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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오늘의 시인/김유석/달팽이 외 4편/신작시 /잡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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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부
댓글 0건 조회 1,722회 작성일 17-01-02 1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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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오늘의 시인






김유석

달팽이




내 몸엔 나선의 미로가 들어 있다. 몸속에서 헤매다



몸 밖의 또 다른 미궁으로 겨우 기어 나와 두리번거리는 걸 길이라 한다.



곡선을 풀어 곧은 행적을 남겨야 하는 나는 고행의 족속, 동시에



끈끈한 흔적을 태엽처럼 몸에 되감으며 조금씩 나아가는



나의 길은 뫼비우스의 띠, 가다보면 안과 밖이 바뀌는 걸음도 어지러워



점점 느리게 기는 쪽으로 진화해 가는 중이다.







놀이의 방식



거미는 번지점프의 원조, 집을 짓기 위한 그 위태로운 곡예에서 놀이가 나왔다. 떨어지다 멈춰지는 지점, 아뜩함이 전율로 바뀌는 통점에 거미는 거꾸로 붙어산다.

암사마귀는 교미 도중 수컷을 잡아먹는다. 머리부터 먹는다. 머리가 없어진 수컷은 더욱 격렬하게 교미를 하며 죽어간다. 잔학성과 쾌락은 동일한 감각*, 그것은 머리와 상관없다.



무리를 짓는다는 것은 어리석음의 증거이다. 개미의 생각은 앞선 개미로부터 나오고 앞선 개미의 생각은 또 그 앞에 선 개미로부터 나온다. 칠월 한낮 장례행렬처럼 늘어서 먹이를 나르는 저들로부터 우상이 나왔고 우상으로부터 계급이 생겼고, 그때부터 개미는 졸라매기에 충분한 허리로 진화하기 시작했다.
  



보이는 것을 모두 헛것처럼 보이게 하고 그 헛것들 가운데 또 다른 헛것을 보여주는 환상마술을 본 적 있으신가. 카멜레온의 두 눈은 원형圓形으로 따로 도는데 두 눈알이 교차할 때마다 색깔이 변한다. 트릭은 몽롱한 실재
 



본능과 생각의 경계에 사는 해파리는 입과 항문의 구분이 없다. 입으로 먹고 항문으로 생각한다. 생각은 배설이다 항문에서, 아, 아니 입에서 나온다.

 


* 보들레르








뱀의 문장紋章을 쓰는 가계家系




물려받은 건 배를 깔고 기는 법
소리 없이 혓바닥을 날름거리는 버릇, 그리고
소름이 돋을 만큼의 징그러움뿐이었다.



유전이라 이르지 마시기를, 그러니까
독은 후천적으로 생성된 내성의 결과물이다.
뭔가 왜곡된 듯한 몸
뭔가 제어된 듯한 자세로 나아가는 세상으로부터
조금씩 삼투되어 고이기 시작한 그것,
대가리를 치들게 하고
찢어질듯 아가리가 벌어지게 하고
똬리를 틀고 웅크릴 줄 알게 만드는 그것은
자학의 증거이자
고통이 없으면 감각도 무뎌지는 생의
마약과 같은 것이다. 먹이를 물어 삼킬 때마다
함께 밀어 넣어야 하는 스스로의 독에
퍼렇게 중독된 몸 어디, 한때
세상을 다스렸던 파충爬蟲의 위엄은 흔적조차 없고
진화와 퇴화가 동시에 이루어지는 듯한 형체로
누대에 걸쳐 무고한 죄질에 시달려야 하는



나는 난태생卵胎生, 나는 곡선으로 나아가고
제 몸을 쥐어트는 가학적인 문양을 둘렀고 
그리고, 나의 피는 차갑다.








상처에 대하여



탱자 한 알이 툭 떨어진다. 아득한 적막에 젖듯
저대로 낙하하는 탱자는 겹겹의 가시 사이를 무사히 통과한다.
그만한 공간을 확보하여 꼭지를 물었거나
허공에 길을 놓을 만큼 가벼워진 생은 아닐텐데
제 몸 하나 다치지 않고 내리는 탱자의 자연함,
열매를 맺지 않고 떨군 꽃잎의 궤적인가
흔들림만으로는 다 버리지 못하는 미망이
스스로의 몸을 경계삼아
푸른 광기를 잠재운 탱자알들은
가시 끝을 꿴 이슬방울처럼 씨내림 한다.



탱자나무를 감고 먼 길을 가는 호박넝쿨은
몸이 곧 길이다.
따끔거리는 곳마다 꽃을 피우고
쉬어가고 싶은 곳엔 열매를 매달며 장난처럼,
어쩌면 자해하듯 살 속에 가시를 찔러 넣는다.
무엇엔가 상처받는다는 건 그것을 사랑하는 일보다 환한 아픔인 줄,
온몸을 쥐어틀며 견디어나가는 호박넝쿨은
박혀든 가시가 미처 생각지 못한
빠질 때 생길 고통까지를 살로 삭혀서
흠집 하나 없이 매끄란 호박덩이를
완고한 가시 사이에 저렇듯 매달아놓는다.








별사別辭



아물 수 있는 건 상처도 아니다.
저 배꽃,



어지럼병처럼
사랑이 있던 자리는 늘 아프다.
없어진 배나무집
없는 배나무집 여자,
첫꽃 피어 환한 배밭귀
고집처럼 늙은 배나무의 먼눈을 밟으며

수절을 허물 듯



는개에 젖으며
배꽃이 진다.







<신작시>

나는 자유인가




새장의 새는 얼마쯤 시간이 흘러야 나는 법을 잊게 될까
 


새장의 새는 한동안 파닥거린다. 갇혔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중이다.



 창공과 새장, 공간의 문제를 안과 밖의 차이로 바꾸는 것은 먹이이다.



 갇혔음을 알고도 새는 여전히 파닥거린다. 먹이를 찾는 습관이다.



 먹이가 새장을 기억시킨다.



 밖으로 날아간 새는 또 얼마큼 지나야 갇혔던 기억을 잊을 수 있을까



 날지도 못하면서 푸드득거리는 것을 닭이라 하는데 



 조류 가운데 가장 진화한 종들은 스스로 창공을 버렸다.








마디



망설였던 흔적이다.



공중에 중심을 세우던 첫 마디
풀거미 집을 치는 둘째 마디 지나
살짝 발꿈치를 들고 싶을 만큼만 세상이 바라다보이는
   
거기까지만 올라 쉬고 싶었던 거다.



잠자리들이 고르는 수평 아래
귓바퀴만 달린 토란이 서고
힘줄처럼 뻗히는 호박넝쿨손 와 닿는 그쯤에서



한 번 올려다보았을 뿐이다.
    
그늘 살진 느릅나무와
높을수록 탐실해 보이는 대추알들,
그림자와 열매로 바뀌는 흔들림이 아름다웠을 뿐인데



우러르면 다 공것 같은 허공이
칸 칸 내려 쌓여버린 거다.



줄사다리를 탄 듯한 공중의 길
휘젓는 잎사귀 둘레조차 감당하기 힘든
흔들리는 중심 위에서
  
익는다는 건 자기연민의 극



망설이던 어디쯤 버렸어야 할 화관을 틀고
빼빼마른 제 그림자 굽어보는 수수깡들






대가리는 맛있다



살점 다 발린 조기는 항상 어머니의 몫
가시에 머리만 달린 조기를 밥숟갈에 얹는다.



바다 속을 헤집듯 눈깔을 들여다보며 한 숟갈
조기의 먹잇감들을 꺼내어 먹듯 입을 벌려가며 몇 숟갈



비린내를 먹는지
조기의 생각을 먹는 것인지
 
대가리 속에 든 것들을 말끔히 발라먹는
어머니는 대단한 미식가다.



대가리를 먹어야 비로소 조기 한 마리 먹었다 할 수 있듯
대가리까지 먹혀야 비로소 완성되는 조기의 생



몸통의 살점 다 발리고 난 대가리가
비로소 제 맛인 줄 모르고 



무엇엔가 발리는 내 머리통에
붙어 팔딱거리는 육신이 저릿하다.








<동시>

나이테




나무들은 늘 제자리걸음으로
하늘만 올려다보는 줄 알지?
떠돌이 바람이 부러워 흔들리고
잠깐씩 쉬었다 떠나는   
새들의 엽서나 받아 읽는 줄 알 거야



파란 잎이 노랗게 물드는 걸 보면
나무들도 햇빛 타임머신을 타고
봄부터 가을까지
먼 여행을 다녀온다는 걸 알 수 있지



매미와 베짱이와 풍뎅이가 그려준 
예쁜 그림엽서들을
한 잎 두 잎
바람에게 자랑하면서
다녀온 나라의 지도를 남몰래
제 몸속에 그려 넣거든






지렁이 기차



1.
이슬비 그친 마당에 말랑말랑한 기차가 갑니다.



석탄도 기름도 때지 않는 기차가
촉촉한 흙 위에 레일을 깔며 소리 없이 갑니다. 



 아주 느릿느릿 기어가는 저 기차를 타면
 시간표가 필요 없는 마을에 닿을 것만 같습니다.



낮잠 자는 햇님이 기지개를 켜기 전에
담장 밑 푸른 이끼 숲까지 가야할 텐데……



꺽다리 해바라기가 구름을 훅 훅 불어대자
갑자기 기차가 뜨거워집니다.



점점 속도가 느려지더니
어? 어!
그만 고장이 나 버렸습니다.



 2.
연락도 안했는데 어떻게 알았을까?
하나 둘 개미들이 모여듭니다.
 


요리조리 기차를 살피더니
안되겠군, 집에 데려가 고쳐야겠어!



힘센 일꾼 개미들이
덜커덩덜커덩
레일도 없는 길을 끌고 갑니다.



 슬금슬금 따라가 보면
고장 난 게 아니라
개미들을 태우고
개미나라 터널 속으로 여행을 떠나는 중입니다.








<잡설>



* 차를 끓인다고 해서 다 차를 마시는 건 아니다. 차를 마시는 사람이라 해서 다 차를 끓이지도 않을 터, 나는 맛도 잘 모르고 차를 마신다.



* <와호장룡>이란 말을 곧잘 혼자 중얼거리곤 한다. 시시껄렁한 무협물 제목을 딴 그 뜻은 소중한 것들은 세월이 흐른 후에나 알 수 있다는 은유쯤이다.



* 소는 먹고 살찌고 팔려가는 일에 충실하다. 나머지는 사람의 감정일 뿐.



* 단평을 몇 번 쓴 적 있다. 말이 평이지, 나무만 보고 숲은 보지 못하는 나름의 해설을 적어본 것이 전부다. 제대로 쓴 뻑뻑한 평론이나 시론들은 썩 도움이 된다. 그러나 나의 경우처럼 쓰여진 수많은 평설들이 좋은 것은 나의 무지 탓이다.



* 최근 ‘비트겐슈타인’을 넘기다 말았다. 비비꼬는 듯한 논리학은 일견 매력적이지만 몇 페이지만으로 충분히 머리가 아프다. 그의 철학보다 기행적인 그의 삶에 더 관심이 쏠렸다. 역설과 아이러니가 심오한 어떤 작품들이 그와 같다.



* 동시 닮은 시가 좋다. 그보다는 ‘환상적 리얼리즘 Magical realism’이 낫다. 소설에서, 특히 스페인어 문화권인 남미작가들의 작품에서 두드러지는 그것을 시에서 볼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 오랬다. ‘보르헤스’, ‘바스콘셀로스’, ‘마르께스’ 등의 감명을 시로도 느낄 수 있으리라 믿는다. 인도, 일본, 최근에는 중국의 ‘모옌’까지 노벨문학상이 이르렀는데 우리 차례가 자꾸 밀리는 까닭은 그것을 만들어내는 상상력의 공간이 좁아 보이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주관이다. 감히 동시나 동화 등 동심의 세계에서 얼마든지 펼쳐지는 그것을 시로 끌어들여보고 싶어 동시를 쓴다 말하는 건 변명이라기보다 좀 더 가상한 생각이다.
 


* 두 권의 시집을 가졌으나 일관성은 없다. 그저 쓰고 싶은 대로 쓴다. 딱히 시란 뭔가 묻지 못하기 때문인데 세상일에 열중하는 동안 점염된 것이 부조리다.



* 부조리는 그것을 극복하려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또 다른 부조리를 낳는다. 부조리는 죽음과 절망 같은 방법으로 회피할 수도 없고 막연한 희망만으로 극복되는 것도 아닌, 오직 투쟁을 통해서만 이겨낼 수 있으며 거기서 또 다시 파생되는 삶의 본질이라 믿는다. 귀동냥한 ‘까뮈’의 그릇된 영향일 거다.



* ‘시니시즘cynicism’은 고대 그리스에서 유례 되었다. 이미 통용되는 문화적, 정신적, 도덕적 가치를 경멸하는 태도를 보이는 그것은 비도덕적이고 위선적인 인간의 행태를 익살스럽게 풍자하는 당대의 희극으로부터 연유한 것으로 알고 있다. 그 이후 관습과 규율 등을 부정하고 자연스런 삶을 추구하는 냉소적 염세주의나 인간적 성실과 선에 대한 불신, 도덕원리에 대한 조소 등을 의미하게 된 시니시즘을 부조리한 나의 삶 속에서 찾으려 하였다. 나의 시니시즘은 본질을 향한 질타라기보다 자기연민이나 회의에 가까울 것이다. 



* ‘포스Force’가 없다. 나의 글에 대한 누군가의 한마디 평이다. 당황했다. 포스란 무얼 의미하는 걸까, ‘에너지’가 물리력이라면 그것은 아마도 정신의 영역을 말하는 것이리라 짐작했다. 그는 ‘R.프로스트’를 이야기하였지만 황송하게도 나는 프로스트의 작품보다 농장을 좋아했던 프로스트의 생을 떠올리며 흘려들었다. 그러나 그것은 나의 화두가 되었다. 내공內空이 필요하다.




<자술연보>



·1960년 전북 김제시 죽산에서 출생.
·죽산초등학교, 중학교 졸업.
·1976년 이리 남성고등학교 입학.
·1979-1986년 전북대학교 재학.
·1983-1985년 군복무.
·1986년 귀향.
·1989년 전북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90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시 당선.
·2005년 첫 시집 『상처에 대하여』발간.
·2013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동시 당선.
·2013년 두 번째 시집 『놀이의 방식』 발간.
·한국작가회의, 《시사사》 공동주간.
·농사짓고 살아감.


·유년은 자주 아팠다. 중학교 3학년 때 국어선생님의 필경사 노릇을 하면서 문학에 관심을 가졌다. 예쁜 처녀선생님이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좀 놀던 고등학교 시절 소설을 습작하기도 하였으나 대학에 와서 시에 눈떴다. 김수영과 이성복 등을 읽었다. <달하>란 동인을 결성하고 팔달로(전주시 거리 이름) 곳곳을 누비며 시화전과 낭송회를 여는 등 열렬한 문학도 시절을 맞았다. 학내에서 <비사벌 문학상>을 탔다.
·대학시절은 곡절이 많았다. 민주화운동과 사회문제 등의 소용돌이에 휘말리며 금서와 ‘건방진책’들을 몰래 읽고 의식화되었다. 학보사 기자활동을 하다가 필화사건으로 정학 당하고 잠시 도망다니기도 하였다. 전주의 명소  “경기전”에서 <퇴기退記동인전>이란 반정권 시화전을 갖다가 끌려가 견딜 수 있을 만치 얻어터지던 기억도 생생하다.
·서둘러 결혼이나 했고, 먹고산다는 구실로 물장사를 했다. 행복하지 않았던 “행복다방” 시절, 아버지는 일찍 세상을 떴고 35사단 헌병대에서 보충역 복무를 하던 나는 별 이유 없이 영창에 갔다. 죄 없이도 갈 수 있는 곳이 감방이란 걸 깨달았다. 올챙이 문학도들이 이물 없이 드나드는 일이 좋아 한 3년 더 끌다 그, 옛날식 다방을 떠나 농사지으러 집에 왔다. 그 동안 두 번 신춘문예에 물먹었다.
·농민회에 열중하면서 한겨레신문을 구독하던 무렵이다. 동네 이장 집에 들렀다가 우연히 전북일보 신춘문예 사고를 보게 되었고 들판을 소재로 한글을 응모하여 당선되었다. 햐, 요것 봐라, 하여 이듬해 다시 이장 집에 들 러 서울신문 신춘 사고를 훔쳐왔다. 당시 시골 이장들은 의무적으로 우파적인 두 신문을 봐야만 했는데 쥐꼬리만도 못한 이장 수당에서 구독료를 떼갔다.
·등단 후 서울행은 채 2년도 안 되어 끝났다. 그냥 서울이 싫었던 모양이다. 낚시와 사냥만으로 충분했던 ‘벨 에포크’ 시절.
·익산의 원광대 출신을 주축으로 한 <천칭> 동인들 틈에 꼽사리 끼어 둘둘 8집의 동인지를 내었다.
·15년 만에 첫 시집을 묶었다. 쑥스러워 각각 두 신문의 당선작은 싣지 않았다. 죽마고우들에게 시인이라는 정체가 들통 났고 농촌의 삶에 시란 별다른 소용도 되지 않음도 알게 되었으나 어머니만은 늘 자랑스럽게 여기는 듯 싶었다.
·특별한 일 없어도 종종 서울나들이 길이 놓였다. 고향에서 <시야>란 동인을 만들어 몇 년은 맛있게 까먹었다.
·2007년, 대학 당시의 일로 노무현 정부로부터 <민주화운동 증서>를 받고 복권되었다.
·자연에 길들여지며 동시를 훔쳤다. 욕심이다. 동시 당선 후 여러 사람들에게서 핀잔을 받았으나 내친 김에 안도현 유강희 시인들과 <동시랑>이란 모임에 어울리게 되었다.
·두 권의 시집을 엮고 나니 달리 할 말이 없어진 듯하다. 동시집을 가지고 싶은 맘 없지 않으나 생업인 농사가 항상 우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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