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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호/신작시/박설희/웃음에 관해서라면 외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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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시
박설희
웃음에 관해서라면
장례식장에 차를 대고 실어낸다
방금 전까지 김 씨의 빈소에 놓여 있던 화환
싱싱한 웃음을 잃지 않고 있는 김 씨 옆에서
그보다 더 싱싱한 웃음을 짓고 있던 것
절정인 적이 없었던 삶이 꽃과 더불어
가장 빛났던 것인데
김 씨의 체취를 아직 지우기 전
포장이 둘러친 용달차에 차곡차곡 올라탄다
일용직 인부들처럼 묵묵히
풀죽은 몇이 교체되고 나면
또다른 김 씨의 미소 옆에서
그보다 더 환한 웃음을 지을 것
발목 없는 생
누가 더 오래 버티다
목을 꺾는지 두고 볼 일
관절 무른 화환들을 태우고
쌩하니 용달차가 달려간다
물 한 모금
산해관 부근 해변 도로에
간밤 내린 비가 고여 있다
참새 한 마리, 물 머금어 하늘 보고
또 물 머금어 하늘 보고
오른쪽 멀리 만리장성이 바다로 들어가고 있다
노룡두, 용은 목이 마른 걸까
발해만 바닷물 다 들이마시고 싶은 듯
언 압록강 말 달려 산해관 잠긴 문을 한 손으로 미는 기세로
발해만 바닷물 다 들이켜겠다는 호기로운 이도 있었지만
참새 웅덩이는 곧 사라질 것이다
웅덩이 속 하늘과 구름 사라지면
고요한 눈 하나 지상에서 없어지는 것
숱한 말발굽과 깃발은 스러지고
낡은 현판이 제자리를 굳건히 지키는데
천하제일 치켜든 머리는
온 바다를 들이켜도 목마르다 하겠는데
참새와 용머리 사이에
바다로부터 새벽바람은 불어오고
나는 우두커니 서
참새의 갈증을 지켜보고 있다
용의 뒤척임을 듣는다
**약력:2003년 『실천문학』 신인상 수상. 시집 『쪽문으로 드나드는 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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