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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호/신작시/허문태/파도 외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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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호/신작시/허문태/파도 외 1편
허문태
파도
바지락을 까는 여자의 등에서 파도가 찰싹인다.
먹구름을 몰고 달려들던 파도
어선을 움켜잡고 흔들어 대던 파도
절벽을 밤낮으로 후려치던 파도
애타게 파도가 멈추기를 바라며 살았다.
파도는 멈추지 않는다는 것을 모른 채
파도가 없는 바다는 바다가 아니라는 것을 모른 채
산을 넘고 들판을 지나 여기까지 왔다는 것을 잊은 채
지금까지 기억은 다 잊으라는 것도 잊은 채
바지락을 까는 여자의 등에 파도가 밀려왔다 밀려간다.
어미의 긴 혓바닥이 새끼의 등을 핥아 주듯
파도가 밀려왔다 밀려간다.
깃발
103번 시내버스를 타고 가다, 양쪽에 목발을 짚고 신호등 앞에 서 있는 사내를 보았다. 차가 지나갈 때마다 오른쪽 다리가 바람에 펄럭인다.
깜깜한 밤길 가족을 데리고 산을 넘고 있었겠지. 옛날이나 지금이나 앞으로도 마찬가지겠지만 밤 산길에는 호랑이가 살고 호랑이를 만났겠지. 호랑이는 늘 같은 말만 하지. 떡 하나 주면 안 잡아먹지. 집도 없고, 직장도 없고, 돈도 없고, 떡도 없고, 심사숙고 긴 협상 끝에 가진 것이라곤 몸뚱이 뿐. 오른쪽 다리 뚝 잘라주고 가족과 함께 밤 산길을 넘었겠지. 그 사내
깃발. 땅바닥에서 펄럭이는 깃발을 보았다. 103번 시내버스를 타고 영세자영업자 지원 상담을 받으러 가는 중복 지나 삼일 째 되는 날
*허문태 2014년 《리토피아》로 등단. 시집 『달을 끌고 가는 사내』. 리토피아 문학상 수상. 본지 부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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