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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호/신작특선/권지영/소문 외 4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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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부
댓글 0건 조회 1,190회 작성일 17-01-03 1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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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특선

권지영






소문



발 없는 말이 너를 가둘지 모른다
어둠속에서 삐죽 나온 입이
구름을 타고 바람을 가른다


계곡의 골짜기에서 울리는 비명소리
등산로에 드러누운 낡은 지팡이 하나
이끼를 핥으며 야영하는 지네의 발로
무수한 습기를 옮겨간다


껍데기는 젖을수록 벗겨지고
헐거운 눈물이 녹아내려
씻을수록 가루가 된다


수초처럼 떠다니던 소리가
물로 흩어지며 절뚝거리고
미끄럽게 퍼져 나간다
울음과 숨소리가 떠다닌다







발아되는 목소리



나는 솜이 되어
너의 말을 먹는다
낮은 음률을 가진
느린 목소리가
귓가에 한 방울씩 떨어질 때마다
내 몸은 부피가 작아지고
고분고분 멈추어간다


너만의 음역 안에서
나오는 말들은 씨앗이 되어
물먹은 가슴 안에서 싹을 틔우고
나를 적신 그 말들이
말줄임표로 발아를 꿈꾸고 있다








물빛 그리움



바람 많던 골목안의 어스름한 가로등
해가 짧은 블록 같은 집에 사는 작은 발
지도를 품고 살던 발이 떠난 곳에서
자라나기 시작한 그리움은 나무가 되었다
이따금 나무는 빛을 내며 잎성귀를 떨기도 하고
이따금 빗속에 한없이 서있기도 했다
얼어있는 웅덩이를 맨발로 건너가는 밤마다
시린 울음은 터져 나왔다
소리 없이 피는 싹과 지는 꽃을 틔워내는 무수한 밤을 지나 물렁한 껍질은 조금씩 여물어져갔다
서로 다른 별에서 온 빛들이 상처를 주고받을 때마다
나의 나무는 물속에 뿌리를 키우고 빽빽하게 비어있는 당신의 심연으로 들어가기 위해 발을 버둥거린다
허물을 벗고 당신에게 날아가 닿는 상상을 하며
당신의 눈물을 훔치려 한다
등 돌린 발의 뒤꿈치를 보며 나무는 먼 물빛을 닮아가고 있었다









가을 하늘




초가을 하늘에 유리배가 지나간다
바다만큼 넓은 구름을 뚫고
흩어진 구름을 다시 뱉어내며


고래의 등을 닮은 유리배는 투명하다


많은 사람들은 자기 방식으로 표현하고
그것으로 누군가는 상처를 받는다
누군가는 사랑을 하고 누군가는 아파하며
누군가는 눈물 흘리는 것처럼


구름을 흐트려 놓아도 하늘은 말이 없다


사람의 마음 다 헤아릴 수 없기에
네 맘 몰라줘서 미안하다 사과도 해보고
냉정하고 모진 이에게
내가 받지 못한 사과보다 더
따뜻한 위로를 건네 본다


가을 속으로 유리배가 떠다닌다


파란 바다를 구름이 산책하고
서로의 마음에 돛을 세우며
그동안 늘 고마웠다는 한마디
당신이 있어서 참 다행이라는 한마디


가을 햇살보다 눈부신
그대와 함께하는 시간 속으로
가을이 익어간다








희망의 노래 부르는 사람들





낮은 목소리로 뉴스 보는 사람들
돈 안 되는 일 부여잡고 허허 웃는다
아내는 쌀뜨물로 삼치를 헹구고
남편은 쌀뜨물 같은 막걸리로 먼지를 헹군다
밤새 코고는 소리에 뒤척인 새벽
양은냄비에 콩나물국이 사정없이 들끓고 있다


에스프레소로 아침을 가진 자의 신문 속에
새벽밥 먹고 출근하는 노동자 들어 있고
전날 기름칠 못한 장비들이 기다리는 단조공장에는
철모르고 핀 개나리가 줄지어 서 있다


노모가 기다리는 시골집에 감 따러 가면
바리바리 싸다주신 일 년치 농작물에
부른 뱃속으로 허한 슬픔이 차오른다


들이닥치는 웃풍에도 서로의 손 부여잡고
희망의 노래를 부르는 사람들









**약력:2015년 《수원문학》 신인상. 2015년 《리토피아》로 등단. 시집 『붉은 재즈가 퍼지는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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