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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시/최해돈/분리된 거리 외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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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시
최해돈
분리된 거리
블루베리가 사는 집을 생각하던 나는
천천히
우체통처럼 붉어지고 있었다
붉어지면서
투명한 컵이 되었다가, 지우개가 되었다가, 의자가 되었다가, 검은 가방이 되었고
너는
플러그가 되었다가, 담벼락이 되었다가, 밭둑이 되었다가, 마침내 텅 빈 도서관이 되었다
무의식이 여백의 늪에 푹 빠졌을 때
나는 네가 되고 너는 내가 되어 우리는 하나가 되는 듯하였으나, 큰 방을 나와서야 마침내 거리의 개념을 알게 되었다
떨리는 것들이 소나기처럼 막 지나갈 무렵,
너는 저기에 있었고 나는 여기에 있었다
저기와 여기의 거리,
분리된 간격이 우리를 팽팽하게 당기고 있었다
한 뼘의 오후였다
너와 나는
떨어져 있어도 하나가 되고자 저녁으로 가는 들길이 되곤 했다
너의 휘둥그레 뜬 눈동자엔 어느새 겨울의 쓸쓸함이 오래도록 박혀 있었다
비틀거리는 은유들
보도블록을 밟았다. 모든 것이 허락되는 순간의 일이었다. 보도블록도 아픔이 없으면 보도블록이 아니겠지. 보도블록이 어둠의 무게를 쓸쓸히 견디고 있다
여름의 창가에 찬비가 내린다. 비는 7일간 내리겠지. 빗속에서 천 년의 북소리가 쿵쾅거린다. 플래카드가 있는 건널목. 차의 바퀴가 자전한다. 행인의 걸음이 빨라진다. 단절된 문장이 지나가는 숨 가쁜 시간들
나는 오늘 그대와의 경계에서, 빛의 안부가 궁금했다
**약력:2010년 《문학과의식》으로 등단. 시집 『아침 6시 45분』, 『일요일의 문장들』 등. 황금찬문학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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