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작품(전체)
신작시/김영산/배고픈 다리 위에서 부르는 황조가 외 1편
페이지 정보

본문
김영산
배고픈 다리 위에서 부르는 황조가 외 1편
나는 배고픈 다리 위에 서 있었다
이곳에서 그를 만난 일을 생각하며.
읍내 도장집 막내아들인
그는 엄지손가락 없이도 그림을 잘 그렸다
우리는 왕은 아니었지만 왕처럼 살았다
배고픈 다리 곁에서 살다 학교를
그만둔 소년 소녀들과 함께.
나는 이곳에서 5․18을 겪었고 도시로 이사 와 처음
그를 이곳에서 만난 것이다 그 일이 터지고 군중 속에
있던 그가 다리 위의 나를 알아본 것이다
그에 대한 시를 썼는데 <면회>란 시이다
친구의 감지 않는 머리 비듬이
잘게잘게 햇살같이 떨어지는 날이었다
나무그늘에서 매미가 울고 있었다
어머니한테 우울증 때문이라 들었으나
우스갯소리 몇마디 시간이 흘러갔다
헐렁한 병원복에 새겨진
내일에 희망을……
마음에 평화를……
줄담배를 피우던 그는 옷을 여미고
국립나주정신병원 2층으로 올라갔다
나는 몇 년에 한번씩 안부를 물었다
어머니가 또 전화를 받았다
죽었다 했다 눈 오는 밤 버스에 치여.
이미 재는 극락강에 뿌렸다 했다
나는 배고픈 다리 사람들 생각하고 있었다
버드나무는 고목이 돼 있었고 나는 혼자였다
이곳이 버드나무숲이 될 줄 몰랐다 그 소년 소녀들
버드나무가 무엇을 붙들고 있는 줄 몰랐다
그와 나는 십 년을 다리 위에서 만났다
그가 그렸던 풍경은 남지 않았다
배고픈 다리는 차량통행 제한을 했다
버드나무는 푸르게 푸르게 무성했다
버들잎은 여전히 무엇을 붙들고 있을까,
그때였다 그 놀랍고 조용한 일은.
도시 변두리 고층 아파트 빌딩이
내려다보는 천변 버드나무숲에서
노란 새가 그 우듬지 위에 날아올랐다
그건 황금빛 황조였다 펄펄 나는 새는
냇가를 건너 버드나무 우듬지로 날아올라
버드나무 긴 머리채를 빗질하듯 들었다 놨다
춤추다 다시 돌아왔다 커다란 황금의 날개는
광주천변을 공중에 한 번 더 들었다 놨다가
수많은 버들 가닥에 빨려들어 숨어버렸다
아무리 기다려도 새는 나오지 않았다
더는 보이지 않았다 다리 위에서 그를 불렀지만.
제8부두
나는 한때 나를 하역한 적이 있다
영진공사 대형 크레인이 대형 철선의 철판을
들었다 놓으며 배를 건조 중이다
하역 인부들이 모두 떠난 빈 배는 출렁이지 않는다
갑문을 구경 왔던 옛날의 사람들은 보이지 않는다
나는 그때 시인이었고 술에 취해 있었다
갑문은 수위만 조절하는 게 아니다
바다를 너무 오래보면 눈이 가늘어진다 사랑이여
더 이상 나를 가늠하지 마라
물이 차면, 물이 차면 나는 떠날 것이다
나는 한때 거대한 배를 타고 바다를 방랑한 적이 있다
- 이전글신작시/김왕노/궁리 외 1편 15.07.13
- 다음글신작시/김상미/파리의 자살가게 외 1편 15.07.13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