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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시/이문희/노송동 산98번지 외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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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시
이문희
노송동 산98번지
한나절 뻐꾸기가 울었다
이름 모를 산새나 쫓아다니던 동생들은
목덜미가 까맣게 타는 줄도 몰랐다
노송재 너머 남부시장에서
한 광주리 가득 땅거미를 이고 온 엄마
머릿수건을 벗어
탈탈 집안 구석구석 어스름을 털어냈다
바람도 없이 삼십 촉 전등은 흔들렸고
돌아앉은 엄마 등 흐릿했다
아버지 기다리지 마셔요
우리끼리 살아요
제법 철든 척하는 큰딸의 위로에도
싸전다리 근처 어디쯤에 입술 빨간 여자와
솥단지를 걸었다는 풍문만
밤새도록 안방 천장에 뛰어다녔다
그해 여름방학이 끝나도록 나는
손톱을 물어뜯었다
물들일 손톱도 없어 봉숭아꽃만 죄 짓밟았다
엄마는,
애꿎은 목단꽃 이불호청만 뜯었다 시쳤다
재 넘어 간 뻐꾸기는
이듬해 또 그 이듬해도 어김없이 찾아왔고
솔밭은 거웃처럼 짙어만 갔다
망해사望海寺
탑처럼 쌓여있는
서류뭉치들을 모른 체 하겠습니다, 자
지금부터 나는 부재 중입니다
제 꿈은 어디에 있는 걸까요?
갈매기만 꿈을 꾸는 걸까요?
오늘은 잃어버린 나를 찾겠습니다
새털처럼 가벼워질지 누가 알겠어요
저 바다 멀리 마중 나가렵니다
양손 가득 무언가 들었다가
돌아올 때는 늘 빈손이었지만 오늘은
두 주먹 꽉 움켜쥐겠습니다
마음속에 연등 하나 밝히겠습니다
청조헌 마루에
부려놓았던 하루를 거둬들일 시간입니다
갈매기도 끼륵끼륵 제 집을 찾아 갑니다
눈이 짓무르도록 바다나 보고 가지만
그만 지루한 하루는 잊겠습니다
**약력:2015년 《시와경계》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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