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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시/권수찬/그 집엔 아무도 없었다 외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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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부
댓글 0건 조회 1,535회 작성일 17-01-02 1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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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시

권수찬






그 집엔 아무도 없었다



눅눅한 바람만 스치는 그곳엔 아무도 없었다
그들이 떠난 후,
끊어진 안경다리를 꺼내지도 않고 수리하지도 않았다
날마다 그림자는 두 뼘씩 길어나고
바람은 외길로 빠져들었다
거울은 진종일 안부를 흘린 채 무엇을 말하려는 걸까
 


낯선 꼭대기집, 뜰을 휘감은 안개들
목 떨어진 붉은 장미를 세고 있다
유월을 두서 없이 흐려놓은 가시들
구석마다 얼룩은 짙어지고
마당조차도 싫증 날 것 같은 시간이 찾아와
염소의 쉰 울음으로 늘어졌다
 


세상의 뿌리 없는 것은 왼편으로 기울어
뽕나무 그림자 수없이 긁혔다
마음은 어두운 시력을 달고 다녔으며
피어 있는 것으로부터 버려진 기분이었다
조금만 무심을 가장할 수도 있었는데,
창문 속 내다보인 강은 왜 하필 빛나고 있었을까
 


유리창으로 소리가 퍼져나갔다
문은 지워지는 대로 깊어지고
뜰을 건너가는 수백 개의 어둠들
바람은 어김없이 솟아
검은 것들은 하얗게 뼈를 드러냈다 








붉은 현기증




바닥 위로 손이 움푹 깊어질 때, 눈에 볼록렌즈를 끼었다고 생각한 순간, 창문은 수평을 잃고 액자 속 그림은 몇 겹으로 포개진다, 잠깐 사이, 벽을 벽이라고 말해준 물방울 꽃잎은 날 모른 척한다, 그것은 늘 같은 경험이다, 반 쪽 창의 박음질이 흔들릴 때마다 불구처럼 내 안에서 욱신거리는 적색 신호등, 아이들은 문턱에 매달린 그네를 타고 미래로 가는 타임머신을 꿈꾸기도 한다 불룩하게 펼쳐주는 세상, 그곳에서 아이들은 달에 진입하는 커다란 콩나무를 상상했을 것이다 오늘도 자석 쿠폰을 세어보는 아이들, 이사 가는 희망에 대해선 조르지 않는다 벽은 낙서투성이고, 문지방은 닳아빠지고, 거기서 조금도 비켜서지 못하는 나, 수분이 마른 트리안 잎 속으로 엉기는 작은 개미들, 뼛속으로 구멍 같은 시간들, 안경알 속으로 붉은 현기증이 돈다 





**약력:2014년 《문학의 오늘》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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