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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시/이상은/손가락 끝을 기억하다 외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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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시
이상은
손가락 끝을 기억하다
벌목이 지나간 흔적이
손가락 끝에 남아있다
누군가 나이테를 읽고 덩그러니
떠나간 기록이다
나무의 타액으로 굳어진
딱딱한 언어
내가 잠든 사이
제 몸을 접어 제 무릎을 베려고
더딘 것의 간격들은
아침이 진화하도록 저녁마다
이불 펴는 일을 반복하고
그런 저녁이 되면
기억은 역순으로 나를 찾아오곤 했다
휴게소에서의 1박
한 무리 버스가 떠나고 비가 왔다
비를 거둬들이는 소란한 틈 속
나를 데리고 온 내력이
싱거워질 때까지
나를 널었다
기다림은 작정을 하고 비를 맞았고
바람의 방향은 속살처럼 희었다
얼룩으로 익어가는 통감자꽃은
휴게소 뒤 철망을 수시로 넘나들고
철망은 한 때 중심의 뼈로 삭아갔다
여기는 바다였던가 철망이 해안을 따라왔다
비는 할 일 없이 돌아다니며
사람들을 떠나게 했고
텅 빈 해안도로를 끼고 걸었다
침묵이 비에 젖었다
한 때 바다는
작은 돌멩이를 뭍으로 뭍으로
밀어올리는 울음으로 그렁거렸다
새들이 하늘을 가로 지른다
회화나무 몇 잎 떨어지는 순간
겨우 평행으로 기울기 시작하는 바다에서
기록과 기억이 심심해지도록 저울에 달아 보았다
**약력:2012년 《문학과의식》으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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