 새벽에 일어난 참사였다. 아침 일찍 배낭을 메고 집을 나섰다가 저녁 무렵 집으로 돌아와 텔레비전을 켰더니 사건 사고 소식으로 뉴스는 긴장감을 보여준다. 고속도로 연쇄 추돌 소식과 치솟는 전셋값 소식에 이어 부동산 전망의 대책없음에 대해 몇 분간 이어지다가 강에 떠내려간 사람들의 이야기를 내보냈다. 하루종일 걸어서 몸은 지쳤으나 정신은 또렷했다. 열린 창문 너머로 둥근 달이 솟아올랐다. 중복이 지난 하늘에는 붉은 기운이 떠돌았고 달빛은 붉고 푸른 빛깔로 다가왔다. 참외 한 알을 껍질 째 베어 먹다가 고개를 빼고 창밖을 내다보았다. 지붕 위로 달빛이 부서졌고 미처 걷어내지 못한 붉은 고추가 어둠 속에 누워 있었다.
8월의 태양은 뜨겁게 대지를 달구었다. 여름비는 타들어가는 태양을 식혀주려는 듯 연일 쏟아졌다. 장마가 끝났나 싶은데 다시 폭우가 내리는 날들이 이어졌다. 오늘의 북극을 추억으로 보게 될 날이 멀지않았다는 연구사례가 계속 나오고 있는 실정에서 기후변동은 남의 일이 아니었다. 한반도에 겨울이 사라지고 아열대기후가 들어선다는 예측도 빈말이 아닌듯했다. 동해안에서 잡히던 오징어 떼가 남쪽 바다에서 잡혀 어부들이 어리둥절했다는 소식도 들려왔다. 강물의 수위가 어쩌고 하는 아나운서 말을 들으며 강이 없는 마을에 들어온 지 두 계절이 지났다는 것을 알았다.
골짜기로 들어가면 저수지가 있었다. 저녁을 먹고 산책을 하다가 우연히 발견했다. 둑이 낮았고 마을 안쪽에 깊이 들어앉아 있어서 외부인의 눈에 잘 띄지 않았다. 원앙 두 마리가 물을 차고 날아오르는 바람에 놀라 발걸음을 멈췄고 청녹빛 물결이 잔잔한 파문을 일으키며 커다란 원을 그리는 정경은 강이 없는 마을에서 작은 둑을 쌓아 이렇게라도 살아가는 방편을 마련하나 싶었다. 건너편 산기슭에 삐뚜룸하게 서 있는 나무들의 그림자가 비칠 정도로 저수지는 작았다. 고만고만한 저수지가 마을에 세 개나 있었다. 점심 무렵이나 해가 질 무렵 계곡으로 뻗어 있는 길을 따라 걷다 보면 언제나 저수지에 가닿았다. 청둥오리 떼가 새끼를 거느리고 헤엄을 칠 때도 있었지만 매우 드문 경우였고 언제나 원앙 한 쌍이 나란히 헤엄쳐다녔다. 부부금실의 상징인 원앙은 배우자 몰래 바람을 피우는 새다. 아름다운 연인을 축복할 때 들먹여지는 원앙의 바람기를 무시하고 부부금실의 상징으로 떠오른 이면에는 그래도, 늘, 한결같이 함께 하는 데서 그 연유를 찾아본다. 이제야 고백하지만 난 수애가 떠난 뒤에 그녀를 이해하지 못해 정말 힘들었다. 사무실 여직원과의 일을 수애에게 들켰을 때 나는 두 번 다시 그녀와 가까이 하지 않겠다고 다짐을 하고 또 다짐했다. 일 년이 지나 수애에게 남자가 생겨 그녀가 떠났을 때에야 나는 그녀가 나를 용서하지 않았음을, 가슴 속에 견고한 바윗덩이 하나를 들여놓고 살았다는 것을 알았다. 은미와의 일을 들킨 후 그리고 깔끔하게 정리하겠노라 말하고 실제로 관계를 정리한 후 나는 밤의 침대에서 수애에게 충실했고 그런 나를 그녀는 거부하지 않았고 소원하던 관계가 다 풀린 줄 알았다. 부부가 한 생을 같이 한다는 건 끈질긴 인내의 소산이며 불완전한 것들과의 싸움이며 동시에 그것들과의 수용이며 지루한 나날들을 견디는 일이었다. 한번쯤은 눈감아줄 줄 알았고 또 그래야한다고 믿었다. 어떻게 그 긴 세월을 한 사람을 바라보고 그 사람의 취향, 입맛, 버릇, 매 번 같은 체위를 감당해야 하는지, 그러기 위해서는 치열한 자기수련의 경지에 이르러야만 할 것이었다. 몇 십 년을 함께한 노부부를 길에서 만나면 생기는 의문이었다. 가끔 산책을 나가다가 오래 같이 산 노부부를 보면 꼭 인사를 건넨다. 그럴 때면 그들은 아들을 바라보듯이 흐믓한 미소를 지으며 안부를 묻는다. 흰 눈썹과 백발이 된 머리카락과 자글거리는 주름살의 노부부에게서는 다정한 오누이나 친구 같은 느낌이 물씬 났다. 그들도 폭풍우 같은 청춘을 지나왔을 터였다.
“안녕하세요? 뵐 때마다 두 분이 보기 좋습니다.”
“어딜 가시우.”
“요 윗동네에 버섯 따러 갑니다.”
할아버지 혼자 들깨 모종을 심고 있었다. 가지런하게 펼쳐진 황토색 흙이 부드럽게 볕을 받고 있었다. 문득 궁금해졌다.
“금실이 좋아보이십니다.”
“허허, 그래 보이시우.”
“예에, 어르신. 부럽기도 하고요.”
“혼자 사는 자네가 좋아보이는구먼.”
“할머니는 안 보이시네요.”
“몸살기가 있어서 보건소엘 갔어.”
“아, 조오기 보건진료소요?”
“막걸리 한 잔 할 텨?”
“네에, 좋죠.”
그날 나는 노인이 건네주는 막걸리를 한 주전자쯤 마셨다. 더덕과 옻과 당귀뿌리와 대추를 넣어 담근 술이라 했던가. 부드럽고 깊은 맛이 있었다. 안주로 나온 곰취, 드릅, 오가피, 다래순, 삼채 장아찌에는 손도 대지 않고 막걸리를 마셨다. 반 년만에 맛보는 술맛이 목을 타고 내려가는 순간 전율이 일었다. 의식은 거부했으나 몸이 먼저 술을 받아들였다. 금주를 하다가 맛 본 막걸리에 몸이 부르르 떨었고 음, 음, 신음을 내뱉으며 황홀한 절정의 경지를 경험했다. 첫 막걸릿잔이 문제였다. 서너 잔 마시다보니 금세 취기가 돌았다. 은미의 얼굴이 떠올랐다 사라졌다. 여고를 갓 졸업하고 사무실 경리로 들어온 그 애 은미는 할머니와 남동생을 부양하는 가장이었다. 어린 것이 대견하고 안쓰러워 이것저것 도와준다는 게 선을 넘었다. 은미 남동생이 대학 일 학년을 마치고 군에 입대하던 날 그녀는 밥을 사겠다고 쪽지를 남겼다. 그날 밥을 먹고 포장마차에서 소주를 마시며 은미가 혼잣소리로 중얼거리는 말을 들었다. 남동생이 군에 가서 당분간은 학비 걱정 안해도 된다고, 야간대학을 들어갈까 한다고…… 팽팽하게 조이던 줄이 탁 끊어지는 순간을 그날 은미에게서 발견했다고나 할까. 은미는 취했다. 그녀를 업고 모텔에 들어설 때만 해도 아무런 생각이 들지 않았다. 이불을 덮어주고 잠드는 것을 보고 일어서려는데 은미 손이 내 옷자락을 잡았다.
수애가 알아차린 뒤에 은미 생각을 안한 건 아니었다. 처음 은미를 안을 때 그녀는 좁은 어깨를 움찔 하며 몸을 떨었다. 작은 새처럼 내 품에서 떠는 그녀에 대해 잠시 멈칫하다가 이내 빨려들고 말았다. 사정을 끝내고 그녀를 가만히 안았을 때 은미는 울고 있었다. 사각통의 휴지를 꺼내 은미의 몸을 조심스레 닦아주고 나서 다시 그녀의 몸을 더듬었다. 막 세상 무서움을 아는 중년의 남자와 아직 세상 무서움을 모르는 스물두 살이 된 여자의 몸이 서로 엉기며 밤새 뒤치락엎치락했다. 새벽녘 은미는 내 팔을 베고 누워 작은 몸을 웅크린 채 잠이 들었다. 숨소리가 고르게 났다. 일주일에 한 번 주중에 만나자는 약속을 나는 지키지 못했다. 수애에게는 퇴근 후 회식이 있다고 둘러대고 은미를 매일 만나다시피 했다. 은미의 작은 몸은 언제나 내 품안에서 떨다가 팔딱거렸고 몸의 열기가 일어나면 매끈한 인어가 되어 유영했다. 갈수록 나날이 대담해졌다. 언제나 내가 먼저 콜을 하고 약속을 잡다가 어느날 은미가 먼저 콜을 하는 순간 더럭 겁이 났다. 수줍음이 많고 조심스럽던 은미가 변해가기 시작할 즈음이었다.
수애의 코는 야생 개의 후각보다 예민했고 그녀의 직관은 뛰어났다. 수애에게 들킨 후 잠깐 은미를 생각하지 않은 건 아니었다. 좁은 어깨선과 가냘픈 몸매와 적당한 살집은 육감적이었고 남자를 저돌적이고 맹렬하게 돌진하는 짐승으로 만들어버렸다. 은미에게 미쳐서 주변을 세심하게 갈무리하지 못한 불찰이 내게 있었다. 은미를 포기해야겠다는 결론에 이르러 가슴 밑바닥에 싸한 통증이 일었다. 고심 끝에 내린 결론이지만 그때 나는 수애가 더 이상 문제 삼지 않아서 감격해했는지도 모른다. 수애와의 부부관계는 다시 예전으로 돌아갔다. 신혼시절과는 다른 편안한 관계는 가정의 안정을 가져왔고 사회생활을 하는 나에게 평범한 일상의 충족을 채워주었다.
“한 잔 더 받게.”
노인의 말에 퍼뜩 과거의 기억에서 깨어나 두 손을 공손히 내밀어 잔을 받았다. 취기 때문에 나는 이미 많은 말을 지껄였고 발설해서는 안되는 말까지 한 것 같았다. 늘 다정한 노부부의 일상을 보며 부러움인지 안타까움인지 아니면 가정을 건사하지 못한 죄책감인지 모를 감정이 복잡하게 깔려 있었다.
“인생이 길다지만 짧아. 아침에 떴다가 넘어가는 저 해와 같아. 순간이야.”
“죄송한데요, 어르신은 한 여자만 보고 입때껏 살아오셨습니까.”
“…….”
술의 힘이 아니라면 그런 질문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노인이 물끄러미 쳐다보다가 막걸리를 한 모금 마시고 나서 지나가는 소리로 한 마디 한다.
“의리 때문이지. 한때 소 팔아 읍내 술집에 갖다 바친 적도 있고 가을에 추수한 곡식을 수매하고 몽땅 그 돈을 젊은 여자 치마폭에 안긴 적도 있지. 양가 부모와 친척과 천지신명 앞에 한 약속 같은 거 난 몰라. 자식을 같이 만드는 것은 누구나 다 해. 그런데…… 자식을 잃은 고통을 함께 한 사람은 집사람이야. 군에 간 외아들이 사고로 죽고 나서…… 미치지 않은 게 이상하지. 그때 나도 아들과 같이 죽었어. 돌아보니 그래. 한동안 실성해서 산을 헤매고 다녔지. 어느 날 산에서 돌아와 망태를 내려놓는데 집사람이 울고 있는 거야. 한번도 내 앞에서 우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거든. 난 집사람이 아들의 죽음을 빨리 잊은 줄 알았어. 그게 원망스러웠고 아들이 죽었는데도 밥을 먹고 있는 집사람이 미웠는데…… 죽은 아들을 찾아 산속을 헤매던 내 눈에 집사람의 고통이 보이더군. 집사람은 슬픔을 안으로 고요히 삭히고 있었고 나는 산으로 나다니며 고통을 잊으려 몸부림쳤지. 우리는 각자의 고통을 그렇게 안고 있었어. 집사람을 가만히 안아줬어. 집사람이 목놓아 울더군. 통곡소리에 이웃 사람들이 나와 보고는 슬그머니 뒷걸음치며 가버리더가구. 그날 이후 나는 할멈 옆에서 그림자처럼 살아.”
노인이 말을 끝내고는 막걸리를 한 모금 마셨다. 의리라고 운을 뗀 노인의 첫 마디가 그와 헤어진 후에도 의식 안에 남아 흔들렸다. 모든 부부가 사랑 때문에 살지는 않는다. 이십대와 삼십대는 그 말이 야만적이라고 생각했다. 부부가 한 생을 해로한다는 건 의리뿐만 아니라 의무와 책임과 연민 때문에 서로를 떠나지 못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미움과 원망과 애증의 시간이 지나 더 이상 미워하고 원망할 에너지가 소진했을 때 그때 담담한 평화가 찾아온다는 것을 노부부를 보며 느낄 수 있었다. 감각과 감정이 풍부한 젊은 시절에는 눈에 보이는 색깔이 전부였다. 사월의 꽃들과 오월의 연둣빛 향연, 여름초록의 숲과 가을 단풍의 현란함만 보고 살았다. 긴 겨울 추위가 지나 대지는 침묵에 빠져들며 그때 비로소 휴식에 들어간다. 얼어붙은 땅 속으로 기지개를 켤 준비를 하는 나무들, 마른 바람이 부는 황폐함의 계절 이월이면 대지는 모든 억압에서 벗어나 본연의 모습,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자신을 드러내 보여줄 수 있어서 편안해보인다. 봄부터 가을, 심지어 눈내리는 겨울의 설원까지도 휴식이 아니었다. 현란한 색채를 드러내야 하는 자연은 쉼 없는 생장과 종족번식을 통해 억압의 계절을 보내야할 수밖에 없었고 스스로의 폭력과 억압을 벗어나 쉴 수 있을 때, 자연의 맨 얼굴, 화장하지 않은 얼굴이 이월이었다.
내 몸이 건강할 때는 불편함을 몰랐다. 내가 원하는 것, 하고 싶은 것과 하기 싫은 것을 선택할 수 있었다. 손이 닿으면 언제든지 무슨 일이든지 가능했고 그러므로 나는 오만했고 교만이 점점 자라났다. 단골 식당에 새로 온 아줌마가 불친절하면 발을 끊었고, 마트에서 사온 양상추가 시들었으면 바꾸어왔고 유통기한을 하루 남겨둔 식품은 사지 않으면 그만이었다. 나는 자유인이었다.
그런데 지금 내 마음대로 되는 구석이라곤 하나도 없다. 선택권이 없는 환경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시간에 나 자신을 내맡기는 일밖에 없다는 사실이 서글프다 못해 씁쓸하다. 한밤중에 치킨과 맥주가 당겨서 사고 싶어도 못사고 아파도 약을 사먹을 수 없는 이곳은 분명 현대문명을 비껴난 야생의 환경이다. 해가 넘어 가면 가게는 문을 닫는다. 오후 일곱 시에서 여덟 시쯤이면 면소재지 상가 불빛은 저 홀로 깜박인다. 손을 뻗으면 언제나 손쉽게 술을 마실 수 있고 치킨을 먹을 수 있는 환경이 아니란 걸 알았을 때 나는 막막했고 감옥이구나 싶었다.
다리가 후들거려 저수지 둑방에 주저앉아 술이 깨기를 기다렸다. 의사는 환경이 좋은 곳에서의 요양을 거론하며 비형 감염 보균자에 간경화가 진행되고 있다고 덤덤하게 말했다. 너무 덤덤한 의사의 태도에 나는 다른 사람의 일을 얘기하나 싶어 멍하니 그를 쳐다보았다. 몇 달 간의 병원 치료는 고역이었다. 직장에 사표를 내고 집을 정리하여 시골마을에 들어온 건 지난 초봄이었다. 입추가 시작되고 나서 저수지 마을에 둥지를 틀었다. 나무보일러가 밤새 돌아가고 매캐한 연기 냄새, 나무 타는 냄새는 아득한 기억을 일깨우며 묘한 향수를 불러일으켰다. 내 유전인자 속에 숨어 있는 먼 조상이 사냥을 하고 불씨를 소중하게 간직하던 때로 돌아간 듯한 느낌이었다. 방바닥이 자글자글 끓었으나 공기가 차가웠다. 코끝에 내쉬는 숨에 김이 뿜어져 나오고 벽과 창틈에 허옇게 성에가 꼈다. 뜨거운 바닥을 피해 자느라 이불을 감고 방안을 굴러다녔고 웃풍이 심해 아침에 일어나면 목이 아팠다.
골짜기 바람이 매서웠다. 황토로 지어진, 펜션으로 쓰던 집의 주인은 서울 사람이었고 먼 친척이라는 이장이 구두 계약을 대신했다. 계약서를 작성하자고 해도 당장 팔 의향이 없으니 머물고 싶을 때까지 있으라고 말해서 보증금 얼마를 건네고 들어왔다. 대숲이 울타리로 둘러싼 집과 낮은 담장, 손바닥만한 텃밭이 있었다. 밤에 누워 있으면 벽지 사이로 흙부스러기가 쏟아지는 소리에 잠을 설치곤 했다. 야생초와 버섯 관련 서적을 읽다가 방 한쪽에 있는 낡은 서안에 던져버리고는 낮에 본 산야초에 대해 떠올려보곤 했다. 나물이나 약초에 대해서 아는 게 없는 나는 열심히 책을 들여다보며 공부를 했다. 책을 아무리 들여다보아도 익숙하지 않은 것들이 있다. 산에서 만난 버섯을 보고 따도 좋은지 독버섯인지 몰라서 주저앉아 들여다보다 그냥 내려왔다. 책에 실린 사진과 실제 버섯과는 같은 버섯이라 하더라도 환경과 지역에 따라 색상이 달랐다. 산야초와 버섯을 지척에 두고도 제대로 아는 게 없는 나로서는 여전히 학습중이었다. 노부부가 나눠준 상추나 쑥갓, 산나물 장아찌 반찬으로 끼니를 이어갔고 아무것도 아쉬울 게 없는 일상이 되레 신기했다.
황토벽 사이로 눅눅한 습기가 스며 들어 벽지가 젖어 있다. 어제부터 푹푹 찌는 날씨에 몸이 찌뿌드드 가라앉았는데 비가 올 조짐이었던 거다. 방바닥에 드러누워 가만히 빗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지붕과 처마에서 떨어지는 빗소리가 일정한 리듬을 이루며 떨어진다. 여름비에는 버섯이 쑥쑥 자란다. 나무뿌리도 깊이 더 깊이 땅 속을 파고들어 견고한 자신의 집을 짓는다. 창문을 열고 내다보면 멀리 골짜기에 안개가 끼어 자욱하다. 우산을 쓰고 계곡을 따라 걷다보니 바짓가랑이가 축축하게 감겨온다. 산자락에 계단식으로 만든 논에서는 벼포기가 실하게 자라고 개구리 울음소리 요란하다. 풀이 무성한 산길에도 개구리들이 천지사방 뛰어다녀서 바닥을 보고 조심스럽게 걷는다. 저물녘 면소재지에 다녀오다가 시골길에 기어다니던 개구리를 지나칠 때가 있다. 워낙 작은 생물체라서 핸들이 움직이거나 승용차가 요동치는 일은 없지만 한 생명체가 분해되는 그 미세한 느낌이 고스란히 내 온 몸을 뚫고 들어와 오싹한 전율을 느낀 적이 있다. 그 이후 되도록 어두워지면 운전을 안하는 버릇이 생겼다.
안개에 덮인 저수지 건너편에서 새들의 우짖는 소리가 들려온다. 수면위에서 피어오르는 안개는 주변 산과 나무들을 덮으며 가만가만 그 부드럽고 얇은 손으로 다독이는 것 같다. 나무 작대기로 수풀을 헤치며 둑방 끝으로 들어가려니 덤불을 이룬 찔레가 앞길을 막아선다. 찔레순이 제각각 자라 나무가 되려한다. 폭포수 쏟아지는 소리가 가깝게 들린다. 안개를 헤치며 나가자 배수문을 통과하는 물결이 거칠게 포효하며 버드나무 사이로 쏟아져내린다. 불어난 저수지의 물이 한꺼번에 배수문을 빠져나가려고 아우성치며 물보라를 일으켰다. 비가 이대로 내리다가는 저수지 둑이 무너질 지도 모른다는 불안이 엄습해온다.
그건 나의 상처, 트라우마였다. 호수, 강, 물의 바다…… 가끔 꿈에서 가위 눌리는 장면에서 어김없이 나타나는 호수마을.
상하이에서 항주 사이에 위치한 작은 마을.
그때 나는 해외에 사업체를 확장하는 기업의 신입사원이었다. 중국어를 한 줄도 모르는 나에게 첫 해외 파견근무 지시가 떨어졌을 때 그야말로 마른하늘에 천둥이었다. 팀장은 어학연수를 먼저 받은 후 현지인과 친해보라고 넌지시 귀띔을 했다. 현지 대학 기숙사에 짐을 풀고 막막한 심경을 줄담배로 풀고 있었다. 룸메이트는 한국에서 온 유학생 강규욱이었다. 강규욱의 도움으로 학교나 관공서에 필요한 서류준비를 어렵지 않게 할 수 있었다. 반면에 나는 그에게 좀 비싸다 싶은 중국음식을 양껏 사주었다. 포만감을 느낄 정도로 음식과 술을 먹은 그는 혀꼬부라진 소리로 혀엉, 혀엉, 하며 친근감을 드러냈고 툭 하면 밥 사달라고 졸라댔다. 규욱이 혀가 약간 풀어진 목소리로 혀엉, 혀엉, 부르면 피를 나눈 동기간이 된듯 잠시 착각에 빠져들었다. 덩치는 컸는데 얼굴에 보조개가 피는 귀여운 녀석이었다.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녀석 방의 소품들은 귀엽고 작고 앙증맞은 물건들이 널려 있었다. 여자 친구에게 주겠다며 선물을 사서 괜찮냐고 보여주면 내 마음에는 들지 않았지만 녀석의 기분을 생각해서 그냥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강규욱과의 관계는 내가 기숙사를 나와 아파트를 얻어 살 때에도 이어졌다. 나보다 다섯 살 아래인 녀석은 어학연수 보내주는 기업에 취업한 형이 부럽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내가 살고 있는 아파트 오층 창문으로 끝없이 이어진 들이 보였고, 그 들판 너머로는 아득한 평원이 하늘과 맞닿아 있었다. 지평선 끝에서 해가 뜨고 해가 졌다. 사방 수백 수천리 길이 평지인 그곳에서 산이라고는 눈 씻고 찾아봐도 없었다. 그것은 막막함 이전에 공포였다. 중국이라는 넓은 땅덩어리를 가진 나라에 대한 부러움의 한편에는 그들의 선조가 자행한 영토전쟁과 소수민족에 대한 무분별한 복속, 탐욕과 야심의 궤적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자주 가는 채소 가게 주인아저씨나 쌀가게 주인에게 물어보면 수십 리 길도 아주 가까운 이웃인 것처럼 말해서 거리 감각이 우리와는 다르다는 것을 심각하게 느끼고 있었다. 가끔 주말에 할 일이 없거나 막연히 누군가와 이야기라도 나누고 싶어지면 나는 승용차를 몰고 들판을 달려가곤 했다. 곳곳에 수로가 바둑판처럼 놓인 대지는 땅의 주인과 물의 주인이 누구인지 분간이 안되는 듯했다. 낯선 길을 달리다보면 수로를 따라 물의 길을 지나가는 나룻배를 만나고는 했다. 때때로 소년이 나룻배를 저어가기도 하고 어느 때는 백발노인이, 어느 날은 노래를 부르는 아녀자가 아기를 태우고 노를 저어 지나가기도 했다. 그들을 지나치면서 땅의 길이 우선인지 물의 길이 먼저인지 알 수가 없었다. 농기구가 걸린 일층 건물에는 사람의 흔적이 없었다. 사람들은 모두 이층에 살림을 차렸는데 가끔 기둥에 매달린 나무배가 기우뚱거리며 흔들리는 게 보였다. 어떤 집은 지붕에 배가 앉아 있었다.
그날은 승용차를 몰고 제법 멀리까지 출장을 나간 날이었다. 한낮이 가까워오자 먹구름이 몰려오더니 무서울 정도로 비가 쏟아졌다. 초록의 들판은 차츰 붉은 진흙물로 덮이기 시작했고 사람들은 무심하게 그것을 바라보았다. 노인들은 긴 곰방대에 잎담배를 넣어 연신 연기를 날려댔고 아이들은 여인들 옆에 꼭 붙어서 칭얼거리다가 돼지꼬리를 잡고 놀거나 강아지를 안고 뒹굴었다. 일주일을 비가 내리 퍼붓자 사람들은 외출을 삼가고 집안에 틀어 박혀 지냈다. 비가 그치길 기다리면서 뜨개질을 하거나 대나무로 과일바구니를 만들거나 갈댓잎을 엮거나 노래를 불렀다.
비는 줄기차게 쏟아졌다. 세상이 떠내려갈 듯한 풍경에 불안감이 몰려왔지만 그들은 태평했다. 비가 내리는 것도 일상인 듯 보이는 그들이 이상한지 내가 이상한지 알 수 없는 나날이었다. 기다란 가지를 늘어뜨렸던 버드나무가 물에 잠기기 시작하면서 내 불안은 절망감으로 바뀌었다. 본사에서는 내 행방에 대해 수소문하다가 실종신고를 했을지도 모르고 대사관 접수문서에 내 이름이 이미 올랐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물의 세상에서 육지로 나가야 되는데 나갈 수가 없었다. 길과 밭의 경계가 사라지고 평야는 거대한 호수로 변했다. 풀을 뜯던 염소와 양과 소떼도 사라지고 수면 위에는 옥수수 줄기가 반쯤 물에 잠긴 채 마디를 드러내거나 길게 자란 야생 잡초줄기와 붉은 수숫대, 그리고 몸통을 호수에 담근 채 가지를 늘어뜨린 나무들이 이곳이 물의 도시라는 사실을 새삼스럽게 일깨워주는 듯했다.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고 사흘이 지나자 이제 붉은 수숫대도, 야생잡초들도 옥수수수염도 사라지고 나뭇가지 끝에 달린 이파리들만이 겨우 물 위에 둥둥 떠다녔다. 일주일이 지나자 나무들도 사라지고 거대한 호수가 창밖으로 출렁거렸다.
이층에 모여 있던 사람들은 지붕으로 올라갔다. 지붕위에까지 물이 차자 배를 띄웠다. 비상식량을 자루에 담거나 바구니에 담아 배 한쪽에 모아놓고 조용히 물이 빠지길 기다렸다. 나는 현지 직원이 소개해준 집에서 아득한 평원이 물로 가득 차서 집과 길과 밭작물이 서서히 깊은 바닥으로 가라앉는 것을 지켜보았다. 사람들의 표정은 담담했다. 집집마다 기둥에 매어놓은 나무배를 끌러 처마에 매달았다. 지붕에 얹혀 있던 나무배가 물 위에 둥둥 떠서 흔들리는 풍경도 익숙해졌다. 지붕만이 겨우 드러난 건물 위로 배가 띄워지고 돼지 닭 토끼 염소 거위가 올라타고 아이들이 올라타고 노인들과 젊은 사람들이 차례로 올라탔다. 내 방이 물에 잠기는 것을 바라보다가 지붕으로 올라갔고, 여기저기 널따란 나무판대기나 나룻배가 물의 길을 따라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정경을 지켜보았다. 물에 떠있는 형상이 된 지붕이 보였다. 염소와 양과 닭과 거위 등이 뒤섞인 지붕과 나룻배는 인간도 하나의 동물이며 자연의 부분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게 했고 만물의 영장이니 존엄이니 하는 말들이 아득하게 다가왔다 사라졌다. 사람들이 의외로 담담해서 놀랐고 놀라는 내 표정을 주인부부가 재미있다는 듯 웃었고 곧 무심한 표정으로 강물을 바라보았다. 해마다 비만 오면 되풀이 되는 현상이라는 말을 향토사학자로부터 전해들은 터라 나는 드넓은 평야를 가진 사람들을 부러워하던 마음에 다소 위안을 얻었다. 처음 이곳에 도착했을 때 모든 집들이 이층이어서 놀랐고 가축을 가족 대우하며 한데 어울려 사는 것에 놀랐고 호수를 마치 육지처럼 자유롭게 이용하는 것에 놀랐다. 더러 삼층집이 있었는데 내가 숙박하는 집이 삼층 다락방이었다. 물결이 찰랑였으나 파도는 없었다. 물을 가둬두기 위해 땅을 넓게 파고 호수를 만든 이들의 소박한 행위도 거대한 자연앞에는 무기력할 수밖에 없었다.
지붕이 거의 물에 잠길 무렵 이웃에 살던 젊은 부부가 나룻배에 올라타더니 나를 딱하다는 듯 쳐다보았다. 삼각 지붕의 작은 유리문 턱에 다리를 걸치고 나는 더 높은 지붕 꼭대기로 올라가려던 참이었다. 여자가 자기네 배에 올라타라고 말했다. 나는 고맙다고 괜찮다고 지붕에 있겠다고 대답하고는 호의에 가득찬 시선을 보냈다. 물위의 이웃이 된 그들은 신혼부부였다. 몇 가지 비상으로 준비한, 쪄서 말린 옥수수와 볶은콩, 육포나 마실 물을 저장한 항아리 외에 별다른 살림이 없었다.
“소가 떠내려간다아!”
어떤 아이가 소리쳤다. 아이 엄마인 듯한 여자가 아이 입을 주먹으로 틀어막으며 조용히 하라는 시늉을 했다. 물위에는 흰 소가 둥실둥실 떠내려가고 있었다. 돼지와 염소도 떠내려갔다. 아니 그것은 떠내려가는 게 아니라 그냥 물 위에 가만히 떠 있었다. 느린 유속은 가재도구와 동물들을 싣고 고요히 떠 있었는데 그 풍경은 마치 한 폭의 정물화 같았다.
님이여, 어둠 속에서도 내 목소리를 기억하세요.
안개 속에서도, 폭풍우 속에서도 우리 사랑은 스러지지 않아요.
저 강물처럼, 호수에 비친 은빛 달처럼, 오 님이여, 내 목소리를 잊지 말아요.
노래가사는 애달프고 슬펐다. 그 노래는 호수 마을 사람들 사이에 전해오는 민요였다. 호수 마을의 여인들은 할머니 때부터 전해져오는 그 노래를 들으며 자랐다. 소녀들도 처녀들도 유부녀들도 자연스럽게 노래를 불렀고, 안개가 끼거나 폭풍우가 휘몰아치는 밤이면 여인들은 더욱 길고 애절한 목소리로 노래를 불렀다.
그 지방의 향토사학자 말은 달랐다. 호수 마을 여인들이 안개가 자욱한 밤, 노래를 부르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은 달빛 속에서 사랑을 나누는 연인들의 유희라는 것이다. 빗물에 가재도구가 떠내려가고 봄에 뿌릴 씨앗이 불어터져도 밤의 달빛은 연인들의 마음에 사랑의 안개를 모락모락 피워 올렸다.
어둠 속에서 들려오는 애절한 노랫소리. 나는 어디선가 그 노랫소리를 들은 적이 있었다. 내 기억은 분명 그 노래를 기억하고 있었다. 하지만 장소가 어디인지 구체적으로 떠오르지 않았다. 다만 호수마을이라는 것만은 확실했다. 끊임없이 귓가에 찰랑이는 물결소리가 그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아주 오래 전 기억임에는 틀림없었다. 그곳이 라오스였는지 캄보디아였는지 혹은 베트남이나 중국의 남쪽 지방이었는지는 확실하지 않았다.
내 아득한 기억 저 너머에 호수마을이 있었다. 달빛이 수면을 비추면 물결이 은빛으로 빛나던 호수였다. 그 기억은 오래 되어 어쩌면 전생에 일어난 일이었는지 모른다. 호수와 달은 밤마다 연인의 이야기를 들었고 그런 날 밤이면 유난히 안개가 짙게 끼었다. 안개는 연인을 수많은 눈과 귀로부터 지켜주었고 그들의 이야기는 전설이 되었다.
호숫가 마을 사람들은 그물을 쳐서 고기를 잡아 시장에 내다 팔거나 끼니를 이어갔다. 호수는 그들의 어머니이자 생명이었다. 호수마을 사람들은 육지마을 사람들처럼 이웃에 마실 갈 때나 나들이를 갈 때 나무로 만든 배를 타고 노를 저어서 갔다. 두 다리로 땅을 딛듯이 노를 수면에 드리우고 날갯짓하듯 가볍게 다녔다. 불편한 것은 없었다. 육지마을 사람들의 눈에 그들이 불편해 보였을 뿐이다.
호수 위에 집을 짓고 사는 그들은 돼지를 키우고 닭을 키우고 아기를 키우고 사랑을 키우며 살았다. 연인이 사랑하기에는 어설픈 집이었다. 밤이면 연인들은 호수에 배를 띄우고 사랑을 나누었다. 연인이 속삭이는 소리가, 사랑의 날갯짓이 물결 파동을 일으켰다. 물결무늬는 잔잔한 호수를 가로질러 뭍에 닿았고 뭍은 밤새 연인의 밀어를 퍼날랐다.
서로를 애타게 기다리거나 찾는 연인의 노랫소리가 밤의 허공 속으로 떠돌았다. 그믐밤이면 나룻배가 물 위에서 서로 부딪히지 않으려 노래를 불렀다. 밤의 호수는 연인들이 나누는 애절한 몸짓으로 조용히 흔들렸다. 서로 안타깝게 뒤척일 때마다 물결이 찰랑였고, 물결이 뱃전에 부서졌고 어둠이 그들의 부끄러움을 가려주었다.
신혼부부는 내 존재를 아랑곳하지 않았다. 밤마다 그들은 얇은 홑이불을 뒤집어쓰고는 사랑을 나누었다. 연인은 적극적이었다. 연인의 밀어가 밤의 호수 물결을 불러왔다. 물결이 출렁이자 젊은 부부의 배가 심하게 요동쳤다. 혹시 뒤집힐까봐 마음을 졸이면서 한창 신혼의 단꿈에 취한 젊은 부부를 쳐다보고는 했다. 아침이면 그들 부부는 지난밤 일은 까맣게 잊은 표정으로 환하게 웃으며 인사를 했다. 내가 오히려 쑥스러워 그들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지 못했다.
안개가 짙은 밤이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신혼부부의 다투는 소리가 났다. 잠이 들려던 내 귀에 그들 부부의 목소리가 심상치 않아서 일어나 앉았다. 희미한 어둠 속에서 젊은 부부가 엎치락뒤치락 하다가 물건을 집어던졌다. 여자가 집어던지는지 남자가 집어던지는지 알 수 없었다. 그들 부부의 상황이 짙은 안개 속에서 무대 위 판토마임처럼 드러났다. 개입을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괜찮으냐고 물어보아야 하나 말아야 하나 심각한 고민에 빠졌는데 다행이 조용했다. 더 이상 아무런 고함소리가 나지 않았다. 소동이 가라앉고 나서 다시 지붕위에 드러누웠다. 축축한 습기가 등에 스며들었다. 목이며 팔, 배와 다리가 가려웠다. 마시는 식수는 조금밖에 남지 않았다. 비는 그쳤고 수위는 서서히 낮아지고 있었다.
다음날 아침 햇볕이 환하게 내리쬐었다. 지친 상태였고 피부의 가려움 때문에 정신이 반쯤 나가 있던 터라 젊은 부부의 일을 잊고 있었다. 어느 순간 빈 나룻배가 지붕 끄트머리에 기대어 흔들리고 있었다. 어, 뭐지? 순간 불안한 예감이 빠르게 뇌리를 스쳐갔다. 젊은 부부가 보이지 않았다. 빈 배가 저 홀로 흔들렸다. 배 안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황톳물은 사라졌으나 청회색 희부옇게 흐린 물결이 찰랑거리며 흘러갈 뿐 사위는 고요했다. 강아지와 돼지꼬리를 잡고 노는 아이들의 목소리가 간간이 들려왔고 새들이 날아다니는 수면에는 햇빛을 받은 물결이 은빛으로 빛났다.
나흘이 지나자 서서히 지붕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물은 조금씩 빠졌다. 아주 천천히 느리게 흘러가는 물을 쳐다보는 것만으로도 멀미가 났다. 어지러웠다. 고여 있던 호수에서는 악취가 났다. 물고기 떼가 배를 까뒤집은 채 허옇게 죽어나자빠진 풍경이 곳곳에 예사롭게 펼쳐졌다. 버드나무가 가지를 물에 반쯤 잠긴 채 깨어나고 산비둘기와 백로가 이 나뭇가지에서 저 나뭇가지로 옮겨 다녔다. 떠다니던 가재도구가 여기저기 진흙 뻘에 묻힌 채 거꾸로 처박혀 있었다.
물이 빠진 후 신혼부부의 시신이 발견되었다. 서로 꼭 껴안은 채 나뭇가지에 걸려 있었다. 배가 뒤집혔는지 그들이 물속으로 뛰어들었는지는 알 수 없었다.
본사에서는 비상이 걸린 상태였고 팀장은 사실대로 설명을 해도 믿지 않았다. 그 도시를 떠난 후 한동안 물멀미를 심하게 앓았다. 꿈속에서도 홍수가 나는 꿈을 꾸었고 휴가철이면 강이나 바다를 피해 계곡이나 유적지를 다녀왔다. 이십여 년이 흐른 지금에 이르러 나는 여전히 물에 대한 공포가 있다. 그 기억은 평생 나를 쫓아다닐 터였다. 저수지를 두려워하지 않은 것은 호수와는 그 크기가 비교되지 않을만큼 작았고 건너편 산그림자가 물속에 고스란히 안겨들었고 내 가슴 안에도 잔잔하고 고요한 풍경을 담아주었기 때문이다.
강아지 울음소리가 들려 돌아보니 백구 한 마리가 찔레덩굴에 갇혀 끙끙대고 있다. 산책길에서 따라왔다가 어느 사이인가 사라져버리곤 하는 어린 강아지였다. 첫날 저수지 근처에서 어정거리다가 나를 보더니 계속 쫓아왔다. 원앙이 노니는 모습을 보느라 녀석을 잠깐 잊었는데 발치에 매달려 바짓가랑이를 물거나 무릎에 기어오르려 해서 턱밑을 쓰다듬어줬더니 자꾸 따라왔다. 한 시간 쯤 산길을 따라 걷는데 녀석이 따라 와서 은근 신경이 쓰여 쫓아보내려 했으나 도망가지 않았다.
찔레덩굴을 헤치고 강아지를 번쩍 들어 안는데 녀석이 빤히 쳐다본다. 내 가슴에 머리를 기대고 가만히 있는 녀석의 몸속에서 가래 끓는 소리가 나며 숨을 급하게 쉰다. 녀석의 배가 들쑥날쑥 하며 호흡이 가파르다. 의외로 녀석의 몸은 따뜻하다. 강아지를 안고 불어나는 청회색 물결을 바라본다. 청둥오리 떼가 날개를 퍼득이며 물을 차고 날아오른다. 강아지가 잠깐 머리를 쳐들더니 다시 가슴에 고개를 묻는다. 따뜻한 온기가 내 몸을 타고 전신에 퍼지며 가슴 속 깊은 동굴의 얼어붙은 뿌리에 가닿는다. 따뜻한 온기는 바닥에 말라붙었던 뿌리를 적시고 언 땅을 적시며 거친 표면을 부드럽게 어루만진다. 꽁꽁 얼어붙었던 바윗덩이에 미세한 틈이 벌어지며 기우뚱 흔들리는 찰나 폭포수 쏟아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나도 모르게 울음이 터져 나왔다. 배수구가 열리는 순간 천둥 벼락 같은 물줄기가 흰 포말을 이루며 쏟아졌다. 강아지 백구의 몸은 따스했고, 그 따뜻함이 예전의 아내와 살던 한때를 떠올리게 하였고 은미와의 마약 같은 밤이 되살아나며 살아있음의 강렬한 생명력을 지닌 순간순간의 짧은 절정을 추억하게 했다. 나는 그 자리에 주저앉아 소리내어 울었다. 얼마만에 느껴보는 따뜻함인지 얼마만에 가져보는 위안인지 꾹꾹 눌러 참았던 격한 감정의 소용돌이에 주변 눈치고 뭐고 눈물이 자꾸 쏟아졌다.
건너편 배수문 근처에 주황색 옷을 입고 머리에 흰 철모를 쓴 사람들이 어른거리는 게 보였다. 강아지가 내 품에서 빠져 나가 옆에서 꼬리를 흔들고 있다. 울음을 그치고 주위를 둘러본다. 저수지 물이 청회색의 포물선을 그으며 아주 천천히 느리게 움직이고 있다. 멀미가 나고 어지러웠다. 안개가 서서히 걷히고 있었다.
**약력:《동서문학》 신인상 당선. 소설집 『알래스카에는 눈이 내리지 않는다』,
『오후 4시의 기억』.장편소설 『부용꽃 여름』, 『바우덕이전』, 『공녀』, 『난아』. 정선아리랑문학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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