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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단편/송은일/참새가 다녀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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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부
댓글 0건 조회 2,315회 작성일 17-01-02 1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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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단편

송은일







참새가 다녀갔다



     어제, 한바탕 비가 지나간 오후였어. 책상 앞에 앉았다가 커피를 타오려고 방을 나서는데 현관문에 쳐 놓은 망사커튼이 나부끼면서 벌어진 사이로 뭔가가 휙 날아들었어. 내 작업실은 사거리 모퉁이 집의 이층이고 현관문이 서향에 나 있잖아. 이번 여름 들면서 망사 커튼을 쳤어. 바람은 들어오게 하되 파리나 모기는 막아볼 심산으로 나름 공들여 단 거야. 방충문을 설치하면 되겠지만 사글세 살면서 남의 집에다 돈 들이기 싫은데다 대충 버티면 또 여름이 지나가겠거니 하고.


    커튼 사이로 휙 날아든 뭔가는, 참새였어. 참새 저도 놀랐겠지만 나도 놀랐지. 자기가 무슨 가미가제 특공대도 아니고 넓은 바깥세상 놔두고 하필이면 내 커튼 사이로 속사포처럼 날아 들어와서, 이 벽에 부딪쳐 소스라치고 저 창에 부딪쳐 자지러지고 천정에 부딪쳐 파닥거리고. 들어온 곳으로 나가면 될 텐데 그걸 못하는 참새 때문에 나는 이창 저창의 방충 창들을 여느라 수선을 피웠잖아.
     “이쪽이야 이쪽. 야, 다친다, 살살 날아.”
   내가 저를 달래건 어르건 알아듣지 못하고 여기저기 부딪치고 날아다니던 참새가 출구를 찾았다는 듯이 길가 쪽 방으로 들어갔어. 그 방의 창으로 나가게 하자 싶어서 나는 서둘러 쫓아가 방충창을 드륵 열었지. 참새가 훅 나갔더라면 좋았을 텐데 웬걸, 나가라는 참새는 안 나가고 방충창이 훅 떨어져 나간 거 있지. 방충창이 창틀에서 이탈한 거야. 밑에서 턱 터덕 소리가 나대. 차 운전하다 다른 차 꽁무니를 박을 때처럼 아찔했어. 그쪽 창밑에 대개 차가 주차되어 있거든. 내다봤더니 다행히 방충창은 회색 승용차와 일층 외벽 사이로 추락했더라고. 네 모서리가 어긋나 깨지고 방충 철망은 구겨져 있고.
     “아이고, 새야. 참새야. 너 왜 이러니.”
   내 부주의를 탓하지 않고 참새를 탓했어. 떨어져 나간 방충창 때문에 내가 기막혀 하는 사이에 참새는 사라졌어. 그나마 다행이다 싶어 계단을 내려가 밖으로 나가봤지. 까딱했으면 내 방충창에 맞아 찌그러졌을 지도 모를, 그래서 자동차 수리비까지 왕창 물어줄 수도 있었을 회색 차는 뒷집 젊은 부부의 것이었어. 이 동네의 집들은 거의 비슷하게 생겼어. 붉은 벽돌로 지어진 낡은 양옥들이 담을 면해 붙어 있고 옥상에는 전부 두 줄짜리 빨랫줄이 걸려 있지. 옥상에서 고추나 블루베리 등을 가꾸는 집들이 드문드문 있고.
뒷집도 내가 세든 집과 흡사한 구조로 된 이층집인데 일층엔 아들 부부가 살고 이층에 60대의 홀어머니가 살아. 그 식구는 숯불구이 고기 식당을 운영하는 모양이야. 그 어머니와 나는 옥상 동무야. 작년 봄에 서로의 옥상에 있다가 아주머니가 나한테 말을 걸어오면서 사귀게 됐어. 뒷집 아주머니는 발코니에다 크고 작은 화분 식물들을 난분분하게 가꾸고 옥상에서는 상추와 부추와 호박, 토마토 같은 채소류를 키워.
   오후가 되면 대개 뒷집이 비는데 아주머니는 늦은 밤에 들어오고 아들 내외는 새벽에 들어와. 그 때는 아들 내외가 아직 집에 있었나 봐. 지난 새벽에 자기네 대문 앞에 다른 차가 주차되어 있었던 탓에 내 창 아래에다 차를 대놨던 거지. 그 차가 상하지 않는 것만도 감지덕지다 하고 깨진 방충창의 조각들을 옮겨다 내 작업실로 오르는 계단에다 세웠어. 그러고 있는 참에 마당에 나와 있던 내 집주인 아줌마가 나를 보고 물었어.
      “무슨 일 났어?”
   집주인 아줌마는 작달막하고 퉁퉁한 몸피에 얼굴이 취한 사람처럼 불그스레해. 그이는 일주일에 두 번 대중탕에 가는 걸 빼고는 밖엘 나가는 일이 거의 없어. 애들 아버지는 있는 것 같은데 남편이 있는지는 모르겠고. 딸은 스무 살에 결혼해서 나갔다 하고 아들은 작년에 제 아버지하고 같이 일하면서 살기 위해 그쪽으로 갔어. 서른 살쯤 된 그이 아들은 영화배우처럼 잘생겼어. 아들 자랑을 곧잘 하는 그이는 여름이면 노상 허연 러닝셔츠를 걸치고 남자용 트렁크 팬티를 핫팬츠처럼 입고 지내. 브래지어를 입지 않아서 젖퉁이는 덜렁거리고 겨드랑이 털은 삐죽거리고 미용실을 일 년에 딱 두 번 간다는 반백의 머리카락은 정수리에 상투처럼 동여맸고. 그이의 그런 입성을 볼 때면 나는 내 입성을 살펴. 그이 꼴이나 내 꼴이나 비슷하다 싶으면 반성하지. 조심하자 조심해, 다짐도 하고. 반성도 다짐도 말짱 도루묵이 되기 일쑤지만. 
     “참새가 들어와서 쫓아내려다 방충창을 떨어뜨렸네요.”
내 말에 그이가 얄밉게 한 마디 하데.
     “참새 땜에 돈 쓰게 생겼네.”
   스스로를 몽이 엄마라고 부르는 그이는 몽이와 난이라는 이름의 개 두 마리를 키워. 몽이는 서너 살쯤 됐는데 송아지만한 몸피에 돼지처럼 피둥피둥해. 그런데 햇빛에 반사된 녀석의 연황색 털빛은 신비하리만치 아름다워. 난이는 열 두세 살쯤으로 조막만하고 털이 거의 없어. 못 생겼고 나만 보면 사납게 짖어대기 때문에 미워. 어쨌든 출입하는 문이 따로 있고 작업실로 오르는 계단과 마당 사이에 담이 있기 때문에 내가 개들로 인해 불편할 일은 없어. 그 놈의 개 냄새만 아니라면 말이지.
   작년 여름에는 내가 작업실을 자주 비웠잖아. 백두산에 가고 섬진강에 가고 시어머니 편찮으시어 병문안 다니고 친정어머니가 딸년 얼굴 잊어먹겠다고 불만하시어 친정에도 가느라고. 작업실을 자주 비운 탓에 개 냄새에 그다지 신경 쓰지 않았어. 이번 여름 들면서 개 냄새를 느끼게 됐는데 한 번 의식하고 나니까 불편할 정도로 심해. 
내가 작업실로 빌린 이층은 서쪽을 제외한 삼면이 일 미터 폭의 발코니로 둘러싸여 있어. 계단을 올라와서 현관문이 있고 현관 오른쪽으로 발코니를 돌다보면 옥상으로 난 계단이 있지. 이 집을 빌려 들어온 직후부터 화분 식물들을 키우기 시작했잖아. 집에서 내 방을 빼올 때 싣고 나온 화분 몇 개가 시초였지. 두 해 남짓한 동안에 식물들이 앞쪽 발코니를 빙 두르고 옥상을 얼추 채울 만큼 숫자가 늘었어. 나는 아침에 일어나면 장원의 영주가 정원을 순례하는 것처럼 짐짓 나른하고 거만한 몸짓으로 식물들을 살피면서 옥상으로 올라가지.
   요즘 내 정원에 핀 꽃이 이십 여 가지쯤 돼. 색색의 나팔꽃과 접시꽃들, 일일초와 바늘꽃과 병꽃과 분꽃들. 매발톱 꽃과 봉숭아와 채송화와 천사의 나팔꽃과 악마의 나팔꽃, 다섯 가지 색깔의 장미꽃들. 만데렐라. 재스민. 부겐베리아. 배롱나무 꽃. 국화도 꽃망울을 터트리기 시작했고. 장원의 영주처럼 꽃을 누리기 위해 나는 장원의 노예나 화훼농장의 막일꾼처럼 일하곤 해. 식물들은 자꾸 크고 번식하기 때문에 크면 화분을 갈아줘야 하고 싹이 나면 옮겨 심어줘야 하지. 식물들은 물만 먹는 게 아니라 흙도 먹는 것 같아. 가만 둔 화분의 흙도 조금씩 낮아지더라고. 이따금 새 흙을 넣어주어야 하는 거지. 이래저래 흙이 많이 필요한데 옥상에 흙이 어딨어. 나는 배양토와 마사토를 사다가 일대일로 섞어 써. 흙이 얼마나 무거운지 알잖아. 한 포대를 옥상으로 옮기고 나면 온 몸에 진이 다 빠져. 누가 시켜서 하는 일이라면 쿠데타를 일으켰을 거야. 아무튼 그러느라 얼굴이 검게 그을렸고, 손가락은 관절들이 삐거덕거려서 정형외과에도 갔을 정도야.
   그렇게 가꾼 내 식물들의 향기를 맡기 위해 코를 큼큼거리다보면 아래층에서 올라오는 개 냄새가 먼저 느껴진다는 거야. 누린내. 지린내. 구린내. 그것들을 가리려고 뿌린 후터분한 계피냄새와 그 모든 냄새를 아우른 들척지근한 냄새까지. 일층에서 올라오는 냄새는 강하기보다 은근하고 집요해. 
집안에서 사는 몽이와 난이가 마당에 나와 오줌똥을 싸면 물론 몽이 엄마가 치워. 잘 치우지. 하루 종일, 일 년 내내 개 두 마리의 똥오줌을 치우면서 사는 게 그이의 일과인 것처럼 보이니까. 덕분에 그이 마당에 깔린 타일은 티끌 하나 없이 반짝반짝 해. 그런데도 물로만 씻기 때문에 냄새가 나는 거야. 그리고 방향제랍시고 직접 제조한 계피물을 뿌리고.
   이번 여름 들면서 내가 몽이 엄마한테 락스로 마당을 닦으면 어떻겠냐고 말했어. 제안한 거지. 물에다 락스 몇 방울 섞어 마당을 씻어내라고. 방향제 대신 냄새 없애는 소취제消臭劑를 뿌리시라고 했고. 물론 세입자 처지에 당당하게 요구하지 못하고 비굴하게, 미안쩍은 투로 미리 사온 락스와 소취제를 건네면서 부탁했지. 난 이 집이 마음에 들거든. 모퉁이 집이라 환하고 창이 많고. 낡은 동네라 한적한 편이고 가까이 산책로가 있고, 옥상에 올라가면 하늘이 온통 보이잖아. 그런데 몽이 엄마가 대번에 거절하더라고.
     “락스가 얼마나 독한데! 그리고 가게에서 파는 화학제가 애기들한테 좋겠어?”
   딴은 그렇지. 나도 내 식물들한테 수돗물보다 빗물이 좋을 것 같아 비올 때마다 빗물 받느라 수선을 피우니까.  몽이 엄마 말에 수긍은 했어. 하지만, 내가 락스를 개들한테 먹이랬어? 소취제를 애들 몸에 뿌리랬냐고. 비위가 확 상했어. 그때부터 몽이 엄마하고의 관계가 불편해 졌지. 
참새 때문에 방충창을 날리고 나서 지역상가 정보지를 찾아 설비 가게에 전화를 했어. 이러저러해 방충창을 수선 해야겠다, 언제 와서 해 줄 수 있고, 가격은 얼마냐. 내 질문에 설비가게 아저씨가 그게 알루미늄 틀이 아니라 하이새시 틀이라 수선할 수 없고 새로 제작해야 하는데 10만 원이라고 하더라고. 조금 있다 가서 치수 재고 주문 넣으면 내일 달아줄 수 있다 하고. 참새 때문에 십 만원을 쓰게 생긴 거지. 방충창이 없으면 물것들이 들어와 나를 괴롭힐 테니 미룰 수도 없고.
가능한 빨리 와서 해결해 달라하고 전화를 끊는 참에 뒤쪽 베란다에서 무슨 소리가 나데. 앞쪽으로는 발코니가 트여있지만 뒤쪽으로는 투명 유리가 덮여 있어. 덕분에 그쪽에서는 뒷집의 일상이 훤히 보이지. 마찬가지로 그쪽에서도 내가 훤히 보이겠기에 늘 조심하는 편이야. 그래도 일상을 전부 가리며 살 수는 없기 때문에 언뜻하면 비치는 거지. 워낙 가까우니까. 새벽에 들어온 일층의 부부가 거실에서 속옷만 입고 돌아다니는 거며 그들의 어머니가 이층에서 아침이면 잠옷차림으로 발코니에 나와 화분식물들을 들여다보는 거며. 지난달에는 제사를 지내는 것도 봤어. 나는 그 동안 제사상은 북쪽을 향해 차리는 걸로 알았는데 그 식구들은 제사상을 거실 창 쪽에다 차렸데. 뒷집 아주머니의 남편 제사 같았어. 나가 사는 큰아들 식구와 딸 식구, 작은 집 식구들까지 제법 많은 사람이 모여서 진설하고 촛불을 켰을 때에야 나는 에고, 죄송하네요, 하며 비켰어. 까딱했더라면 내가 그 식구들한테 절 받을 뻔했지 뭐야.
   뒷집이 그렇게 훤히 보이는 내 뒤 베란다에서 생긴 깔밋잖은 소음의 원인은 참새였어. 좀 전에 참새가 밖으로 나간 게 아니라 뒤 베란다로 갔던 거지. 후다닥거리고 있데. 뒤 베란다 유리벽에는 창이 두 개 나 있어. 방충창이 만들어져 있지 않아서 잘 열지 않는 창문인데 참새를 내보내기 위해 열었어.
     “좋은 말로 할 때 곱게 나가라. 내가 널 치워야 하는 사태가 나기 전에 말이지.”
   참새한테 단단히 경고 해 놓고 들어와서 뒷문을 닫았어. 비온 뒤라 모기들이 들어올 게 뻔하니까. 참새 때문에 멈췄던 일상으로 돌아왔어. 봉지커피를 타서 책상으로 돌아오는데 앞쪽 골목 건너 이층에 사는 놈이 눈에 들어오데. 스무 살은 넘었고 서른 살은 못 되었을 것 같은데 허구한 날 컴퓨터와 텔레비전 앞에서 노는 놈이야. 컴퓨터 두 대에 텔레비전이 석대쯤 되는 것 같아. 놈은 지난 초봄에 연회색 고양이 한 마리를 데리고 앞집 이층으로 들어왔어. 나는 첨에 그 고양이한테 '삼룡이'라는 이름을 붙였어. 벙어리라는 뜻으로. 지금은 주인녀석을 삼룡이라 부르지. 삼룡이는 곱슬머리에 키가 작고 배가 항아리처럼 나왔는데 만날 팬티만 입고 지내. 노상 창문을 열어놓고 지내기 때문에 이따금 눈이 마주치기도 하는데 삼룡이한테는 내가 보이지 않나 봐. 아주 의연하게 나를 무시하거든. 저를 쳐다보는 눈을 아랑곳하지 않는다는 거지. 노상 방충망 안쪽의 창턱에 앉아 있는 의뭉한 눈빛의 고양이도 마찬가지고.
     “네 엄마는 네가 그 꼴로 사는 모르겠지?”
    삼룡이한테 괜히 한마디 속으로 쏘아주곤 창문을 반나마 닫아 버리고 책상에 앉아 컴퓨터를 마주했어. 커서가 깜박거리는 곳이 내 일터잖아.
요즘 내 일터는 1762년의 조선이야. 영조임금이 즉위한지 38년째 되는 임오년壬午年 여름이지. 실록에 의하면 그해 5월 22일에 사도세자는 나경언이라는 사람한테 고발을 당해.
    -세자가 첩지 받은 궁인을 살해하고, 여승들을 궁중에 불러들여 풍기를 문란시키고, 대전大殿의 허락도 없이 관서지역에 몰래 다녀왔으며, 처소에다 빈청을 차려놓고 곡소리를 내며, 그 방안에 무기들을 쌓아놓고 환관들과 함께 모반을 꾀한다는 소문이 도성 안에 퍼졌는바, 백성 된 자로써 성상전하께 상신하옵니다.
   그렇게 세자의 비행을 고발하는 나경언의 상소문이 영조한테 들어간 날이 5월 22일인데 당시에는 음력을 썼으니까 5월 22일은 양력 7월에 해당하겠지. 염천 더위에 살 떨리는 상소문을 읽은 영조는 즉각 나경언을 잡아들이라 명해. 잡혀온 나경언을 친히 국문鞫問하고. 그런데 나경언은 영조의 친국장에서 고신, 즉 고문을 당하지 않아. 그렇기는커녕 영조로부터 충직한 자로구나, 라는 치하까지 듣지. 나경언은 전옥서典獄署에 감금되기는 했지만 고변 상소에 나타난 내용들을 확인하는 대로 풀려날 것 같아.
당시 영조는 경희궁에서 지냈어. 경희궁으로 불려갔던 사도세자는 아버지 영조한테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하면서 나경언과의 대질을 간청해. 묵살 당하지. 뿐만 아니라 네 놈의 행실이 글러 이따위 소란이 일어난 것이니 네 놈의 궁에서 한 발짝도 나서지 말라는 호통을 듣고 내쫓겨. 경희궁까지 걸어서 갔던 세자는 창경궁으로 걸어 돌아오면서 학질에 걸린 것처럼 떨었다고 해. 자신이 오래도록 저질러 온 짓들이 워낙 많으니 두려웠겠지. 느닷없이 자신을 찌르며 나타난 나경언과 그 배후세력들에 대해 분노했을 테고. 
나경언이 옥청에서 풀려날 때를 기다리며 한가로이 지내는 동안 조정에서는 나경언을 처형해야한다는 파와 그의 충정을 보아 방면하면서 상급을 내리자는 파로 갈려 일대 분란이 나. 그리고 5월 25일에, 세자를 따라 관서지역에 갔던 당시 익위사들의 관직이 모조리 삭탈돼. 26일에, 세자를 모시던 내관 셋이 처형되고. 27일 새벽에 세자가, 나경언의 아우인 나상언을 잡아들이라 익위사에 명해. 날이 다 새기도 전에 나경언의 아우 나상언이 창경궁 시민당으로 잡혀 와. 국문장에서 세자가 나상언에게 네 형 경언이 나를 참소한 배후를 대라 하지. 나상언이 알 턱이 없잖아. 대답을 못하지. 나상언은 세자의 익위사들한테 고신을 받다 그 자리에서 숨이 끊겨.
   그날 오후 3시 경에 세자를 모함한 대역죄인 나경언을 참수하라는 영조의 처분이 내려. 세자가 온갖 비행을 저질렀을망정 대역을 꾀한 건 아니므로 죽일 수 없잖아. 세자니까. 대신 세자를 걸고 넘어 진 나경언은 살려둘 수 없지. 그를 살려두면 세자의 죄를 물어야 하니까. 그리고 1762년 5월 27일이 저물었어. 
2015년 여름을 살고 있는 나의 하루도 참새가 벌인 소란과 함께 일단 저물었어. 하루치의 일을 할만치 했고 밤에 친구 수니가 놀러 온다고 했기 때문에 컴퓨터를 껐지. 수니를 기다리며 놀자 하고 옥상으로 향했어.
    여기다 작업실을 얻고 나서, 글을 쓰다 막히거나 뭔가가 치받치거나 넌더리가 날 때마다 가는 데가 옥상이야. 화분 수가 대폭 늘어난 이유지. 손전등 놀이는 지난봄부터 시작했어. 환할 때 보는 식물들과 어둠 속에서 손전등으로 비춰보는 식물은 달라. 좀 거창하게 표현하자면 존재의 면면이 새롭게 드러난다고나 할까? 파리가 식물 이파리를 잠자리로 삼기도 한다는 사실도 손전등 놀이 덕분에 알게 됐어. 식물 이파리에 붙어 자는 파리는 손전등에 비춰지면 꼼짝을 안하거나, 못해. 내가 엄지와 검지로 집게를 만들어서 집으면 집힐 정도야. 몇 번 손가락집게로 잡아 봤는데 옆 사람 어깨에 붙은 머리카락 집어내는 것보다 쉬워. 죽일 수 없는 게 문제지. 내 엄지와 검지 사이에서 파리가 으깨지는 느낌을 실험하기는 싫으니까.
   그렇다고 파리를 그냥 둘 수는 없지. 저랑 내가 무슨 원수지간까지는 아니지만 내 평생 모기나 파리는 가능한 한 죽이는 거라고 알아왔잖아. 게다가 낮에 옥상에 가서 꽃잎들에 붙어 있는 파리들을 보면 화나. 화사한 꽃잎에 새까만 것들이 붙어 있는 게 얼마나 흉한지 몰라. 나비, 잠자리, 무당벌레, 벌 메뚜기, 참새, 어치, 비둘기 등은 내가 가면 달아나거나 슬금슬금 피하기라도 하는데 파리들은 도망도 안 쳐. 잡으려고 들면 귀신보다 빨리 달아나면서 약을 올리고. 이것들을 죽이긴 죽여야 하는데 파리채로는 불가능해. 전자 파리채로도 어림없어. 살충제로도 어려워. 식물들만 상하지. 그래서 생각해 낸 게 면장갑이야. 어떻게? 파리가 붙어있는 식물 이파리를 면장갑 낀 손바닥으로 탁 마주치는 거야. 파리는 둔탁한 박수소리와 함께 죽지. 으스러지지는 않고 톡 떨어져. 낮에는 한 마리도 못 잡는 파리를 밤에는 열 마리도 넘게 잡는데, 나 미쳤나 봐. 진짜 재밌어. 
맹렬한 투지와 끈기로 파리 사냥을 끝내고 나면 면장갑을 벗고 손전등을 들고 짐짓 느린 몸짓으로 식물들을 비춰보면서 거닐어. 화분들로 길을 만들어 둔 덕에 거닐 만 해. 파리를 손으로 잡는 짓 같은 건 절대 못하는 얌전한 여자처럼 가만가만 움직이면서 생각은 다시 1762년 여름의 한양으로 돌아가지.
그해 5월에 윤달이 들었다고 해. 윤오월에 영조는 사도세자한테 자결하라는 대처분을 내리게 돼. 내 소설 속의 당시 사람들은 사도세자가 한 달 뒤쯤에 죽게 되리라는 걸 모르니까 고변 사태가 유야무야 되리라 짐작하지. 나는 사태가 어떻게 진행될지 알고 있고, 그 사태를 나경언의 시점으로 봐야 하는 대목에 이르러 있으니까 생각을 계속해야지.
   나경언은 왜 사도세자를 상대로 고변을 일으켰을까? 『한중록』에는 영조의 계비繼妃 정순왕후를 중심으로 뭉친 세력들이 나경언을 사주하여 고변을 일으킨 걸로 쓰여 있어. 그가 사도세자와 무슨 관련이 있었는지는 나오지 않고. 당시 나경언이 이조판서 집의 청지기 노릇을 했다지만 청치기는 청지기일 뿐인데, 세자를 넘어뜨리고 나서 자기가 얻을 건 무엇이라고 생각했을까? 영조와 사도 세자는 워낙 사이가 나빴던 것 같고, 사도 세자는 미친 짓을 많이 한 것 같지만 그래도 하나 밖에 없는 왕의 아들이고, 부왕을 대신하여 정무를 해온 지 십년이 넘은 작은 임금인데 나경언은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하게 된 걸까. 그를 사주한 자들이 그에게 어떤  미래를 약속 했을까. 그는 그들의 말을 믿었을까? 그는 그렇게 어리석었을까? 결국 신분 상승에 대한 욕망 때문에 청맹과니가 되고 만 걸까? 하지만 그렇게 단정하기는 좀 도식적인 것 같잖아? 재미도 없고!
      “결국 전옥서에 가서 나경언을 만나봐야겠네.”
    내가 소리 내서 스토리를 정리하고 있는데 오른쪽 집 옥상에서 무슨 기척이 났어. 그 집 개였어. 이름이 스뎅이야. 이름이 재미있지. 스뎅은 스테인리스의 일본식 발음인데 팔순의 할머니가 지은 이름이래. 이 동네는 개 키운 집이 많아서 어떤 날 온 동네 개가 한꺼번에 짖어댈 때면 정말 개판 같아. 스뎅은 아주 얌전해. 좀처럼 짖지 않아. 자기네 옥상에다 똥을 누는데 그 똥은 스뎅이 할머니가 오르내리며 치우셔. 몽이와 난이의 냄새에 질려서인지 스뎅은 냄새도 나지 않는 것 같아. 나를 보고 짖지 않고 냄새도 피우지 않으니 예쁠 수밖에. 예쁘니까 곧잘 주전부리를 주게 되더라고. 소시지나 통조림이나 고기조각이나.
스뎅이네 옥상 난간과 내 옥상의 난간 사이는 30센티 정도 되나 봐. 옥상으로 오르는 계단도 나란히 붙어 있고. 내가 옥상으로 올라가면 스뎅이 금세 자기네 옥상으로 올라오는 이유지. 내 기척을 느끼는 거야. 난간에다 두 발을 척 걸치고 서서 나를 넘어다보며 꼬리를 흔드는 녀석은 귀여워.
      “스뎅, 아줌마가 지금 빈손이네. 내일 통조림 꽁치 줄게. 지금은 그냥 놀아.”
   이웃집 아줌마의 말을 알아듣는 녀석이 꼬리를 흔들곤 자기네 옥상 바닥을 뒹굴데. 스뎅이 혼자 노는 걸 보면 배부른 아기가 제 제 손발 가지고 노는 것 같아. 녀석을 지켜보면서 좀 더 있었을 텐데 스뎅이 할머니가 옥상으로 올라오시는 기척에 슬그머니 내려왔어. 계단을 다 내려온 참에 할머니와 딱 부딪쳤고.
      “어두우니까 조심하세요, 할머니.”
    예사롭게 인사하고 지나쳤지. 스뎅이 할머니는 젊었을 때 참 예뻤을 것 같아. 얼굴에 검버섯이 많이 피어 있지만 피부가 참 희고 주름살에 묻혔음에도 이목구비가 뚜렷하거든. 작년 이른 봄에 발코니에서 인사를 나눈 뒤로 마주치면 이야기를 나누게 됐어. 나는 남 이야기를 듣기 좋아하는 편이고, 직업 때문인지 남의 삶의 이면까지 들여다보고 싶어 하지만 한계가 있지.
      “참말로 부지런하당게. 솜씨 좋고 기운도 씨고!”
그렇게 내 꽃나무 가꾸기에 대한 칭찬으로 시작되기 마련인 스뎅 할머니의 독백은 자신이 젊은 날에 얼마나 예뻤는지, 얼마나 잘 살았는지에 대한 회고로 넘어가. 1950년 여름에 할머니는 열여덟 살이었고 부잣집의 동갑내기 청년하고 가을에 혼인하기로 돼 있었어. 정혼하고 베갯모에 원앙새를 수놓고 있을 때 전쟁이 터졌어. 스뎅 할머니는 그 가을에 혼인을 못했어. 스무 살에 혼인했는데, 정혼했던 그 사람이 아니라 다른 사람, 그러니까 아드님의 부친하고 혼인했지.
내가 정작 궁금한 대목은 거기부터인데 스뎅 할머니의 회고는 항상 거기서 끊겨. 4,50년을 훌쩍 건너뛰어서 곧장 현재에 대한 한탄을 시작하는 거야. 내가 끼어들어서, 정혼했던 부잣집 청년은 어떻게 됐냐고, 왜 그 청년하고 혼인 못하고 다른 사람한테 시집가셨냐고 물으면 듣지 못한 것처럼 싹 무시하고 당신 말씀만 이어가시지. 바깥양반 돌아가시고, 잘 살던 시골 살림 정리해서 아들 집에 얹히게 되었는데, 아들이 다 말아먹고 남의 집으로 세 살러 들어왔고, 오십이 넘은 아들은 날마다 술에 취해 살고 오십이 넘은 며느리는 삼교대 하는 큰 회사의 공장에 다니느라 밤낮이 없고, 당신은 스뎅이하고만 지내느라 입 안에 곰팡이가 슬 지경이라는 것. 
      “인생이 남가네 일몽이여. 젊을 적에 재미나게 살어. 일장이 춘몽이랑게.”
스뎅 할머니가 당신 삶의 회고를 마치면서 후렴처럼 꼭 덧붙이는 말이야. 스뎅 할머니의 남가일몽南柯一夢과 일장춘몽一場春夢을 듣고 있으면 나는 호접지몽胡蝶之夢이 떠올라서  고개를 끄덕이곤 하지. 지금까지 열 번 넘게 고개를 끄덕였을 거야. 그 무한 반복의 남가네 일몽과 일장이 춘몽인 이야기를 그만 듣고 싶어진지 꽤 됐어. 슬금슬금 할머니를 피하게 된 거지. 나도 나이가 더 들면 남의 말은 전혀 듣지 않고 오직 자신의 말만 하고 싶은 노인이 되겠지? 그렇게 안 되면 좋겠는데 나한테 벌써 그런 조짐이 나타나고 있어.
내 책상 주변에 붙여놓은 시구들이며 문구들 중에 존 오든의 희곡 「행복한 보금자리」에서 따온 독백 문장이 있어.



나는 늙은 여자. 살날이 얼마 안 남았지.
나는 받아먹을 힘밖에 없지, 줄 기운은 없어. 줄 시간도 없고.
나는 마시고 싶어. 먹고 싶어.
내 신발은 남이 벗겨 줬으면 좋겠어.
난 말은 하고 싶어도 걷기는 싫어. 걸으면 내가 가고 싶은 곳이 어딘지 생각해야 하니까.
잠은 자고 싶어도 꿈은 꾸기 싫어.
놀이를 하고 싶을 때마다 이기고만 싶어.
사랑은 받고만 싶지 주기는 싫어. 세상이 움직여도 난 움직이기 싫어.
나는, 나는 자꾸 자꾸 원하기만 해. 세상이 날 위해 더 잘 일해 주기를.
날 내버려 둬. 하지만 혼자 두진 마.
그게 내가 바라는 거야.
 
    어디선가 이 문장을 읽었을 때 어머나, 어머나, 어머나! 연발로 감탄사를 터트렸잖아. 딱 내 맘을 꼬집어 놓은 것 같아서. 당장 베껴서 벽에다 붙였지. 이렇게 써먹게 될 줄 알았나 봐. 이래서 나는 글이 좋아. 내가 쓰든 남이 쓰든 내가 드러내고 싶은 것을 표현해 주니까.
스뎅 할머니 피해 내려와 씻고 난 참에 수니가 왔어. 수니는 작년 봄가을에 다녀가고 세 번째 방문이야. 당연히 옥상에서 놀기로 했지. 비닐 돗자리 올려다 깔고, 돗자리 주변에 모기향 몇 개 피우고 양초 있는 대로 가져다가 불 붙여 옥상 곳곳에 놓고, 수니가 사온 피처 맥주를 와인 잔에 따라 마시면서 수다를 떨었어. 달은 구름 속을 드나들고 바람은 부드럽고 술은 맛있고. '꽃이 지기로소니 바람을 탓하랴'고 조지훈의 「낙화」를 읊으면서. 늙어가는 여자들의 향연이지. 손가락 부러지기 직전까지 일해서 정원을 가꾼 보람이 무럭무럭 솟는 시간이랄까.
수니도 작가잖아. 수니는 소설 쓰면서 신문사의 객원기자로도 일하기 때문에 세상 돌아가는 일에 훤해. 이백 오십 년 전 조선과 화분 식물만을 현실 삼아 살고 있는 나에 비한다면 말이지. 내 옥상 정원의 꽃구경을 마친 수니가 요새 문단을 떠들썩하게 하고 있다는 표절 논란 작가에 대해 말했어. 그 이야기를 나도 듣고는 있었지. 얼마 전에 다녀간 후배하고도 나눴던 이야기고.
나는 이번 표절 논란에 대해서 검색해 보지는 않았어. 표절 논란에 휩싸인 그 작가의 작품을 읽은 지 오래 되었기 때문에 인터넷 검색창을 클릭하는 순간 내 저의가 불순해 지리라는 걸 알기 때문이야. 나는 그 작가의 작품을 읽지 않은 게 아니라 읽지 못했어. 나는 심사가 옹졸한데다 나약해서 동종 업계에서 잘 나가는 작가들을 질투해. 앞서 다녀간 후배 신희가 소설을 많이 읽잖아. 물론 내 소설도 다 읽었고. 그런데 신희가 어느 작가의 어떤 작품이 좋더라, 하는 말만 해도 나는 그 작가를 시샘해. 누군가 내 소설을 읽고도 저런 말을 하려나, 작가로서의 나를 의심하게 되고. 수니는 나보다 순수해서 훨씬 객관적인 시선으로 표절에 걸린 작가의 작품들을 비판할 수 있는 거지.
소설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면서 맥주 몇 통을 마셔 치우고 있는데 수니한테 전화가 왔어. 수니의 연인이었어. 수니는 젊을 때 이혼했고 마흔 넘어서, 역시 이혼하고 혼자 지내던 남자를 만나게 됐어. 두 사람은 재혼 같은 거 생각지 않고 같이 살지도 않으면서 십 년 가까이 만나는 중인데 여전히 애틋해. 그래서 아름답고. 수니의 연인이 와서 술에 잔뜩 취한 수니를 데리고 갔어. 나는 옥상에 혼자 남아서 술을 더 홀짝이다가 촛불들을 다 끄고 모기향들은 남겨놓은 채 술이 남은 술통만 챙겨서 내려왔지.
씻고 나서 자려는데 수니하고 나눴던 이야기가 생각났어. 표절 논란으로 괴로울 그 작가의 예전 작품집을 찾아 봤지. 나 젊을 때 샀던 그 작가의 작품집이 일곱 권이나 되더라고. 그 중에서 표절 논란의 표적이 됐다는 작품을 찾아내서 읽었어. 일본작가의 작품을 표절했다는 그 작품은 이십 년 전쯤에 발표된 것이데. 내가 읽은 것도 이십 년쯤 됐겠지. 밑줄들이 그어져 있는 걸 보면 분명히 읽은 작품인데 생판인 것처럼 낯설었어. 기억이 남아 있지 않았던 거지.
생판인 것처럼 다시 읽은 그 단편을 단적으로 표현하면 사랑에 대한 로망이라 할 수 있을 것 같았어. 소년소녀가 만나자마자 상대의 상처를 알아보고, 상대의 상처를 자신의 것과 동일시하고 그러면서 선남선녀로 자라 결혼에 이르고. 너무 행복해 불안한 신혼부부한테 전쟁이 닥치지. 남자는 참전하러 떠나고 여자는 홀로 남아. 내 옆집의 스뎅 할머니는 그 전쟁으로 정혼자를 잃고 다른 남자하고 결혼하여 팔십 몇 살이 되었지만 소설 속의 여자는 전쟁 통에 사라진 남편을 마음에 품고 평생 홀로 사과나무 꽃처럼 은은하게 살고 있지.
“영원불변한 사랑 이야기네.”
중얼거리곤 책을 덮어 제 자리에 꽂았어. 작가가 표절했다는 일본 작가의 작품은 읽어보지 않았고, 어느 대목이 논란이 됐는지도 모르지만 전쟁 통에 피난 못 가고 불 꺼진 서울에 남은 여자들이 식량을 찾아 어둠 속을 헤매는 대목은, 박완서 소설들에서 많이 봤다는 생각을 하면서 불 껐지. 불 끄자마자 잠들었고. 하루가 길었잖아.

꿈속의 나는 바닷가에 있네. 해변의 모래밭이 아니라 돌들이 울퉁불퉁한 곳이야. 파도가 들이쳤다 물러나길 반복하고 있는데 웬일이야! 바닷가의 바닥에 벌건 용암이 흘러. 바다밑에서 화산이 폭발한 걸까? 파도가 뒤따라 나와 용암을 식히는데 역부족이야. 나는 아주 연약한 남자 노인을 끌고 있어. 바닷가에서, 혹은 용암의 위험에서 그를 끄집어내려고 기를 써. 엉엉 울면서, 죽을 힘을 다해 그를 끌어내 해변 안쪽의 숲으로 들어가려 해. 거긴 안전할 것 같아서. 마침내 숲가에 이르렀어. 안전하다 싶어서 노인을 안았는데 숨을 거뒀어. 나는 억장이 막혀서 가슴을 두드리며 울부짖어. 소리가 안나. 악몽이야. 가위눌림. 소리가 나야 숨을 쉬고 꿈에서 깰 텐데 그게 안 돼. 몸을 마구 뒤틀다가 간신히 깼어.
일어나서 아직 울고 있는 나를 달래면서 내 품에서 숨진 노인이 누군지를 생각해 보려 애를 썼어. 모르겠더라고. 난 누군가의 임종을 지켜본 적이 없어. 친정아버지의 임종도 두 시간 사이로 놓쳤으니까. 그런데 그런 꿈은 왜 꾼 거지? 누군지도 모르는데 울기는 왜 울고?
“오지랖이 태평양이다.”
꿈을 그렇게 정리해 버리고 자리맡에 둔 노트에다 꿈에 나타난 이미지를 적어놓고 일어났어. 아침마다 그렇듯 발코니 식물들을 쓰다듬으면서 옥상으로 향했어. 간밤에 두 여자가 놀았던 흔적이 참 난만하더라. 촛농이 사방에 떨어졌고 모기향의 재가 부옇게 흩어져 있고 비닐 돗자리는 이슬을 맞아 흥건하고 빈 맥주 통들은 구겨져 나뒹굴고. 내 양말짝과 수니의 덧버선은 짓밟힌 계란처럼 납작하게 구겨져 있고. 물을 줘야 화분들에 물을 주고 간밤의 흔적을 정리해서 내려왔어.
전기포트에 물을 담아 전원 스위치를 누르고 뒷문을 휙 열었어. 뭐가 후다닥 해. 내 가슴도 후다닥 했지. 글쎄 그 놈의 참새가 아직도 거기 있는 거야. 창문을 두 개 다 열어놨는데도 못 나간 거지. 대화가 되는 녀석이라야 말이지. 마른 행주를 마구 흔들어서 녀석을 휘저었어. 유리벽에 부딪쳐대면서 날던 녀석이 황망 중에 열린 창으로 나갔어. 뒷집 옥상 쪽으로 날아가는 녀석의 꽁무니에 대고 욕을 해 줬지.
“이 참새 대가리 같은 놈아!”
참새한테 참새대가리 같은 놈이라고 욕하고 나니까 내 머리통이 참새 대가리 만해 진 것 같긴 했어. 어쨌든 녀석을 쫓아내고 인스턴트 미역국과 인스턴트 밥을 데워서 아침을 해결하고 책상 앞에 앉아 조선시대로 돌아갔지.
남자 주인공이 되어서, 사도세자를 참소하고 전옥서에 갇힌 나경언을 찾아갔어. 그는 아직 자신이 사형선고 받은 걸 몰라. 내일 새벽 파루가 울리면 시구문 밖으로 끌려 나가 목이 잘리리라는 사실을. 남자 주인공인 내가 나경언한테 대체 뭣 때문에 그런 일을 했는지 물어봐. 그가 대답해.
-한 때 꾼 슬픈 꿈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구려.
나경언이 이조판서 집으로 가기 전에 일했던 집이 종친가인데, 그 집에 어여쁜 열다섯 살짜리 처자가 있었어. 그 처자는 주인댁의 서녀庶女였어. 주인 대감이 안방마님의 시녀를 건드려서 낳은 딸. 그 처자의 아버지인 대감마님과 대감의 첩실로 살았던 어머니가 돌림병으로 한꺼번에 죽은 뒤에 처자는 본가로 옮겨져 자라고 있었지. 돌아간 아버지의 정실부인이 살고 있는 집에서. 나경언은 거기서 그 처자를 보게 됐고 연모했어. 아리땁고 얌전하고 총명하던 그 처자는 집안 어른들의 계획에 의해 본색을 감추고 이름을 바꿔서 왕대비전의 나인으로 들어가게 됐어. 궁녀가 된 처자는 사도세자의 눈에 띄어 세자 후궁이 되고 세자의 딸과 아들을 낳으면서 7,8년이 지난 어느 날 세자한테 맞아 죽고 말지. 세자가 가끔 미쳐 날뛸 때가 있는데 하필이면 그때 곁에 있다가 화를 당했던 거야. 
그로부터 1년 뒤에 나경언은 이조판서를 비롯한 정순왕후 주변 세력들로부터 세자를 참소하라는 사주를 받게 되는 거고. 나경언은 이조판서 등이 약속한 부와 권세보다 맞아죽은 그 처자 때문에 제안을 받아들였던 거야. 처자와 더불어 사는 꿈같은 건 애초에 꿔보지도 못했지만 처자가 같은 하늘 아래서 어여쁘게 살아가기만 바랐던 소망이 깨졌잖아. 소망이 깨지면 절망이 되고 절망한 자들은 죽거나 복수를 계획하게 되지. 나경언은 절망 때문에 그랬던 거야.
나경언의 그 대답을 듣느라, 아니 만드느라 책상 앞에 앉아있다 보니 오전이 훌쩍 지나갔어. 뭘 먹어야 하나. 또 다시 닥친 끼니를 궁리하고 있는데 설비가게 아저씨가 방충창을 만들어 와서 끼워주었어. 거금 10만 원을 지불하고 나서 망사 커튼을 한참 바라봤지. 그 자리에 10만원을 들여서 방충문을 달았다면 참새가 날아 들어오지 못했을 거잖아. 참새가 뒤 베란다에 갇혀서 하룻밤 내내 악몽을 꾸지 않아도 됐을 거고. 나는 어쩌면 가위눌림을 당하지 않았을지도 몰라. 10만 원을 아끼기 위해서 2만원어치의 망사커튼과 5천 원짜리 커튼 봉을 사왔고 그걸 다느라 한나절을 땀 흘렸는데 결국은 10만원을 썼으니 계산이 어찌 되는가. 계산하고 나니 욕이 나오데. 에라, 이 참새 대가리야.

스뎅 할머니의 남가일몽과 일장춘몽. 우리나라 대표 작가의 사랑에 대한 꿈. 내 집으로 날아든 참새가 하룻밤 시달렸을 악몽. 해몽을 하기 싫은 나의 아침 꿈. 내 소설 속에서 나경언이 꾸었던 슬픈 꿈. 그리고 내가 책상과 옥상을 오르내리며 꾸고 있는 꿈. 꿈 타령을 연신하다보니 여름밤이 정말 꿈같네. 깨고 나면 생각나지 않는 꿈, 생각나서 어지러운 꿈. 가위눌려 아픈 꿈. 허망해서 눈물 나는 꿈.
오래 꾸던 꿈을 실현하러 떠난 당신은 어때? 꿈이 현실이 되면 그 현실에서 또 다른 꿈이 피어나나? 그렇겠지. 그래야 하고. 나는, '늙은 여자'처럼 '잠은 자고 싶어도 꿈은 꾸기 싫어'. 꾸었던 꿈들의 잔해만으로도 힘이 부치고 고달파. 그래서 더 이상 어떤 꿈도 꾸지 않고 잠만 푹 잤으면 좋겠어. 어쨌든 난 이제 잘래.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는 당신도, 잘 자!
 







**약력:《광주일보》 신춘문예 당선. 2000년 《여성동아》에 『아스피린 두 알』 당선. 창작집 『딸꾹질』,『남녀실종지사』, 『나의 빈틈을 통과하는 것들』. 장편소설 『불꽃섬』, 『소울메이트』, 『도둑의 누이』, 『한꽃살문에 관한 전설』, 『반야』(1,2), 『사랑을 묻다』, 『왕인』(1,2,3), 『천개의 바람이 되어』, 『매구할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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