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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특선/김광옥/소리와 촛불 외 4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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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특선
김광옥
소리와 촛불
소리가 보였다
여러 모양의 촛불이
소리의 결을 따라 출렁거렸다
시간이 흐르자
소리는 흘러넘치고
촛불도 난무했다
소리의 결 따라
사람들은 물결을 이루었고
물결이 사람인지 소리가 사람인지
앞서거니 뒤서거니 했다
손과 손이 맞잡힌 사이를
어깨와 어깨의 흔들림 사이를
소리가 메웠다
소리와 몸은 잘 결합되는 원소였다
소리는 몽둥이로 지워지지 않는다
몽둥이 사이에는 틈새가 있고
소리는 그 사이를 넘나들었다
누구는 횃불로 소리를 태우고
누구는 제 소리로 남의 소리를 지우려 했다
소리는 길을 잃었고
각자의 몸속에 잦아 돌고 있었다
소리가 시든 자리에
촛불 하나 제 살을
태우고 있다
소음과 웃음 사이
“중립을 지키세요”
“우리는 중립이 아니라 공정한 것입니다”*
좌와 우, 동과 서 사이의 중간은 지도 위에는 있으나
너와 나, 우리와 너희의 중위中位는 어디인가요
중간과 중용은 어떻게 다른가요
사랑과 미움의 중간은 어디인가요
기쁨과 슬픔의 중간은
소음과 웃음의 중간은
내가 서야 할 자리는 중간인가요 중심인가요
내가 서야할 자리는 중심인가요 중용인가요
나는 중심과 중간 사이에서 서성인다
나의 발이 둘인 것이 다행이다
너와 나의 거리를 재고 있는 사이
소음과 웃음이 섞이어 들려온다
* 2015년 9월 3일 중국의 항일 승전 70주년 기념식에 참석한 반기문 유엔사무총장
에 대한 일본의 항의와 응답.
너와 나 사이의 소리
네가 말 했어
나는 소리로 답했어
네가 큰 소리를 냈어
나는 네 소리를 덮으려 더 크게 소리 질렀어
소리는 부딪치고 화음이 되지 못했다
두 소리는 갈래갈래 찢어졌고
우리는 두 소리에 밀리지 않으려고
서로 움칠거리며
몸으로 소리쳤다
우리는 더 이상 가까이
다가설 수 없었다
소리가 스치고 지난 자리에
눈물 한 방울 떨어졌다
우리는 마주보며 서 있었을 뿐
다음부터의 소리는 눈물 속에
잦아들었다
감화
우주와 마주하며
감응感應이라네
만물과 이야기하며
감통感通이라네
매일 우러러보는 하늘과
감소感召하기를 바라면서
먹는 밥과
입는 옷과
마시는 샘물과
무슨 대화를 하였으면
적절한 예의를 표하였는가
땅을 딛고 선 지금에
감발感發하고 내일에
감화感化하려는가
나는 이 세계에
무슨 감동感動을 보내려 하는가
사물이 움직일 때
모든 사물이 정지하고 있을 때 움직이는 사물에 유의하라
지하철에서 모든 사람이 시간을 앞으로 돌리며 역을 지워나가고 있을 때 주파수를 변조한 쇠바퀴의 소음보다 더 큰 하늘나라 사자의 목소리 “예수를 믿으시오 회개하시오 남을 위해 살다 죽으시오”
내 귀가 열려야 가까이 갈 수 있을까
지하철 안에서 사람은 사람대로 물건은 시렁 위에서 자기의 공간을 좁혀가고 있을 때 객차의 공간을 느릿느릿 그러나 단호하게 손에 바구니를 들고 돌파하는 저 맹인의 움직임은 무엇인가
내가 눈을 감아야 저 사람의 속으로 들어 갈 수 있을까
모든 사물이 정지하고 있을 때
소리와 움직임으로 공간을 깨는 사물들에 유의하라
움직이는 사물은 우리가 모르는 언어를 발산하고 있다
**약력:1999년 《심상》으로 등단. 수원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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