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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시/정영희/우연 외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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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영희
우연 외 1편
집토끼는 왜 산으로 왔을까
어디서 도망쳐왔는지 기력을 모두 탕진한 토끼는 날아드는 돌팔매처럼 철쭉덤불 속에 처박힌다
나는 순간적으로 철쭉나무를 가리고 서서 토끼몰이 하는 아이들에게 새빨간 거짓말을 했다
집토끼는 왜 산으로 왔을까
이른 새벽부터 저녁까지 사람이 들끓는 약수터에 집토끼의 방생은 수난의 연속이다
가뿐 숨 몰아 쉬던 철쭉덤불 속은 이내 잠잠하고 어느 날 뜻밖의 사고에서 우연에 기댔던 나처럼 토끼는 위기를 모면 한다
우연에 기댄다는 것, 말 그대로 우연이다
난해한 긍정
반쪽 어둠은 그늘을 앞세우고 왔다
온전히 검은 것도 흰 것도 아닌
어둠은 낮게 떠도는 주파수 벽이다
도로 위 자동차가 벽에 부딪고 멈춰섰을 때
나는 유리컵 속 물처럼 엎질러졌고
찰나의 어둠 속에서 낯선 별을 보았다
사고에 충실한 들것에 실려
도심 속 섬으로 떠밀려갔다
유폐는 그런 것
병실에 갇혀 있는 동안
내 몸에 무수히 박히는 은 가시들
매일 밤 잠을 샀지만
통증을 동반한 불면은 벼랑이었다
내 안의 어둠이 그늘을 품고
더 깊은 어둠일 때 꽃을 내려다 보듯
대장간 쇠붙이의 연단을 생각했다
새 장에 갇힌 새처럼
뒤늦게 긍정의 주파수를 올려놓고
나는 반쪽 어둠으로부터 자유로워졌다
정영희 - 2007년〈열린시학 >으로 등단, 2012년 열린시학상 수상. 시집「바다로 가는 유모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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