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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호/아라포럼(제9회)/허형만/우리의 삶이 모두 소중하고 기적이며 신비로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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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부
댓글 0건 조회 1,872회 작성일 17-01-03 1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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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라포럼(제9회)

허형만





우리의 삶이 모두 소중하고 기적이며 신비로움이다
일시 : 2015년 6월 27일(토) 오후 5시
장소 : 아라아트홀






1.
   우리에게 봉사하고 있는 우주를 생각하면 나도 모르게 몸이 낮추어지고 눈물이 난다. 나의 시는 우선 이러한 생각의 통로를 거쳐 탄생한다. 탄생한다? 시가 씌어지거나 만들어지는 게 아니고 탄생한다? 나는 나이가 들면서 젊은 시절보다 더 긍정적이고 행복한 생각으로 나날을 고맙게 살아가고 있다. 헬렌 켈러는 「내가 사흘 동안 볼 수 있다면Three days to see」이라는 감동적인 글을 통해 첫째, 내일이면 귀가 안 들릴 사람처럼 새들의 지저귐을 들어보라, 둘째, 내일이면 냄새를 맡을 수 없는 사람처럼 꽃향기를 맡아 보라, 셋째, 내일이면 더 이상 볼 수 없는 사람처럼 세상을 보라고 당부한다. 시인의 자세가 바로 이래야 한다고, 시인은 이 세 가지 당부를 잊어서는 좋은 시를 쓸 수 없다고, 나는 믿는다. 그래서 나의 시는, 어떻게 하면 잘 쓸까, 어떻게 하면 잘 만들까, 고민했던 과거의 시 쓰기에서 이제는 자연스럽게 탄생시키는 쪽으로 기울고 있다. 물론 시 한 편을 탄생시키기 위해 잠 못 이루는 밤을 수없이 반복하면서, 그리고 우리에게 쉼 없이 봉사하고 있는 우주 앞에 겸손해 하면서.
 
지리산 깊은 터에서
아흔 줄 어머니
고구마 덩굴을 들어 올리신다
줄줄이 딸려 나와 세상을 밝히는
저 붉은 고구마 앞에 나는
두 손 모아 절한다
바로 옆 참깨 밭에서
잘 여문 어머니 독경 소리가
우루루 쏟아진다
그 독경 소리 앞에서도 나는
두 손 모아 절한다
그렇게 한나절이 갔다


                                                   ― 「절하다」 전문   


   나는 늘 생각한다. 우주 앞에 겸손한 시가 좋은 시라고. 나는 내 생애에서 선생을 40년이나 했지만 학생들 앞에서 더욱 겸손하려 했고, 더더욱 시에서는 절대 가르치려들지 않았다. 그래서 나의 시에는 훈계성訓戒性이라거나 득도연得道然 하는 게 없다. 나는 우주로부터 그리 할만한 자격이나 능력을 아예 부여받지 못 했음을 스스로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땅 속에 묻혀 있다가 세상에 나와 붉은 빛을 뿜어내는 저 고구마 덩굴의 찬란함 앞에 두 손 모아 절을 할 수밖에 없지 않은가. 잘 여문 참깨가 스스로 우루루 쏟아지는 소리, 한 생의 절정에 이른 그 생명의 환희 앞에 역시 두 손 모아 절을 할 수밖에 없지 않은가.
   나는 길을 가다가 오래된 적송이나 인간의 인식으로는 도저히 셀 수 없는 시간 속에서 자신의 허물을 묵묵히 드러내보이며 소담스럽게 꽃을 피워내는 배롱나무 앞에서, 그리고 겨울 끝자락 땅바닥을 기며 피어나는 봄까치꽃 앞에서, 두 손 모아 절을 한다. 무릎을 꿇는다. 그리하여 나는 위의 「절하다」를 비롯 다음과 같은 작품을 낳는다. 


차디찬 바위에
제 몸을 녹여 붙이고
버티고 버티며 한 생을 이뤄
마침내 눈부신 꽃을 피워낸
배롱나무 앞에 고개 숙여
합장을 한다


미안하다 나의 시업詩業이여


                                                        ― 「미안하다」 전문


이 나이가 되니
땅바닥의 봄까치꽃 앞에서
무릎을 꺾고 고개를 조아리게 되네
봄까치꽃 품에 잠이 든
어린 햇살에도 고개를 조아리게 되네


누군가 말했지
고개를 조아리는 자만이
배알문을 들어갈 수 있다고
배알문에 들면
마음을 낮추는 下心을 배우게 된다고


그래, 세상을 건너가노라면
고개를 조아리지 않으면 들어갈 수 없는
배알문 아닌 곳 어디 있으랴 싶으니
이 나이가 되어서야 비로소
고개를 조아릴 줄 아는 철이 드나 보네


                                                                      ― 「下心」 전문


세상의 가장 낮은 곳에서
땅을 기어보았느냐


그 누구도 눈길 주지 않는
이 후미진 땅이 하늘이라면
한 목숨 바쳐 함께 길 수 있겠느냐


기다가 기다가
결국 온몸을 놓아버린 자리에서
키 작은 꽃 하나
등불처럼 매단다면 곧이듣겠느냐


                                                                      ― 「괭이밥」 전문



2.
   도이치포스트 DHL(초인류특송)의 프랑크 아펠 회장은 “비지니스의 핵심은 복잡함을 단순하게 만든 것”이라고 말한다. 다시 말해 전 세계에 거미줄처럼 뻗혀 있는 초일류 특송 혁신 비결은 ‘단순함’이었다는 것이다. 시 창작에 무슨 비즈니스 이론인가 하고 의아해 하지 말라. 시도 이와 다르지 않다. 앞에서 나는 시를 단순히 ‘쓰는’ 게 아니라고 말한 바 있다. 살아있는 모든 생명체와 함께 시도 숨 쉬며 소통하는 생명체이다. 윤동주 시인은 「서시」에서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걸어가야겠다”고 다짐한다.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에 담긴 시인의 속내는 생명체에 대한 경외심이다. 한 생명체에 대한 경외심을 드러내는데 복잡다단하게 표현하려 해선 안 된다. 단순해야 한다. 시도 우주의 한 부족이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평소 브레히트의 후기 시 『부코 비가』에 실린 「연기Der Rauch」라는 시를 좋아한다 이 시의 전문은 이렇다. “호숫가 나무 아래 작은 집/지붕에서 연기가 올라간다./만약 연기가 없다면/집과 나무와 호수는/얼마나 쓸쓸할까.”(박찬일 역). 단순하다. 그러나 그냥 단순한 게 아니라 ‘연기’로 표상된 생명성과 그 작은 집 안에 살고 있는 ‘사람’이 단 5행 안에 고스란히 담겨져 우리에게 행복감을 준다. 나의 시에 있어서도 이러한 단순함은 ‘말을 비움’으로 실현된다.



말을 비워 말을 잊었다


구름이 앞산에 그림자 드리우며 떠가니 마침내 다다를 곳을 안다


강물은 서늘한 그리움이 있는 곳으로 흐른다
                                                                                                                     ― 「말을 비워」 전문



   말이 차고 넘치면 듣고자 하는 소리, 들어야 할 소리를 듣지 못한다. 진정으로 꼭 하지 않으면 안 되는 말을 할 수가 없다. 시는 횡설수설, 중구난방을 단호히 거부한다. 시는 명쾌해야 하고 깨끗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말을 비워야 한다. 말을 비워 말을 잊었을 때, 비로소 구름이 앞산에 그림자 드리우며 떠가는 모습이나 강물이 서늘한 그리움이 있는 곳으로 흐르는 게 보인다. 그때에야 비로소 우주의 고요도 온 정신으로 받아들여진다. 그때에야 비로소 우주 앞에 겸손해지고 공손해진다.
    2011년 1월 8일 미국 애리조나 주 투손의 한 대형마켓 앞에서 총기난사 사건이 발생했다. 그로부터 나흘 뒤인 1월 12일 미국의 희망으로 상징된 10세 소녀 크리스티나를 비롯한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자리,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이 연단에 올랐다. 1만 4천 명의 청중이 모였다. 담담한 어조로 추모 연설을 이어가던 오바마 대통령은 세계를 경악케 한 9.11테러가 발생했던 날인 2001년 9월 11일에 태어난 가장 어린 희생자 크리스티나를 언급하면서 잠시 침묵했다. 약 51초 간의 공백이 흐른 뒤 심호흡을 한 대통령은 한 단어씩 말을 이어갔다. 오바마 대통령은 51초의 침묵으로 미국은 물론 세계인을 감동시켰다. 만약 이 51초의 침묵이 없었다면 ‘어린 아이를 지키지 못한 슬픔’이 ‘진실된 애도’로 승화되지 못했을 것이다. 그가 침묵한 51초라는 진실된 침묵은 잘 정돈된 어떤 연설보다도 슬픔에 잠긴 사람들을 위로하고 새로운 용기를 주기에 충분했다. 이 계산되지 않고 연출되지 않은 51초의 침묵처럼 시에도 다분히 작의적이거나 꾸밈이 없는 진솔함과 단순함이 있어야 한다. 한국화의 여백이 있어야 한다. 다음과 같은 시도 그렇지 않은가.



그늘이라는 말
참 듣기 좋다


그 깊고 아늑함 속에
들은 귀 천 년 내려놓고


푸른 바람으로나
그대 위해 머물고 싶은


그늘이라는 말
참 듣기 좋다


                                                           ― 「그늘이라는 말」 전문 



참새 한 마리
햇살 부스러기 콕콕 쪼아대는
하, 눈부신 날


                                                            ― 「눈부신 날」 전문



김수환 추기경이 가시니
법정 스님도 가셨다


쓸쓸한 지상으로
새 한 마리 날지 않는


선종과
입적 사이


참 깨끗한 눈송이
가득하다
                                                          ― 「선종과 입적 사이」 전문




3.
   우리는 만나기 위해 태어났다. 세상에 막 태어나 울음을 터뜨리는 순간, 부모와 형제 자매를 만나고 점점 자라면서 잘랄루딘 루미가 ‘당신’이라고 말하는, 사람을 포함한 이 세상 삼라만상 우주와 만난다. “내가 지나온 모든 길은 곧 당신에게로 향한 길이었다. 내가 거쳐온 수많은 여행은 당신을 찾기 위한 여행이었다. 내가 길을 잃고 헤맬 때조차도 나는 당신을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내가 당신을 발견했을 때, 나는 알게 되었다. 당신 역시 나를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는 사실을”. 잘랄루딘 루미의 말이다. 그렇다. 시인은 이 세상 삼라만상 우주와 만나기 위해 태어났다. 이 만남을 통해 시인은 우리의 삶이 얼마나 소중한 기적인가를, 우리의 삶이 얼마나 큰 신비로움인지를 체득하고 그것을 언어로 드러낸다. 시인은 ‘만남’을 통해 감동할 때마다 자신의 어깨 위에 신의 손길이 얹힘을 뜨겁게 느낀다. 이처럼 신의 손길이 뜨겁게 느껴지는 감동은 어디에서 오는가. 나의 경우, 늘 긍정적으로 생각하면서 고마워하고 행복해 하고 사랑할 때 온다. 그러니 이 모든 게 나에게는 커다란 축복이 아닐 수 없다. 돈 실베트가 “머리에서 나온 것은 머리로, 가슴에서 나온 것은 가슴으로 전해진다.”고 했듯이 이 축복은 가슴으로 전해져 온다. 시는 손끝이나 머리에서 태어나는 게 아니다. 가슴에서 태어난다. 저 깊고 깊은 심연의 끝에서 솟아오르는 싱싱한 샘물처럼 심장에서 태어난다. 앞에서 언급한 바 있는 헬렌 켈러는 만약에 자기에게 사흘 동안 볼 수 있다면 둘째 날 먼동이 트며 밤이 낮으로 바뀌는 웅장한 기적을 볼 것이라고 했다. 눈이 멀어 우주를 전혀 보지 못하는 헬렌 켈러도 이러한 기적을 가슴으로 느낀다. 영화 ‘블랙’이나 ‘어둠 속의 댄서’에 등장하는 주인공, 그리고 이탈리아 오페라 맹인 가수 안드레아 보첼리의 노래가 모두 가슴으로 삶의 기적을 품고 사는 사람들이다.


   이태리 맹인가수의 노래를 듣는다. 눈먼 가수는 소리로 느티나무 속잎 틔우는 봄비를 보고 미세하게 가라앉는 꽃그늘도 본다. 바람 가는 길을 느리게 따라가거나 푸른 별들이 쉬어가는 샘가에서 생의 긴 그림자를 내려놓기도 한다. 그의 소리는 우주의 흙 냄새와 물 냄새를 뿜어낸다. 은방울꽃 하얀 종을 울린다. 붉은점모시나비 기린초 꿀을 빨게 한다. 금강소나무 껍질을 더욱 붉게 한다. 아찔하다. 영혼의 눈으로 밝음을 이기는 힘! 저 반짝이는 눈망울 앞에 소리 앞에 나는 도저히 눈을 뜰 수가 없다.         

                   
                                                                                                                                                                                                                                                       ― 「영혼의 눈」 전문


   나의 ‘영혼의 눈’은 맑고 깨끗하게 닦여 있는가. 이것이 나의 하루를 시작하는 첫 물음이다. 안경알을 닦듯 영혼의 눈도 잘 닦여 있어야 새로운 하루, 새로운 우주와 만날 수 있을 터이니 말이다. 매일 매일, 매 순간 순간, 새로운 ‘만남’은 얼마나 가슴 설레는 일인가. 스타벅스 커피 한 잔에 담긴 성공신화는 “한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은 한정되어 있다. 그러나 같은 목표를 가진 사람들을 모은다면, 그들은 함께 기적 같은 일을 해낼 수 있다. 그것은 용기를 필요로 한다.”고 말한 스타벅스 회장 겸 최고경영자 하워드 슐츠의 신념에서 이루어졌다. 시인이 한 편의 시를 탄생시키는데도 이러한 신념이 있어야 한다. 미당 서정주의 시 「국화 옆에서」처럼 시는 같은 목표를 가진 우주와의 협동이 없으면 탄생되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나의 시와 삶 속에서 세 가지 신비에 감격하곤 한다. 그 세 가지 신비란 첫째는 빛과 소리의 신비요, 둘째는 만남의 신비요, 셋째는 은총의 신비다.



이제 가노니,
본시 온 적도 없었듯
티끌 한 점마저 말끔히 지우며
그냥 가노니


그동안의 햇살과
그동안의 산빛과
그동안의 온갖 소리들이
얼마나 큰 신비로움이었는지


이제 가노니,
신비로움도 본시 한바탕 바람인 듯
그냥 가노니


나로 인해 눈물 흘렸느냐
나로 인해 가슴 아팠느냐
나로 인해 먼 길 떠돌았느냐
참으로 무거운 인연줄이었던 것을


이제 가노니,
허허청청 수월水月의 뒷모습처럼
그냥 가노니


                                                                        ― 「이제 가노니」 전문




말 잊은지 이미 오래다
그 덕분에
졸참나무 숨소리도 들을 수 있게 되었다
흐르는 물 앞에서
손주 눈망울처럼 빛나는
물의 눈빛도 볼 수 있게 되었다
말을 잊었다는 거,
그것은 제주 사려니 숲길에서 만난
어린 노루의 신성한 눈빛처럼
이 숲이 내게 준 선물이다


                                                                       ― 「산거山居·6」 전문


가까이 다가서기 전에는
아무것도 가진 것 없어 보이는
아무것도 피울 수 없을 것처럼 보이는
겨울 들판을 거닐며
매운 바람 끝자락도 맞을 만치 맞으면
오히려 더욱 따사로움을 알았다
듬성듬성 아직은 덜 녹은 눈발이
땅의 품안으로 녹아들기를 꿈꾸며 뒤척이고
논두렁 밭두렁 사이사이
초록빛 싱싱한 키 작은 들풀 또한 고만고만 모여 앉아
저만치 밀려오는 햇살을 기다리고 있었다
신발 아래 질척거리며 달라붙는
흙의 무게가 삶의 무게만큼 힘 겨웠지만
여기서만은 우리가 알고 있는
아픔이란 아픔은 모두 편히 쉬고 있음도 알았다
겨울 들판을 거닐며
겨울 들판이나 사람이나
가까이 다가서지도 않으면서
아무것도 가진 것 없을 거라고
아무 것도 키울 수 없을 거라고
함부로 말하지 않기로 했다


                                                                                      ― 「겨울 들판을 거닐며」 전문




4.
    좋은 시를 쓰려면 어린이의 마음, 어린이의 눈으로 사물을 보아야 한다. 영국의 경험주의 철학자 존 로크는 “태어날 때 인간의 마음은 어떠한 문자도 없는 백지상태”라고 말했다. 이 말은 곧 아이들이 장차 커서 발휘하게 될 재능의 종류와 가능성이 무한히 열려있다는 뜻으로 풀이될 수 있다. 그러나 이 말은 또한 시를 탄생시키는데도 그대로 적용된다. 시인은 태어날 때의 ‘백지상태’로 우주를 보고 우주와 소통해야 한다. 그래야 봄철 이 나라 산천 가득 돋아나는 쑥이 목성(천문학의 기호 R)의 정기를 받고 자란다는 사실, 목성은 질병을 치료하는데 가장 큰 효력이 있는 천체로 간주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시 속에서 숨 쉬게 할 수가 있다. 시인은 늘 어린애의 마음, 어린애의 눈을 갖지 않으면 안된다. 좋은 시는 친숙한 관습과의 결별에 있기 때문이다. 좋은 시는 타성에 젖은 뒤통수를 후려치기 때문이다.
     나는 손주의 커가는 모습을 유심히 관찰하면서 손주로부터 나의 시에 대한 ‘통변通變’의 정신을 다잡는다. 통하여 변하는 정신, 이것이야말로 시가 갖추어야 할 핵심이지 않던가. 이 ‘통변’의 정신을 가르치는 어린 아이의 천진성과 맑고 깨끗한 눈망울이 아니고서는 글자로 씌어지지 않고 글로 표현되지 않은 살아 숨쉬는 글, ‘不字不書之文’을 읽을 수 없다. 이 시대 참으로 깨끗한 마음의 시인, 어린애의 마음으로 시를 쓰면서도 짐짓 그렇지 않은 듯 시치미를 떼는 시인인 오탁번은 그의 저서 『헛똑똑이의 詩 읽기』 첫장부터 이렇게 말한다. “그래서 요즘 나의 시세계는 어린 소년 시절로 거짓말처럼 회귀하고 있다. 그렇다. 나는 이제 어린아이가 되는 데까지 돼 보는 거다. 점잖은 어른들은 어른 노릇하게 놔두고 나는 천등산과 박달재를 바라보며 배가 고파 울던 그 시절의 ‘탁번이’로 돌아가는 거다”라고. 이 얼마나 통쾌한가.



나도 어느덧 하래비가 되어
손주 녀석 사진을 품고 다닌다
방글방글 입으로 웃고
싱글싱글 눈으로 웃고
앙글앙글 소리 없이 웃는 모습이라니
배내똥도 향그러운
두 달도 채 안 된 손주 녀석
덕분에 이 하래비 또한
틈만 나면
남몰래 상글방글 웃는 모습이라니


                                                                     ― 「하래비」 전문



    두 달도 채 안된 어린 아이의 웃음은 얼마나 맑고 향기로운가. 먼지 한 점도 묻지 않은 순수의 결정체를 보며 나도 어린 아이가 되어 틈만 나면 그 웃음을 따라 배운다. 그리하여  나는 하늘이 주신 가장 귀한 선물, 하늘이 주신 가장 큰 축복인 손주에게 “아가의 눈동자는/밤하늘의 별보다 더 빛나고/아가의 웃음은/한낮의 햇살보다 더 환합니다/아가의 입에선/늘 향내가 풍기고/아가의 손은/늘 신비로운 꿈을 쥐었다 폅니다”라고 「아가를 위한 노래」를 바쳤다. 그렇다. 어린 아이의 마음, 어린 아이의 눈으로 우주와 접할 때 비로소 살아 영동靈動하는 운치, 즉 생취生趣를 느낄 수 있다. 이때 태어나는 시야말로 감동의 기운을 일으키며 그 시를 읽는 독자의 영혼을 어루만지는 스킨십의 효과를 준다. 미각과 같이 촉각도 8가지 이상의 자극을 가진 복합체이다. 촉각을 감지하는 신경세포는 손가락 끝, 입술, 혀 등에 가장 많은 수용체를 갖고 있다. 이러한 촉각의 감지 효과를 노리는 스킨십은 시에서 더 다양하고 깊고 은은하게 전달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어렸을 적 서당에 다닐 때 어머니는 내 이름 부르기가 어려웠든지 꼭 “횡만아” 하고 부르셨다. 그 ‘횡만이’ 시절의 눈과 마음이 녹아든 다음과 같은 시는 어떠한가.




조계사 가는 길


말표 검정고무신
청자표 하양고무신
네 줄로 나란히 좌판에 누워
일광욕을 즐기고 있다


노오란 은행잎 하나
살며시 내려와
고무신 콧속을 간지럼밥 먹인다


보살 셋, 발걸음 멈추고 환히 웃는 가을 한낮 
                                                                                              ― 「가을」 전문




시월 하순
달마산 미황사 입구에
달마대사 배꼽 같은 동백꽃
환히 웃고 있었습니다


요거 몰랐지? 용용!
혓바닥 쏘옥 내밀며
놀려대고 있었습니다


저 멀리 산허리쯤에서
구름과 같이 놀던 가을이
서둘러 바랑을 메고
떠날 채비를 하는 게 보였습니다
                                                                                                 ― 「동백꽃」 전문




바닷가 횟집 유리창 너머
하루의 노동을 마친 태양이
키 작은 소나무 가지에
걸터앉아 잠시 쉬고 있다
그 모습을 본 한 사람이
“솔광이다!”
큰 소리를 지르는 바람에
좌중은 박장대소가 터졌다


더는 늙지 말자고
“이대로!”를 외치며 부딪치는
술잔 몇 순배 돈 후
다시 쳐다본 그 자리
키 작은 소나무도 벌겋게 취해 있었다
바닷물도 눈자위가 볼그족족했다
                                                                                 ― 「석양」 전문




5. 
    나는 제43회 한국시인협회상을 받고 그 자리에서 수상소감을 말할 때 두 가지 다짐을 했다. 하나는 평소 어린 아이의 눈과 어린 아이의 마음으로 써왔듯이 앞으로도 그렇게 쓸 수밖에 없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남도인으로서 평생 몸에 밴 토속어와 곱고 아름다운 우리말을 시 속에서 살아 숨쉬게 하는 데 심혈을 쏟겠다는 다짐이 그것이다. 우리 시문학사에서 1930년 《시문학》을 순수서정시의 꼭지점으로 보고 있다. 거기에는 전남 강진 출생 김영랑 시인의 순수 우리말과 토속어가 자리하고 있다. 그러나 ‘시문학파’가 끝나고 백석과 목월, 미당 시인마저 돌아가신 뒤 우리말과 토속어를 시에서 살리려는 노력을 한 시인은 찾아보기 힘들어졌다. 그러던 중 다행히도 우리는 오탁번 시인을 만난다.
    그는 순수 우리말을 찾아나서는 순례자로서의 임무를 흔쾌히 수행하고 있다. 오탁번 시인의 말을 들어 보자. “시인은 아기를 분만하는 산모와 같다. 나는 당분간 우리말을 분만하는 산모의 고통을 자진해서 감당해 나가려고 한다. 작년에 발표한 「눈 내리는 마을」에 나오는 ‘건너 마을 다듬이 소리가/눈발 사이로 다듬다듬 들려오면/보리밭의 보리는/봄을 꿈꾸고’라는 구절도 그냥 스쳐보면 아무렇지도 않은 표현일 수도 있겠지만, 나는 다듬다듬 들려오는 다듬이 소리 때문에 절망과 희열의 계단에서 몇 번을 넘어졌다”. 이왕 말 듣는 김에 한 번 더 귀를 기울여 보자. “시를 쓰면서 나는 늘 여러 종류의 사전을 가까이 두고 있다. 사전에서 잠자고 있는 고운 우리말을 불러낼 때마다 나는 보물찾기를 하는 소년의 들뜬 마음이 된다. 「돌거북」에 나오는 ‘햇살미역’과 「맷돌」에 나오는 ‘또륵또륵’이라는 말은 미처 사전에는 수록되지 않았지만 이번에 내가 다시 살려낸 아주 예쁜 우리말이다”.
     그렇다. 고운 우리말이야말로 우리 민족의 정서와 일치한다. 나에게 주어진 한국시인협회상 심사평에서도 나의 시를 “우리가 잃어버렸거나 死語 취급하고 있는 토속어의 입맛을 시집 도처에서 살려내고 있는 점도 도드라져 보였다. 말을 다듬고 매만지며 길들이는 이런 시인의 자세는 이를테면 토속어가 지닌 의미의 진동을 감촉으로 느끼면서 말의 질감을 삶의 질감으로 바꾸려는 그의 기본적 언어관에 연유된다”고 평가해준 점도 그러한 맥락에서 일치한다고 본다.



갓밝이 닭울녘
동녘 하늘로 아스라이 번지는
저 빛살 참 곰살갑다


연사흘 장마 걷고
새맑은 바람


오늘은
잎망울 옹알이는 소리 듣것다
굴참나무 다람쥐 맑은 눈 보것다


                                                                  ― 「산거山居·4」 전문




    위의 시에서 “갓밝이” “곰살갑다” “잎망울” 등의 우리말이 보인다. 우선 “갓밝이”는 새벽이 되어 날이 막 밝을 무렵, 즉 아침이 시작되는 때를 가리키며, “곰살갑다”는 “굼슬겁다”처럼 성질이 서글서글하고 슬거운 상태, 그리고 “잎망울”은 곧 피어날 듯한 어린 잎이다. 내가 나의 시 속으로 모셔온 우리말 중 대표적인 말은 다음과 같다.
 
“조숙조숙”(「첫차」), “볼그족족했다”(「석양」), “바름바름”(「겨울 산에서」), “욜그랑살그랑”(「산 속에서는 나도」), “니일니일” “다붓하게”(「청미래덩굴」), “옹알옹알” “자박자박”(「여린봄날」), “우렷하게” “아삼삼한” “강대소나무” “모시진솔” “굼깊은” “넌출넌출”(「백담사 가는 길」), “귀맛 돋는”(「나무 소 한 마리」), “산모롱”(「무지개」), “푸르딩딩”(「기와 버섯」), “진대나무”(「비바람 치는 날」), “너른하게” “눈맛나는 붉은 꽃숭어리” “낯꽃” “꽃멀미”(「배롱나무 부처」), “바상바상하게” “살풋살풋” “산내리바람소리”(「拂子」), “새록새록”(「봄날」), “우련하거니”“가뭇하거니” “설픗설픗”(「夏安居」), “흐드러진”(「절정」), “노글노글해진다”(「해변을 거닐며」), “하롱하롱”(「파리의 밤」), “물버들 낭창낭창” “먼산주름 넌출넌출” “때글때글한” “물너울” “자울자울”(「송화강」), “하잔한” “살피꽃밭 가득 살살이꽃” “알키할 즈음”(「알라디마을」), “고즈넉하다”(「뤼순 가는 길」), “낭창낭창한” “눈투정” “보르르한” “보근보근” “들렁들렁”(「김명옥」), “무르녹습니다” “꼼지락꼼지락”(「봄비」), “우듬지” “휘추리” “애채”(「사리를 거느리시는 분」), “고즈너기” “마틀마틀한” “홰친홰친” “하전하전한”(「금물로 쓴 글씨」), “하롱하롱”(「수틀」), “우럭우럭해지는”(「耳順의 어느 날」), “얘리얘리한” “솔솔바람 소소소” “소르르” “설피해지면” “팔느락팔느락”(「애련리」), “가녈가녈한” “갈매빛”(「풀벌레 소리」), “바람칼”(「滿月」), “후미진 땅”(「괭이밥」), “오글오글 몰려드는”(「소리들」), “는개”(「이른 아침에」), “들렁글렁해지는지”(「순천만에서」), “오종종” “남실바람”(「미당 생가에서」), “청송아리” “보르르하다” “우럭우럭해지는”(「햇봄에 젖다」), “흰추위” “수런수런” “노릿노릿” “앙글앙글” “깐닥깐닥”(「산수유 마을에서」), “녹실녹실하게”(「초저녁, 그 쓸쓸함」), “가실볕 성크름해지니” “골개물” “해적해적” “솜병아리”(「길」), “깐닥깐닥” “솔옹이” “시붉은 감” “아그데아그데”(「눈빛」), “보송보송한”(「雨水」), “아스름하네”(「일요일」), “깐닥깐닥”(「극락강역을 지나며」), “매롱매롱” “보르르한”(「햇살이 매롱매롱 날아오르고」), “칼칼히 칼칼히”(「폭설·1」), “불보라”(「폭설·2」), “자르르”(「송편」), “끄느름하다” “는개” “날비” “작달비” “바람꽃”(「문득」), “방글방글” “싱글싱글” “앙글앙글” “배내똥” “상글방글”(「하래비」), “굼슬겁다”(「산거·1」), “우련하다”(「산거·2」), “꽃꼭지”(「산거·3」), “서리서리” “아즐아즐 아즐하게” “알천” “아슴아슴한” “선잠도 풋잠도 토막잠도”(「편지」), “잉걸불” “후림불”(「입술」), “아심찬허다” “아삼삼하다”(「병실에서」), “물갈기” “강그러지것다”(「겨울 아침」), “비나리” “우렷하다”(「새벽」), “겨를하다” “꽃노을”(「여의나루」), “설핏해지고” “잘근잘근” “아련하다”(「초저녁」), “거방진”(「느티나무」), “하롱하롱” “알키한” “설핏해질 때”(「구례구 역」), “피맛길” “해찰부리기” “욜그랑살그랑” “서그러워지는”(「길·1」), “살사리꽃” “살터” “새녘” “샘밑” “소소소” “심알”(「사람을 노래함」)


5.
   시인이 다루는 언어는 이 세상에서 가장 깨끗한 생명체이다. 이 깨끗한, 숨 쉬는 생명을 ‘낯설게 하기’라는 이름으로 이리 비틀고 저리 비트는 잔혹한 일을 나는 할 줄 모른다. 선천적인 태생이 촌놈이라서 있는 그대로, 자연스럽게, 순도 높은 언어 그 본질 자체를 시의 용광로에서 달구고자 한다. 비로소 황홀하게 빛을 발하는 언어의 숨결을 상상하면서.
   내가 시 쓰는 일에 게으름 피울 때나 문득 시로부터 멀리 있다고 깨달았을 때 나는 박경리 선생의 시 <눈먼 말>을 떠올린다. 그러면 “글 기둥 하나 잡고/내 반평생/연자매 돌리는 눈먼 말이었네‘로 시작하는 이 작품이 나로 하여금 ‘시 쓰는 정신’ 과 ‘시인으로 사는 일’을 각성하게 한다. 한국시협 간사들과 여행 중 강원도 건봉사 화장실 두꺼운 유리문에 끼어 처참하게 으깨어진 나의 손톱에서 펄펄 솟아오르던 붉은 피는 그 각성의 현신이었다. 입춘 이틀 뒤였다.
오탁번 시인은 말한다. 문학을 하는 이들은 홀로 침잠하는 절대 고독의 시간 속에 자기를 엄격하게 구속 시켜야 한다고. 죽음과 직면해 있다는 마음으로 문학을 운명처럼 껴안아야 한다고. 거멓게 멍이 든 두 개의 손톱 중 검지 손톱이 두 달을 못 견디고 마침내 빠지고 말았다. 손톱 밑에 가려졌던 여리고 하얀 속살이 닿을 때마다 아리고 얼얼하다. 비로소 손톱이 왜 존재해야 하는지, 손톱이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 깨닫는다. 손톱은 내게 ‘절대 고독’이었으며, 운명처럼 껴안아야 할 ‘문학’그 자체였음도 함께 깨닫는다. 시 「손톱」은 이렇다.


강원도 건봉사 화장실 두꺼운 유리문에 손가락이 끼었다
검지와 중지 손톱에서 붉은 피가 솟았다
순간 멍했다 아득했다
짜릿한 아픔은 한참 후의 일, 희한하게 정신이 맑았다
겨울 하늘을 나는 새 한 마리까지 한결 더 빛나 보였다
시 쓰는 정신이 이럴 것이다
긴장과 소름, 통증과 눈물을 속으로 감추는 일이
한 세상 살아가면서 얼마나 중요한 덕목인지를
토해내는 피로 일갈하고 있는 손톱
시인으로 사는 일이 이럴 것이다


                                                                                  ― 「손톱」 전문


     쓸쓸하다는 말은 참 쓸쓸하다. 그래서 나이 들어 쓴 내 시에는 쓸쓸하다는 말이 없다. 그런데 이태 전 알래스카 여행 중 메모해 둔 수첩에“앵커리지에서 페어뱅크스3번 하이웨이, 쓸쓸한 길”이라고 적혀있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내 사주에 역마살이 끼어 있음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한사코 억눌러 온 고독한 방랑자의 기질이 그대로 투영되었던 모양이다. 그리고 오늘, 내가 아끼는 후배가 비 오는 길을 함께 걷다가 돌연“형님, 쓸쓸할 때 뭐하세요?”하고 묻는 게 아닌가. “쓸쓸할 때?” 마치 처음 듣는 듯, 이제 막 말을 배우기 시작하는 손자의 귀여운 입을 떠올렸다. 그리고 대답했다. “쓸쓸할 때 시와 놀지” 그래, 나는 시를 쓸 때마다 쓸쓸함과 논다.
“아무 생각 없는 듯 그린 것이 너무 좋아서 미울 정도네(行其所無思可愛可憎).”조선말의 화가 석연 양기훈의 「영모도翎毛圖」를 보고 백련거사 지운영이 쓴 찬의 첫머리이다.“아무 생각 없는 듯 그린”것과 아무 생각 없이 그린 것은 천양지차다. 시 쓰는 일도 이와 다르지 않다. “너무 좋아서 미울 정도”의 시가 되기 위해서는 동양화의 여백 정신이 필요하다. 나는 시를 그러한 정신으로 쓰고자 노력한다. 무자서無子書를 읽고 무현금無弦琴을 들으며. 그리하여 올해 칠순을 맞아 제 15시집 『가벼운 빗방울』(작가세계)을 출간했다. 이 시집의 시 몇 편은 다음과 같다.



참 멀리 왔다고
나 이제 말하지 않으리
나보다 더 멀리서 온 현자賢者도 있지만
앞으로 얼마나 더 갈지 모르겠다고
나 이제 말하지 않으리
어떤 이는 말을 타고 가고
어떤 이는 낙타를 타고 가나
그 어느 것도 내 길이 아니라서
하나도 부럽지 않았던 것을
이제 와 새삼 후회한들 아무 소용없느니
왔던 길 지워져 보이지 않고
가야할 길 가뭇하여 아슴하나
내 나이 일흔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마음먹은 대로 행동해도 어긋나지 않는다면
사랑하는 이여 
나 이제 말할 수 있으리
그동안 지나왔던 수많은 길섶
해와 달, 낡은 발끝에 치일 때마다
내 몸이 내 것이 아니었노라고
                                                                                      ― 「종심從心의 나이」 전문   




한 생애가 텅 빈 항아리 같다


폭풍처럼 몰아치던 파도도 고요해지고
창문에 반짝반짝 별빛을 매달고 달리던
야간열차의 기적소리도 아스라이 잦아지고
나의 한 생애여, 이제는
오직 적막
한때는 부글부글 들끓음으로 가득 찼으나
한때는 한기 돋는 소소리바람에도 출렁거렸으나
나의 한 생애여,
이제는
오직 적막
                                                                                          ― 「오직 적막」 전문




빗방울이 무겁다면 저렇게 매달릴 수 없지
가벼워야 무거움을 뿌리치고
무거움 속내의 처절함도 훌훌 털고
저렇게 매달릴 수 있지
나뭇가지에 매달리고 나뭇잎에 매달리고
그래도 매달릴 곳 없으면 허공에라도 매달리지
이 몸도 수만리 마음 밖에서
터지는 우레 소리에 매달렸으므로
앉아서 매달리고 서서 매달리고
무거운 무게만큼 쉴 수 없었던 한 생애가 아득하지
빗방울이 무겁다면 저렇게 문장이 될 수 없지
그래서 빗방울은 아득히 사무치는 문장이지
                                                                                       ― 「가벼운 빗방울」 전문




절집의 백구 한 마리
도가 텄는지
무심하기가 부처보다 가벼워보인다
온종일 듣는 불경도 이골이 난 듯
산신각 지키던 배롱나무도
집착 한 숭어리 허공에 슬쩍 던져놓는다
소리마저 숨죽인 시간,
저만치 고요가 고요를 이끌고
난출난출 숲길을 내려오고 있다
                                                                                      ― 「고요가 고요를 이끌고」 전문









**약력:순천 출생. 1973년 《월간문학》으로 등단. 시집 『가벼운 빗방울』, 『불타는 얼음』, 『영혼의 눈』 등 15권과 활판시선집 『그늘』, 중국어시집 『許炯萬詩賞析』, 일본어시집 『耳を葬る』. 평론집 『영랑 김윤식연구』, 『시와 역사인식』 등 다수. 영국 IBC 인명사전 등재(2001~2002). 한국예술상, 펜문학상, 한국시인협회상, 영랑시문학상 등 수상. 한국시인협회 심의위원장 역임. 현재 목포대학교 명예교수. 국제펜한국본부 심의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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