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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시/이정희/대패 외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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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부
댓글 0건 조회 1,411회 작성일 17-01-02 1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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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시

이정희






대패



대패는 울퉁불퉁한 수평을 갉아먹는다
몇 백 년 휘어진 각도도
두서너 번 대패질로 평평해진다
짐승의 입으로 나무의 나이테를 먹고
또르르 말린 파도를 울컥 뱉어놓는다고
목수는 말했다



오늘은 나무들마다
파랑주의보가 발령되어 있다
잠잠해졌다고 바람이 잦아드는 것은 아니다
해풍에 깎이는 파도들이 해안까지 말려들어 온다
가끔은 미역귀를 삼키고 컥컥대다가 파도소리에 갇힌다
알고 보면 파도도 저희들끼리 몰려다니는
군락지가 있다고
내가 아는 목수가 말했다



나무의 목질 속에는 먼 바다의 해풍과
포말이 들어있어
기슭을 넘고 산등성이를 넘어
온 산을 몰려다니는 바람소리가 있다

대패 하나만 있으면
휘어진 시간도 잔잔한 수면도
한 채의 집이 되고 일생의 직업이 된다고
죽고 없는 목수가 말했었다







리어카가 떴다


리어카가 언덕을 올라간다 
겉잎 누런 김장배추가 가득 실려있다
리어카를 끌고 한 발자국씩 내디딜 때마다
조금만 더 힘을 내라는 듯
여자의 숨소리가 거칠다
눈앞이 온통 노란 배추 속 같은
이렇게 무거운 시간을 끌고 다녔어도
돌아보면 뒤는 늘 허전했다
속도를 줄일 수도 멈출 수도 없는
오직 오를 수밖에 없는 오르막길
이렇게 높은 곳에 꿈의 세간을
풀어놓은 적이 있었던가
물 위에 나뭇잎이 뜨는 날들



내리막은 멈추는 속도가 없다
배추더미 속으로 끌려들어가는 여자
자꾸 뒷덜미를 잡히는 점점 작아지는 여자
리어카가 떴다
그녀를 끌어올렸다
쇠똥구리가 하늘로 떴다
낡은 평상 위에 걸터앉은 노인이
새까만 손톱으로 도라지를 까고 있다







**약력:2013년 《서정시학》으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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