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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특선/최향란/고래 외 4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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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부
댓글 0건 조회 1,125회 작성일 17-01-02 1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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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특선

최향란





고래



    들린다. 지구에서 가장 커다란 몸 점점 작아지는 소리 파도는 빈 영혼까지도 집어 삼킬 듯 아가리 사납게 벌리고 참 멀다 멀어 점점 뻗쳐오는 아가리, 긴 유선의 몸 틀어 가장 크고 높은 호흡을 조율하라 턱 밑으로 흐르는 수염 흔들어 무더기로 쏟아지는 플랑크톤 끝없이 빨아들이며 너의 푸른 회색 등줄기 보여주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깜깜한 소리의 길 더듬는데 가장 크고 아름다운 노래는, 그 후로도 보이지 않았다






소리도 동백



누가, 보일 듯 들릴 듯 마음으로 가는 바다를 풀어 놓았다



낯선 그 길 소리도 등대에 멈췄을 때
꽃 지던 깜깜한 밤 껴안고 울던 붉은 사랑
어찌 풀어 보냈는지 어디로 놓아준 건지 지난 봄을 묻는다



구석구석 바람이 떨어지는 깊은 그 그늘 지날 때도



목매인 햇살의 소리 듣는다
허공에서 뿌린 사방 구절초며
한 없이 바라보는 해국



이 모든 게 스스로 그리움 부르는 



한 마디 달콤함의 끝 슬픔이래도
아 누가 내 몸과 마음 꽉 붙잡는지
역포 노을이 저녁 식탁 위로 탁, 터졌다



그리하여 그리움을 빙자한 식탐이래도 지워지지 않는 싱싱한 섬으로 앉았다








겨울과 봄 사이

―화태도



    여기 화태도, 겨울과 봄 사이로 차려진 양지바른 밥상 보아요 空달에 태어난 공순씨 손끝 지나가는 겨울과 봄 것들 꽃으로 흔들어대고 있어요 겨울바다에서 속살 가득 찬 감성돔 구이와 이제부터 참맛 드는 저 빛나는 참숭어 회가 겨울과 봄 사이에 있어요 새벽 일찍 잡아온 고동 간장 양념에 고춧가루 약간 고소한 참기름 한 방울 아, 그토록 그리워했던 엄마 밥처럼 그냥 양볼 가득 침 꼴깍꼴깍 넘어가지요 그런데 이게 다가 아니에요 보들보들하면서 쫀득한 해삼이랑 소라의 유혹 언 땅 뚫어 봄 향기 달고 온 달달한 방풍나물 시린 바람 끝 기나긴 겨울 있기나 했냐는 듯 혀 간질간질, 겨울과 봄이 어긋나는 걸 가지런히 정리 해 놓은 화태상회 공순씨 밥상이에요






추억



    뜨거워야 사는 복수초 얼음 아래 숨었는데 눈은 잔인하게 밤새워 내렸어 세상은 처음부터 온통 하앴어 라고 그래서 눈보라 치는 어둠 헤치고 오목 안테나 꽃술을 뻗었어 어차피 다른 길 쉽지 않기에 심장 밖으로 툭 불거져 나온 꽃술이야 이게 생의 마지막이라고 털어 놓으니 불안하기만 했던 봄 두렵지만은 않는데, 모르겠어 샛노란 이 꽃잎의 시작 앞에 훤히 드러나는 그리움 사이의 거리





꼭꼭 숨어라



   안도, 어디로 가야 하나 켜켜이 뼈를 포갠 사람들 호랑이 탈을 쓴 호랑이를 만나 피로 물든 섬 저것 거짓 탈의 손가락질에 죄 아닌 죄로 즉결심판 받아 찢겨진 살 두려움 깊고 깊어 감히 떨지도 못하고 눈빛만 흔들리다가 그 많은 목숨 순식간에 사라진다 저승으로 가는 치 떨린 영혼, 진혼곡은 없다 결국 영원조차 부수어지고 피로 물들어 붉은,



 오늘 붉은 섬으로 간다 다시 바다에 조기 떼 들어오고 이야포에 조국의 태극기는 그 날처럼 펄럭이는데 다시 살아날 수 있다면 그런 날이 온다면 그리운 사람아 꼭꼭 숨어, 바람을 타고 이야포로 들어오시오 좀 더 거칠고 보다 질기게 독 오른 야수의 눈에 띄지 않게 창백한 생 꼿꼿하게 무리 이루어 이야포 돌 틈 보랏빛 갯무로 피어나시오








<시작메모>



해가 지기도 전에 비가 내렸다.
새벽까지 쉬지도 않고 내렸다.
깜박 잠이 들었는데 햇살이 이 방 저 방을 기웃거리고 있었다.
그리고 오후엔 다시 비가 내렸다.



삶이란 이렇게 방심할 틈을 내어주지 않고 쉼 없이 깨어 있으라고 말하는 것 같다.  
가끔은 내 시의 자리를 홀쭉하게 만들어 놓고 버틸 힘이 없다고 말하고 싶을 때가 있다.
그러나 한 번 잡은 손 결국 놓지 못하고 잠시 비 갠 오늘,
한 올의 시를 거둬들인다. 나를 들어 올린다.







**약력: 2008년 《리토피아》로 등단. 해양문학상 수상. 시집 『밖엔 비, 안엔 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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