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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호/신작시/배세복/자전거 제작소 외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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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호/신작시/배세복/자전거 제작소 외 1편
배세복
자전거 제작소
나무자전거 만드는 법 알려줄게요 감나무여도 살구나무여도 괜찮아요 푸른 하늘로 솟아오르고 싶어한다면 말이죠 세발자전거든 두발자전거든 상관없어요 허공으로 날아오를 준비만 돼 있다면요 앞마당 과실수에 자물쇠 채워진 채 낡아가는 자전거 본 적 있나요? 주인은 이사 가고 버려진 집이어야겠지요 아이에겐 자전거 따위 이제 필요 없어야 하겠지요 그러고도 세월이 까마득히 흐른 뒤여야 해요 나무는 자기도 모르게 하늘로 조금씩 뻗쳐 오른 거고요 자전거는 비바람에 그저 낡아간 거고요 그러니까 까치발 선 자전거보다 나무가 몇 뼘 더 자라, 저렇게 대롱대롱 자전거가 매달린 거겠지요 밤마다 나무는 자전거를 타고 날아오르는 꿈을, 자전거는 나무를 태우고 솟구치는 꿈을, 저기 좀 봐요 노인네 손등처럼 쩍쩍 갈라져 있는 나무둥치! 붉은 녹물 줄줄 흘리고 있는 자전거! 저는 지금요 서로가 서로를 껴안고 있는 저 시린 풍경 말하는 거예요
겸상
언덕에 불침번 서 있다 전면 향해 돌아가는 두 쌍의 레이더, 저 무기를 내려놓는 날이 그의 전역일이다
그의 적은 쉽게 들키는 바람인가 하지만 바람이 없다면 풍차는 없다 풍차가 바람을 섬긴다 할 수 있는가 적이라 불리는 것들을 모신다 할 수 있는가
세상 다 잠들었을 때 홀로 깨어있었기에 풍차는 한 번도 멈춘 적 없다 그렇다면 바람도 풍차의 불침번, 밤은 별의 불침번, 별은 밤의 불침번
삶은 죽음을 섬기는 신, 죽음은 삶을 모시는 신 그리하여 나는 이 밤 벌개진 눈으로 쉬이 잠을 이루지 못한다 우리는 마주 앉아 서로를 조금씩 갉아먹고 있다
*배세복 2014년 <광주일보> 신춘문예 당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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