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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작읽기/박하리/아롱다롱한 무지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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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부
댓글 0건 조회 1,469회 작성일 17-01-02 1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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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작읽기

박하리






아롱다롱한 무지개



    정미소 시인은 몇 년 전에 인천 신포동에 소재한 상호가 기억나지 않는 찻집에서 처음 만났다. 그는 그때나 지금이나 외모와 인상이 거의 변하지 않았다. 언제 봐도 통통 튀어 오르는 공을 연상시키는 시인이다. 산과 산이 이어지며 굽이굽이 넘어가는 길목에 소나기가 퍼붓다가 멈추는 순간 나타나는 무지개의 아롱다롱한 빛을 닮은 시인기도 하다. 얼굴에 온통 장난기가 서린 선한 소년 같기도 하다. 
    그는 시의 첫 코를 떼기만 하면 그다음부터는 술술 풀어낸다. 조각난 지난여름을 이어붙인 이번 시들은 느티나무에게, 곰배령, 황새바위성지, 매미가 울다, 나뭇잎은 나무의 입이다, 라는 부제를 달고 있다. 이는 한여름 일 나간 아들의 밥상에 예쁜 색깔의 밥상보를 덮어놓았던 지난 여름을 회상하는 듯한 따뜻한 인간미가 가득 서린 작품들이다.

카페 ‘몽마르트’에 앉아서 너를 바라본다



몸 하나로 수직의 하늘을 건너고 있는
우직한 어깨 너머로 오후 네 시의 햇살이 순하다
티스푼으로 홍차의 티백을 꾹꾹 누르며
봇물 터지는 너의 잎 매무새에 귀 기울인다
너의 계절에도 황소바람은 불어 와
심장에 네 개의 스턴트를 박고, 벼락 맞은 봄
품에 앉았던 황조롱이도 일가를 이루어 떠나고
딱 지금이야, 죽고 싶어
합병증이 도사리는 뿔테 안경 너머 동공이 출렁거리다
사라지는 오후 네 시의 몽마르트
긁히고, 멍들고, 깁스로 이은 쇳조각을 따라
일몰이 들어서다 멈칫 물러서는 카페
혼자 비 맞고 혼자 눈 맞으며 단단해지면
혼자를 즐길 수 있다고, 고백 같은
덤덤한 웃음을 바라보며 내 가슴이 아프다, 미어진다.



                                                                                              ― 「느티나무에게」전문



    느티나무는 동네 어귀나 마을 안 야트막힌 곳에 잘 자라는 나무이다. 느티나무 그늘 밑에는 동네 사람들이 언제든 옹기종이 모여 앉아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해주는 곳이기도 하다. 늘 그 자리를 지키고 앉아 온갖 세월의 풍상을 다 겪고도 변함없는 자세로 아버지 같은 그늘과 시원한 바람을 제공해 준다. 동네사람들이 참았던 감정을 봇물처럼 터트리는 말에도 자상하게 귀기울여 들어주곤 한다. 이런 느티나무에게도 봄날은 황소바람으로 다가와 그의 심장을 출렁이게 한 적이 있었다. 그런 그의 심장에 어느새 대못이 박히고 그 봄날은 꿈이 되어버렸다. 그도 역시 하나둘 멀어져가는 그 동안의 품엣것들을 덤덤하게 바라보며 홀로의 세계를 준비한다.
세월이 흘러 어쩔 수 없이 긁히고, 멍들고, 부러져 깁스로 채운 쇳조각이 안타깝다. 살아있는 사람들은 언젠가는 헤어져야 한다. 그러나 헤어지는 순간까지도 맺었던 인연의 끈을 소중하게 기억하는 늙은 느티나무에 아름다운 일몰이 걸치고 있다.



점봉산 배꼽들이 수런거리는 신 새벽,
집밥이 대세라는
민박집 아주머니가 닭벼슬을 풀어
잡동사니 꿈을 밀어내네
오줌보 터트리네



숫매미 자지러지게 목청 뽑는 오동나무 평상
초록밥상이 한 상 차려지네
고사리, 참나물, 떡취, 곤드레, 각시원추리,
집 나온 이방인들이 빙 둘러 앉아 주둥이를 비비네
동침한 밤을 비비네



민박집 아주머니 후식으로
곰배령 얼레지에 넋 빠진 검은테떠들썩팔랑나비
녹화 동영상을 차려내네
꽃잎에 더듬이를 묻고 죽은 듯 정지한 화면
침이 꼴깍들 넘어가네



밥값을 셈하려니 손사래가 먼저 나오네
묵어가는 길손 잘 대접하면
집나간 아들 끼니 굶지 않을 거라고
닭의장풀 닮은 손사래가 차려낸 밥상
어머니의 기도였네.



                                                                      ― 「곰배령」 전문



    어머니의 거친 손이 갖은 나물을 무쳐내어 접시에 담기 전에 한두 젓가락을 입에 넣는다. 어머니의 손가락에서 묻어난 구수한 손맛으로 온기가 가득하다. 넓은 대접에 나물을 가득 집어넣고 비빈다. 쓱쓱 비벼 크게 한 입 떠 넣으면 어머니 슬그머니 물 한 컵 내미신다. 목 메일라, 천천히 먹어라. 어머니의 나물 밥상은 이렇다.
민박집 아주머니의 ‘초록밥상’은 ‘고사리’, ‘참나물’, ‘떡취’, ‘곤드레’, ‘각시원추리’로 강원도에서 주로 서식하는 나물들의 향연이다. 다른 양념이 그리 필요하지 않고 간만    맞추어도 그대로 맛있는 나물들과 그녀의 곰배령 얼레지가 비벼지고 섞이며 아름다운 기도가 된다. 집 떠난 아들 밥상이라도 차리듯이 하루 묵어가는 사람들에게도 정성이  가득한 따듯한 밥상을 내놓고 있다. 그것은 그녀의 고향을 추억하는 정서이기도 하고, 시인들의 가슴이 항상 빠져 있는 그리운 고향이기도 하다.



빛의 길을 따라 들어 선 성모 동산
예수의 시신을 껴안은
통곡의 성모자상
불볕더위를 온몸으로 입으셨다



어미의 눈에서 붉은 눈물이 흐른다
마른하늘에 날벼락 같은 목숨을 부둥켜안고
걸음을 떼지 못하여
울고만 있다



누군가 성모자상을 위로하려고
십자가 묵주를 선물하였다
한 개, 두 개, 열 개, 오십 개,
위로를 세다가 주머니를 뒤져보니
손수건 한 장



성모님, 그만 눈물을 거두세요
빛의 길을 따라
걸음을 옮기셔야지요
너무 큰 슬픔 앞에서 말문이 막혀버린
유두절의 황새바위성지.



                                                                      ― 「황새바위성지」 전문



    황새들이 많이 서식한다는 ‘황새바위’는 목에 항쇄칼을 쓴 죄수들이 처형당했다 하여 ‘항쇄바위’라고도 불리는 역사상 가장 많은 순교자 기록을 남긴 곳이다. ‘사학(천주학)죄인’들이 전국 각지에서 끌려와 이곳에서 처형당하곤 했다. 그들이 참수, 교수, 옥사, 아사, 매질 등으로 처참하게 죽어간 곳으로 천주교인들이 많이 찾는 곳이기도 하다. 오늘 이 시대에도 뜻하지 않는 죽음들을 많이 접한다. 비단 종교인들만의 아픔은 아닐 것이다. 하늘 같은 부모나 생떼 같은 자식을 주검으로 맞이했을 때의 마음이야 피눈물뿐이겠는가. 예수 아들을 잃는 성모의 아픔은 자식을 잃은 어버이의 대표적인 아픔이다. 세상을 구하고자 한 아들의 죽음이기 때문에 더 가슴이 아팠을 것이다.



창밖에서 매미가 운다
맴맴맴 운다
세살박이의 귀가 둥그래진다
손으로 매미의 울음을 가리킨다
내가 묻는다
매미가 어떻게 우니?
잉잉잉
아니, 매미는 맴맴맴 울잖니
아니, 매미가 잉잉잉
손등으로 우는 흉내를 낸다.



                                                         ― 「매미가 울다」 전문



    매미는 이 한 번의 울음을 울기 위해 너무 많은 시간을 땅속에서 버텼다. 맴맴, 찌르르. 한이라도 풀 듯이 목청을 높인다. 기다린 세월보다 너무 짧은 생이기에 더욱 소리가 크다. 수컷은 뱃속의 오케스트라를 꺼내어 연주한다. 사랑의 지순한 세레나데가 울려 퍼지고 암컷에게 마음이 전해질 때까지 연주는 멈추지 않는다. 또 다른 나를 위해, 짧은 생을 위해, 한 번의 오르가즘을 위해, 울어대는 한여름의 매미소리가 처량하다. 세살박이가 메미가 울어대는 이유를 알 리가 없다. 가르쳐준다 해도 이해가 갈 리 없겠지만 우리는 모르는 사이 모르는 것들을 흘려보내며 삶의 신비로은 세계를 놓치기도 한다. 시인은 매미의 울음소리를 흉내내어 울어본다. 아이도 매미 울음소리를 흉내내고 있다.



    해질녘, 2층 방 창문을 두드리는 먹감나무의 두툼한 입술에 귀 기울인다 말이 하고 싶어 내 창을 기웃거리는 안색이 붉은 나뭇잎, 달싹거리는 잎을 따라 줄기와 몸통에 고인 말들의 문이 내 문을 두드린다 바람이 불 때마다 아랫입술을 도르르 말았다가 펴는 입, 말매미의 울음과 고추잠자리 쉬어간 자국마다 실주름이 진다 빈 감꼭지가 풋풋한 여름으로 차오르는 소리를 듣는다 천둥과 장맛비와 긴 가뭄이 가두었던 먹감나무의 깊은 그늘이, 한 걸음 두 걸음 다가오고 있다 나무의 입이 무거운 속내를 열고 있다.


                                                                                                                                                                                                                                       ― 「나뭇잎은 나무의 입이다」전문   



    어둠이 깔리는 저녁 무렵, 문을 두드리는 먹감나무와 대화를 시도한다. 까맣게 타버린 속을 감추고 속삭이듯 안으로만 삼키는 입술에 귀를 기울인다. 속마음이 낯빛으로 나와 붉게 물든다. 가슴속 깊은 곳의 말들을 내뱉으려 하지만 출구를 찾지 못한다. 오무렸다 펴도 열리지 않는 입이다. 입술에 실주름이 잡히고, 감꽃이 다 떨어진 다음에야 남은 꼭지에 봉긋이 매달리는 감의 말, 긴 가뭄으로 타들어간 목마름을 천둥과 장맛비가 두드리고 퍼부어 말문을 열어준다.  드디어 먹감나무와의 소통이 이루어진다. 새까맣게 타들어간 먹감나무의 가슴이 보일 듯도 하다.
    정미소 시인의 지난여름의 조각들은 바람에 흔들리지만 굳건히 서있는 느티나무와 곰배령의 민박집 아주머니의 따듯한 밥상, 그리고 통곡의 성모에 내미는 간절한 손수건, 생이 짧은 매미의 간절한 울음소리, 먹감나무의 새까만 속을 들여다 보는 시인의 생명에 대한 경건함과 생명에너지의 강건함을 담아낸 것으로 보인다.







**약력:《리토피아》로 등단. 리토피아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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