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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호/근작조명/서춘자/백자무문달항아리·3 외 4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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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작조명
서춘자
백자무문달항아리·3
너의 토굴
천삼백도 불가마
한 세월 들어앉아 좌선삼매
다비 끝나니
한 알 사리
한 점 티끌 없는
빈 몸
그 몸에 삼천대천
드나드나니
지나던 달 품어
겨울날
나 없는 빈 창에
그대 쓰고 간 내 이름
몇 점 성에들이 안고 있었네
창문 앞에서 되돌아간
그대 발자국
눈 위에 압화로 찍혀 있었네
그 압화 위에 새로 내리는
깃털눈
오래 서서 바라보네
대중가요
공중에서 내려오는 비단을
둘로 가른다는 검
그 검에 베입니다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휘날리더라
비단수건을 가를 뿐만 아니라
돌덩이에도 부러지지 않는다는 검
그 낭창한 날에 스치입니다
새파란 풀잎이 물에 떠서 흘러가더라
저 흔해 빠진 밤하늘의 별에도 눈 베입니다
같이 보고 같이 세던 실없던 손가락 끝
길도 없이 까마득한 허공 너머로
열아홉 시절이 울컥 해금 가락 타고 와
명치를 찌르면
난자 당한 가슴 급소마다 치명상인데
진통제는 그래도 봄꽃뿐
꽃마다 찾아가 베인 자리 문질러
꽃피 지혈할 뿐
치료제는 그래도 봄볕뿐
볕마다 찾아가 베인 자리 쪼이며
지나가는 봄날 지나가게 할 뿐
탈의
하늘이 왜 파란가 물어도 대답 없소
해는 왜 그렇게 타는가 물어도 대답 안 하오
삶은 이유 없이 시작되어 이유 모르게 흘러가는 터
다만 탈 뿐이오
재가 되면 비로소 벗어날 수 있을 터
재가 되어야 비로소 벗어날 수 있을 터
세상의 모든 불꽃들에게 경의를
세상의 모든 불쏘시개들에게 경의를
작은북 큰북 동원하여 재를 올린다
기타 시켜 염불 올린다
그립다는 말 태워 분향한다
잘 타고 남은 재
그 가벼움
세상의 모든 재들에게 경의를
계획
그것도 괜찮겠다
봄볕 몇 섬 쏟아져 내리고 새소리는 웃기로 얹힐 것이다
앞 논두렁 고부라질 때쯤 삼복이 오겠지만
다북쑥 아래 서늘한 땅기운이나 즐기면 될 일이다
누가 묻혔거나 말거나 가을이 오고
갈잎 구른다고 덩달아 뗏장도 무너지겠지만
백설이 소복이 기워주는 날도 있을 것이다
백설에 싸여 봉긋한 나
쏟아지는 달빛 봉긋이 불러 앉혀
지나가는 북풍 시켜 퉁소 한 가락 불게 하면
공산야월 만목소연 왕릉 못지않을 것이다
그러저러 겨울 지난 또 봄이 오겠지만
녹음방초 낙목한천 제 아무리 왔다 가도
누구를 사랑했는지 누구를 미워했는지 도대체 모르겠다고
누구의 애비였는지 누구의 에미였는지 도대체 모르겠다고
어느 가객이 노래를 불러줄지도 모른다
뒷산의 이름 없는 무덤
그것도 괜찮겠다
**약력: 2000년 《수원문학》 신인상. 2013년 《아라문학》으로 등단. 시집 『님이신가, 아니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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