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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라산문/허문태/길, 강, 그리고 음악 - 동 유럽을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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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부2
댓글 0건 조회 7,826회 작성일 15-07-13 13:14

본문

허문태

, 강 그리고 음악

-동 유럽을 가다

 

 

길은 아득하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에서 로마를 로 바꾼다. “모든 길은 나로 통한다.” 이번 여행에 주제다. 여행을 하는 동안 보고, 듣고, 느끼는 것을 내 맘대로 생각하고 해석 해 보고 싶다. 철저히 독선적 이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아름다운 경치와 중세의 고색창연한 건축물들을 주마간산처럼 보고 지나치게 될 것이다. 조금이라도 현장의 생명력이 넘쳐흐르는 여행이 되려면 철저히 고정관념을 버려야 할 것이다.

우리는 동유럽으로 떠나는 것이 아니다. 지루하게 반복되는 일상에서 떠나는 것이다. 어쩌면 자기 자신에서 떠나는 것이다. 이 여행에서 내가 나를 떠나 진정 나를 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그것도 욕심 부리지 않기로 한다. ? 내 맘이니까.

잘 짜여 진 단체 관광의 특권이라면 편안함이다. 그 편안함도 마음껏 누리고 싶다. 그러나 편안한 달콤함에 빠지는 순간 아무 생각 없는 떠돌이 집시가 되고 말 것이다.

이번 여행에 함께하는 분들은 성당 교우들과 신부님, 수녀님이다. 동유럽의 아름다운 경치 속에서 창조주의 오묘한 신비를 깨닫고, 오래 된 성당을 답사하면서 신앙을 북돋으며, 일부 성지를 순례하기로 되어 있다. 참 복잡하다. 관광을 하자는 것인지, 성지순례를 하자는 것인지, 그냥 적당히 그 경계를 넘나들자는 것인지. 그러나 다 안다. 우리들의 단순성을 다 안다. 관광할 때는 관광하고, 순례할 때는 순례 하고, 어영부영 할 때는 어영부영 할 것이다. 이미 우리는 행복한 보헤미안이 되었기 때문이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는 동안 11시간을 날아온 비행기가 뭔헨공항에 사뿐히 착륙한다. 우린 독일 뮌헨을 시작으로 오스트리아. 헝가리. 폴란드. 체코를 여행 할 것이다.

 

비 내리는 뭰헨과 푸센

비 내리는 도시 뭔헨은 문득 낮 설다. 그러나 중심 시가지로 들어가니 낮 설지가 않다. 골목이 있고, 상점이 있고, 오페라 극장이 있고, 광장이 있고, 거기 동상이 있고, 오래 된 성당이 있다. 사람들의 생각은 다 비슷하다. 옛날 사람이나,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이나 비슷한 생각으로 산다. 다만 얼마나 겸손하고 낮춘 마음으로 살아가느냐가 중요하다. 뭔헨은 겸손한 도시 일까?

마리엔 광장 북서쪽에 2개의 둥근 첨탑이 뭔헨을 자비의 눈빛으로 내려다보고 있다. 호프가르텐 성모 성당이다. 뭔헨에서는 호프가르텐 성모 성당의 첨탑보다 건물의 높이를 낮게 건축한다고 한다. 종교개혁이 유럽을 휩쓸 때 바이에론 왕국은 종교개혁을 거부 했다고 한다. 가톨릭이 번성한 도시 이다. 신을 경외하고 신의 음성에 귀 기울이려는 겸손한 도시이다. 그러나 수도자들이 건설하고 베네딕도 수도자들의 겸손함이 서려있는 이 뭔헨이 히틀러의 정치적 활동무대였다니 참으로 아이러니 하다.

뭔헨을 떠나며 울려 퍼지는 함성이 어디선가 들려온다. 히틀러의 열병식인가 했더니, 다행히 바이에른 뭰헨전용 축구 경기장의 함성이다.

아우토반을 달려 푸센으로 가는 동안 바그너의 오페라 탄호이저서곡이 머릿속으로 흐른다. 낭만적이고 장중한 선율이다. 육체와 정신 중 과연 정신이 먼저일까? 현실이 먼저 일까? 바그너는 정신이라고 결론을 내리지만 나는 아니다.”라고 말하고 싶어 입이 근질거린다.

차창으로 빗방울이 부딪친다. 뭔헨을 감싸고 흐르던 이자르강이 멀리 사라진다.

사진1 동유럽099 호르가르덴 성모성당 내부

 

빗방울이 떨어지는 5월의 푸센 어느 깊은 산중, 연초록이 출렁인다. 호엔슈방가우성, 일명 백조의 성이 그 위에 환상적인 모습으로 떠 있다. 루드비히 2세가 백조를 유난히 좋아해서 바그너의 오페라 로엔 그린중 백조의 전설에 영감을 받아 지은 성이란다. 정신병자이기도 한 루드비히 2. 그는 경치가 빼어난 이 푸센 슈반가우 숲에 그 만의 독창적인 생각으로 성을 건축했다. 그러나 그는 그 성의 완성을 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그는 불행하지 않다. 그는 행복한 정신병자이다. 자신이 이루고자 했던 꿈을 이루려고 혼신을 다하다 죽는 것처럼 행복한 일이 또 있을까? 백조의 성 대공연장에서 알프 호수를 내려다보며 생각에 잠긴다. 나의 정신 상태는 과연 정상인가? 시대의 흐름에 아무런 의심도 없이 따라만 가고 있는 것은 아닌가? 그래서 이 소중한 시간을 헛되이 보내고 있는 것은 아닌가? 남들이 정신병자라고 하더라도 나는 나만의 길을 가야 하지 않는가?

그러나 파울로 코엘료는 순례자라는 책에서 비범한 것은 평범한 사람들의 길 위에 존재한다고 했다. ‘평범한 사람들의 길을 계속 따라 걷기 위해 매일같이 치러내야 하는 나 자신과의 선한 싸움에서 존엄과 끈기를 발견해야 한다고 했다. 나는 나의 평범한 일상의 소중함을 다시 한 번 가슴에 새긴다. 구름 속에서 또다시 빗방울이 떨어진다.
사진2 동유럽 144 호엔슈방가우성(백조의 성)

 

합스부르크 왕가와 음악의 고향

잘츠부르크에 호화롭지는 않으나 오래 되어 정감 있는 호텔에서 하룻밤을 쉰다. 눈을 뜨니 어딘가에서 모차르트의 사랑의 인사가 들려오는 것 같아 창문을 활짝 연다. 햇살이 훅! 방으로 들어온다. 잘츠부르크의 아침은 명랑하고, 달콤하면서 짭짤하다. 잘츠부르크가 나를 너무나도 격하게 환영 한다. 소금의 성이라는 잘츠부르크. 잘차흐 강이 먼저 와 있다. 강은 단정하면서 조금 높은 음으로 흐르고 있다.

소금 무역의 중심지로 번영을 누려왔던 잘츠브르크. 798년에 대주교 관구로 지정 되면서 가톨릭 문화의 중심지가 되었고, 19세기 오스트리아의 영토로 편입되기 전까지 이곳을 통치한 대주교들은 로마를 닮은 건축물들을 시내 곳곳에 세워 북쪽의 로마라는 별칭을 얻게 되었다.

신이 사랑한 천재 음악가 모차르트가 탄생했으며, 카라얀이 태어났고, 뮤지컬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의 무대가 되어 유명세를 타면서부터 시들지 않는 인기를 누리고 있다. 해마다 여름이면 유럽3대 음악제 중 하나인 잘츠브르크 페스티발이 열려 세계적인 음악인들이 이곳을 찾는다.

사진3 동유럽290 호엔잘츠부르크성에서 내려다 본 잘츠브르크 시내

 

잘츠브르크에는 요새같은 호엔잘츠부르크성이 있다. 적의 공격을 받을 때 대주교가 피신하고 항전하는 곳이다. 당시에는 잘츠브르크를 대주교가 다스렸다. 성이 점령되지 않는 한은 이곳에서 살아남는다. 17세기에 지어진 중세 성으로 구시가의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하고 있다. 시내 정경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잘츠브르크의 상징물이다. 동시에 유럽에서 현재까지 파손되지 않고 보존 된 성 중에 하나이다.

그러나 이성에는 슬픈 사연이 있다. 잘츠부르크의 대주교 볼프디트리히는 살로메 알트라는 여인을 사랑하게 되었다. 성직자는 결혼 할 수 없다는 규율을 깨고 그는 사랑하는 여인과 15명의 자녀를 두었고 그들에게 미라벨 궁전을 지어 주었다고 한다. 그러나 가톨릭 교단의 혹독한 비난과 시민들의 반발을 불러 일으켰고, 결국 체포되어 호엔잘츠부르크 성에 감금 된 채 생을 마치게 되었다.

성을 쌓는 자 망 할 것이고 길을 닦는 자 흥 할 것이다.” 가만히 되 뇌이며 성 아래 핏줄같이 이어진 길을 내려다본다. ‘라는 성에 갇힐 때 우리는 잔인해진다. 머물지 말고, 갇히지 말며 늘 새롭게 길을 찾아 걸어가야 할 것이다.

사진4 동유럽310 모차르트 생가

 

모차르트가 태어난 생가를 방문한다.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 우리 생에 모차르트는 음악으로 우리들에게 가장 많은 영향을 준 음악가 이다. 모차르트 생가에는 오늘도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어 모차르트를 경배하고 있다. 나는 그 군중 속에서 모차르트와 베토벤을 생각하고 있다. 신이 사랑한 천재 음악가와 악성으로 추앙받는 베토벤. 그들은 동시대 인물로 약 한 달 정도 함께 했다고 한다. 두 천재들은 함께 하는 동안 얼마나 행복했을까? 쉽게 알지 못하는 경지를 그들은 편안히 산책하며 거닐었을 것이다. 그리고 희열을 느꼈을 것이다.

모차르트 생가 근처에는 모차르트 초콜렛을 파는 가계들이 많다. 세상에서 가장 달콤한 초콜렛이다. 초콜렛을 먹으며 나는 모차르트 교향곡 40번 선율을 따라 어딘가로 마냥 흘러간다. 어디로 흐르는 것인가? 그러나 그 목적지는 알려고 하지 말자. 흐르는 것은 바다를 꿈꾼다.

일정에 따라 이동해야하는 단체여행의 비정함이 벌써 느껴진다. 아름다운 풍경을 뒤로 하고 다음 행선지로 떠나는 아쉬움이 크다. 그러나 그것도 금방 잊어버린다. 차창 밖으로 펼쳐지는 알프스 자락의 풍경은 우리들의 입을 다물지 못하게 한다. 달력 속에서만 보던 아름다운 장면들이 계속 이어진다.

 

음악가들이 사랑한 도시 비엔나에 도착했다. 브람스, 하이든, 리스트, 슈베르트, 요한스트라우스, 베토벤, 비발디, 등 비엔나에서 활동한 음악가는 하늘의 별 만큼이나 많다. 그런데 음악의 도시 비엔나에서 전혀 음악을 느낄 수가 없다. 그냥 오래 된 도시이고 조금 낮 설기는 또 마찬가지이다. 현지 가이드가 열심히 설명을 하면 조금 느껴지는 것이다. 당연한 일이다. 음악은 우리들에게 멀리 있다. 음악회를 간다는 것이 지금 나에게는 개발에 편자일 수 가 있다. 우리들의 삶이 지금 그렇다.

그러나 강인봉 시인은 그의 시 노을에서

음악은 은혜를 아는 사람들의 작은 날개짓이라고 읊었다.

그렇다 은혜를 아는 사람들은 음악을 들을 수 있다. 음악이 될 수 있다. 지금 멀리 그리워만 하던 비엔나와 함께하는 이것이 은혜다. 함께 여행을 하고 있는 모든 분들이 모두 내겐 은혜다. 눈부시게 내리는 5월의 햇살이 은혜이다. 요한 스트라우스의 봄의 소리 왈츠가 잔잔히 비엔나 거리에 흐른다. 비엔나에서의 시간은 은혜로운 시간이다.

빈 오페라 하우스는 파리 오페라 하우스, 밀라노 라 스칼라와 함께 세계 3대 오페라 극장이다. 지금쯤 빈 오페라 하우스에서는 베토벤의 교향곡 5번이 웅장하게 울려 퍼지거나, 모차르트의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이 공연 되겠지. 나는 사랑하는 나의 연인과 연미복을 입고 아주 품위 있는 자세로 감상하고 있겠지? 상상을 한다. 그러나 빈 오페라 하우스는 지금 공사 중이다.

모차르트의 오페라 돈 조반니가 개관 기념작으로 상연 되었다.

오페라 하우스에서 성 슈테판 성당에 이르는 약 600m거리가 빈 최대의 번화가 이자 보행자 천국으로 유명한 게른트너거리다.

게른트너 거리의 끝자락에 성 슈테판 성당이 있다. 137m에 달하는 첨탑이 있는 거대한 성당이다. 스테인드 그라스 장식이 매우 아름답다. 하늘을 찌를 듯한 뾰족한 고딕양식의 웅장한 건물은 마치 하늘로 올라가려는 인간의 욕망이 그대로 표현 된 듯하다. 성 슈테판 대성당은 외관만큼이나 실내도 웅장하고, 아름답다. 그 넓은 공간을 가득채운 정교한 조각들과 화려한 스테인드 그라스를 보며 입을 다물지 못한다.

사진5 동유럽561 성 슈테판 성당

 

쉔부른 궁전은 유럽에서 가장 호화로운 궁전 중에 하나이다. 오스트리아 수도 남서쪽 교외에 있는 합스브르크가의 여름 궁전이다. 베르사이유 궁전에 필적할만한 장대하고 화려한 규모를 자랑하는 합스브르크 왕조의 600년의 역사를 간직한 유서 깊은 곳이다. 프랑스 혁명 때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진 마리 앙뜨와네트의 어머니 마리아 테레지아의 궁전으로 마리 앙뜨와네트가 태어나 어린 시절을 보냈던 곳이다. 궁전은 부드러운 황색의 외벽이 인상적인 거대한 3층 건물로 방이 1441개나 된다. 바로코 양식의 건물에 화려한 로코코양식의 실내장식을 해 전체적으로 화려하면서도 따듯한 분위기이다. 일반인의 출입이 허용 된 40여개의 방을 통해 합스브르크 왕가의 화려했던 모습을 엿볼 수 있다. 마리아 테레지아의 거실, 마리 앙뜨와네트가 어린 시절을 보낸 방, 남아메리카산 장미나무 뿌리로 꾸민 방등 어느 곳이든 일반인의 눈에 호사스럽지 않은 곳이 없다. 사방이 온통 거울로 둘러싸인 거울의 방은 여섯 살 된 모차르트가 마리아 테레이지 앞에서 피아노를 연주 한 곳으로 유명하다. 당시 또래였던 마리 앙뜨와네트에게 모차르트가 청혼을 했다는 일화가 전해지기도 한다.

합스부르크 왕가의 화려함 뒤에는 또한 엄청난 비참함이 있을 것이다. 흥망성쇠의 비정함을 나는 그 넓은 정원을 걸으며 자꾸만 되씹는다. 혈통을 유지하기 위해 근친결혼을 하였으며 그로 인한 우울증 환자가 많았고, 정신병을 앓는 사람도 많았다. 주걱턱은 아주 유명한 합스부르크 가문의 상징처럼 되어 있다. 호화로움을 유지 하려면 반듯이 그 만큼의 고통을 감내해야 한다. 그러므로 고통을 이겨 내면 반듯이 호화로움이 있다는 것도 우리는 알아야 한다. 호화로움은 아니더라도 슬픔을 예방하기 위해 미리 고통을 선택하는 방법으로 살아가는 것은 어떨까? 부단히 공부를 하고 묵묵히 궂은일을 하는 것도 한 방법이 아닐까? 그래서 호화로움은 정신적, 또는 영혼의 호화로움이 되어야 할 것이다. 그것은 영원하다. 정신과 영혼의 문제가 물질 자본주의로 퇴색 되어 버린 시대를 우리는 아무생각도 없이 살아가고 있는 듯하여 자꾸만 쉔브른 궁전을 뒤 돌아 본다.

사진6 동유럽 472 쉔브른 궁전

 

강은 흐른다.

비엔나를 출발해서 헝가리 부다페스트에 도착하니 늦은 오후이다. 헝가리에서 아주 유명한 음식점에서 식사를 하고 서둘러 도나우강의 야경을 감상하기 위해 출발한다.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 강을 눈앞에서 보고 있다. 감격스럽다. 저 강은 어쩐지 나에게는 필연의 강이란 생각이 직감적으로 든다. 왤까? 강바람을 맞으며 가만히 생각에 잠긴다. 도나우강은 약3000km를 흘러 유럽을 관통하여 흑해로 흘러가는 강이다. 참으로 대단한 강이다. 여러 나라의 이해관계를 한 몸으로 다 감당하며 유유히 흐른다. 기쁨과 슬픔을 껴안고 흐른다. 헛된 욕망과 시린 상처를 껴안고 흐른다. 강은 말없이 흐른다. 도나우.

저 강이 어쩌다 사라지면 어쩌나 하는 불안이 문득 밀려온다. 아주 나뿐 무리가 있어 저 강을 없앤다면 어쩌나 하는 생각이 왜 드는 것일까? 수 천 년을 흘러 온 강이 사라지면 그곳은 무엇으로 변할까? 악귀들의 놀이터가 될까? 아니 우리는 어떻게 될까? 문득 김용택 시인의 섬진강.1’이 떠오른다.

섬진강.1

김용택

 

가문 섬진강을 따라가며 보라

퍼 가도 퍼 가도 전라도 실핏줄 같은

개울물들이 끊기지 않고 모여 흐르며

해 저물면 저무는 강변에

쌀밥 같은 토끼풀꽃,

생략

지리산 뭉툭한 허리를 감고 돌아가는

섬진강을 따라가며 보라

섬진강 물이 어디 몇 놈이 달려들어

퍼낸다고 마를 강물이더냐고,

생략

저무는 섬진강을 따라가며 보라

어디 몇몇 애비 없는 후레자식들이

퍼 간다고 마를 강물인가를

 

우리들이 유람선에 오르는 순간 요한 스트라우스의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가 울려 퍼진다. 유람선의 갑판에서 한바탕 왈츠를 춘다. 여자들은 하얀 드레스를 입고 남자는 턱시도에 연미복을 입었다. 황홀한 야경이다. 5월의 도나우, 강바람은 우리들의 마음을 한없이 흔들어 놓는다. 붉게 석양이지고 노을이 도나우 강 물결에 불게 탄다. 황홀한 밤이다. 헝가리 국회의사당에 은은히 불빛이 감돈다. 화사하게 빛난다. 행복한 밤이다. 멀리 부다 왕국도 노란 불빛 속에서 웅장한 모습을 뽐내고 있다.

중년의 여자들은 타오르는 열정을 감당 할 수가 없는지 뱃머리에서 숄을 휘두르고 강바람에 펄럭인다. 지금 이 순간이 절정으로 피어나는 꽃 인양 화사하다. 나는 그들에게 박수를 친다. 그들도 강이다. 묵묵히 가족을 껴안고 흐르는 강이다. 그들은 지금 노을에 젖어 붉게 타고 있다. 나도 감당 할 길 없는 마음을 어쩔 수 없어 야경 불빛 속으로 불나방처럼 뛰어든다.

그리고 도나우하고 불러본다. 모니카하고 불러본다. 내 몸에도, 아니 내 생에도 잔잔히 흐르고 있는 강이 있다. 나는 그녀를 만나 촉촉해졌고, 곡식을 키우고, 열매를 맺었다. 그녀는 수 십 년을 아무 말도 없이 잔잔히 흐르고 있다. 나는 아름답게 노을 지는 그 도나우를 가만히 껴안는다. 따듯하고 잔잔하다.

사진7 동유럽628 부다페스트의 야경

 

도나우 강의 가운데 작은 섬에 있는 호텔에서 눈을 뜨니 숲속에 새들이 성화다. 어서 나오라고 성화다. 아침 식사 전 숲 속을 산책한다. 참으로 여유로운 아침이다. 이름 모를 들꽃 한 송이가 날 보고 수줍게 몸을 비튼다. 나는 그 볼에 살짝 키스를 한다. 나도 살짝 몸이 비틀린다.

성 이슈트반 성당을 관람하고, 우리들은 세체니 다리를 건너 부다지구로 넘어간다. 잘 알다시피 부다페스트는 구시가지 부다와 신시가지 페스트가 도나우 강으로 나누어져 있다. 유네스코에 문화유산으로 등재 된 부다지구에 어부의 요새와 마챠시 성당, 부다 왕궁, 겔레르트 언덕을 구경할 예정이다. 아시아에서 건너온 마자르 족이 세운나라 헝가리.

어부의 요새는 동화 속에 나올 법한 7개의 뾰족한 탑으로 되어있다. 이곳에 뿌리를 내린 7명의 마자르인을 상징한다. 19세기 어부들이 적의 침입을 방어한데서 그 이름이 전해졌다. 도나우 강과 아름다운 페스트를 감상할 수 있는 좋은 전망대이다. 특히 석양 무렵에 전망이 인상적이다. 마챠시 성당의 본래 이름은 성모 마리아 대성당이다. 부다 성내에 건축되어 있어 역대 국왕의 대관식과 결혼식의 장소로 많이 이용 되었다고 한다. 1479년 마챠시1세가 크게 개축함으로써, 높이 80m의 첨탑이 증축 되었다. 마챠시 성당은 부다에 풍요로움의 상징이자 헝가리인들의 의지처가 되었다. 마챠시 성당 앞에는 헝가리 최초의 국왕인 성 이슈트반 기마상이 있다. 마챠시 성당의 지붕은 헝가리를 대표하는 도기 제조장인 조르나이제가 기증한 다이야몬드 모양의 기와가 형형색색 인상적이다.

사진8 동유럽711 마챠시 성당

 

부다 왕궁으로 향한다. 그곳으로 가던 중 베토벤 음악홀이 있다. 베토벤이 부다페스트에 머물면서 탄생한 곡이 사랑하는 여인을 위해 만든 곡 엘리자를 위하여이다. 감미로운 선율이 한껏 부푼 가슴으로 낭창낭창 흘러간다. ! 어쩌란 말인가. 가슴이 벌렁벌렁 미치겠다.

부다 왕궁은 벨러 4세 왕에 의해 13c 후반 처음 지어졌다. 지금은 세 개의 박물관과 미술관으로 쓰이고 있다. 우리들은 왕궁에서 한가롭게 도나우강 주위로 펼쳐진 경치를 배경으로 삼아 사진 찍기에 여념이 없다. 남는 것은 사진 밖에 없다나.

궁궐 정문 탑 위에는 투룰청동상이 있다. 매과에 속하는 전설의 새 투룰로 마자르인들의 상징물이다. 투룰은 한 발에 칼을 움켜쥐고 멀리 한 곳을 응시하고 있다. 아시아에서 온 마자르인들의 고향을 응시 하고 있다고 한다.

사진9 동유럽 733 투룰 청동상

 

버스를 출발하려 하는데 두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 인천 공항에서 출발 할 때부터 뭐가 그리 좋은지, 개념 없이 정신을 놓고 다니더니, 내 그럴 줄 알았다. 그러나 개념 없고 마냥 좋은 건 우리들도 다 마찬가지이다.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강과 부다페스트를 떠나며 한식집에서 김치찌개를 먹는다. 오랜만에 먹는 한식에 모두들 코가 빠진다.

타트라로 향한다. 끝없이 펼쳐지는 초원에는 유채와 밀이 가득이다. 우리들은 알프스의 산자락 경치 좋은 곳에서 하루를 쉬어 간다. 호텔 앞에 펼쳐진 호수와 뒤에는 만년설이 허옇게 남아 있는 높은 산이 서늘하니 신령스럽다. 호숫가를 산책하며 머릿속에 복잡한 생각들을 깨끗이 씻어낸다.

 

대평원은 바다다

타트라를 떠나 천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고도 폴란드의 크라쿠프로 간다,

폴란드는 음악가 쇼팽의 조국이다. 작곡가이며 피아니스트인 쇼팽. 그를 피아노의 시인이라고 한다. 쇼팽의 즉흥환상곡이 물결치듯 푸른 들판으로 넘실거린다. 푸른 초원이 끝없이 펼쳐진다.

남진의 님과 함께를 불러본다.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 사랑하는 우리 님과.....” 멀리서 쇼팽이 피식 웃는다.

지동설로 유명한 코페르니쿠스와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동유럽에서 가장 유명한 대학으로 인정받고 있는 이곳 크라쿠프의 야기엘론스키 대학에서 공부했다.

중앙시장 광장에는 13세기 고딕 양식의 성모 마리아 대성당이 있다. 크라쿠프의 상징적인 건물로 성당 내부는 황금빛으로 호화찬란하다. 첨탑에서는 시간마다 헤이나우의 아름다운 선율이 울려 퍼진다. 이것은 첨탑에서 보초를 서던 파수병이 타타르족의 침입을 알리기 위해 있는 힘을 다해 헤이나우를 연주하던 도중 화살에 맞아 죽은데서 유래 되었다고 한다. 갑자기 트럼펫 소리 같은 소리가 우렁차게 들려서 모두들 첨탑의 연주자를 올려 다 본다.

우리들은 직물회관에서 진열 된 상품, 특히 이곳에서 유명한 보석 호박을 구경하고 사기도 했다. 그런데 화창하던 날씨가 갑자기 컴컴해 지더니 폭우가 쏟아진다. 마치 적이 쳐들어온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적의 침입을 유난히 많이 받았던 폴란드의 지난한 역사가 잠시 머리를 스쳐간다.

폴란드 문화와 교육의 중심지 크라쿠프는 아우슈비치 수용소와 영화쉰들러 리스트의 배경으로 잘 알려져 있다. 크라쿠프는 1138년 수도로 지정 된 후 바르샤바 천도 때까지 500년 넘게 폴란드의 수도였다. 2차 세계 대전 중에는 독일군이 유난히 많이 주둔해 있던 덕분(?)에 아름다운 유적과 건물들이 파괴 되지 않고 잘 보전 되어 있다.

사진10 동유럽929 중앙시장 광장. 뒤편이 성모 마리아 성당

 

비엘리치카에 있는 소금광산을 관람한다. 계단을 따라 내려가면 마치 우리나라 석탄 광산처럼 암염을 채굴해 내려갔다. 그 규모가 엄청나다. 700년의 역사를 간직한 소금광산이다. 가장 눈길을 끄는 공간은 지하 100m지점에 있는 축복 받은 킹가 교회라는 성당이다. 헝가리에서 폴란드로 시집오면서 지참금으로 소금광산을 가져왔다하여 마을의 수호신처럼 숭배되는 캉가공주를 위한 공간이다. 길이 55m, 18m, 높이 12m의 공간은 지상 여느 교회와 다를 것이 없다. 제단과 촛대는 물론, 성서의 주요 장면을 묘사한 부조와 성인들의 조각상까지 갖추고 있다. 1493년 쿠페루니쿠스의 방문을 기념해서 만든 쿠페루니쿠스 방킹가 공주의 전설을 새겨 놓은 전설의 방도 있다. 전설 속의 난쟁이들이 일하는 모습을 묘사한 난쟁이 조각상, 왕의 조각상은 물론 깊이가 9m인 지하 호수도 있다.

사진11동유럽862 소금광산 안에 있는 성당

 

우리들은 파우스티나 자비의 수녀원을 순례후 쉰들러리스트의 배경이 되었던 아우슈비치로 이동한다.

아우스비치 하면 유대인들이 가스실에서 무참히 살해 된 곳이다. 그러나 처음에는 폴란드 정치범들을 수용하기위해 설립되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유럽인들 특히 유태인 디아스포라, 집시, 소련군 포로들을 수용 학살하게 되었다. 그 중에서 유대인들이 가장 많이 희생 되었다. 유대인들이 가장 많이 희생 된 데는 여러 가지 설이 있다. 그 중에 한 가지를 생각해 본다. 독일에 게르만족들이 아직 자리를 잡지 못하고 있을 때 게르만민족들은 돈 많은 유대인에게 은근히 멸시와 핍박을 받았다고 한다. 바그너는 이런 게르만 민족의 설음과 울분을 그의 음악을 통해 적극 표현하고 게르만 민족이 자긍심을 되찾는데 공헌 했다고 한다. 히틀러는 바그너의 정신을 자신의 정치적 모토로 삼아 게르만 민족의 위대성을 나타냈다. 그 과정에서 유대인들을 학살하게 되었다. 는 설도 있다. 그렇다면 가해자와 희생자는 언제나 바뀔 수 있다는 것이 아닌가. 그러나 어쩌면 유대인들은 다시 가해자가 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들은 늘 하느님의 선택 된 백성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고통의 시기도 하느님의 계획에 의해 주어진 것이라 생각 할 것이다. 모든 것이 하느님의 계획에 의해 이루어진다고 그들은 굳게 믿고 있다. 그래서 아직도 그들을 구원해 줄 구세주를 간절히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구원을 바라는 순간 구세주는 이미 온 것이 아닐까? 기다리는 구세주는 언제나 기다리는 구세주다.

아우스비치를 떠나며 우리 민족을 생각해 본다. 서러운 민족이다. 힘이 없어 언제나 강대국의 속국으로만 살아가는 민족. 시련과 고통만큼 성장 되지 못하는 민족. 서로 꼭 껴안고 살지 못하는 민족. 멀어져가는 아우슈비치를 가슴 한켠에 담는다. 조국을 떠나서 조국을 생각하는 느낌이 많이 다르다. 우리도 무조건 통일을 하고 단결 된 민족으로 부강해져서 고통 받는 나라가 되지 말아야겠다.

사진12 동유럽 1059 아우슈비치 제2수용소

 

조국을 안타깝게 생각하는 마음으로 우리들은 폴란드 가톨릭 최고의 성지인 쳉스토호바로 이동한다. 폴란드는 속칭 수도를 3개 갖고 있다고 한다. 행정수도는 바르샤바. 문화수도는 크라쿠프. 신앙의 수도는 쳉스트호바.

쳉스트호바는 폴란드 전 국민의 성지순례지가 되어 매년 815일 성모승천대축일이 되면 전 국민이 걸어서 모이는 순례지이다. 이곳 쳉스트호바에는 불랙마돈나 성화를 모시고 있는 아스나고라 수도원이 있다. 전승에 따르면 이 성화는 성 루카가 그린 것으로 300년 동안 예루살렘에 숨겨져 있던 중 성녀 헬레나가 성 십자가를 찾는 과정에서 우연히 발견했다고 한다. 불랙마돈나 성화는 콘스탄티노풀을 거쳐 최종적으로 이곳 폴란드 쳉스트호바 야스나고라 수도원에 도달 했다. 불랙마돈나는 수많은 기적을 일으켰고, 특히 폴란드가 스웨덴의 침공을 받거나 독립을 지키지 못하게 되었을 때 모든 항쟁의 수호자가 되어 폴란드를 지켜 주었다고 한다.

슈베르트의 아베마리아가 야스나고라 수도원 대성당 중앙 제단에서 잔잔히 울려 퍼진다.

우리들은 쳉스트호바 야스나고라 수도원에서도 미사를 봉헌한다. 신부님은 미사 중에 기도 하신다. 경제적으로, 정치적으로, 외교적으로 또한 분단의 아픔 속에서 고통에 빠져있는 우리나라에게 기쁨과 행복이 넘치는 나라가 되게 해달라고 기도하신다. 불랙마돈나의 가슴으로 기도 하신다.

사제여 감사하나이다. 사제여 거룩하소서.

사진13 동유럽 1182 쳉스트호바 야스나고라 수도원에서

 

보헤미안을 꿈꾸다

쳉스트호바를 떠나 체코 브르노로 떠난다. 참으로 먼 길이다. 그 먼 길을 가며 펼쳐지는 대평원을 차창 너머로 마냥 쳐다본다. 대평원을 보며 졸시 한 편을 써 본다.

 

어느 대평원에서

 

어쩌면 이리도 아무 생각이 없는 걸까?

내가 출발 곳이 산인지, 들인지

길을 따라 왔는지, 강을 흘러 왔는지

음악은 아다지오였는지, 알레그로였는지

자꾸만 기억이 사라져 간다.

흰 구름 뭉게뭉게 끝없이 아득한 푸른빛이

하늘 바람 산들산들 돛을 펄럭이며 가는 마을이

어쩌면 이리도 평안하고 설레일까?

더는 흘러 갈 곳도 돌아갈 곳도 없다.

멀리까지 흘러 왔다

참 멀리까지 흘러 왔다

이따금 서로 맞서던 저 산맥도

어느 새 여기까지 흘러 왔구나

가만히 바다에 안긴다.

다음날, 우리들이 도착 한 곳은 프라하에서 남서쪽으로 200km 떨어진 체스키 크롬로프다. S자 모양으로 완만하게 흐르는 볼타바 강변이 내려다보이는 언덕 위에 있는 작은 도시로 붉은 지붕과 둥근 탑이 어우러져 동화 같은 분위기를 연출한다.

높은 언덕에 영주의 성이 자리 잡고 있고, 그 아래 빨간 지붕들이 평화롭게 펼쳐져 있다.

체스키 크롬로프 성은 13c 중엽 대지주였던 비프코프가 고딕 양식으로 지었으나, 최고의 황금기를 누렸던 로젬베르크 가문이 르네상스 스타일로 증개축하면서 둥근 지붕을 인 타워와 회랑을 완성했다.

이발사의 다리에는. 애달픈 사연이 전해져 내려온다. 정신병을 앓던 루돌프 2세의 서자가 이 마을로 요양을 와서 지내다, 이발사의 딸에게 반해 결혼을 하게 된다. 어느 날 잠이 들었던 딸은 목이 졸려 숨진 채 발견 되고 범인을 찾기 위해 정신병이 든 이발사의 사위 루돌프2세의 서자는 마을 사람들을 한명씩 죽이기 시작한다. 이발사의 딸을 목 졸라 죽인 사람은 정신병자 루돌프 2세의 서자였다. 이 끔찍한 광경을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었던 이발사는 자신이 죽였다고 거짓말을 하고 사위 손에 죽게 되었다 한다. 이 이발사를 기리기 위해 마을 사람들이 다리를 놓았다고 전해진다.

합스부르크가의 정신병이 이곳에서도 비극을 불렀다. 체스키 크롬로프가 너무도 아름다워 사람들이 시기하는 마음으로 만들어낸 이야기는 아닐까? 나는 그렇게 믿기로 한다. , 고정관념은 여행에서 가장 무서운 적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사는 것도 일종에 정신병 일수도 있다. 복잡한 이해관계 속에 살아가는 현대인들은 모두 정신병자 일지도 모른다. 다만 그 정도의 심각성에 차이가 있겠지만. 아름다운 체스키 크롬로프에서 정신병자를 꿈꾸고 있다. 한심하다.

 

중앙광장에서 음악을 연주하는 젊은 남녀악사들의 선율에 맞춰 한바탕 춤을 춘다. 보헤미안이 되어서 자유로운 영혼이 이끄는 대로 춤을 추어본다. 사라사테의 지고이네르바이젠이 흥겹게 중앙광장에 울려 퍼진다. 끊어질듯 이어지는 바이올린 선율 같은 보헤미안들의 애환과 슬픔이 느껴지는 듯하다.

떠나고 싶지 않은 체스키 크롬로프. 여기서 그냥 살고 싶다. 동화 속 마을 같은 체스키 크롬로프에서 아무 생각 없이 살고 싶다.

그때 우리 여행자들 중에 가장 멋쟁이며 왕자병을 심하게 앓고 있는 한 분께서 체스키 크롬로프에서 가장 맛있다는 피자를 쐈다. 환상적인 피자 맛에 빠져 체스키 크롬로프를 잊는다. 나는 참 멍청한 단 세포 동물이다.

사진14 동유럽 1227 체스키 크롬로프

드디어 프라하에 입성이다. 볼타바 강은 프라하의 아픔을 씻어내느라 바쁘다며 저녁에 보자고 한다. 저녁에 꼭 물어 볼 것이다. 아픔은 어떻게 씻어내야 하냐고.

프라하 시내에서 점심을 먹고 시내를 걸어 카를교에 도착한다. 카를교는 보행자 전용 다리로 항상 사람들이 붐빈다. 14세기 카를4세가 블타바강에 놓은 다리로 유럽 중세 다리 중에 걸작으로 꼽힌다.

현존하는 석교 중 세계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카를교는 오랜 역사만큼 사연도 깊은 다리이다. 다리 난간을 따라 30개의 성인 조각상이 세워져 있는데, 폭군 바출라프4세에 의해 혀가 잘린 채 볼타바강에 던져진 성 얀 네프무츠키청동상이 중심에 있다. 작품성 높은 가장 인기 있는 조각상이다. 동상 아래 부조에는 왕이 바람을 피운 왕비의 고해성사 내용을 밝히라 했지만 끝까지 비밀을 밝히지 않아 혀가 잘린 채 강물에 던져지는 성 얀 네프무츠키신부의 모습이 묘사 되어 있다. 이동상 밑 동판에 손을 대고 소원을 빌면 행운이 깃든다는 전설이 있어 그 부분만 반질반질하다.

다리 중간 중간에는 집시의 피가 흐르는 악사들이 흥겨운 음악을 연주하고 있다.

중세 다리는 성과 마을뿐 아니라 삶과 세월을 잇는 소통로 이다. 카를교는 보헤미안의 애환과 600년을 함께 했다. 어느 계절, 어느 시간에 몸을 기대든 다리 위에서는 보헤미안들의 애환이 녹아든 렙소디가 울려 퍼진다.

또한 카를교는 여행자에게는 프라하 성으로 향하는 관문이 되고, 소설가 카프카를 되새기며 다시 구시가지로 돌아오는 길에는 사색의 연결로가 된다.

사진15 동유럽 1332 카를교

우리들은 트램을 타고 성 비투스 대성당으로 향한다.

14c초부터 600여년이 걸려 완성 된 성 비투스 대성당은 프라하 성의 상징이다. 그 거대하고 웅장한 모습으로, 또한 자비로운 모습으로 프라하 시내를 굽어 살피고 있는 듯하다.

성당 안에는 화려한 스테인드글라스가 있는데, 대부분 아르누보 예술가의 작품이다. 바츨라프 유물이 전시된 성 바츨르프 예배당은 성 비투스 성당의 필수 코스로 손 꼽힌다. 성당은 1000개가 넘는 보석으로 장식돼 있다. 이 성당에는 여러 명의 체코 왕과 성인들, 영주, 귀족, 대주교들의 유골이 안치 되어 있다.

구 시청사와 오를로이천문시계를 보기 위해 구시가지로 간다. 광장에는 종교 개혁가 얀 후스동상이 있다. 마틴 루터 보다 100년 앞서 종교 개혁을 주장한 신학자이자 성직자이다. 그러나 그는 교황청으로부터 파문을 당하고 독일의 콘스탄츠에서 화형을 당했다. 그것을 계기로 신교와 구교사이에 전쟁이 벌어지고, 전쟁에서 진 신교의 체코는 300넌 가까이 합스부르크가의 신민통치를 받게 된다. 동상에는 진리는 승리 한다.’라는 문구가 선명하다.

오를로이 천문시계 앞에는 수많은 관광객들로 붐빈다. 매시간 마다 인형으로 만들어진 12사도가 나와서 퍼포먼스를 펼친다.

인간의 부나 허영 모두 죽음 앞에서는 부질없다.”는 것과 너희에게도 언젠가는 죽음의 순간이 닥칠 것이다.”라는 암시를 하는데 인형들은 고개를 갸우뚱 거리며 설마 내게 그런 시간이 올까?”라는 의구심을 나타내는 의미라고 하니, 의미심장하다.

아직 정각이 되려면 30여분이 남아서 그동안 몇몇은 마차를 타고 시내를 한 바퀴 돈다. 그들이 마차를 타고 가고 싶어 하는 곳은 어디 일까? 잠시 눈을 감으면 마차는 우리들 각자의 꿈을 싣고 뽀얀 안개 깔린 아름다운 성을 향해 훨훨 날아오른다.

우리들은 이제 프라하의 야경을 감상하기 위해 카를교 아래 어느 오래 된 노상 카페로 이동한다. 강바람이 시원하게 얼굴에 스친다. 가장 편한 자세로 시원한 생맥주를 마시며 유유히 흐르는 볼타바강을 내려다본다. 그 너머 어둠내리는 프라하에 불빛을 받아 더욱 고풍스럽게 빛나는 건물들이 언뜻언뜻 눈을 맞춘다.

사진16 동유럽 1489 프라하의 야경

 

나는 볼타바 강에게 묻는다. “아픔은 어떻게 씻나요?” 볼타바강은 말없이 카를교를 가리키고 멀리 흘러간다. 그렇구나, 아픔은 누가 씻어 주는 것이 아니구나. 저 다리처럼 건너는 것이구나. 아픔도 아픔이라고 할 때 아픔이구나. 아픔도 잘 보살피면 아름다움이구나. 이 카를교처럼 나는 내가 태생부터 아픔이며 슬픔이라는 고정관념을 버리기로 한다. 그 고정관념을 흘러가는 볼타바강에 던져 버린다. 볼타바강에 던져 버리는 순간 성 얀 네프무츠키처럼 성스럽고 아름다워 질 수 있구나. 그리고 사연이 있는 아름다운 나의 다리를 뜨겁게 달아오른 가슴으로 꼭 껴않는다. 어둠 내리는 프라하에서 카를교 아래로 유유히 흐르는 몰타브강을 오랫동안 보고 있다.

사진17 동유럽 1507 바출라프 광장

 

우리들이 마지막으로 들러 볼 곳인 19681월 프라하의 봄이 진행 되었던 바출라프 광장으로 간다.

체코 민주화의 성지 바출라프 광장

광장이라기보다는 대로 같은 느낌이 강하다. 프라하 제일의 번화가이자 쇼핑가이다. 중세에는 말시장이 서던 곳이며 현재의 건물은 대부분 20세기에 지은 것이다. 이 광장은 체코 현대사에서 중요한 성지이다. 1963년에 시작 된 인간의 얼굴을 한 사회주의운동은 1968년 소련을 포함한 바르샤바 동맹군의 침략으로 위기를 맞았다. 이에 대항해 시민궐기가 일어났고, 1969년 프라하 대학 철학부의 얀 팔라흐가 바츨라프 동상 앞에서 분신자살을 하면서 시위는 더욱 격렬해졌다. 이후에도 2명의 학생이 분신자살을 해 시위는 최고조에 이르렀지만 결국 소련의 탄압으로 실패하고 만다. 이 사건이 바로 프라하의 봄이다. 이후 성 바출라프 기마상 앞에는 희생자의 넋을 기리는 기념비가 세워졌고, 추모비에는 헌화가 끊이지 않는다.

나는 무거운 마음으로 억압 받는 자들의 고통은 철저한 희생을 통해서만 쟁취해야 하는 것인가를 생각하며 바출라프 광장에서 잠시 생각에 잠긴다.

그때 광장으로 진입하는 노숙인 세 사람이 보인다. 젊은 두 명의 남자와 비루한 아직 젊은 여자이다. 한 남자가 신발을 질질 끌고 벤치 쪽으로 간다. 벤치에는 누군가 먹다 놓고 간 맥주가 한 컵 놓여 있었다. 남자는 그것을 움켜잡고 냄새를 맡아 본 뒤 먹어도 된다는 신호를 여자에게 보낸 뒤 단숨에 마신다. 그리고 더 이상 부러울 것이 없다는 듯 미소를 지으며 광장 한 쪽으로 사라진다.

집시 일까? 부랑자 일까? 보헤미안 일까? 급격한 변화로 갑자기 자신의 자리를 잃었거나, 변화 된 사회에 적응하지 못한 젊은이들이 갈 곳 없이 떠돈다. 체코도 우리나라처럼 젊은이들이 걱정이구나. 어디선가 퀸의 보헤미안 렙소디가 가슴을 쥐어짜며 울부짖듯 들려온다. ! 애달픈 젊은이들아! 어느 시대든 아픔이 있고 넘어야 할 시련이 있단다. 포기 하지는 마라. 포기 하지는 마라.

광장 한가운데로 첼리꽃 같은 아가씨들 몇 명이 활짝 웃으며 생기발랄하게 걸어가고 있다. 바출라프 광장에 5월의 햇살이 눈부시게 내린다. 체코 아니 동유럽은 한 시대의 아픔에서 벗어나 이제 찬란히 빛날 것이다.

화사한 5월 나는 행복한 보헤미안이 되어 빛나는 동유럽을 떠돌았다.

때론 길이 되고, 때론 강이 되고, 때론 음악이 되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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