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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라포럼/정승열/서정시 업그레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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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부2
댓글 0건 조회 3,675회 작성일 15-07-13 13:24

본문

아라포럼

정승열

서정시 업그레이드

 

 

이 자리에 와서 보니 옛날 내항문학 모임에 몸을 반쯤 담그고 있는 느낌입니다. 지금 이 자리에 계신 허문태 시인이 내항 창설 멤버 중 한 사람입니다. 내항 전 명칭이 표류문학 동호회였지요. 왜 표류라 이름 지었느냐 하면, 그때 정국이 너무 살벌하고 모두가 정신적 방향을 잃고 혼돈에 빠져있던 때여서 그런 거였습니다. 당시 강릉대 총장으로 있던 전방욱 시인이 이끄는 묵시 동인과 표류문학동인이 합쳐지면서 내항문학이 탄생되었지요.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장종권 시인께서 합류하셔 내항의 전성기를 이끌며 내항이 전국적 조명을 받을 수 있도록 애를 써주셨습니다. 그 분들을 이 자리에서 만나니 새삼 감개무량합니다.

시를 공부한다든지, 문학을 공부한다든지 하는 것은 하루아침에 뚝딱 되는 것은 아닙니다. 끊임없이 부딪치고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되지요. 저는 이런 표현을 씁니다. 머리에 피를 흘리지 않으면 그 머리에 맑은 시냇물이 흘러 들어오지 않는다. 부딪치고 피가 나도록 무언가를 겪으면서 한 단계 한 단계 스스로 높여가려고 노력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조금 써 봤다, 이 정도면 대한민국에서 나를 따라올 사람이 없어, 하는 순간에 벌써 머리는 썩어버리고 맙니다. 문학이든, 시든, 어느 방향을 향해 계속 변화를 추구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그 방향이란 뭐냐, 다른 거 없습니다. 한마디로 참신한 것을 찾는 것이다. 나태하고 루즈하고 매너리즘에 빠진 상태에서 참신한 것을 찾아 한 단계 한 단계 자기를 높여가도록 노력하는 것이 시공부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강의의 타이틀도 서정시 업그레이드로 했습니다. 저는 이 서정시 업그레이드1강에서부터 10강까지 만들었습니다. 일단 문단에 데뷔한 분들이나 데뷔해서 창작활동을 하시는 분들 중 무언가 뚫고 나가야 되겠는데 안 잡힌다, 이런 분들을 위해서 이 강의안을 만든 것입니다. 여기에서는 서정시라는 것만 남기고 다른 것은 다 버리도록 하겠습니다.

여기 계신 분들은 어느 정도 자리가 잡혀있는 분들로 압니다. 어느 정도는 자기 세계라는 것도 가지고 계신 분들로 압니다. 제가 이제 몇 개의 시구를 인용하여 말씀을 드릴 텐데요, 저는 이 시구를 모으려고 수없이 많은 책들을 뒤졌습니다. 매번 나오는 월간지나 계간지를 몇 년 동안 뒤졌지요. 거기에서 , 어떻게 이런 표현을 찾아냈을까정말 부러운 시구들을 300여 구 번호를 매겨 쭉 채집해 놓았습니다. 그리고 시도 , 이 시는 도저히 못 따라가겠다. 어떻게 이런 시를 쓸 수가 있을까그렇게 내가 감동한 시를 한 100여 편 채록해 놓았습니다.

그래서 이제 그 일부를 여러분들께 소개하면서 우리가 참신한 것으로 가는 길을 논의해 보고자 합니다. 지금의 나로부터 한 발자국이라도 더 참신한 표현과 참신한 시로 다가가기 위해 나한테 가로막혀 있는 장애물이 어떤 것인지, 내가 어디에 시선을 잘못 두고 있는지를 같이 반성해 봤으면 좋겠습니다.

우선 우리가 극복해야 할 단계 중 제 1단계가 소재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소재는 아주 쉬운 것 같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소재가 잡히는 순간 시의 얼개가 반쯤은 머릿속에서 만들어지는 것인데요, 소재는 말 그대로 시의 재료입니다. 우리가 시상이 탁 떠오른다고 하는데, 사실 그 시상의 정체를 파헤쳐 들어가 보면 그게 바로 언어입니다. 여태까지 그렇게 맑고 감동적인 것을 내 머릿속에서 아직 만든 적이 없는데, 그게 머릿속에 어느 순간 딱 떠올라 만들어진 거거든요. 그것을 잘 가다듬으면 바로 소재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시를 쓸 때 시의 재료로 한 가지 소재만 쓰는 경우도 있지만, 수십 개를 같이 결합해가면서 만들기도 하지요. 그 소재가 대개 어디에서 나오는가 하면 자기가 여태까지 지내왔던 경험, 체험 속, 자기의 인생 속에 들어있다는 것입니다. 소재가 체험에서 나온다고 하면 모든 세상일을 내가 혼자 다 경험해야 하느냐, 그렇지는 않습니다. 내가 체험하지 않은 부분에서도 소재가 나옵니다. 그것을 간접체험이라고 하는데, 책을 읽거나, 영화를 보거나, 연극을 보거나, 하여 내가 체험한 건 아니지만 남들이 체험한 것을 간접적으로 내 체험으로 받아 들일 수도 있습니다.

이제 시를 써내려 가려면 한두 가지 소재 가지고는 안 되기 때문에 여러 가지를 결합시켜 나가야 하는데, 그때 이제 상상력이 필요합니다. 막연하게 내가 체험했던 거, 책에서 읽었던 거를 끌고 오면, 가뜩이나 쓴 지 얼마 안 된 분들의 시가 주로 생활시, 자기 이야기시, 자기 생활시로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자기는 참신하다고 어떤 소재를 끌어다 썼는데, 이미 수많은 시인들이 다 써먹어버린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쓰는 사람은 그게 낡은 것이고, 다 써먹어 버렸다는 걸 모르고 그걸 그냥 쓰는 오류를 범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쓴 시를 밖에 내놓으면 좋은 평을 받을 수가 없지요.

그것을 어디에서 발견하게 되느냐 하면 다른 사람의 시를 읽어나가다 보면 발견하게 됩니다. 이 유행가 가락 같은 글은 옛날에 누가 다 썼던 거 아니야? 그래서 항상 우리는 참신한 소재를 고민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 참신한 소재는 대게 지극히 개인적인 것에서 옵니다. 왜냐하면 다른 사람과는 다른 시각이고, 다른 아픔이거든요. 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고 나를 늘 아프게 하거나 기쁘게 하거나 먹먹하게 하거나 짠하게 하거나 하는 그런 체험들이 있습니다. 내 마음속에 떠돌아다니는 일종의 콤플렉스입니다. 심리학에서 얘기하는 콤플렉스가 아니라, 시의 재료가 될 수 있는 준비된 어떤 것, 심리적인 어떤 것, 이것을 문학에서는 콤플렉스라고 합니다.

예를 들어 사회적 콤플렉스로 심청이 콤플렉스가 있습니다. 이것은 사회 공감대인데요, 옛날 우리 자랄 때 공순이라고 있었습니다. 공순이는 공장에서 일하는 여자지요. 특징이 뭐냐면 돈을 벌어 고향에다 부쳐요. 자기가 모조리 쓰지 않고 그것을 나눠서 고향 부모님께 보내고, 동생 학비로도 보냅니다. 자기는 희생합니다. 그것이 심청이 콤플렉스입니다. 우리 사회에 아주 만연해 있던 것 콤플렉스 중 하나입니다. 이것을 시로 끄집어 내면 공감을 일으켜요. 같이 체험했기 때문입니다.

춘향이 콤플렉스가 있습니다. 춘향이는 얻어터지면서도 오로지 낭군을 위해 목숨을 받치잖아요. 우리나라 정서에 있는 겁니다. 공자콤플렉스도 있습니다. 이것은 도덕을 가지고 얘기하는 건데, 특히 효를 자꾸 얘기하려고 하는 사람들이 아직도 있지요. 충분히 공감대를 일으킵니다. 그렇지만 또 반감도 많이 일으키는 요소 중 하나입니다.

그 다음 이런 소재들을 어떻게 정서화 하느냐가 두 번째 단계입니다. 정서와 감정은 다릅니다. 감정은 수시로 변합니다. 수시로 수없이 변하는 것이 감정이지요. 정서는 이 감정이 어느 한 곳으로 정착이 되고 모여지는 것이지요. 정서는 슬픔의 정서, 한의 정서, 기쁨의 정서 등 종류를 다양하게 나눌 수 있습니다. 이렇게 해서 어떤 심리적인 상태를 형성하게 됩니다. 이것을 밑바닥에 깔고 거기에 소재를 입히고 또 이야기를 입히고 언어를 입혀서 감동의 요소로 밀어내는 것이 서정시입니다. 서정시 업그레이드는 기본인 이 소재와 정서를 제대로 깔자, 제대로 찾자 하는 것입니다.

정서는 조금 훈련을 해야 합니다. 시의 밑바닥에 슬픔의 정서, 절망의 정서를 깔았다고 했을 때, 그것이 뼈가 아리게끔 싹 갉아줘야 합니다. 날카로운 면도날이 싹 베고 지나가도록, 읽는 사람에게 가야 합니다. 그래야 정서가 사는 겁니다. 그래야서정시가 사는 겁니다. 그러려면 갈고 닦아야 해요. 슬프다고 해서 눈물 같은 것을 마구 가져다가 쌓아보았자 아무 것도 아닙니다. 벌써 유행가 가사 등에서 수없이 그런 정서들을 쏟아내서 이미 낡을 대로 다 낡아졌어요. 그래서 정서를 예리하게 다듬는 훈련을 해야 합니다. 음악을 듣다보면 평생 듣던 똑같은 노래로 별로 감정이 없었는데 어떤 순간 분위기가 확 변해서 그 노래를 들으면 마구 눈물이 날 것 같아요. 그 음악을 듣는 순간 몸서리쳐지는 때가 있을 수 있습니다. 이것이 아주 좋은 체험입니다. 내 시에 저렇게 나도 모르게 부르르 온몸이 떨리게끔 그런 정서로 끌어 가보아야겠다 생각해보는 것도 괜찮습니다. 그렇게 하려면 유행가 가지고는 안 됩니다. 더 깊이 파고들어야 합니다. 다이아몬드를 땅속 깊은 곳에서 파내듯이 무언가를 해야 합니다.

주의할 점이 있습니다. 우리가 정서를 표현하기 위해 시를 쓰는 것은 아닙니다. 시의 바탕에 정서를 까는 것이지, 정서를 표현하기 위해 시를 쓰는 것은 아닙니다. 시인은 내 생각이나 나의 어떤 세계를 끄집어내는 것입니다.. 내 정서를 끄집어내기 위해 시를 쓰는 것이 아니고, 내 생각 내 정신의 어떤 것을 끄집어내기 위해 시를 쓰는 겁니다. 그것을 감동적으로 끌어내기 위해 정서라는 것을 거기에 깔아주는 것이지요. 정서에만 매달려서 맹물이 되게 하지는 말라는 것입니다.

제 글은 여섯 단계로 되어 있습니다만, 설명하다보면 여러분들의 귀만 어지럽힐 것 같아요. 그래서 3단계인 감수성까지만 얘기를 드리고 나머지는 여러분들이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시에 중요한 것들 중 하나가 감수성인데요, 시에서 중요한 게 아니라 사실은 시인한테 중요한 겁니다. 제대로 된 시인이 되려면 이걸 꼭 갖춰야 합니다. 특히 서정시를 쓰는 사람들한테는 이 감수성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이 감수성이란 불행하게도 좀 타고나는 거에요. 70% 정도는 타고나는 겁니다. 사람도 사람마다 차이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몇 명이 차를 함께 타고 가는데 고양이를 치고 갔어요. 어떤 사람은 그 고양이가 깔린 모습을 보고 그날 저녁 잠을 못잡니다. 괴로워서 환상에 시달리느라 잠을 못자지요. 그런데 어떤 사람은 그게 덤덤합니다. 저게 미쳤지, 왜 끼어들어. 이런 식으로 마음 아파하고 괴로워하는 사람은 감수성이 예민하고 날카로운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은 옆에 있으면 같이 지내기가 괴롭습니다. 사사건건 시비를 걸고, 사소한 거에도 화를 벌컥 내고, 오해도 많이 해서지요. 그런데 시인에겐 필요합니다.

장미꽃을 보더라도 감수성이 예민한 사람은 그 장미꽃에서 빨간색만 보는 게 아니라 다른 언어를 찾아냅니다. 장미의 안녕하셨어요 인사하는 소리를 들어요. 그 인사를 잡아내는 것이 감수성입니다. 어떤 사물에서 보통 사람들에게는 안 띄지만 그 사물이 엉뚱하게 얘기하는 걸 듣습니다. 그것이게 시로 만들어져 나가는 아주 중요한 계기가 되지요. 그런데 이것이 거의 타고나는 거라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감수성이 없는 사람은 영원히 시인도 되지 말고 뒷방에 처박혀 지내다 끝내란 말인가, 그런데 아닙니다. 사실은 이게 또 훈련하면 감수성이 조금씩 자라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얼마나 관심을 가지고 들여다보느냐가 중요할 수 있습니다. 노력하면 어느 정도 키울 수 있습니다. 열심히 고민하다보면 그 다음에는 장미를 봐도 장미가 그냥 장미가 아니에요. 장미가 다른 짓 하는 것이 눈에 보이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점점 시인의 눈으로, 시인의 마음으로 변화되어 갈 수 있습니다. 그러면 여러분들의 시도 자연적으로 한 단계씩 더 업그레이드 되어가는 걸 스스로 느끼게 될 것입니다. 감수성에 대한 훈련을 꼭 하시라는 말씀 드립니다.

유인물을 보시면 시구에 번호를 붙였는데 이건 제가 채록한 순서입니다. 300개 정도 해놨습니다. 여러분들이 한 단계 더 높은 서정시의 단계로 꼭 이끌어 가겠다 하면 여러분도 이 방법을 써보라고 권합니다. 수없이 많은 책들이 있습니다. 저는 시 100편을 읽으면 그 중 무릎을 치는 시구를 4~5개 정도 찾습니다. 요즘 시들은 왜 이렇게 골치가 아프고, 무슨 소린지도 모르는 걸 왜 쓰고 있나, 그런 중에도 아, 이런 표현을 어떻게 찾았을까, 하는 문장을 베껴가지고 쭉 적었습니다.

매미가 뿜어내는 소리의 분수를 보시면, 이 시구는 매미라고 하는 청각적인 요소를 소리의 분수라는 시각적인 것으로 만들었습니다. 매미라는 요소를 가지고 매미를 써 나가는 중에 매미라는 소재에서 분수를 발견한 거에요. 매미의 생체를 보고 생각한 게 아니라 매미의 소리를 들으면서 분수를 발견한 거에요. 그렇게 분수라는 것을 매미로부터 잡아내는 힘이 감수성입니다. 그 눈과 시각이 감수성이에요.

그 다음, ‘점점 차오르는 비둘기의 눈물 속에 앉아 어둠으로 목욕을 하였다분위기가 좀 무겁고 비극적인 느낌이 들죠. 정서를 한 쪽으로 끌어가고 있습니다. , ‘비둘기의 보랏빛 눈꺼풀에 사로잡힌 채를 보면, 우리나라 비둘기들은 여러 가지 색을 가지고 있습니다. 털 색깔을 뭐라고 할까, 푸른색이랄까, 보랏빛이랄까, 그런 색이 많아요. 특히 머리 부분이 그런 부분이 좀 많습니다. 그래서 그 보랏빛에서 보랏빛 눈꺼풀에 사로잡힌 채, 그 다음으로 넘어가 하늘은 파란 물감으로 쏟아내리고, 새들은 물감 속을 어지러이 날아 다녔다. 앞의 표현은 좀 흔한 표현이지만, 새들은 물감 속을 어지러이 날아 다녔다로 하여 시를 아주 멋있게 만들었어요.

그 다음 생고무보다 질기고 말고기보다 더 질긴 것이 저 진열장 속의 시간이다라는 시구입니다. 이 시의 제목이 유리관 속의 시간인데, 유리관 속의 시간이라고 하면 고정시켜버린 어떤 시간대를 갖다가 잡아놓은 것이죠. 다음 두 개의 줄이 끊긴 기타가 두 개의 줄이 끊긴 노래를 부르고 두 개의 줄이 끊긴 노래가 두 개의 갈비뼈를 부러뜨리고 얇게 썬 면상들을 개수대에서 건져내고이 시의 제목은 원룸이에요. 원룸에서 생활한다면 생활이 평상적인 생활은 아닌 거 같죠. 사회 준비생이거나 아니면 사회로부터 약간 밀려나서 고달픈 삶을 사는 그런 거든지, 아마 고달픈 쪽의 삶을 얘기하는 거 같아요.

그 다음은 혈관이 터져서 색색의 꽃들을 뿜어내면입니다. 혈관이 터지면 피가 나오겠죠. 색색의 꽃들을 뿜어낸다는 표현입니다. ‘곧바로 바람의 내부에 갇힌다이 시구는 우리가 쉽게 찾아내지 못하는 표현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바람이라는 이미지가 되도록 흘러갑니다. 그래서 이렇게는 생각할 수 있죠. 바람을 네모난 상자 안에 잡아 가두었다, 동그란 그릇 안에 바람을 잡아 가두었다. 바람을 어떤 그릇에 잡아넣을 수는 있다고 생각을 하죠. 그런데 이 시인은 사람이 그 내부에 갇힌다, 라고 했어요. 바람 안에 어떤 갇힐 만한 공간을 시인이 만들어 낸 거죠. 이런 것이 우리의 상상력이 따라가기가 힘든 그런 부분입니다.

버려졌다. 한 무더기 상처가 길은 노랗게 물들이고 있었다를 보시면, 이것은 폐광이 된 함태광업소 앞 노란 꽃들이 피어 있었네, 라는 긴 제목의 시의 한 구절입니다. 버려진 상처는 폐광과 관계가 있습니다. 폐광의 흔적을 보면 상처를 입고 죽어서 나자빠져 있는 상처투성이의 짐승을 보는 것 같은 그런 느낌이 들잖아요. 그런 표현입니다.

다음 달의 실핏줄들이 빠르게 빠르게 터져 나가고 하늘에선 검은 쇠갈고리가 내려와 잠든 아기의 턱을 낚아 채 공중으로 사라진다입니다. 이 시의 제목은 SOS인데요, 다급하게 구원을 청하는 소리입니다. 그런데 왜 다급한가, 그 다급한 상황을 이렇게 표현한 거에요. 그 다음 백엽상의 그것이 그 안에 다 돋아난 듯 분홍 빛깔이 농익을수록 백엽상 흰 빛의 순도가 높아진다를 보면, 백엽상은 온도 습도를 재는 것입니다. 재미있는 건 측정되어야 하는 것이 공기뿐 아니라 세상의 어떤 즐거움이라든지, 세상의 어떤 더럽혀진 일이라든지, 모두라는 것이며, 유독 백엽상 안에서만 흰 빛의 순도가 높아진다는 표현으로 보입니다.

다음은 환풍기는 쉬지 않고 공기를 퍼낸다. 소용돌이치는 흰 빛 파장들 사이로 그의 말, , 기억들이 분홍빛으로 들킨다는 시구입니다. 분홍빛으로 물든다, 했으면 조금 진부했을 텐데, 분홍빛으로 들킨다, 한 것입니다. 시인의 눈으로 무언가 숨겨져 있는 걸 찾아내는 느낌을 불러왔습니다.

이번에는 시 한 편 소개하겠습니다. 서정시라고 하면 그래도 읽는 사람에게 좀 참신한 맛, 새로운 일깨움, 이런 것을 좀 줘야 하지 않겠는가 하는 기준으로 해서 뽑았어요.

 

구름의 절벽에서 떨어져야 한다.

천둘과 번개에 머리를 부딪쳐야 한다

손과 발과 엉덩이를 허공에 버려야 한다

늙은 염소 뿔에 떨어지거나, 혹은

풀잎 위에 떨어져도 산산조각 부서져야 한다

공기처럼, 다시 한 번 튀어 올라

장미꽃을 통과할 순 있으나

붉은 꽃잎의 피가 한 방울도 섞이지 않아야 한다

, 어느 강가의 날렵한 횟집 주방장이

당신의 배를 갈라도

내장 한 올 나오자 않아야 한다

그래야, 살아서 푸른 바다까지 당도할 수 있다.

 

라고 하는 유금옥 시인의 시입니다. 이 분은 내가 몰라요. 젊은 사람인지, 나이먹은 사람인지, 어떤 사람인지 모르는데, 나는 이 시를 굉장히 좋게 봤어요. 왜냐하면 나는 비라든지, 하늘이라든지, 산이라든지, 강이라든지, 이런 것을 가지고는 시를 잘 못써요. 워낙 주제가 크고 덩어리가 너무 커요. 그리고 비는 옛날부터 수 많은 시인들이 노래해서 새로운 걸 도대체 찾아낼 수가 없어요. 강도 그래요 산, 바다, , 이런 건 감당하기가 힘들어요. 그래서 큰 제목을 붙여놓고 시를 쓴다는 건 아마 죽을 때까지 못할 것 같아요. 그런데 유금옥이라는 시인은 대담하게 비를 딱 걸어놓았단 말이에요. 자칫하면 유행가로 빠지기 쉬운데, 아주 위험한 건데, 그런 생각을 하면서 이 시를 봤어요. 구름의 절벽에서 떨어져야 한다. 이 문장에서 뿅 갔어요. 비를 묘사하거나, 비가 주룩주룩 내려서 눈물이 난다거나가 아니고, 구름에서 뛰어 내려야 해. 비가 되려면 스스로가 우선 구름에서 뛰어 나가야 해. 어디로부터 뛰어내리려면 용기가 없으면 안 되죠. 담력이 없으면 안 되죠. 허공에서 발을 내딛는 거니깐. 그러니깐 허공에 발을 내디뎌야만 한다는 것이지요.

우리가 시를 쓴다고 하는 건 허공에서 뭔가 찾아내는 겁니다.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뭔가 만들어내는 것이거든요. 구름의 절벽에서 떨어져야 한다. 천둥과 번개에 머리를 부딪쳐야 한다. 그냥은 비다운 비가 안돼요. 천둥, 어렸을 때 한 번 말하면 자지러져서 아주 그냥 침대 밑으로 고꾸라지고 했는데, 그 무서운 천둥, 번쩍번쩍하던 번개, 그것과 머리를 부딪혀야 한다. 손과 발과 엉덩이를 허공에 버려야 한다 늙은 염소 뿔에 떨어지거나, 혹은 풀잎 위에 떨어져도 산산조각 부서져야 한다. 공기처럼, 다시 한 번 튀어 올라 장미꽃을 통과할 순 있으나 붉은 꽃잎의 피가 한 방울도 섞이지 않아야 한다. 얼마나 멋있습니까. 장미꽃을 통과해, 그러면서도 붉은 핏방울을 묻히면 안 돼. 여기서 무릎을 탁 쳤습니다. , 어느 강가의 날렵한 횟집 주방장이 당신의 배를 갈라도 내장 한 올 나오자 않아야 한다. 그래야, 살아서 푸른 바다까지 당도할 수 있다. 끝마무리가 아주 깔끔합니다. 이래야 합니다. 제가 이 시를 보고 마음으로 각오를 했습니다. 나 이만큼 되는 거 꼭 써보겠다. 이 정도 이만큼 되는 거 꼭 써보겠다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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