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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시/차진화/내 문패 들여다보는 오래된 기억 외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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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시
차진화
내 문패 들여다보는 오래된 기억
약발 없이 살아온 몸매 깃든 숲에 햇살 찍어먹은 새 떼들의 언어로도 열지 못한 한 그루 나무열매를 입안에다 굴리고 있을 때 열리는 대문 앞에까지 걸어가서 읽어본 이름
어느 숲길에서 나를 부르며 서있는 어머니 모습처럼 그냥 웃기만하여 더 가까이 다가가 내 입술이 닿을 듯 떠올리는 발자국을 만나는 순간 먼저 알아차리고 껴안아주던 이름 부르지 않아도 나도 나무였다고 가리키는 대문 안 한 마리 하얀 벌레가 내 생명을 새겨넣으면서 열매가 되는, 바로 열매 속에서 살다가 죽은 줄도 모르고 살다가 너를 만나서 반가워 그리운 이름 부르기로 한 기약 네 네 알거라고 네 모습만 달리한, 부르면 똑같은 이름소리
일러주어서 우리는 열매 따먹을 때 생각나지, 단물나는 그 집 문패이름 한 그루 숲이 되기까지 되새김질하게 되는 너무 외로웠던 나무끼리 서로 불러 세우면서 원래 네가 써둔 기억 다시 만나도록 한 것뿐이야
마른 멸치
상자를 열자 멸치들이 살던 바닷길이 보인다
가늘고 짧은 은빛 반짝거림
얼마나 촘촘한 그물이면 빠져나갈 수 없었을까
그 마른 모양 들여다보면
둥글게 뼈를 말고 눈뜬 채 잠든 입도
못다 이룬 사랑 부둥켜안은 몸도 있다
그 중 초록빛 파도와 맞선 흔적
여기저기 찢겨진 꼬리도 있다
떼지어 삶아지는 순간조차
강하게 바다를 움켜쥐었을
그의 유전은
넓은 바다를 거침없이 내달리는
바람의 피가 흐르고 있는지 모른다
상품 가치라고는 없는 봉고차 떨이 양식이 되어
비록 좌판 위에 펼쳐졌어도
그의 싱싱했던 길 읽어지는 것이다
이제 그를 밥상에 올리고자 한다
식구 중 누군가 놈과 같은 행동을 할 때
오늘 먹은 그를 후회할지도 모르지만
죽음 앞에서도 죽지 않기 위해 빳빳한
그가 헤엄쳐 온 꿈 한 줌 빛가루로 꼭꼭 씹어주고자 한다
머리에 붙은 심장까지
우리의 조우가 평등한 바다라 생각되는 저녁
**약력:2014년 《시문학》으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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