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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호/산문/박철웅/관념 속의 여인은 감미롭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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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호/산문/박철웅/관념 속의 여인은 감미롭지만,
박철웅
관념 속의 여인은 감미롭지만,
아,
멀다
당신은,
추억처럼
멀다 멀어서
추억처럼 그립다
―「첫사랑」
1. 그녀
군복을 입은 사내 하나가 서울에서 진주행 시외버스를 탔다. 밖은 눈발이 조금씩 비치기 시작하고, 의자에 앉은 사내는 깊은 상념에 잠긴 듯하다가도 창밖을 바라보며 씨익 웃기도 했다. 진주에 도착하자 사내는 버스에서 내려 진주가 초행인지 사방을 주시하며 누군가를 기다리는 모습으로 주변을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잠시 후 조금 작은 키에 단단한 모양의 소녀가 다가왔다. 소녀는 처음 만나는 사내에게 반갑다는 인사와 함께 조금은 우울하고 심각한 표정으로 말을 건넸다. “저, 이 말은 만나면 꼭 먼저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진주 시외버스 터미널 2층 찻집으로 옮기면서 던지는 첫마디가 무겁다. 무슨 말이기에 저렇게 힘들어할까. 내심 조바심이 난다. 차 한 잔 을 시켜 놓고 가끔 사내의 눈빛과 창밖의 함박눈을 바라보면서 차 한 잔이 식어갈 때까지 고백성사를 하듯 최근 자기 주변의 이야기를 풀어 놓는 이십대의 풋풋한 여대생, 그녀에게서 꽃향기가 흘렀다. 그녀와의 첫 대면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그녀를 알게 된 것은 한 병사 때문이었다. 내가 입대하여 철원에서 근무하던 일병 시절, 옆 의무반에서 생활을 하던 김 이병이 나에게 접근한다. 날은 봄이어서 졸음도 조금 오기 시작하고, 사위엔 꽃들이 만발하였지만 눈에 보이는 건 삭막한 병영생활과 사내애들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 친구는 나보다 3개월 정도 늦게 입영했다. 그래서 기수 차이가 크지 않은 나에게 친하게 지내고 싶었는지, 여자 친구가 보고 싶었는지 나에게 여자친구 한 사람씩 소개해주기로 하자고 슬쩍 말을 건네는 것이었다. 그거 좋지! 나도 맞장구를 치면서 입대 전 마지막 미팅 때 만난 여학생 주소를 건네주고 그도 한 여대생을 소개해 주었다. 나는 연대 정훈과에서 복무하고 있어서 대체로 시간도 좀 있고 해서 틈틈이 책도 읽을 수 있는 여유가 있었던 것인데, 그래서 재미삼아 주고 받던 편지가 1년이 지나가고 2년 정도 접어들었고, 우리는 서로가 보내준 문장과 마음에 취하기도 하고, 인생에 대하여 학창시절에 대하여 많은 이야기를 주고받곤 했다.
그녀는 K 대학 외국어교육학과 학생이었다. 그리고 학보사 기자였는데 술을 좋아했고 담배도 가끔 피웠던 것 같다. 이는 순전히 주고받은 편지에서 술과 담배 이야기가 곧잘 나왔기에 그렇게 생각했다. 그녀는 삯바느질하는 홀어머니 밑에서 자랐고 그래서 생활이 조금은 곤궁했던 것 같다. 그녀의 편지 중엔 이런 글이 있었다. “술 생각이 날 때가 종종 있어요. 호주머니에 돈이 부족하면 나는 학교신문이나 교지에 글을 싣고 그 원고료로 술을 마시곤 했어요. 그리고 술에 취하면 끝없이 걷곤 해요. 걸으면서도 흔들림 없이 걸으려고 노력하지요. 제가 존경하는 교수님께선 여자는 술에 취하더라도 뚜벅뚜벅 흔들리지 말고 걸어야 한다고 하셨거든요.” 그녀는 아마, 지금도 흔들리지 않는 인생을 살면서 어딘가를 걷고 있을 것 같다. 눈이 내리거나 낙엽이 지거나 꽃이 피어있는 어느 길목을,
2. 그 친구
나에게 그 여학생을 소개해준 병사 이야기를 하고 싶다. 이제는 시간이 많이 지났으므로 군대 생활도 설핏설핏 기억이 나기도 하지만 그녀와의 이야기는 아직도 마치 어제의 일처럼 선명하다. 나는 그 친구 덕분에 이 여학생과는 오랫동안 편지를 주고받았는데 그 친구는 내가 알려준 여학생의 주소로 편지를 몇 번 보냈지만, 답장이 안 왔던 모양이다. 조금 미안하기도 했다. 당시 군대 생활에서의 낙이라는 게 이성과 편지를 주고받는 것처럼 큰 게 없었던 시절이다. 그 친구도 나처럼 20대 중반에 늦게 입대했고, 서로 알고지낸 후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자 나와 동갑이라면서 나더러 그냥 말 트고 지내자고 한다. 연대 행정병들 간이니까 그게 통했겠지만, 아마 말단 부대에서는 어림도 없었을지 모르겠다. 아니다. 그때도 병사들 사이에는 인간적인 맛은 꽤 있었던 것 같다.
어쨌든 나는 그 친구 덕분에 푸릇푸릇한 시절, 연애편지처럼 달콤하고 철없고 감상적인 이야기를 주고받는 여자 친구가 생겼다. 이후로도 이 병사와는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지냈다. 언젠가 펜팔한 그녀를 어떻게 알았느냐고 물은 적 있다. 그랬더니 나처럼, 군 입대 전 친구들하고 다방에서 미팅하게 되었다고 한다. 거기서 그녀를 파트너로 알게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애프터를 신청했었는데 실패했다고 쓰윽, 쓴웃음을 날렸다. 그러던 그 친구가 제대를 1년 정도 남겨 놓은 무렵 내무반에서 약을 먹고 자살을 했다. 유서가 있었다. 부모님께 드리는 글이었다고 한다. “부모님 죄송합니다. 제가 먼저 떠나갑니다. 오래오래 행복하게 사세요.” 그런 내용이었다고 한다. 병영 시절 내내 그 병사는 부모 문제로 속상해하고 아파했다. 그 문제로 나에게 가끔은 마음속 깊은 이야기를 하곤 했다. 연대 의무병인 그 친구의 병영생활은 크게 힘든 것은 없었다. 지금도 그러하겠지만 의무병과는 특과에 속한다. 어느 날 부모가 이혼했다는 소식을 전했다. 그 날 이후 그는 매우 울적해 했다. 그리고 몇 달 후 그는 내무반에서 약을 먹고 떠난 것이다. 몸도 건강하고 성실했던 친구였는데, 지금도 그 친구를 생각하다 보면, 자라나는 아이들에게는 부모의 존재란 부모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큰 영향을 미친다는 생각이 든다. 특히 부부 싸움이나 이혼은 감수성이 큰 자식들에게 큰 상처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할 것 같다.
3. 첫 만남. 그리고
제대를 6개월 정도 남겨 놓은 무렵이었던 것 같다. 얼마 있으면 정식 휴가가 있을 예정이어서 그녀에게 편지를 썼다. “조금 있으면 휴가를 가게 되는 데, 한 번 만날 수 있을까요?” 그녀가 오케이 해주길 조마조마 기대하면서 한 참을 기다렸다. 보름쯤 후에 답이 왔던 것 같다. 그 보름간이 무척 길었다. 편지를 조심스럽게 개봉했다. 무슨 답이 들어 있을까, 가슴이 쿵쾅거렸다. 그녀는 쿨 했다. 몇 장의 문장이 있었지만, 내 눈에 들어오는 건 “오고 싶으면, 오세요.” 그 문장이었다.
기다렸던 휴가명령을 받고 집에 잠시 들렀다가 곧바로 진주행 버스를 탔다. 출발할 때부터 눈발이 조금씩 휘날리더니 진주 시외버스터미널에 도착할 무렵에는 제법 굵은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차를 마시면서 그간의 이야기를 나누고 난 후 그녀는 진주 구경을 시켜주겠다고 한다. 밖은 제법 눈발이 굵어지더니 함박눈으로 변했다. 남강을 따라 한참을 걷다가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하면서 맥주를 마셨더니 그녀도 나도 기분이 한층 업 되는 것 같았다. 그녀는 진주에 왔으면 진양호는 꼭 보고 가야 한다며 안내했는데 진양호에 도착한 무렵에는 제법 날도 어두워졌다. 그녀와 다정하게 오래된 친구처럼 이야기를 나누며 걸었다. 하얗게 휘날리는 눈발에 취했을까 그녀가 내 곁에 좀 더 가까이 오더니 “이런 길에서는 이렇게 팔짱을 끼고 걷는 거예요.” 하면서 포근하게 기대온다. 왠지 기분이 좋다. 가로등 마다 내리는 눈발이 감미로운 음률처럼 휘날린다. 좀 더 가까이, 좀 더 오래 걷고 싶었다. 조금 전 찻집에서 들은 우울한 이야기는 온데간데없이 우리는 그렇게 함박눈을 맞으면서 서로 조금씩 더 가까워졌고 자정도 가까워졌다.
하룻밤을 자고 일어난 아침은 온 세상이 하앴다. 회색도 검은색도 다 사라진 순백의 세상이 찾아왔다. 이런 세상에서 꿈꾸듯 살았으면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 날 아침 다시 찾아온 그녀와 점심을 같이 하면서 맥주 한 잔을 했다. 이제 나는 떠날 것이고 그녀는 이제 나에게 답장을 쓰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몇 번의 편지를 다시 쓰겠지. 추억처럼 눈이 내리듯이 편지를 쓰겠지. 우린 다정하게 정류장을 향해 걸었다. 가끔 그녀가 내 팔을 잡아 주었다. 한 번쯤 안아주고도 싶었지만 차마 안아줄 수 없었다. 그녀에게 나는 단지 추억의 한 문장으로만 남을 것이다. 한 때 눈발이 휘날리던 날, 맥주 한잔 했던 한 친구로서 기억될 것이다,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는 길, 시외버스 정류장이 가까워진다. 2층 커피집이 보인다. 그녀는 나를 바라보더니 빙긋이 웃는다. 아마 나를 향해 건네주는 마지막 웃음일지 모르지만 살아가다 보면 마주치는 날도 오지 않을까, 속으로 생각하면서 버스에 오른다. 차는 출발하고 그녀는 손을 흔들어 주었다. 군에 복귀한 후 몇 번의 편지를 보냈었다. 그러나 그녀의 처음 이야기처럼 그녀는 답장하지 않았다. 나는 지금도 가끔 그녀가 문단에 우뚝 서서 빛나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을까 가끔 그런 상상을 해본다. 이제 그녀도 솜사탕 같은 시절은 다 녹고 어디선가 다 큰 아이들과 아니 어쩌면 손자 손녀들과 달콤한 한 때를 보내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4. 에필로그
처음 만나던 그 날, 커피숍에서 차 한 잔을 마시면서 그녀는 고백성사처럼 자기 남자 친구 이야기를 꺼냈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사귀었던 남자가 있었다고 했다. 그리고 최근에 그 남자가 군대에 갔다고 했다. 입대 하기 전, 이곳에서 차 한 잔을 했었는데. 차 마시던 중 그녀는 잠시 화장실에 다녀왔고 그 남자는 그녀의 현대문학 월간지를 보고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책갈피에서 나의 엽서를 보았다고 한다. 그 친구는 입대를 하였고 그 후 연락이 없단다. 그래서 지금 그 친구를 기다리고 있단다. 나와는 그냥 편지를 주고받으면서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어서 좋았고 재미있었는데, 앞으로는 답장하기 어려울 것 같다고 했다. 그녀는 물안개처럼 피어오르는 나의 기대를 조금씩 깨트리면서 이야기 실마리를 풀어가는 것이었다.
아직도 함박눈이 내리는 날이면 가끔 그녀의 편지 속의 문장이 생각나는 때가 있다.
“관념 속의 여인은 감미롭고 황홀하지만 거리에서 마주치는 여인은 빨랫줄처럼 신경이 굵고 질기답니다.”
그녀도 이제는 빨랫줄처럼 신경이 굵고 질길까? 오늘 밤도 달은 떴을까. 달빛 따라 호수공원을 한 바퀴 돌고 싶다. 거닐면서 낙엽처럼 저물어가는 나의 하루를 돌아다 보고 싶다. 어디선가 키스 앤 크라이 음률이 흐르고 연인들의 달콤한 속삭임이 들려오는 것 같다. 그녀는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그녀가 행복하기를 기원한다. 안녕!
*박철웅 2012년 《리토피아》로 등단. 시집 『거울은 굴비를 비굴이라 읽는다』. 막비시동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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