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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시/배귀선/줄포 약방 외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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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부
댓글 0건 조회 1,641회 작성일 17-01-02 1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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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시

배귀선







줄포 약방




한 숨 졸아도 좋을 만큼
나른한 봄볕을 처방 받으러 나선다
 


정겨운 보리밭 이랑 사이로 굴풋하게 익어가는
줄포의 수더분한 들녘 머리
버스 정류장에서 저물도록
누군가를 기다릴 수 있다는 것은
가슴에 삶의 무늬 하나 새기는 일
 


밤낮없이 열려 있는 밀창문 너머
까스명수 값 정도는 거시기해도 괜찮다고 하는
늙은 약사를 찾는다
 


바랜 약들이 널려 있는 선반에서
묵은 냄새 털어내고 있는 약방주인은
뜻밖에도 앳된 얼굴로
늙은 약사의 부음을 느리게 탁자에 올려놓는다
그는 들녘에 파스처럼 붙어 있는
다랑이마을을 한 번쯤 돌아보고 갔을까
 


줄포에 이제 막 터를 내린 젊은 약사의
손에 쥐어진 빗자루에 기억이 쓸린다
 


다방 앞 리어카에 걸터앉은 노인의 헛기침에
숨죽은 총각무 힘줄 툭툭 불거지고
김칫거리 고르는 새댁의 한숨이 긴 해질녘
 


그렇게 줄포는 산다
처방전 없이







장날




염소가 오누이를 끌고 간다
살아온 날들을 헤집어보는 듯
돌아올 길 표시해 놓는 듯
서너 걸음마다 찍히는 검은 점들
앞 장에서 팔리지 않은 녀석들
닷새 더 길어진 연을 끌고 간다
 


허연 머리카락 쓸어 올리며
누이는 시들은 너무새 바구니 옆구리에 끼고
갓 떨어진 새끼 덤으로 따르는  
어미를 팔아야 밥이 되는 걸음
가파른 언덕 초입에 잠시 줄을 푼다
조근조근 식구처럼 살아온 세월이
느티나무 그늘을 비껴 허공에 머문다
옆으로 흘낏 바라보니
오라비의 수염조차 녀석을 닮았다
 


부모 지은 죄 많아 처녀 총각으로
한 지붕에서 늙는 거라고
이웃의 입방아로 담을 두른 집
말뚝에 묶여 장마당 그림자 늘리는 염소처럼
팔십 평생 서로에게 묶여 살아온 오누이
울타리 그늘로 얼굴을 가리고 내외하듯 산다
언지부터 그러코롬 한 집에 살었데라우
개장수 실실거리는 농에
수탉이 나서서 홰를 친다






**약력:2011년 <전북도민일보> 신춘문예 수필 당선. 2013년 《문학의 오늘》로 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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