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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호/신작시/김종호/가을의 무게 외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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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시
김종호
가을의 무게
백로를 지나자
여름내 시달리던 호박넝쿨이
흠뻑 젖은 가랑이에 마구 새끼를 친다.
수련 잎에 구르는 이슬방울이
작은 바람에도 흔들리지 않으니
연못 속을 파고드는 아침햇살이 스스로 미끄러진다.
늦게 피어나는 가을꽃들 슬픔처럼 깊어졌고
마른 옥수숫대를 비스듬히 비추는
한낮의 태양도 한층 어둡고 무거워졌다.
느닷없이 해고 통보를 받은 내겐
하루 종일
가벼운 전화 한 통 오지 않았다.
무한창공 깊은 우주의 무덤 속에서
일점 호흡도 모두 꺼버린 채
무장무장 기어 내려온 별빛이
내 굽은 어깨를 어루만진다.
전파를 타고
터널 속으로, 아니 블랙홀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순간이다, 하하하하, 조영남 아버님, 치지지직, 아아 떡떡, 아아 쏙쏙, 쏴아아아, 석봉아, 치지지직, 너는 글을 쓰고, 나는 떡을 썰고, 치직 치지지직, 참 이상한, 남자들이야, 치직 치지직, 자, 열 분쯤 더 뽑아서, 아아 석봉아, 아아, 선물을, 치르르륵 치르륵, 보내드리도록, 치이이, 다음은 이동원 버전으로 가을편지를, 아아, 치지지 치직치직, 다시 산으로, 올라가, 쏴아아아, 석봉아, 석봉아, 너는 글을 쓰고, 나는 떡을 썰고, 치르르, 편지를 하겠어요, 치이이이, 누구라도, 석봉아, 낙엽이 떨어진 날, 외로운 여자가, 치직치지직, 모두투어와 함께 떠나는 가을, 치이이, 아름다워요, 조강지처가 좋더라, 너는 혼선이 되어 동굴 속을 떠돌고, 나는 물병을 손에 잡고, 한 손으로 뚜껑을 열며, 터널을 빠져나간다, 아니 다시 블랙홀 속으로, 물을 마시며.
**약력:1982년 <강원일보>신춘문예(시). 1992년 <조선일보>신춘문예(동시) 등단. 시집 『둥근 섬』, 『적빈赤貧의 방학』.
저서 『물·바람·빛의 시학』 외. 원주문인협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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