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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호/특집/오늘의 시인/남태식/집중 외 4편/신작시/빈강 외 2편/자술연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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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오늘의 시인
남태식
집중
안개가 짙다. 안개가 짙으면 안개에 집중해야만 한다.
안개의 몸피를 더듬어 가늠하고 손가락 발가락의 수를 세어보아야 한다. 안개의 표정은 맑은가 어두운가, 입술은 여태껏 앙다문 채인가 배시시 열리는 중인가, 안개의 속살은 두꺼운가 부드러운가 또 얼마나 깊은가 음습한가 헤아려보아야 한다. 안개의 속살 사이에 들앉은 나무와 풀과 집과 그 안의 숨결들, 웃음들, 빈 들판의 눈물들, 쉼 없이 나뭇가지를 흔드는 한숨들을 코로 귀로 숨으로 느껴야 한다. 감전된 듯 감전된 듯 온 몸을 떨어야 한다. 언젠가는 걷힐 안개에 뒤따르는 햇살, 뒤따라 날아오르는 새 떼들의 날갯짓 따위는 잠시, 어쩌면 오래도록 잊어야 한다.
바야흐로 때는 안개가 짙을 때, 어김없이 안개가 짙고, 지금 우리는 오직 이 안개에만 집중해야 한다.
오월, 초록
미처 다 피우지 못한 어수선한 조증의 꽃 떨어진 밑자리를 서성이다가, 되돌릴 과거는 기억조차 가뭇한 데 벼락처럼 솟은 절벽을 마주하고 울증에 빠진,
조증의 시간 오래도록 지켜낼 꿈을 꾸며 동면에 든 뱀처럼 침묵으로 견디다가, 어느 새벽 잠결인 듯 꿈결인 듯 절벽에서 내동댕이쳐져 멍투성이로 사라진,
술렁술렁 웃으며 푸른 핏줄 불끈 세우며, 우우우 이 오월의 숲에서 초록의 함성 떼로 내지르며 다시 일어서는,
사내, 한 사내, 한, 꿈의 사내.
아니오
무덤의 나라에는 아니오가 없다.
아니오가 없는 무덤이
허물고 쌓고 허물고 쌓는 것들은
모두 무덤
무덤들 위에 새로 피우고 돋우는
꽃들도 무덤
풀들도 무덤
무덤이 된
꽃들이 슬프다.
풀들이 슬프다.
아니오가 없으면
아니오가 없는 나라도 무덤
그 나라의 산천이 모두 무덤
아니오가 없는 무덤이 슬프다.
아니오가 없는 나라가 슬프다.
그 나라의 산천이 모두 아프다.
청명
맑은 눈은 아름답다
중년에 들었어도 맑은 눈은 더 아름답다
그 사내는 눈이 참 맑았다
눈이 너무나 맑은 그 중년의 사내 생각하다가
속내를 감춘 눈이 붉은 나는 또 뱀처럼
몸이 달았다
오도마니
담배는 있는데 불이 없어서 길은 있는데 끝이 없어서 안은 있는데 밖이 없어서
한 사내가
운다
강을 치달리며 운다 땅을 내리꽂으며 운다 안개처럼 흩어지며 바람처럼 떨어지며 운다
마침내 울음 하나 길 위에 오도마니
꽃으로 앉았다
아직 길 안이다
<신작시>
빈강
소용돌이에 휩쓸린 어린 물맴이들에게
제 여러 남은 몸들을 하나씩 다 내어주고
한하늘은 한꺼번에 마저 늙어서
강을 비우고 바다로 갔다.
약혼자가 있었다고 했다.
혼례를 앞두고 있었다고 했던가.
아닌 척 그리움을 보채어
사내는 한하늘의 살을 받은 적이 있었다.
모른 척 밤새
한하늘의 살내에 취했던 사내 역시 물맴이였는데
몸 하나를 내어주면서
한하늘은 정녕 사내를 몰랐을까.
사내는 그 약혼자를 알지 못했다.
약혼자는 사내를 알았을까.
북녘을 넘어넘어 왔다기도 하고
남녘을 돌아돌아 이르렀다기도 하는
한하늘이 비운 그 강은 이미 잊었지만
그때부터였던가,
사내의 몸에 빈 강이 자라기 시작한 것이.
사내의 빈 강에 한하늘의 살이 흘러,
넘쳐 가끔씩 소용돌이쳐 터지는 것이.
빈방
사내는 말하고 여자는 울었다.
사내는 바다와 산과 도시의 골목을
여자는 버스정류장과 빈 방을
오래 기웃거린 뒤였는데
기다림의 뿌리에 대하여
한 뿌리의 기다림에 대하여
벋어나간 기다림의 여러 줄기에 대하여
기다림의 하늘이 들지 않아 어둡고 쓸쓸해
빈 방일 수밖에 없는 빈 방에서
사내는 말하고 여자는 울었다.
언 땅이 풀리기 전 꽃이 피기 전
여자는 떠났다.
여자는 한하늘을 안았을까.
언 땅이 풀리고 꽃이 필 때까지도
사내는 빈 방을 떠나지 못했다.
여자가 뿌리에 닿았다는 풍문을 들었을 쯤에는
사내는 이미
암종같은 빈 방을 여럿 주렁주렁 달고 있었다.
대가리는 맛있다
살점 다 발린 조기는 항상 어머니의 몫
가시에 머리만 달린 조기를 밥숟갈에 얹는다.
바다 속을 헤집듯 눈깔을 들여다보며 한 숟갈
조기의 먹잇감들을 꺼내어 먹듯 입을 벌려가며 몇 숟갈
비린내를 먹는지
조기의 생각을 먹는 것인지
대가리 속에 든 것들을 말끔히 발라먹는
어머니는 대단한 미식가다.
대가리를 먹어야 비로소 조기 한 마리 먹었다 할 수 있듯
대가리까지 먹혀야 비로소 완성되는 조기의 생
몸통의 살점 다 발리고 난 대가리가
비로소 제 맛인 줄 모르고
무엇엔가 발리는 내 머리통에
붙어 팔딱거리는 육신이 저릿하다.
<시작메모>
이별의 시
아니 기다려도 혹여 오는 바람이 있어,
문을 열면 예정된 이별처럼 미처 문을 나서기도 전에 늘 서둘러 떠나는 바람이 있어,
꽃등은, 어떤 꽃등은,
맞을 리 없는 바람을 맞은 듯 안절부절하고,
골방에 웅크려서도 허방을 걷는 듯 비틀거리고,
― 졸시 「예정된 이별」 부분
이별의 시를 쓰고 있습니다. 숱한 만남에서 숱하게 겪은 이별의 시를 쓰고 있습니다. 이별의 시를 쓰는 것은 처음은 아닙니다. 드러내놓고 쓰지 않았을 뿐 가끔 이별의 시를 쓰기는 했습니다만 드러내놓고 쓰지 않는 이별의 시는 나름의 특별한 형식이 필요했으나 선택한 이별의 시의 형식은 오래지 않아 식상하거나 몸에 붙지 않아서 쓰려고 했던 시들을 마저 쓰지 못하고 멈추고는 했습니다. 어떤 이별의 시는 메시지는 있으나 리듬이 붙지 않았고, 어떤 이별의 시는 리듬은 살아나 춤추는 듯 했으나 메시지가 리듬을 따라잡지 못했습니다. 해서 제 이별의 시는 번번이 길을 찾지 못하고 헤매다가 끝이 났습니다.
다시 이별의 시를 쓰고 있습니다. 나름의 이별의 시의 형식을 새로이 잡아 메시지와 리듬을 함께 맞추며 쓰기 시작하기는 했지만 이 이별의 시를 언제까지 쓸 수 있을지는 알 수가 없습니다. 어쨌든 지금은 이 이별의 시를 다시 쓰기 시작하였고 쓰고 있습니다. 이별은 만남만큼이나 너무나 많고 때로는 만남보다도 더 많아 메시지와 리듬이 함께 버텨준다면 꽤 오래 이별의 시를 쓸 수도 있으리라 생각은 듭니다만 역시 그것은 알 수가 없습니다. 끝이라는 자막을 올릴 수 있을 때까지 쓰고는 싶기는 하지만 역시 모르는 일입니다.
이별에는 오래된 이별도 있고 아주 최근의 이별도 있습니다. 직접 겪은 이별도 있고, 주변에서 듣고 본 이별도 있습니다. 만남을 전제로 하는 이별도 있지만 애초 만남을 상실한 이별도 있습니다. 애초의 만남은 이별을 동반하지 않아 대부분의 이별은 아닐지라도 늘 특별하다 이를 수도 있겠습니다만 애초부터 이별을 예정한 만남도 있으니 이때의 이별은 예정된 이별로 이르기를 특별하다고 하는 것이 아닌 정말 특별한 이별입니다. 다시 쓰는 제 이별의 시는 한동안 이 예정된 이별일 것입니다만 더 절절한 이별 앞에서는 가끔 순위를 바꾸기도 할 것입니다.
지금 쓰는 이별의 시는 모두 너의 이별의 시입니다. 이별의 주체인 너는 종도 성도 없습니다. 생물이기도 하고 무생물이기도 합니다. 인간이기도 하고 비인간이기도 합니다. 사랑이기도 하고 미움이기도 합니다. 마침내는 사랑이라고 할 것까지는 없어도 미움은 아닙니다. 기쁨이기도 하고 슬픔이나 아픔이기도 합니다. 마침내는 모두 비빔밥처럼 섞여 추억입니다. 이별의 주체는 너이고, 저는 이별의 객체나 3자로 이 이별의 시를 쓸 것입니다. 하니 이 이별의 시는 모두 떠나간 자들에 대한 추억입니다. 저는 이 이별의 추억을 오랫동안 곰삭혔습니다.
언젠가는 주체가 나인 나의 이별의 시를 쓸 것입니다. 나의 이별의 시는 너의 이별의 시의 끝과도 너나 나의 미련과도 무관하게 때가 되면 당연히 쓰게 될 것입니다. 나의 이별의 시는 가벼웠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요즈음 들어 가끔 합니다. 열일곱 살이 되던 그 해 겨울 아버지는 잠이라는 형태의 몸짓으로 이별을 알렸습니다. 초저녁의 가벼운 농담처럼 아버지의 이별은 너무 가벼워 오랫동안 이별이 이렇게 가벼워도 될까 의문했지만 요즈음 생각하는 나의 이별의 시는 이러 합니다. 쓰라리고 아파 무거운 이별들 사이에 이렇게 가벼운 이별 몇 섞여도 괜찮다는 생각을 합니다.
어떤 죽음은
초저녁의 가벼운 농담처럼 왔다.
와서는 깨지 않았다.
― 졸시 「 죽음의 순간」 전문
<자술연보>
·1960년 서울에서 출생, 호적에 등재된 출생지는 경북울진, 양력으로는 1961년생, 호적에 등재된 출생년도는 1962년, 경북울진에서 자랐지만 전라광주에서 말을 배운 뒤 울진에 와서 어릴 때부터 꽤 오랫동안 전라도 말을 썼음.
·1967년 매화초등학교 입학 1972년 졸업, 3학년에 학교 도서관 사서(?) 일을 맡아 6학년까지 하게 되어 방과 후에는 계속 도서관에서 책읽기에 푹 빠져 지냄.
·1973년 매화중학교 입학 1975년 졸업, 중학교 2학년 때부터 선생님 한 분께 별도로 부탁을 드려 소설 쓰기 지도를 받음. 지도를 받기 전에 처음 받은 숙제가 2백자 원고지 수백 매의 책 베껴 쓰기였음.
·1976년 울진고등학교 입학 1978년 졸업, 고등학교 입학하기 전 아버지 별세, 문창과 특례입학을 위한 공모전에 내기 위한 소설을 틈틈이 썼으나 공모전에 응모하지는 않음. 대학은 예비고사를 보긴 했으나 본고사는 포기하고 대학 다녀야 할 몇 년 동안 백수로 이런저런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이곳저곳을 떠돌며 삶.
·1981년 울림문학 동인 결성에 참여하고 활동. 1980년 5월 이후 시를 본격적으로 쓰기 시작하였으나 별도의 시작 수업은 받지 않음. 많이 읽고 많이 썼음. 1985년에 등단을 시도(?)하였으나 시대상황에 따른 것이긴 했지만 시작의 태도를 바꾸어야 할 받아들이기 애매한 요구를 받아 등단을 포기하고 이후부터는 스스로 프로작가로 생각하고 계속 시를 씀. 울림문학 동인은 1988년에 해체.
·1984년에서 1985년까지 14개월 동안 해안방위로 병역의무를 수행. 신체검사 받을 때 체중 미달, 가슴둘레 미달, 오른 팔 일부 사용제한, 고안압 등의 사유로 면제 등급인 4급 을을 받았으나 자청해서 방위 판정을 받음. 1984년에 이오덕 선생님, 이장희 시인 등이 주축이 되어 경북문협을 결성하기로 했는데 발기인으로 참여, 경북문협 결성은 이오덕 선생님을 향한 여러 구설로 무산. 방위 해제된 1984년 말 상경.
·1987년 체신부에 입사, 첫 발령지는 연세대 건너편에 자리한 서울국제우체국(현, 서대문우체국), 이후 여의도 우체국을 거쳐, 울진우체국, 청송우체국, 포항우체국 등에서 근무, 현재는 경주에 소재한 경주 건천우체국장으로 재직하고 있음.
·1992년 1월에 귀향하고 5월에 결혼, 1993년에 첫 아이를, 1995년에 둘째를 얻었으나 타지 발령으로 가족들과 떨어져 생활을 하느라 가족들과 함께 하지 못한 시간이 많아 현재까지도 늘 미안하게 생각. 그 해에 울진문학회 결성에 참여하고 활동, 울진문학회 회원 자격은 현재까지 유지하고 있으며 1년에 1회 발간하는 문집 발간에 참여하고 있음. 작년에 20호를 발간.
·2000년 《세기문학》 신인상에 「오해」, 「승진」, 「물」, 「구토」, 「분갈이」 5편이 당선되어 등단. 이 때 《세기문학》의 주간이 현재 《리토피아》 주간인 장종권 시인이었음, 등단 당시에는 특별한 인연을 맺지 않았지만 《리토피아》 창간 1주년쯤에 만나 인연을 맺어 문학적 동지로 현재에 이르고 있음. 《세기문학》은 2000년 겨울 통권 14호를 내고 일시 휴간하였다가 이후 폐간.
·2001년 민족문학작가회의 경북지회 회원으로 가입하여 현재까지 활동하고 있음. 경북작가회의는 2014년 분가하기 전의 대구작가회의와 재통합하여 현재는 대구경북작가회의 회원임. 경북작가회의 회원으로 활동하면서 우체국장 시인이라는 별명을 얻어 현재까지도 우체국장 시인으로 소개되고 있음. 나름 이렇게 불리는 것이 좋아서 명함에도 우체국장 시인으로 새김.
·2002년 80년대부터 쓴 모든 시들을 추려 정리하여 첫 시집 『속살 드러낸 것들은 모두 아름답다』를 발간, 발간 당시 우체국장으로는 관서등급이 달라 한 번밖에 재직하지 못하는 고향의 매화우체국장에 재직하고 있을 때였는데 나름대로 의미가 있다고 생각.
·2003년 《리토피아》에 「안개가 나를 밀어 올린다」 외 5편을 발표하면서 재 등단. 1985년에 프로작가로 스스로 정하기는 했으나 직장생활을 하면서 혼자 하는 시 쓰기는 지지부진하여 한 해 쓰고 한 해 쉬고, 한 해 쓰고 두 해 쉬고 하는 등 쓰다 말다 함. 울진문학회 활동을 하면서도 이 게으른 시 쓰기 버릇은 못 고쳤는데 재 등단하고 나서부터 쓰다 말다 하지 않고 거의 계속하여 시를 씀.
·2006년 가족들 모두 포항으로 이사, 현재까지 계속하여 포항에 살고 있음, 한동안 더 포항에 살 것임.
·2009년 제2시집 『내 슬픈 전설의 그 뱀』을 발간. 2010년 여름 낙동강 칠백리를 4대강 보 공사 현장 중심으로 혼자 도보 여행. 이 도보 여행과 이후 현장 중심의 문화 활동이 내 시의 사회성을 더 짙게 함.
·2012년 제2회 리토피아문학상 수상.
·2015년 제3시집 『망상가들의 마을』을 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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