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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론/김영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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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부
댓글 0건 조회 1,491회 작성일 17-01-02 1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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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론

김영덕






오래된 그리움과 해학 가득한 행낭
  ―정무현 시집 『풀은 제멋대로야』




1.
‘쌍팔년도’라는 말이 있다. 요즘 사람들 대화 속에는 자주 등장하는 것 같지 않지만 아직 우리들 귀에 그리 낯설지 않은 말이다. 보통 흑백사진으로 기억되는 그 옛날의 비루하고 남루하며 무지몽매하기까지 하던 시절을 뜻하는 비속어다. 쌍팔년도라고 하면 8이 두 번 겹치는 해일 터, 일견 1988년을 의미할 수도 있겠다. 그런데 문제는 이 말이 6,70년대 이전의 젊은이들 사이에서 주로 유행했다는 것이다. 시간의 흐름상 앞뒤가 맞지 않는다. 따라서 서울올림픽이 개최되던 해인 서기 1988년을 가리킬 수는 없다. 그렇다면 대체로 두 가지 가능성이 남는다. 첫째, 해방 이후 자유당 정권 시절부터 60년대 초까지 우리나라의 공용연호로 사용되던 단기(단군기원) 4288년(서기 1955년)을 지칭한다는 것이다. 산업화 이후 먹고 살 만해진 서민들이 전쟁 직후인 50년대 초근목피로 연명하던 암울했던 시절의 집단적 경험을 회고하면서 자생적으로 나온 표현이라는 설명까지 곁들이면 더욱 그럴 듯하다. 둘째, 이 말이 특정년도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해방 직후 창설된 국군의 전신 국방경비대 시절 우리 병사들이 이 땅에 주둔하던 일본군이 놓고 간 ‘38식 소총’과 ‘99식 소총’으로 무장하면서 상대적으로 구식인 ‘38식 보병총’의 낡은 성능을 조롱하면서 ‘쌍팔년도식’이라고 부른데서 유래했다는 주장이다. 그 병사들이 6.25전쟁 이후 전역하면서 병영에서 유행하던 이 말이 사회일반으로 널리 퍼져나가게 되었으며, 이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그 어미가 생략되어 그냥 ‘쌍팔년도’가 되었다는 것이다. 그 소총은 실제로 메이지 38년(1905년)에 일본이 생산을 시작했다. 그러나 이것이 ‘쌍팔년도’라는 말의 효시라고 단정할 분명한 근거가 될 수는 없다. 그 유래가 어떻든 ‘쌍팔년도’라는 낱말에 한 시절 이 땅을 힘겹게 살아온 우리 서민대중들 삶의 고락과 애환이 깊게 용해되어 있었던 것만큼은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2. 
올 여름에 첫 시집 『풀은 제멋대로야』를 낸 정무현 시인은 1955년생이다. 그야말로 쌍팔년도에 태어났다. 그는 평생을 행정일선에서 서민대중과 고락을 함께 한 사람으로 최근 공무원 정년퇴직을 했다. 어떤 직업이든 제 몫의 고충이 왜 없었을까만, 한정된 자원을 효율적으로 배분하여 민원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그가 경험했을 안타까움과 자괴감 또한 적지 않았을 것이다. 이것들이 일정한 발효과정을 거쳐 그의 시로 다시 태어났다.     


삶이 아니라는데 아닌 삶을 믿는다.
아귀다툼 속에 눈알이 핏줄 되거나,
벌떡 누워버린 대합실 노숙 신세이거나,
황혼에 무명씨인 건 매한가지.

오후가 가녀린 숨을 내리고
새소리마저 정지되면
일순, 물결로 휘어지는 잎들 위에
소스라친 바람이 쏠리는 소리로 밀리고
미루나무잎은 짧은 다리로 떤다.

아직 밤은 이르지만사방은 어둠처럼 조용하고,
낮달 오른 하늘을 물들이는 해지개는
덮어야 할 오후로 가슴시리다.                  


                                                                                      ─ 「시린 오후」전문     


견자로써 시인은 오후의 적막한 짧은 한 순간을 통해 삶의 덧없음을 가슴 시리게 깨닫는다. 새로운 하루가 시작되는 오전의 그 설레는 부산함이나, 역사는 밤에 이루어진다는 그 나이트라이프의 연장된 새로운 지평도 아닌, 점차적으로 침잠되어만 가는 잉여의 시간이 오후다. 사람의 한 평생으로 치자면 소년, 중년, 혹은 노년도 아닌, 은퇴를 앞둔 중늙은이 같은 시간이다. 인생은 결국 빈손으로 왔다가, 빈 손으로 가는 것이다. 이해관계에 따라 눈에 핏발을 세우고 아귀다툼을 해도 어차피 ‘황혼에 무명씨인 건 매한가지’라고 시인은 말한다. 오후의 풍경을 그린 두 번째 연에서 시인은 ‘오후가 가녀린 숨을 내리고/새소리마저 정지되면’이라는 예리한 묘사로 숨이 멎을 것 같은 정적을 잘 포착했다가 ‘일순, 물결로 휘어지는 잎들 위에/소스라친 바람이 쏠리는 소리로 밀리고’라는 서술에서 팽팽하게 감겼던 긴장을 돌연 풀어놓는 절묘한 호흡과 정물화적 모더니스트 감각을 새롭게 선보였다. 시인의 섬세한 시적 감수성이 예기치 않게 잘 드러나는 대목이다. 다소 거칠고 직선적인 표현이 많은 정무현 시인의 시집 곳곳에 매우 감각적이고 서정적인 묘사들이 다수 숨어 있어 독자들의 시 읽는 재미를 배가시킨다.


생수를 사고팔게 될 줄은 몰랐다. 이젠 생수를 사고파는 것이 당연하다. 누룽지를 사고 팔 줄 몰랐다. 그러나 햇반을 사고파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장사가 아닌 게 장사가 되니 이건 봉이 김선달이다. 도로 빈터마다 가판이 서고, 사람이 모이는 곳마다 포장마차가 자리 잡고, 터 잡아 주고 챙기는 건 최고의 기술이 된다. 나라 땅을 나라 백성이 쓴다지만, 괜한 사람이 철퇴를 맞기도 한다. 애초에 내 것도 아니고 네 것도 아니어서 자리 잡아 버티기만 하면 내 것이 된다. 봉이 김선달이 늘어난다. 달로 가자, 달로 가자. 계수나무 미리 찍고 토끼들 죄 몰아 팔아도 한밑천 되겠다. 달로 가는 차편이 넉넉한지는 모르겠다.                            
─ 「봉이 김선달」전문    
 
지금 이 순간에도 도시의 도로나 공터를 무단으로 점유하여 가판대를 벌이고 물건을 팔아 이득을 취하려는 사람들과 단속반의 승강이가 도처에서 벌어진다. 도시의 상업지역에서 벌어지는 일상이다. ‘봉이 김선달’은 옛날에 대동강 물을 팔아먹었다던 그 김선달이다. 아직 사회 시스템이 원숙하지 못한 각자도생사회에서 넘실대는 인간의 이기적 욕망은 빈틈만 보이면 언제든 파고들게 마련이다. 사회주의가 실패한 실험으로 끝난 이유다. 근대국가의 개념이 정립되기 전에도 당시의 환경이나 기준에 익숙지 않아 어수룩한 사람들을 속여서 이득을 취하는 경우는 얼마든지 있었으며, 그 기원은 원시공동체사회로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을 것이다. ‘나라 땅을 나라 백성이 쓴다지만’ 자원은 부족한데 그것을 원하는 사람이 많은 수급 불균형 상태에서는 언제, 어디서든 있을 수 있는 일이다. 교묘하게 행정의 빈틈을 파고들어 막무가내로 사리사욕을 채우려는 군상들에 대처하여 공익을 지키고 기본질서를 유지하려는 일선 행정기관 종사자들의 자괴감이 배어있는 현장성 짙은 시라고 볼 수 있다.   


   

튀어나온 입술로 땅 가름 한다. 자기 땅도 아닌데 시비다. 막다른 골목 입구, 골목의 경계가 시비 대상이다. 이들은 같은 골목 사람이었다. 골목을 지나면서 인사를 건네기도, 술 한잔을 나누기도 했다. 화풀이의 크기가 경계측량으로 돌아왔다. 어디에 가 있던 경계를 요구당하고 경계를 정리해야하는 세상이다. 경계라고 의심되는 곳에는 울타리가 자리하고, 그 울타리는 이유도 없이 경계를 알아야 한다. 너와 나, 내 것 네 것, 이곳저곳 경계가 있다. 경계를 위해 시간을 쏟아 붓고 경계를 위해 몸을 던진다. 경계가 주저앉아 버리면 내 것 네 것을 위해 쏟아 부을 것도 없는데, 경계를 만들기 위해 자신을 바친다.  경계측량이 한 치도 없이 너와 나를 냉정하게 만든다. 해서는 무거운 일이 경계를 서서 지켜보고 있다.                                                    
                                       ─ 「경계측량」전문 


인간의 욕망과 이기심의 끝은 어디일까? 과연 그 끝이 있기는 할까? 시인은 ‘골목을 지나면서 인사를 건네기도, 술 한 잔을 나누기도 했’던 사람들의 화풀이의 크기가 경계측량으로 돌아왔다’고 했다. 인간관계에서 어떤 일로 감정이 상한 사람이 상대방을 골탕 먹이기 위해 전가의 보도처럼 휘두르는 ‘경계를 요구당하고 경계를 정리해야하는 세상’과 그 세태를 그렸다. 심지어 ‘자기 땅도 아닌데 시비’를 거는 사람도 있다고 했다. 다분히 감정싸움인 경우다. 각자도생 사회에서 인간 본성의 추악함이 일선 행정기관에서만큼 적나라하게 노정되는 곳도 드물 것이다. 



3.

멀리서 바람을 타고 오는풍금소리는
교정의 웃음이었다.

태양은 시뻘겋게 달아올라 머물기도 했고
구름은 검은 보자기를 펴고서 바쁘게 지나갔다.
온통 교정이 적막으로 잠길 때에는
기어이 참지 못하고 세찬 물세례를 퍼부었다.

풍금소리는 시인을 만들고,
음악가를 만들고, 건축가를 만들고,
마침내 도시의 꿈을 만들었다.

풍금 타는 선생님은 천사였다.
악동들은 천사와 결혼하고 싶어 했다.
도시의 꿈이 이뤄진 날
천사는 날아가고,
풍금도 사라지고,
악동들은 모두 다른 세상으로 떠났다.                 


     
                                                                      ─ 「풍금소리」전문



‘해당화 피고 지는 섬 마을에/철새 따라 찾아 온 총각 선생님’으로 시작되는 이미자의 60년대 노래 ‘섬마을 선생님’이나 올리비아 뉴튼-존의 ‘Banks of Ohio’를 개사한 가수 조영남의 70년대 노래 ‘내고향 충청도’에 공통적으로 등장하는 이미지가 있다. 시골 초등학교와 선생님이다. 조영남의 노래에는 ‘동구 밖엔 기차정거장 언덕 위엔 하얀 예배당/내가 다니던 국민학교는 동네서 제일 큰 집이었죠’라는 서정적 묘사를 통하여 고향 마을에서 학교의 위치, 그 성격과 지위까지 매우 사실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학교나 선생님은 아이들의 소중한 꿈이자 미래였다. 신문물의 상징으로 일종의 확장된 메타포였다. 그러면서도 범접할 수 없는 외경이기도 했다. 사실 학교 시스템 자체가 시골에서는 신문물로 동경의 대상이었다고 할 수 있다. 무궁무진한 신지식으로 무장을 한 하이칼라 머리에 눈부신 흰 와이셔츠, 말끔한 양복을 입은 선생님들은 마치 미지의 새로운 세계에서 파견 나온 선승이자 선교사들 같았다. 특히 단아한 단발머리에 하얀 블라우스, 검정 스커트를 입은 흰 얼굴의 ‘풍금 타는 선생님은 천사’ 였다. 그러나 풍금소리를 듣고 성장한 그 아이들이 시인이 되고 음악가가 되고 건축가가 되어, 마침내 도시의 꿈을 이루었을 때, ‘천사는 날아가고, 풍금도 사라지고, 악동들은 모두 다른 세상으로 떠났다.’ 아이들이 자라나면서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도시로 흡수되고 세파에 휩쓸리면서 어릴 적 소박한 꿈과 낭만, 환상은 산산조각이 났다. 정시인은 5,60년대 시골 초등학교의



풍경을 놀랍도록 상세하고 편안하게 묘사했다.   

어둑새벽은 돌아 설익은 모양을 드러내고
뿌연 고요는 일순 매혹으로 번진다.
발목에 닿는 밭둑길 이슬 두른 풀잎에서
온몸으로 새벽을 빨아올린다.  
치걱대는 밭둑길 연무 속에서
물비늘 꽂히는 길을 지나야 꿈의 자락을 잡는다지,
드러나는 밭이 번지면서 희망산이 둘려있는데,
이 터전에서 싹을 틔운 아이가
햇살 바르며 솟아오른다.    


                   
                                                             ─ 「연무 비상」전문



산 아래로 길은 휘어지고,
달빛이 떡갈잎에 기대어 부스럭거린다.
바람은 가뭇가뭇 발걸음은 조박조박,
이따금 풀벌레 울음 하얀 길을 만드는데
산허리를 돌아 난데없는 떼 소리,
개구리 세상이다.
달빛이 떼 소리에 밀려 들판에 눕는다.

밀밭 서리 기어가는 소리,
몰려오는 창꽃들 흔들리는 소리,
소 꼴 베는 풋내 낫질 소리,
감꽃 아래 낙감 줍는 발자국 소리,
사방치기 돌 뿌리는 소리,
말뚝박기와 가댁질,
흘러가버린 것들이 걷잡을 수 없이 시려온다.
햇살 등짐지고 돌아오는 길,
들판은 차지한 여린 논에는
어젯밤이 볏모로 숨어 배실거린다.                


      
                                                                     ─ 「다정다경」전문



모처럼 시골 고향집을 찾아 여장을 푼 시인은 어린 시절의 추억을 찾아 이른 새벽길 산책에 나선다. 풀잎에 맺힌 이슬에 바짓단 축축하게 젖는 것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어스름 여명 속에서 차츰 윤곽을 드러내는 고요한 아침의 정경에 몰입한다. 이윽고 환청으로 듣는 ‘흘러가버린 것들의 걷잡을 수 없는’ 소리에 가슴 뭉클해진다. 참외, 수박 서리를 위해 밀밭을 몰래 기어가는 소리와 창꽃들 흔들리는 소리, 꼴 베는 낫질 소리는 사각거리는 소리일 것이고, 사방치기 돌 뿌리는 소리와 말뚝 박기, 동무들과의 가댁질은 아마도 토닥거리는 소리일 것이다. 옛날 시골에서 바쁜 농번기철에는 열 살 남짓 아이들도 집안일을 도와야 했다. 보통 코뚜레를 한 소를 몰고 인근 풀밭에서 풀 뜯기는 일과 꼴망태기를 지고 소 꼴을 베어 오는 것, 그리고 소가 여물로 먹기 좋도록 적당한 크기로 자르는 작두질하기다. 시를 통하여 어린 날 까까머리 소년들의 해맑았던 모습이 희미하면서도 정겹게 떠오른다.    



세게 내리쳐야 한다.
그렇더라도 지렛대 발이 필요하다.

넘겨야 할 놈에 비하면
발이 높아 어림없어 보이지만
쓸모없어 뵈는 돌덩이가
돌다리를 만든다.

치는 순간 세상은
오직 넘겨야 할 대상이다.                       
                                                     ─ 「딱지치기」전문



텔레비전은 물론, 휴대하기 좋은 트랜지스터 라디오도 귀하던 옛날, 주로 사내아이들이 하던 놀이가 딱지치기다. 딱지는 보통 마분지라 불리는 두꺼운 도화지를 접어서 만든다. 열두어 살 무렵의 정시인은 승부기질이 다분한 마을의 악동(?)이었을 것이다. 상대의 딱지를 넘길 때까지 한 번씩 번갈아 치는데 요령이 필요하다. 지렛대 역할을 하도록 상대의 딱지에 왼발을 최대한 가까이 붙이고 (밟으면 실격이다) 지면과 딱지 사이의 틈을 파고들도록 비스듬히 세게 치는 것이다. 이때 딱딱한 돌이 있는 쪽을 치면 딱지의 접지력이 약해 잘 넘어간다. 별 것 아닌 놀이인데도 당사자들은 꼭 이겨야 했다. 지기라도 하면 분해서 꼭 삼세번은 해야 했다. ‘치는 순간 세상은/오직 넘겨야 할 대상’으로 변했다. 소년들의 자존심이 걸린 문제였기 때문이다.    



4.

한물이라 빨간 고추를 따는 오후,
이랑 사이 바구니가 더디게 움직이고
밭에 빨려 들어온 땡볕이 고추한증탕이다.
백년건달,
이랑에 있는 듯 하더니 감나무 아래로 가 있다.
아가, 그래 덥제.
장모님이 덮어쓴 수건으로 땀을 닦는다.
감나무 그림자 흔들리니 풀들이 벌렁 드러눕는다.
아가, 그래 한숨 자라.
장모님이 대궁의 고추를 말아 쥔다.
잡아챈 고추가 볕에 달아 꿈틀댄다.

사위는 어디 갔나.
지게를 내려놓는 장인어른,
감나무 아래 흘끔 보고 애먼 소리 뱉는다.
감나무 아래는 뱀이 많제.
백년건달 기겁하여 일어나 비실비실 밭고랑으로 향한다.           


                
                                                                             ─ 「백년손님」전문  



도시에 사는 사위가 여름휴가를 맞아 모처럼 아내와 함께 시골의 처갓집에 왔다가 벌어지는 풍경이 익살스럽게 그려졌다. 여자는 남자를 누구를 만나느냐에 따라 하루아침에 안방마님도 될 수 있고 부엌데기도 될 수 있다는 ‘여자 팔자 뒤웅박 팔자’라는 속담이 무색해지면서 남성중심사회도 허물어져가는 요즘을 시대적 배경으로 하고 있다. 옛날 전통사회에서는 ‘사위는 백년손님’이라고 하여 아주 어렵게 생각했다. 여자는 출가외인이라고 일단 시집을 가면 친정에 갈 일이 별로 많지 않았고, 사위 또한 처가에 출입할 일이 별로 없어서 모처럼 처가를 찾은 사위에게 씨암탉을 잡아주는 등 큰 손님으로 정성을 다해 대접했다. 딸을 잘 부탁한다는 의미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요즘 사위의 위상은 옛날 같지 않다. 시에서 ‘백년건달’은 ‘백년손님’을 패러디한 것이다. 도시 직장인들의 여름휴가 기간 농촌은 농번기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계절이다. 특히 고추농사를 짓는 집안은 태풍이 올라오기 전에 잘 익은 고추를 따서 일광에 말려야했으므로 더욱 바쁜 시절이다. 고양이 손이라도 빌린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처가에서 좋은 대접까지는 몰라도, 시골의 한가로운 분위기에서 꿈같은 휴가를 기대하고 간 사위가 뙤약볕 아래에서 상머슴으로 처갓집 농사를 거들면서 겪게 되는 일이 재미있게 묘사되어 있다. 마지막 연은 1935년 《조광》12월호에 실렸던 김유정의 단편소설 「봄봄」을 연상시킨다. 시인은 끝 행에서 ‘백년건달 기겁하여 일어나 비실비실 밭고랑으로 향한다.’고 했는데, 여기서 더 나아가면 소설에서처럼 ‘이 녀석의 장인님’과 한바탕 된 실랑이를 벌이지 말란 법도 없다. 장모님과 이제는 아내가 된 ‘점순이’도 출연하는 그 ‘악장’에 말이다. 우리 문학에 있어서 80년의 시차는 정말 아무것도 아니다.


‘장인님은 더 약이 바짝 올라서 잡은 참 지게막대기로 내 어깨를 그냥 내리갈겼다. 정신이 다 아찔하다. 다시 고개를 들었을 때 그때엔 나도 온몸에 약이 올랐다. 이 녀석의 장인님을, 하고 눈에서 불이 퍽 나서 그 아래 밭 있는 넝알로 그대로 떠밀어 굴려버렸다. 기어오르면 굴리고 굴리면 기어오르고 이러길 한 너덧 번을 하며 그릴 적마다  “부려만 먹구 왜 성례 안하지유!”  나는 이렇게 호령했다. 허지만 장인님이 선뜻 오냐 낼이라두 성례시켜 주마, 했으면 나도 성가신 걸 그만두었을지 모른다. 나야 이러면 때린 건 아니니까 나중에 장인 쳤다는 누명도 안 들을 터이고 얼마든지 해도 좋다. 한번은 장인님이 헐떡헐떡 기어서 올라오더니 내 바짓가랭이를 요렇게 노리고서 단박 움켜잡고 매달렸다. 악, 소리를 치고 나는 그만 세상이 다 팽그르 도는 것이 “빙장님! 빙장님! 빙장님!” “이 자식! 잡아먹어라, 잡아먹어!” “아! 아! 할아버지! 살려줍쇼, 할아버지!” 하고 두 팔을 허둥지둥 내절 적에는 이마에 진땀이 쭉 내솟고 인젠 참으로 죽나보다 했다. 그래두 장인님은 놓질 않더니 내가 기어이 땅바닥에 쓰러져서 거진 까무러치게 되니까 놓는다. 더럽다, 더럽다. 이게 장인님인가? 나는 한참을 못 일어나고 쩔쩔맸다. 그러나 얼굴을 드니(눈엔 참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사지가 부르르 떨리면서 나도 엉금엉금 기어가 장인님의 바짓가랭이를 꽉 움키고 잡아낚았다. 내가 머리가 터지도록 매를 얻어맞은 것이 이 때문이다. 그러나 여기가 또한 우리 장인님이 유달리 착한 곳이다. 여느 사람이면 사경을 주어서라도 당장 내어쫓았지, 터진 머리를 볼솜으로 손수 지져 주고, 호주머니에 희연 한 봉을 넣어 주고 그리고 “올 갈엔 꼭 성례를 시켜 주마. 암만 말구 가서 뒷골의 콩밭이나 얼른 갈아라.” 하고 등을 뚜덕여 줄 사람이 누구냐. 나는 장인님이 너무나 고마워서 어느덧 눈물까지 났다. 점순이를 남기고 인젠 내쫓기려니 하다 뜻밖의 말을 듣고  “빙장님! 인제 다시는 안 그러겠어유!” 이렇게 맹세를 하며 부랴부랴 지게를 지고 일터로 갔다. 그러나 이때는 그걸 모르고 장인님을 원수로만 여겨서 잔뜩 잡아당겼다. “아! 아! 이놈아! 놔라, 놔.” 장인님은 헛손질을 하며 솔개미에 챈 닭의 소리를 연해 질렀다. 놓긴 왜, 이왕이면 호되게 혼을 내주리라 생각하고 짖궂이 더 댕겼다. 마는 장인님이 땅에 쓰러져서 눈에 눈물이 피잉 도는 것을 알고 좀 겁도 났다. “할아버지! 놔라, 놔, 놔, 놔, 놔라.” 그래도 안되니까, “애 점순아! 점순아!” 이 악장에 안에 있었던 장모님과 점순이가 헐레벌떡하고 단숨에 뛰어 나왔다. 나의 생각에 장모님은 제 남편이니까 역성을 할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점순이는 내 편을 들어서 속으로 고소해 하겠지. 대체 이게 웬 속인지(지금까지도 난 영문을 모른다) 아버질 혼내 주기는 제가 내래 놓고 이제 와서는 달려들며, “에그머니! 이 망할 게 아버지 죽이네!” 하고, 귀를 뒤로 잡아당기며 마냥 우는 것이 아니냐. 그만 여기에 기운이 탁 꺾이어 나는 얼빠진 등신이 되고 말았다. 장모님도 덤벼들어 한쪽 귀마저 뒤로 잡아채면서 또 우는 것이다. 이렇게 꼼짝도 못하게 해놓고 장인님은 지게막대기를 들어서 사뭇 내려조졌다. 그러나 나는 구태여 피하려 하지도 않고 암만해도 그 속 알 수 없는 점순이의 얼굴만 멀거니 들여다보았다. “이 자식! 장인 입에서 할아버지 소리가 나오도록 해?” ’         
       





**약력: 《리토피아》로 등단. 아라포럼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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